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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uism/요가 바시슈타

가디의 이야기

by Yuneelif 2018. 4. 10.

바시슈타가 말했다.

오, 라마여! 탄생과 죽음의 순환은 무한합니다. 이러한 마야는 다른 것으로 끝낼 수 없으며 마음을 제어할 때만 멈춥니다. 이것을 설명히기 위해 그대에게 들려줄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코살라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디라는 브람마나(브라민 계급의 사람)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학식이 있었으며, 덕의 화신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포기와 초연의 정신으로 가득했습니다. 한번은 이 브람마나가 금욕 생활을 하러 숲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비슈누를 보게 되기를 바라면서 강물 속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만뜨라들을 읊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존재를 완전히 정화시켰습니다.

8개월 후, 비슈누 신이 그곳에 나타나 그에게 '원하는 바를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브람마나가 대답했습니다.

"신이시여! 모든 존재를 혼란하게 하고 그들을 무지에 빠뜨리는, 당신의 현혹시키는 힘인 마야를 보고 싶습니다.."

비슈누 신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의 마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즉시 대상들에 대한 미혹된 지각을 버리게 될 것이다."

비슈누 신이 사라진 뒤 가디는 물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비슈누 신을 본 결과에서 온 희열 속에 잠긴 채 여러 성스러운 활동을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강에 목욕하러 가서, 여전히 비슈누 신의 말을 명상하고 있었습니다. 물 속에 있을 때, 그는 자신이 죽어 있고 사람이 애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몸은 가라앉아 있었고 그의 얼굴은 챙백하여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큰 소리로 통곡하고 있는 매우 많은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위로할 길 없는 크나큰 비탄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발을 쥐고서 마치 둑이 터진 듯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붙잡고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탄해 하는 많은 친척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잠들거나 깊은 명상에 있는 듯 고요히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친척들의 통곡과 울부짖음을 다 듣고는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하고 생각하며 우정과 친척 관계의 속성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곧 친척들이 그의 몸을 화장터로 얾겼습니다. 장례 의식을 치른 후, 그들은 시신을 화장요 장작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장작에 불을 붙이자 가디의 몸은 불에 타 버렸습니다.

바시슈타가 계속 말했다.

오, 라마여! 아직껏 강물 속에 있던 가디는 부따만달람이라는 지방의 부족 여인의 자궁 속에 태아로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의 몸속에서 오물과 살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동안 그는 자신의 배설물 속에서 뒹굴었습니다. 그는 부모처럼 검은 피부를 지녔습니다. 그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곧 그는 건장한 젊은이로 자랐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부족의 여자와 결혼하였으며 숲 속을 자유로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유목 생활을 하면서, 나무 아래에서 자기도 하고, 수풀 속에 숨기도 했으며, 때로는 거주할 동굴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자녀들도 그가 그런 것처럼 활기차고 사나웠습니다.

그는 거대한 가족을 거느리게 되었고 많은 친지와 친구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늙었을 때 자신은 죽지 않았지만 죽음으로 친구와 친지를 하나씩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혐오감을 느끼고 고향을 떠나 외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정처 없이 여러 나라를 떠돌았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던 어느 날, 매우 번영하고 부유한 어느 왕국에 들어가게 되어 수도에 있는 큰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자신의 앞쪽에 호화롭게 꾸민 거대한 코끼리를 보았습니다.

이 왕실 코끼리는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 왕국을 다스리던 왕이 후계자 없이 막 죽은 터라 관례에 따라 이 왕실 코끼리가 적당한 후계자를 찾도록 위임되었습니다. 마치 보석 상인이 고귀한 보석을 찾듯이 적당한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그 코끼리를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코끼리는 그를 그의 짐 가방과 함께 번쩍 들어 올려 자기의 등에 올려놓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도시에서는 북과 나팔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기쁨에 넘쳐 "왕이시여! 장수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코끼리가 왕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곧 사냥꾼은 왕족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왕실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기품 있는 옷과 보석으로 그를 치장했습니다. 그에게 화환을 씌우고 여러 가지 연고와 향수를 제공했습니다. 사냥꾼은 찬란한 왕처럼 빛났습니다. 그가 코끼리 등에 마련된 옥좌에 앉아 있는 동안 그에게 왕관이 씌워졌습니다. 그리하여 부족민이자 사냥꾼이 끼라뿌라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왕으로서의 모든 향락과 특권을 누렸습니다.

