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타는 계속했다.
오, 라마여! 발리 왕이 했던 것처럼 마음을 변화시키십시오. 나는 그대에게 발리의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영원한 진리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부분(자가뜨)에 지옥(파딸라)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매우 아름다운 여자 귀신, 머리가 여럿 있는 파충류, 거대한 몸을 가진 괴물, 거대한 코끼리, 매우 오염되고 무서운 '까따 끼따'란 소리가 계속 공기를 채우는 곳, 보석으로 가득 찬 동굴과 깊은 갱도, 현인 까필라의 신성한 발의 먼지에 의해 신성하게 된 곳, 선녀가 숭배하였던 하따께슈와라 왕에 의해 신성하게 된 곳들이 있습니다.
비로짜나의 아들인 악마 왕 발리는 이 지역 모두를 다스렸습니다. 우주의 신 슈리 하리는 이 왕의 옹호자였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하늘의 왕 인드라도 그를 숭배하였습니다. 이 발리 왕이 발하는 광채의 열기에 의해 바다는 말라 버렸습니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저 보기만 해도 산들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발리는 매우 오랫동안 지옥을 통치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강한 초연이 발리 왕을 덮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지옥을 통치할 수 있을까? 삼계에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있을까? 이 왕국을 다스림으로써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삼계의 모든 것이 파괴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통해 행복하기를 바랄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는 거듭해서 똑같은 진저리나는 쾌락이 경험되고, 똑같은 행위들이 매일 반복된다. 지혜로운 사람들마저도 어떻게 이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똑같은 밤과 똑같은 낮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삶은 소용돌이처럼 거듭 거듭 돌아간다.
매일 이렇게 한다면, 어떻게 반복되는 존재가 중지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 동안이나 이 소용돌이 속에서 반복되는 삶을 계속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렇게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한때 나의 아버지 비로짜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이 세상의 모습, 즉 반복적인 존재의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언제 그것이 끝나겠습니까? 언제 마음의 미혹이 끝나겠습니까? 무엇을 얻어야 완전한 만족에 이르며, 무엇을 보아야 아무것도 찾지 않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즐거움과 행동에서 얻는 경험으로는 이것을 얻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지 미혹을 악화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고의 평화로운 상태에서 쉴 수 있는 방법을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비로짜나가 발리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아들아! 삼계를 삼켜버릴 만큼 넓은 광활한 왕국이 있다. 그곳에는 호수도, 바다도, 숲도, 강도, 땅도, 하늘도, 바람도, 달도, 신도, 악마도, 반신도, 식물도, 천국도, 높고 낮음도, 말도, 나도, 비슈누와 같은 신도 없다. 단지 하나만이 있다. 그것은 지고이 빛이다. 그는 전지전능하며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이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한 채로 있다. 왕인 그가 명령을 내리면, 그의 대신은 어떤 일도 한다. 그는 없었던 것을 가져올 수 있으며,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변화시킨다. 이 대신은 어떠한 것도 즐길 수 없으며,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무지하고 지각력도 없지만 그는 자신의 주인인 왕을 위해서 무엇이든 한다. 왕은 평화에 자리 잡은 채 홀로 있다.
발리가 질문하였습니다.
아버지! 몸과 마음의 병이 없는 그 왕국은 무엇입니까? 대신은 누구이며, 왕은 누구입니까? 그 이야기는 놀라우며 들은 적이 없습니다. 자세히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비로짜나가 답하였습니다.
모든 신들과 악마들이 모여 병력까지 모았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그 대신에게 도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신들의 왕인 인드라도 아니고, 죽음의 신도 아니고, 부의 신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대가 쉽게 정복할 수 있는 악마도 아니다. 비슈누 신이 악마들을 죽인다고 믿고 있지만, 그들을 소멸시키는 것은 정작 이 대신인 것이다. 사실 비슈누와 같은 신들도 그에 의해 제압되고는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큐피트는 이 대신에게서 힘을 얻는다. 노여움도 그에게서 힘을 얻는다. 선과 악이 여기에서 계속 싸우는 것은 그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이 대신은 그의 주인인 왕에 의해서만 제압되며,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 시간의 예정된 과정 속에서 왕의 마음에 그런 소망이 일어나면 그 대신은 쉽게 파괴된다. 그는 삼계에서 가장 강력하며, 삼계는 단지 그가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그를 정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면 참으로 너는 영웅이다.
