타력본원과 자력
타력본원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이 구제될 수는 없다.
니찌렌 시대의 사람들은 권력에 항거할 수 없는 무지몽매한 자가 대부분이었으므로 남묘호렌게교나 염불을 외는 타력 신앙을 통해서 신불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외에는 달리 구제하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신불에게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맡긴 채 과연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기도하는 것만으로 진정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마음을 무의 상태에 두고 과연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은 신불의 존재를 아는 방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인간은 로보트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서는 인간으로서의 수행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올바른 상념과 행위를 실천하는 가운데 신리의 조화는 생겨난다.
신불에 대해서 또한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대자연의 만상만물에 대해서 감사하는 동시에 보은의 실천이야말로 보살심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칫하면 타력 본원, 자기보존에 빠지기 쉽다.
올바른 목적에 대한 일염력은 노력과 용기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이며, 자기도피와 자기보존의 제목 외우기 따위로 인류를 행복하게 인도할 수는 없다. 신불에게 감사하고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는 보은의 실천 행위를 함으로써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수호령이 있다. 항상 자신의 양심에 묻는 생활을 실천하는 가운데 신성, 불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자신의 마음을 상실한 신앙은 정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영혼의 본체 혹은 분신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있으며, 나아가 각자의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는 지도령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영들에 대한 감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 없는 협력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고 있지 않으니 깨달음과는 거리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구도에 대한 노력의 정도에 따라서 마음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편 우리는 엉터리 지도자의 설법이나, 신리도 모르는 영능자의 예언 등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신불의 노여움이라고 겁을 주거나 부적을 강매하는 따위의 지도자나 교조에게 마음이 빼앗겨서도 안 된다. 그들의 교리를 자세히 살펴보는 동시에 그들의 일상생활의 태도도 관찰해 보고, 스승으로 받들 만한 인물인가 아닌가를 잘 판단한 연후에 신앙을 결정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마저 그들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은 무한한 생명과 상통하고 있는 보배요 왕국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그 왕국을 제삼자에게 팔아넘기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게 되고 노력하는 길도 잊어버리며 타력 본원에 몸을 맡겨버리게 된다. 신불은 스스로 믿고 노력하는 자에게만 도움을 준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에 대한 수호령, 지도령의 협력은 항상 따라다닌다. 즉 자력을 다하는 노력의 극점에서 타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며 신리인 것이다.
실재계의 상단계의 빛의 대지도령이나 빛의 지도령들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에 대해서는 함부로 지도 협력하지도 않거니와 무에서 유가 생겨나는 달콤한 약속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보존의 기도나 독경만으로 행복의 과실을 얻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기도나 불공으로 구제 받는다고 유혹하는 교조나 지도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자아의 지와 의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깊은 추궁이 있어야 올바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
신불의 대리인을 자칭하면서 마으에 평안을 주지 못하는 교조나 지도자들은 저급령이나 동물령에 지배당하고 있다. 한편 이 지상계에 집착하여 방황하고 있는 지박령이나 지옥의 마왕이 빙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비록 그들의 예언이 적중하고 병을 고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며, 더욱 부조화하고 어두운 영역으로 우리의 마음을 몰고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선자들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모순이 많으므로 그럴 때는 주저할 것 없이 의문을 가지고 올바른 해답을 얻어내야 한다.
무엇이든지 성급하게 믿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신불은 각자의 마음의 왕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질이나 외모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중도의 마음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견해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가운데 존재한다.
마음을 돌처럼 단단하게 굳히면 반드시 왜곡되어 버린다. 항상 유연하게 가져야 정법의 실천이 가능해지고 깨달음의 첫걸음을 열 수 있다. 이런 실천을 통해서 90% 잠재의식의 지혜가 용현되어 자신의 과거세를 깨닫게 되고 전생윤회의 과정을 소생시켜 볼 수 있다.
나와 나의 그룹은 마음 속에서 실재계의 수호령, 지도령과 대화도 할 수 있고 육체의 오관을 이용해서도 대화할 수 있다. 명상적 반성을 계속함으로써 우리 몸은 황금색 아로에 싸이고 의식의 광자체는 성운층을 뚫는 크기로 확대되어 지상에 있는 자신의 조그마한 육체를 내려다보게 된다.