날이 갈수록 왕이라는 그 지위가 그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가발라라는 유명한 왕이 되었습니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시녀들과 대신들로부터 극진한 봉사를 받은 가발라 왕은 자신의 미천한 출신을 완전히 잊었습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그는 자비와 순수함으로써 나라를 공정하고 현명하게 다스렸습니다.

어느 날, 그가 왕의 옷과 휘장을 두르지 않은 채 간소한 차림으로 내궁을 배회하였습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외부적인 장식들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궁 밖에서 그는 친숙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떼의 사람들을 보고서 조용히 그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나이 많은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서 사람들로부터 일어나 그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어이, 까딴자! 이 나라의 왕이 그대의 음악적 업적을 인정하여 그대에게 좋은 선물을 내렸는가? 아! 그대를 만나 무척 기쁘다. 어느 누가 옛 친구를 만난 것이 기쁘지 않겠는가?" 가발라 왕은 이 사람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멀리서 보고 있던 왕실의 부인들과 대신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왕은 급히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왕실의 하인들과 신하들은 그들의 왕이 그들로서는 아는 척도 하지 않는 비천한 부족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마치 악취 나는 송장 취급했습니다.

대신들과 하인들과 그를 치장하려고 기다리던 부인들에게서 무시당하게 된 가발라 왕은 그의 본 모습인 어리석고 추한, 화장터처럼 보기만 해도 금찍한 부족 사람으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조초도 그를 피했고 그의 면전에서 피해 달아났습니다. 궁전 안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지만, 그는 완전히 외로움을 느꼈고, 왕이었지만 가난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가 말을 걸려 해도 사람들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의 지도자들이 협의회를 열어 상의하였습니다. "아아! 개가죽을 쓰고 사는 이 부족민을 접했으니 우리는 더럽혀졌다. 이 오염을 씻을 길은 죽음 외에는 없다. 거대한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우리의 더렵혀진 몸을 던져 영혼을 깨끗이 하자." 이렇게 결정하고 그들은 장작을 모아서 거대한 화장터를 만들어서는 한 명씩 몸을 던져 넣었습니다. 연장자들이 모두 그렇게 그들의 생을 마치게 되어, 그 도시는 무질서와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가발라 왕은 후회했습니다. "아, 이 모두가 나로 인해서이다! 어찌 내가 더 살려 하는가. 죽음이 삶보다 낫구나. 사람들에게 불명예스러워진 사람은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렇게 결심하고서 왕 또한 조용히 자신의 몸을 불 속에 던졌습니다. 가발라 왕의 사지가 불에 타기 시작하자, 강물 속에 가라앉아 기도문을 읊고 있던 가디가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날이 저물었고, 또 하나의 날이 끝났다.)

바시슈타는 말했다.

그 후 가디는 그가 가졌던 환영의 비전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다시 한 번 '나는 가디다.'라는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종교 의식을 마치고 강에서 나와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게 되었는가?" 하고 묻기를 계속했습니다. 자신이 피로에 지쳐 그의 마음이 자신을 속였음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걸어 나갔을 때도 그는 그 환영에 관해 깊이 빠져 부모와 친구와 그 환영에서 보았던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 모든 것은 환영이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어떤 것도 지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다른 브람마나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가디는 정중히 그 귀빈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디가 손님에게 "왜 그리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귀빈이 대답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리다! 북쪽에 끼라라는 왕국이 있습니다. 나는 거기서 융숭하게 대접받으며 한 달을 보냈는데 그들에게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어떤 부족인이 이 왕국을 8년간 다스렸다. 그 후 그의 정체가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이곳의 많은 브람마나들이 죽었다.'하였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나 또한 더러워짐을 느껴 신성한 장소인 쁘라야가로 가서 엄격한 금욕과 긴 단식을 했습니다. 바로 오늘 그 긴 단식을 마쳤습니다." 그 손님은 그 밤을 가디와 함께 보내고 다음 날 떠났습니다.