태양이 떠오르면 연꽃이 피듯이, 그 대신이 일어나면 이 세상이 나타난다. 그가 물러가면 세상은 잠을 자게 된다. 미혹이나 무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완전히 하나로 모아진 너의 마음으로 그를 정복할 수 있다면, 그때 너는 영웅이다. 그가 정복되면 이 모든 세상과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도 정복된다. 네가 이 세상에 있는 이것저것을 정복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가 정복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정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 아들아! 절대적 완전과 영원한 희열을 얻으려면, 어떤 어려움과 장애가 있더라도 모든 힘과 가능한 방법으로 노력하라.
발리는 물었습니다.
아버지! 그 강력한 대신을 정복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은 무엇입니까?
비로짜나가 답변하였습니다.
이 대신이 거의 무적이지만, 나의 아들아! 그를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주겠다. 그를 지성적인 행위로 붙잡는다면, 한 순간에 그는 제압된다. 그런 지성적인 행동이 없이 다가간다면, 그는 독사처럼 모든 것을 태울 것이다. 지성적으로 그에게 접근한 사람들은 어린애와 놀듯이 그와 놀며, 놀이처럼 그를 정복한다. 그런 사람은 왕을 보며, 지고의 경지에 자리 잡게 된다. 왜냐하면 왕이 보이게 되면 대신은 완전히 통제되는 것이며, 대신이 통제 하에 있다면 왕은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왕이 보이기 전에는, 대신은 정말로 정복되지 않는다. 대신이 정복되기 전에는 왕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왕을 보고 대신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지성적인 수행이 동시에 두 배로 되어야 한다. 강한 자기 노력과 꾸준한 수행으로, 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으며, 그 왕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다시 슬픔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영원히 평화로운 성스러운 이들이 사는 곳이다.
나의 아들아!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명백히 설명하겠다! 앞서 말했던 왕국은 해방의 상태이며, 그것이 모든 슬픔의 끝이다. 그곳의 왕은 다른 모든 왕국과 의식의 상태들을 초월한 참나이다. 대신은 마음이다. 진흙에서 항아리가 만들어지듯이, 이 모든 세상을 만든 것은 이 마음이다. 마음이 정복되면 모든 것이 정복된다. 마음이란 것은 지성적인 수행을 통하는 것 이외에는 거의 불굴의 것임을 명심하라.
발리는 물었습니다.
아버지! 어떤 지성적인 수행이 마음을 정복하게 할 수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비로짜나는 답번하였습니다.
마음을 제압할 수 있는 최고의 지성적 방법은 모든 대상에 대한 욕망, 희망, 기대에서 늘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다. 이 강한 코끼리(마음)가 제압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방법이다. 이 방법은 아주 쉽지만 동시에 매우 어렵다. 나의 아들아! 경건한 수행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쉽다. 씨를 뿌리지 않고는 수확을 할 수 없는 것처럼, 꾸준한 수행을 하지 않고는 마음을 제압할 수 없다. 따라서 이 포기의 수행을 하라. 감각적 즐거움을 멀리할 때까지는 슬픔의 세상에서 계속 배회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꾸준한 수행이 없이는 아무도 완전한 초연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비로짜나는 계속하였습니다.
초연은 올바른 노력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사람들은 신의 은총 혹은 운명에 관하여 말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신을 볼 수 없고 몸만을 지각한다. 사람들이 신에 관하여 말할 때는 피할 수 없는 것, 자신들의 통제와 자연의 질서를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모든 완전한 평온, 즐거움과 슬픔의 단절을 유발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의 은총으로 간주된다. 신의 은총, 자연의 질서와 올바른 자기 노력, 이 모든 것은 같은 진리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한 구분은 잘못된 지각과 환영 때문이다.