우리의 의식은 광자체의 육체를 가지고 원자체의 육체인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원자 육체에서 이탈한 광자체를 부려 차원이 다른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물론 대지도령과도 대화할 수 있다.
이미 이 현상계를 하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갈 볼 수도 있고, 상단계의 빛의 지도령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정도 방문할 수 있다.
천상계에 올라갈 때에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마치 돔같은 것을 타고 초고속 엘레베이터로 상승하는 것 같다. 하늘의 별들이 똑똑하게 보인다. 실재계는 평온한 세계다. 저단계의 세계와 상단계의 세계는 그 영역이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개 육체는 영자선이라는 것에 의해서 광자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서로의 연락을 취할 수 있지만, 의식이 육체로 돌아올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이 지상계의 만상만물은 저 세상에도 존재하며 그 색채는 이 세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부드럽기 그지없다. 식물의 녹색은 이른 봄날의 신록처럼 보드랍고 포근하다. 이 색채는 영혼을 정화한다.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인류 공존의 세계이며, 마치 현상계의 올림픽처럼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저마다의 복장을 하고 공생하고 있는 집단 사회이다. 세계는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똑똑하게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저단계의 세계가 되면 역시 자국적 환경에 칩거한다. 자기주장을 하는 세계다. 더욱이 지옥계에 이르러서는 남을 신용할 수도 없고, 겉으로는 조화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자기 자신의 문제가 되면 서로 싸운다. 자기보존의 세계이며, 평안이란 티끌만큼도 없다. 마왕의 권력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으며 진정한 자유란 있을 수 없고 평안한 생활도 영위할 수 없는 세계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상실한 인간들이 거주하는 부조화한 세계이며, 자비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냉정한 인간들의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는 세계다.
하지만 이런 인간들도 그 환경에서 반성하는 계기를 잡고 언젠가는 빛의 천사들의 도움을 얻어 구제된다. 저세상의 세계는 표면 의식이 90%이기 때문에 반성하면 그 효과가 즉시 현상화되어 광자체의 광자량이 많아져서 조화에의 속도도 매우 빠르다. 마음의 조화도는 곧바로 육체(광자체)에 나타나 당사자는 그 조화도에 상응하는 세계로 상승해 간다. 이와 같은 부조화한 세계에도 여러 단계의 계층이 있으며, 또한 빛의 천상계도 여러 단계로 구분된다. 천상계의 상단계 이상은 천사, 빛의 천사, 상단계 지도령, 상상단계의 빛의 대지도령 등으로 그 세계가 구분되어 각기 조화에 비례한 사회가 구성된다.
이 현상계는 실재계에서 투영되는 입체 영화와 같은 세계이다.
이승이건 저승이건 요는 그 육체 구성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중심인 영혼에는 변화가 없다. 전생윤회를 하는 과정에서 이 현상계에서는 원자체라는 육체를, 저 실재계에서는 광자체라는 육체를 그때그때 갈아 입는 환경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의식, 즉 영혼은 태어나는 일도 없으며 죽는 일도 없다. 불생불멸이다. 불지도 줄지도 않는다. 부증불감이다. 이것이 본래의 실상이다. 우리는 이 본질을 잘 이해하여 거짓의 자기 표현이나 거짓의 신불 신앙, 엉터리 판단은 피해야 한다.
신리를 외면한 거짓 인생이 자기 자신의 마음에 고뇌의 짐을 지게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지배자인 마음의 왕국을 올바르게 구축하여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부동심을 가지고 마음의 짐을 벗어던짐으로써 비로소 안심입명의 평화스러운 환경을 누릴 수 있다.
전래의 누습을 타파하고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는 신불인 '마음'을 믿고 그 마음의 왕국에 내재되어 있는 보고의 문을 자력으로 열지 않으면 안 된다.
숙명론이나 쓸 데 없는 논쟁을 피하고 혼란스러운 온갖 유혹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법에 따른 실천 생활을 통해야만 올바른 마음의 제동장치가 작용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Universial > 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발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장 인생론 노트-자기보존과 위선자 (2) | 2023.02.17 |
---|---|
제6장 인생론 노트-인생 (0) | 2023.02.16 |
제 6장 인생론 노트-조화에의 길 (0) | 2023.02.16 |
제5장 신리의 참 언어-육체는 인생항로의 배 (0) | 2023.02.15 |
제5장 신리의 참 언어: 육체-위장의 의식 (0) | 202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