가디는 더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환영 속에서 보았던 것을 그 손님은 실제로 보았구나. 아! 그 이야기를 나 스스로 밝혀 봐야겠다." 이렇게 결심하고 가디는 먼저 부따만달라라는 곳으로 급히 가 보았습니다. 의식 수준이 고도로 높은 사람은 스스로의 독특한 노력에 의해 자신이 마음으로 상상한 것도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디도 목적지에 닿아 그가 상상한 것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의 의식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한 마을을 보았습니다. 바로 자신이었던 그 부족인의 집을 보았고 그가 사용하였던 물건들을 보았습니다. 집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고 동족에 의해 살이 뜯겨 먹힌 동물의 해골들도 보았습니다. 한참 동안 그는 묘지처럼 끔찍한 장소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을 떠나 이웃 마을에서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쪽에 살던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그러자 그 마을 사람이 "예, 물론 압니다. 보기에도 끔찍하고 흉악한 사람이 저곳에 오래 오래 살았습니다. 그의 동족을 모두 잃게 되자 그 사람은 그곳을 떠나고는 끼라의 왕이 되어 8년간 다스렸습니다. 그의 신분이 들통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고 그 자신도 죽었습니다. 왜 그에 대해 물으십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가디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가디는 그 마을에서의 자신의 '삶'과 관계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과 장소들을 알아보았는데, 취해서 누워 있던 곳, 잠잤던 곳, 음식을 먹었던 장소, 입었던 옷 등이었습니다. 가디는 그곳에서부터 끼라 왕국까지 여행했습니다. 수도에 가서 시민들에게 묻길 "얼마 전 부족인이 이 나라를 다스렸습니까?" 하니 그들은 열광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8년간 이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는 코끼리에 의해 왕으로 뽑혔었지요. 그의 신분이 들통 나자, 그는 자살했습니다. 그것이 12년 전의 일입니다."

바로 그때, 가디는 수행원과 함께 궁전에서 나오는 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왕은 비슈누 신의 변신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자, 가디는 의아스러웠습니다. "이곳은 내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실제로 다스렸던 끼라 왕국이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마치 전생에서 일어난 일처럼 여겨지다니!" 가디는 스스로에게 말했스비다. "꿈만 같구나. 그러나 내 눈앞에 실제로 나타나는구나. 아아! 나는 틀림없이 어떤 환영의 그물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비슈누 신이 나에게 그의 마야를 볼 수 있는 은총을 내렸음을 기억한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로구나." 가디는 그 도시를 즉시 떠나 근처 산에 있는 동굴로 가서 강한 금욕 생활을 수행했습니다.

곧 비슈누 신이 그의 앞에 나타나서 어떤 은총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가디는 "꿈 속에서 겪었던 환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신이 말하였습니다.

오, 가디여! 그대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환영이다. 그것은 진실로는 참나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정화되지 못한 마음과 진리를 깨닫지 못한 마음에 의하여 지각된 것이다. 참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무가 씨앗 속에 들어 있듯이, 이 모든 것은 이미 마음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도 마음은 그것이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본다. 지금 이 모든 것을 지각하는 것은 바로 마음일 뿐이다. 미래에 일어나리라 예상하거나, 과거에 일어난 기억으로 여기는 것들 모두가 마음의 조화이다. 꿈으로 격거나 환영이나 병 등으로 겪은 것들은 모두 마음이다. 나무에 가득 활짝 핀 꽃들처럼 온갖 '사건'들이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 또한 뿌리 없는 나무가 꽃을 피우지 못하듯이, 지각이나 개념에서 자유로운 마음은 다시 태어남으로부터 자유롭다.