적절한 자기 노력을 통해 마음이 생각하는 것은 그 결실이 나타나며, 마음이 그런 결실을 얻을 때 즐거움 등이 있다. 마음은 활동가이며 마음이 생각하는 자연 질서는 창조되고 구체화된다. 마음은 또한 자연의 질서에 반대하여 달려가기도 한다. 따라서 마음은 자연 질서의 증진자라고 말할 수 있다.
바람이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이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바(개체)는 자연의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을 하며 이 세상에서 기능한다. 자연에 의해 자극되었을 때, 그는 움직이거나 서 있는 듯하다. 산 정상에 있는 나무가 움직이므로 산꼭대기가 흔들려 보이듯이, 그 둘 모두는 단순한 표현이거나 거짓된 덧씌움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있는 한, 신도 자연의 질서도 없다. 마음이 존재하기를 멈추게 하고, 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이든 있게 하라!
발리가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어떻게 하면 쾌락을 향한 갈망이 가슴속에서 확실히 끊어지게 할 수 있습니까?
비로짜나가 말하였습니다.
나의 아들아! 참나 지식이란 것이 쾌락 추구의 단절이라는 열매를 만들어 내는 넝쿨이다. 참나가 보여질 때 초연의 최고 완성이 가슴속에서 견고히 뿌리를 내린다. 따라서 사람은 지성적인 탐구를 통하여 참나를 보아야 하며, 그것이 의하여 쾌락에 대한 갈망을 없애야 한다.
지성이 아직 일개워짖 않았을 때, 쾌락을 즐기고 있는 마음의 4분의 2의 한 부분은 경전 연구, 다른 부분은 구루에 대한 봉사에 주어지며, 나머지는 각각 한 부분씩을 얻는다. 완전히 깨어났을 때는 변하지 않는 동료로 초연을 가지고, 절반은 구루에 대한 봉사에 다른 절반은 경전 탐구에 바쳐진다.
비로짜나가 계속하였스빈다.
어떤 사람이 최고의 지혜의 설명을 들을 자격이 부여되는 때는 그 사람이 선함으로 가득 채워졌을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정화된 지식으로써 마음을 부단히 교육시키고, 마음에 경전 연구로 이뤄진 내적 변화의 자양분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마음이 변화되었을 때, 왜곡 없이 진리를 볼 수 있다. 그리고는 바로 참나를 보려고 애써야 한다. 함나 깨달음과 갈망의 단절, 이 둘은 손을 맞잡고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참된 초연은 금욕, 자비, 순례 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직접적으로 지각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올바른 자기 노력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참나 깨달음을 위한 방법이 없다. 따라서 신이나 운명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올바른 자기 노력으로 완고히 거부해야 한다. 초연이 성숙할 때, 탐구하는 정신이 내면에서 일어난다. 탐구하는 정신은 초연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 둘은 바다와 구름처럼 상호 의존적이다. 이 둘과 참나 깨달음은 모두 친한 친구들이며 항상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우선 결심을 굳게 하고 올바른 참나 노력으로 신과 같은 외적 요소에의 의존을 버리고 초연을 길러라. 하지만 전통이나 관습을 어기지 않고 친척들을 무시하지 않은 채 부를 축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는 고귀한 성품을 가진 선하고 숭고한 사람들과의 교제에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숭고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초연을 일으킨다. 그때 탐구하는 정신, 지식과 경전의 연구가 일어난다. 차츰 그 사람은 지고의 진리에 도달한다.
쾌락의 추구에서 완전히 멀어졌을 때, 탐구의 방법을 통하여 지고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완전히 정화되었을 때, 지고의 평화에 있을 것이다. 슬픔의 원인이 되는 개념화의 수렁으로 다시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계속 살아가면서, 너는 모든 희망과 기대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너는 순수하다! 길조의 화신이여, 그대에게 경배하라!