수없이 많은 생각을 지니고 있는 마음이 '나는 부족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나타낼 수 있어야 햇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이와 같이 똑같은 마음이 '이야기를 해 준 브람마나 손님을 모시고 있다.', '나는 부따만달람에 갈 것이다.', '나는 지금 끼라 왕국에 있다.'라는 여러 생각들로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단지 환영일 뿐이다! 그러니 성스러운 이여! 그대는 환영의 양면을 다 보았다. 하나는 그대가 환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은 그 둘 모두 환영인 것이다. 그대는 손님을 맞은 적도 없고,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이 모든 것 역시 환영일 뿐이다. 그대는 실제로 부따만달람이나 끼라 왕국에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또한 환영이다. 오, 현명한 자여! 일어나서 여기 이 상황에 적합한 행위는 어떤 것이라도 행하라. 그렇지 않고는 지금의 삶 속에서 가치로운 것을 얻을 수 없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다시 한 번 확신하기 위해, 가디는 다시 부따만다람 등지로 가서는 또다시 마을 사람들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 앞에 나타난 비슈누 신을 또 경배하며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저는 두 나라를 6개월 동안이나 돌아다녔으며 그곳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전해 주는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의 혼란을 없애 주십시오."

신이 말했습니다.

오, 가디여! 그대와 상관없이 일어났을지 몰라도, 이런 일들은 그대의 마음 안에 비추어졌다. 그것은 까마귀가 야자나무에 앉자 그 열매가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우연적인 관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그대가 그대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 이야기를 똑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런 동시성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때때로 똑같은 환영이 여러 명에게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꿈을 꾸기도 한다. 여러 사람이 똑같은 환영을 경험하기도 하며, 많은 술주정뱅이들이 동시에 이 세상이 자신들 주변을 회전하는 것을 경험한다. 많은 아이들이 똑같은 놀이를 한다.

그런 혼란은 시간에 관해서도 사람들의 마음 안에 일어난다. 시간은 마음에서 일어난 개념이다. 시간은 상호 인과 관계가 있는 어떤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비슈누 신이 사라지자, 가디는 오랫동안 깊은 명상에 잡겼다가 다시 한 번 기도하자 신이 앞에 나타났습니다. 가디는 "신이시여! 저는 당신의 마야에 의해 혼란스럽습니다. 적당한 방법으로 이 혼란을 없애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신이 말했습니다.

그대가 부따만달람과 끼라에서 보았던 것들은 사실일 수 있다. 끼딴자라는 부족 사람은 실제로 얼마 전에 태어났었고 자신의 동족을 잃고 끼라의 왕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그대의 의식 안에서 비추어진 것들이다. 마음은 실제로 겪었던 일을 때때로 잊는 것처럼, 그것은 본 적도 없는 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꿈과 비전을 보는 것처럼, 사람은 깨어 있는 상태 동안에도 환영을 경험한다. 비록 끼딴자는 몇 년 전에 살았지만, 그대의 의식 속에는 현재 있는 듯이 여겨지는 것이다.

'이것이 나다.'와 같은 개념은 참나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지한 사람의 마음에만 떠오른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이다.'라는 진리를 아는 사람은 비탄에 빠지지 않고, 슬픔의 산물인 유한한 대상을 잡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기쁨이나 슬픔에 지배되지 않는다.

그대는 완전히 깨닫지 않았으므로 그대의 마음은 객관적인 대상이나 개념에 의한 환영에 집착한다. 이런 마야는 모든 곳에 퍼져 있다. 중심에 세워진 사람은 미혹이 없다. 일어나라. 10년간 집중적으로 명상하라.

그 이후 가디는 깊은 명상에 전념하고는 참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두려움과 슬픔을 벗어난 해방된 현인으로 살았습니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이 우주적 환영(마야)은 큰 혼란을 낳으며 불안정한 본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짧은 한 시간 동안의 꿈에 걸친 환영과 온갖 다양한 일들을 겪은 한 부족 사람의 전 생애 사이에 어떤 대조점이 있습니까? 다시 말해, 그런 환영 속에 보이는 것과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어떻게 관련지을 수 있겠습니까? 또는 어떤 것이 정말로 사실이 아니고 어떤 것이 실제적인 변형을 겪습니까? 그러므로, 오, 라마여! 이 우주적 환영은 마음을 끝없는 어려움 속으로 이끈다는 것을 그대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오, 성스런 분이시여! 하지만 그렇게 거대한 힘으로 돌고 있는 이 우주적 환영의 수레바퀴를 어떻게 정지시킬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마음이 미혹된 자들의 마음속에 미혹을 일으키며, 이 악순환이 그 주위에서 순환하게 하는 축입니다. 집중적인 자기 노력과 날카로운 지성을 통해 그 축을 멈춤으로써 그 전체 바퀴를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축의 움직임이 멈추어야 바퀴는 돌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즉 멈추면, 환영이 그칩니다. 이 기술을 모르고 그것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끝없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보십시오! 진리가 보이는 순간, 슬픔은 끝이 납니다.

이 세상의 환영을 지각하는 병을 고치는 유일한 치료법은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 라마여! 성지 순례라든지, 선물이나 금욕 생활 같은 행동들을 그만두고, 궁극의 선을 위하여 마음을 그대의 지배 하에 두십시오. 항아리 안에 공간이 있듯이, 마음 안에 세상의 모습이 있습니다. 항아리가 깨어진다면, 공간의 환영적인 분리는 사라집니다. 마음이 존재하기를 멈추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세상이라는 개념도 없어집니다. 항아리가 깨어지면 항아리 안에 갇혀 있던 벌레가 자유를 얻듯, 마음과 그 안에 포함된 세상의 환영이 없어지면 그대 역시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현재에 살아가십시오. 잠시 외부로 나타난 의식을 가지지만 그러나 아무런 노력 없이 살아가십시오. 마음이 그 자신을 과거나 미래에 연결짓는 것을 멈출 때, 마음은 마음 아닌 것이 됩니다. 순간순간 그대의 마음이 순수함으로 가득 찬 채 마음 아닌 것이 됩니다. 구름이 있을 때라야 비가 내리듯이, 마음이 다양한 투사나 확장을 경험할 때에만 마음은 동요되기를 계속합니다. 또한 무한한 의식이 자신을 유한한 마음으로 한정시킬 때, 그런 동요나 확장이 일어납니다. 의식이 유한한 마음이기를 멈춘다면, 그래서 탄생과 죽음이라는 순환하는 세상 환영의 뿌리는 타 버리고 거기에 완벽함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바시슈타가 말했다.

마음의 한계가 없는 의식을 내면의 지성이라 합니다. 내면의 지성이 마음 없음의 핵심적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내면의 지성은 개념과 관념의 불순함에 의해 오염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재이고, 그것은 최고의 길조이며, 그것은 지고의 참나로 알려진 상태이고, 그것은 전지입니다. 그리고 그런 통찰은 사악한 마음이 움직일 때는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는 희망과 욕망이 번창하고, 그래서 고통과 쾌락의 경험이 일어납니다. 진리를 깨닫게 된 의식은 개념과 관념 속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다양한 심리적 경험을 겪는 듯이 보일지라도, 의식은 세상의 환영과 세상의 모습의 순환을 만들지 않습니다.

경전 공부, 성스러운 이들과의 교제, 진리에의 방심 없는 수행을 통해 일깨워진 이들의 경우, 그들의 의식은 대상이 없는 순수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무지와 동요 상태에서 힘차게 끌어올려, 그것을 경전 공부와 신성한 현인들과의 교제에 바치도록 해야 합니다.