행해지는 사회적 전통에 따라 부를 조금 얻고, 그것으로 현인들과 교제하며 그들을 숭배하라. 그들과 교제함으로써 너는 쾌락의 대상에 대한 경멸을 얻을 것이다. 올바른 탐구에 의해 참나 지식을 얻을 것이다.
발리는 혼자 말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내 안에서 쾌락에 대한 갈망이 그쳤기에, 나는 감로주와 같은 평온한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부의 축적, 욕망의 충족, 성적 쾌락에의 향유, 이것들을 반복하는 것이 정말로 지겹다. 즐거운 것은 평화로운 상태이다. 지극한 내적 평온의 상태에서는 모든 즐거움과 고통이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삶이란 반복되는 경험의 계속적인 순환이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고, 쾌락의 추구로부터 완전히 물러난 마음을 가지고 참나 상태에서 행복하게 머무를 것이다. 이 우주는 단지 마음의 창조물일 뿐이다. 그것을 포기한들 무엇을 잃겠는가?
참회는 충분히 하였다!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병을 즉각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들을 나의 구루인 슈끄라에게 할 것이다.
바시슈타는 계속하였다.
이렇게 결심하고, 발리는 악마들의 구루인 슈끄라를 명상했습니다. 자신이 자리 잡고 있는 무한한 의식 때문에, 슈끄라는 모든 곳에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시 그는 발리 왕 앞에 자신의 몸을 나타내었습니다.
구루의 현존 안에서, 발리는 특별한 광채로 빛났습니다. 그는 적절한 존경으로 구루를 맞이했으며 대단한 헌신으로 그의 발을 숭배하였습니다.
발리는 슈끄라에게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제가 이 문제를 당신에게 묻도록 만든 것은 당신에게서 나오는 신성한 빛 때문입니다. 저는 쾌락에 대한 아무런 갈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리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저는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은 무엇입니까? 제발 이 모든 것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슈크라가 대답하였습니다.
오, 발리여! 나는 다른 영역으로 가는 중이지만, 지혜의 본성에 대해 그대에게 몇 마디 할 것이다. 의식만이 존재하며, 의식만이 이 모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의식으로 가득하다. 나, 그대, 이 세상은 오직 의식일 뿐이다. 그대가 겸허하고 진지하다면, 그대는 내 말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잿더미에다 봉헌물을 붓는 것처럼 많은 설명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봉헌물은 신성한 불에 부었을 때만 효력이 발생한다. 의식의 객관화 즉 개념화를 속박이라 하며, 그런 객관화를 버리는 것이 해방이다. 그런 객관화를 제외한 의식이 모든 것의 실재이다. 이것이 모든 철학의 확신이다. 이런 비전에 자리 잡을 때, 그대는 무한한 의식 도한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신들의 일을 하러 떠날 것이다. 몸이 있는 한, 적당한 활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슈크라가 떠난 후 발리는 명상에 잠겼습니다.
스스이 말한 것은 참으로 옳고 적절하다. 분명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식이며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한한 의식이 '이것이 태양이다.'라는 개념을 가질 때, 태양은 어둠과 구분된다. 즉, 빛과 어둠을 구분하는 것은 의식이다. 땅을 땅으로, 공간의 방향을 방향으로, 전 세상을 세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의식이다. 의식이 산을 인식하지 않았다면, 의식이 산으로 존재할 것인가?
의식 그 자체가 이 모든 것이다.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갈망, 몸, 감각들을 포함하여, 안과 바깥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공간 그리고 변하는 세상까지도 포함하여 이 모든 것은 의식이다. 내가 어떤 대상들과 접촉하고 그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몸 때문이 아니라 의식 때문이다. 몸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 우주의 참나인 의식이다.
의식은 두 번째가 없이 하나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누가 나의 친구이고 나의 적인가? 발리라 알려져 있는 몸의 머리가 잘리면, 무한한 의식도 그것의 머리를 잃어버리는가? 증오나 다른 그와 같은 특성들도 의식의 변형일 뿐이다. 따라서 증오와 집착도, 마음과 마음의 변형도 없다. 의식은 무한하고 완전히 순수한데, 왜곡된 것들이 그 속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의식은 그것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은 단지 단어일 뿐이지 않은가! 그것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모든 대상과 수식어가 없는 영원한 주체이다. 나는 대상들이라는 유혹하는 개념에서 자유로우며, 그래서 영원히 자유롭다. 주체와 대상의 구분이 없는 의식이며, 구분 없이 적절히 행동하며 그리고 모든 모습들 속에 비추어져 있는 불빛인 나 자신에게 나는 경의를 표한다. 나는 경험에 대한 갈망이 멈추어진 의식이다. 나는 공간처럼 한계가 없다. 나는 행복과 불행 등에 의해 닿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나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두라. 왜냐하면 나는 그것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물질 속에서의 에너지의 이동으로 무엇을 잃거나 얻지 않는다. 의식만이 모든 것일 때, 사고와 사고의 확장이 의식을 확장하게 하거나 수축하게 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참나 안의 절대적 침묵에 이를 때까지 계속 움직일 것이다.
바시슈타는 계속하였다.
이렇게 숙고한 후에, 신성한 말 '옴'을 읊조리고 그것의 미묘한 의미를 명상한 후에 발리는 고요한 채로 있었습니다. 모든 의심들로부터, 대상들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생각하는 자와 생각과 생각의 대상 그리고 명상, 명상자와 명상의 대상에에 대한 구분이 없이, 그리고 모든 의도들과 개념들이 고요해진 발리는 마치 바람 없는 곳의 등불처럼 모든 움직임과 사고가 그친 마음을 가지고 지고의 경지 안에 확고히 자리 잡은 채로 있었습니다. 그는 상당한 기간을 이와 같이 살았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하였다.
발리 왕의 추종자 혹은 신하들인 모든 악마들이 궁전으로 급히 와서 깊은 명상 속에 앉아 있는 왕을 둘러쌌습니다. 신비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승인 슈끄라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앞에 있는 슈끄라를 보았습니다. 슈끄라는 발리가 초월 의식의 상태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즐거움을 발하는 미소를 지으며 악마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오, 악마들이여! 발리 왕이 단호한 탐구에 의해서 완성을 얻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그가 계속 자신의 참나 안에 있도록 두어라. 세상에 대한 지각을 일어나게 하는 정신적 활동들이 그의 내면에서 제거되었다. 따라서 그에게 말하려 하지 말라. 무지의 어두운 밤이 끝났을 때, 참나 지식의 태양이 떠오른다. 이것이 지금의 그의 상태이다. 세상 지각의 씨앗이 그의 의식 속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할 때, 그는 지금의 이 상태 속에서 나올 것이다. 따라서 전처럼 그대들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라. 그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뒤에 세상의 의식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그 악마들은 그들의 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는 왕국의 일을 행했습니다. 그런 명상을 천 년 동안 한 후에, 발리 왕은 천상의 음악에 의해 깨어났습니다. 그에게서 발하는 초자연적인 빛이 도시 전체를 비추었습니다.
악마들이 다시 도착하기 전에 발리는 이렇게 숙고했습니다.
잠시 동안 내가 머물렀던 곳은 실로 놀라운 상태였다, 나는 계속해서 그 상태에 있을 것이다. 내가 외부 세상의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지금 지고의 평온과 희열이 내 가슴속에 있다.
그 사이 악마들이 그가 앉아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들을 본 후 발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의식이고 내 속에는 어떤 왜곡도 없다. 획득하고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우습게도 나는 해방을 바라지만, 그러나 누가 나를 구속했으며 언제 어떻게 구속했다는 것인가! 왜 나는 그때 해방을 바랐는가? 속박도 해방도 없다. 명상을 하거나 명상을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명상과 명상을 하지 않는 것의 미혹에서 벗어나, 있어야 할 것을 있게 두라. 나에게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나는 명상하거나 명상하지 않는 것을 갈망하지 않는다. 또한 즐겁거나 즐겁지 않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지고의 존재나 세상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다. 나는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다. 무한한 존재인 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세상이 나의 왕국이 되지 않게 하라. 나는 나 자신으로 있을 것이다. 내가 명상과 무슨 연관이 있으며, 내가 이 왕국과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존재해야 하는 모습대로 존재하도록 두자. 나는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으며, 어느 것도 나에게 속하지 않는다. 나로 알려진 것에 의하여 행해져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왜 자연스런 활동을 해서는 안 되는가?