지고의 참나나 무한한 의식을 깨닫기 위한 유일한 도움은 참나뿐입니다. 자신의 슬픔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참나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혼자 힘으로 자기 자신의 참나를 깨우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오, 라마여! 이 세상에서 말하기, 가지기, 머물기 등의 움직임을 하는 동안에도 마음 없이 존재하며 그리고 그대는 순수 의식임을 깨달으십시오. '이것은 나의 것이다.', '저 사람은 그이다.', '나는 이러하다.'와 같은 개념들을 버리고 분리되지 않은 하나라는 의식 안에 확고히 있으십시오. 몸이 남아 있는 동안, 현재와 미래를 차분한 의식을 가지고 생각하십시오. 어릴 때나 젊을 때나 늙어서나, 또한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라도, 또 깨어 있거나 잠자거나 꿈꿀 때와 같은 이 모든 상태들에서 언제든지 참나의 의식 속에 확고하십시오. 대상적 지각의 불순함, 희망, 욕망을 버리고, 참나 지식 속에 확고히 남아 있으십시오. 상서롭거나 불길한 일들에 대한 개념들을 버리고,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비전들을 버리십시오. 그대는 바로 의식의 정수임을 아십시오. 주체, 대상, 행위들이 그대를 건드릴 수 없음을 깨달으십시오. 혼란없이 순수한 의식으로 있으십시오. '나는 모든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깊은 잠 속에 든 것처럼 깨어서 사십시오. 이원성이라거나 비이원성이라는 조건들에서 자유로워지십시오. 순수한 의식과 자유의 상태인 평온 속에 머무르십시오. 이 우주적인 의식은 '나'와 '남'으로 나누어지지 않음을 깨닫고 견고하게 흔들리지 마십시오.

바시슈타가 계속해서 말했다.

한계가 없으며 인내와 끈기를 지닌 지성으로써 모든 희망과 욕망의 족쇄들을 자르고, 다르마와 아다르마를 초월하십시오. 참나 지식에 확고히 뿌리내릴 때, 최악의 독약도 불멸의 과즙으로 바뀝니다. 이 참나 지식이 무지에 의해 압도될 때 세상 모습이라는 미혹이 마음에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무한하고 제한이 없으며 무조건적인 참나 지식 안에 견고히 자리 잡을 때, 세상 모습을 일으키는 망상이나 무지는 끝나게 됩니다. 그때, 그대의 지혜의 빛은 세상을 꿰뚫고 사방으로 빛납니다.

참나 지식이라는 형태로 있는 불멸의 과즙을 마신 사람에게는 감각적인 쾌락은 고통스러워집니다. 우리는 참나 지식을 얻은 이들과의 교제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인간의 옷을 입은 당나귀입니다. 코끼리가 큰 걸음걸이로 움직이듯이, 높은 경지의 의식 상태에 다다른 현인들은 의식의 더욱 높은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외부적인 도움을 전혀 가지지 않고 있으며, 어떤 태양들도 그들의 길을 비추지 않습니다. 참나 지식만이 그들의 빛입니다. 태양이 비치는 한낮에는 등불이 빛을 잃듯이, 사실 태양과 세상은 대상적인 지각이나 지식의 범위를 넘어선 그들에게는 지각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참나 지식을 가진 현인 즉 진리를 아는 이들은 찬란하고, 영광그럽고, 강력하고, 거대하며, 탁월함의 상징이라 여겨지는 여러 특징을 부여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최고입니다. 이 현인들은 이 세상에서 태양처럼, 불처럼, 달처럼, 일제히 반짝이는 별들처럼 빛납니다. 반면에, 참나 지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벌레나 곤충보다 더 못합니다.