이와 같이 생각한 뒤 발리 왕은 태양이 연꽃 위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모여 있는 악마들을 향하여 광채를 비추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하였다.
그 후에 발리 왕은 계획 없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하면서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브람만 계급들(브람마나스), 신들, 신성한 사람들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는 친척들을 존경으로 대하였습니다. 노예들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주었으며,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여자들과도 다정하게 지냈습니다.
신성한 의식을 행하려는 소망이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것을 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과 재료들을 모았습니다. 그는 적절하게 의식을 차렸습니다. 이 의식을 하는 동안에 발리 왕에게서 삼계의 통치권을 빼앗아 인드라에게 주기를 원했던 비슈누는 난장이의 모습을 취하고는, 발리 왕을 속여 세상의 통치권을 비슈누에게 거저 주도록 했습니다.
오, 라마여! 이 발리는 다음의 인드라가 될 것입니다. 그는 천국을 다스릴 때를 기다리면서 비슈누 왕에 의해 보내졌던 곳인 저승에서 해방되고 깨달음을 얻은 현인으로 지냅니다. 번영이 찾아오든 역경이 찾아오든 그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의식은 행복과 불행에 의기소침하거나 의시양양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삼계를 수십억 년 동안 다스렸지만, 지금은 그의 가슴이 쉬고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삼계를 또다시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드라가 될 것이란 기대에 흥분하지 않으며, 지위를 잃고 지옥에 내팽개쳐졌을 때도 의시소침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라지 않았는데도 오는 것은 무엇이나 반갑게 맞으며 자신 안에서 평화롭습니다.
오, 라마여! 나는 그대에게 발리 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가 지고의 희열을 가지고 즐겼던 것처럼 그런 통찰을 가지십시오. 이 세상에서 정수도 없고 쓸모도 없는 감각적 쾌락을 향한 갈망을 버리십시오. 그대를 유혹하는 매력적인 대상들은 멀리 보이는 바위 형상들보다 감탄받을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날아다니는 마음이 그대의 가슴속에 확고히 자리 잡게 하십시오.
그대는 의식의 빛입니다. 오, 라마여! 그대 안에 세상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누가 그대의 친구이고 누가 다른 사람입니까? 그대는 무한한 존재입니다. 그대 안에 묵주의 구슬처럼 모든 세상이 꿰어져 있습니다. 그대인 그 존재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참나는 실재이지만, 태어남과 죽음은 상상입니다. 삶을 괴롭히는 모든 질병의 근원을 탐구하십시오. 그리고 갈망이 없이 사십시오. 그대는 빛이고 신인 라마입니다. 이 세상은 그 빛 속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은 어떤 실재하는 독립된 존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전에, 그대는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잘못된 개념들을 반복해서 간직했습니다. 이것들 또한 포기하십시오. 그때 그대는 평온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탄생의 바퀴는 멈추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것 안에라도 마음이 가라앉으려 하면, 그것에서 마음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진리로 향하게 하십시오. 마음이라는 야생 코끼리는 길들여질 것입니다.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사악하며 스스로가 선생이 된 자들의 길고 공허한 말로 인해 길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대는 나의 설명을 들음으로써 확실히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Hinduism > 요가 바시슈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디의 이야기 (0) | 2018.04.10 |
---|---|
쁘라흘라다의 이야기 (0) | 2018.04.10 |
뿐야와 빠바나의 이야기 (0) | 2018.04.10 |
자나까 왕의 이야기 (0) | 2018.04.10 |
5부 소멸에 관하여-요가 바시슈타 (0) | 2018.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