참나 지식이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는 한, 미혹이라는 허깨비는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런 무지한 사람들은 아무리 무지를 벗어나려고 모든 곳을 헤매고 다니면서 노력해도 언제까지나 슬픕니다. 그는 참으로 걸어 다니는 송장입니다. 참나 지식을 지닌 현인만이 의식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두꺼운 구름이 끼면 태양 빛이 가리듯이, 마음이 불순함과 무지함으로 차게 되면 참나 지식의 빛은 가려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과거에 경험해 보았거나 아직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간절히 바라는 쾌락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 쾌락에 대한 맛을 포기함으로써 마음을 차츰 약화시켜야 합니다. 몸과 그와 관련된 것 즉 아내나 아들, 가족 등과 같은 참나 아닌 것과의 잘못된 관계를 형성함으로 마음은 점차 거칠어집니다. '나', '내 것'이라는 개념이 마음을 더 우둔하고 무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노화, 슬픔, 야망, 심리적 고뇌, 성취하거나 포기하려는 노력, 애착, 탐욕, 부와 성을 향한 욕망, 감각적 쾌락을 즐김으로써 점차 더 악화되는데, 이런 모든 것은 모두 무지와 미혹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오, 라마여! 마음이라는 것은 몸이라는 척박한 들에 뿌리내린 나무와 같습니다. 걱정과 불안이 그 나무의 꽃이고, 늙음과 질병이라는 열매가 달리게 됩니다. 욕망과 감각의 향락이라는 꽃으로 단장하고, 희망과 바람이 그 나무의 가지들이며, 심술궂음이 그 나무의 잎들입니다. 산처럼 흔들림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치명적으로 유독한 나무를 탐구라는 날카로운 도끼로 베어 버리십시오.

오, 라마여! 이 마음은 몸이라는 숲을 골아다니는 한 마리 코끼리와 같습니다. 그것의 시야는 미혹에 의해 흐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조건지워지고 무지한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참나 희열 안에서 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난폭합니다. 그것은 현명한 이들로부터 듣는 진리를 인식하기를 바라지만, 다양성이라는 지각에 잡혀 있으며 쾌락이나 고통이라는 개념에 조건 지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욕망 등의 흉포한 이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 라마여! 그대는 사자입니다! 오, 라마여! 이 코끼리를 그대의 날카로운 지성으로 산산조각 내십시오.

오, 라마여! 이 마음은 몸이라는 둥지에 살고 있는 까마귀와 같습니다. 그것은 오물 속에서 한껏 즐기고, 살을 먹고 강해지고, 다른 이의 심장을 꿰뚫고, 자신의 견햄반을 진리라고 여기고, 늘 자라고 있는 어리석음 때문에 우매합니다. 악의 경향성들로 가득 차 있고, 난폭한 표현에 빠져듭니다. 그것은 땅 위의 무거운 짐입니다. 오, 라마여! 그것을 그대로부터 멀리 몰아내십시오.

오, 라마여! 이 마음은 귀신과 같습니다. 그것은 갈망이라는 악귀의 시중을 받으며 무지의 숲에서 쉽니다. 그것은 미혹 때문에 수많은 몸속을 방황합니다. 지혜와 초연, 구루의 은총, 자기 노력, 만뜨라 찬송 등의 도움으로 이 귀신을 눕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참나 지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 라마여! 이 마음은 수많은 존재들을 죽여 온 독뱀과 같습니다. 이 뱀을 적절한 명상적 방식이나 가르침이라는 독수리의 힘으로 죽이십시오.

오, 라마여! 이 마음은 원숭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이리저리 과일인 보상이나 즐거움 등을 찾아 돌아다니고, 이 세상의 순환에 묶인 채 춤추고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그대가 완전함을 얻고자 한다면 모든 면에서 마음을 제거하십시오.

오, 라마여! 이 마음은 무지의 구름과 같습니다. 모든 개념과 관념을 반복해서 포기함으로써 그것을 제거하십시오.

끔찍한 무기가 더 강력한 무기로 파괴되듯이, 마음을 마음의 도움으로 고요하게 하십시오. 모든 형태의 마음의 동요를 버리십시오. 원숭이들의 소란이 없는 나무처럼 그대 안의 평화에 머무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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