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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uism/요가 바시슈타

뿐야와 빠바나의 이야기

by Yuneelif 2018. 4. 10.

바시슈타가 말하였다.

오, 라마여! 이와 관련하여 내가 그대에게 설명해 줄 고대의 전설이 있습니다.

잠부드비빠라는 대륙에 마헨드라라는 거대한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의 비탈에 있는 숲 속에는 많은 현인들과 현명한 이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 산에서 흘러내리는 뵤마 강가(혹은 아까샤 강가) 강에서 목욕물과 마실 물 등을 길었습니다. 강의 둑에는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부단한 권위의 바로 그 화신인 디르가때빠라 불리는 현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고행자는 뿐야와 빠바나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뿐애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였지만, 빠바나는 무지를 극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깨달음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여 중간 정도의 지혜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며 무형으로 있는 냉혹한 시간이 지나간 후에 여러 유형의 집착과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던 디르가때빠는 새가 자신의 새장을 떠나 날아가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버리고는 완전한 순수의 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배운 요가의 방법을 사용하여, 그의 아내 또한 그를 따랐습니다.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에 빠바나는 슬픔에 빠져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반면, 뿐야는 장례식을 준비하였으나 부모를 잃은 ㄱ서에 동요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는 술픔에 잠겨 있는 그의 동생 빠바나에게로 갔습니다.

뿐야는 말했습니다. "아우야! 너는 왜 그토록 슬퍼하느냐? 맹목적인 무지가 너의 눈에 흐르는 눈물의 원인이다.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여기로부터 해방의 상태 혹은 가장 높은 경지로 가셨다. 그곳은 모든 존재에게 자연스럽고, 그곳은 자기를 초월한 이들의 존재 상태이다. 왜 너는 그분들이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갔는데 비탄해 하느냐? 너는 무지하게도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개념을 자신에게 한정시켰다. 아직도 너는 그런 무지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분들에 대하여 슬퍼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가 아니고, 또한 그녀는 네 어머니가 아닐 뿐만 아니라, 너 또한 그분들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수없이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고, 그들은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가졌었다. 너의 몸은 수없이 많이 존재했다! 네가 부모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한다면, 왜 셀 수 없이 많은 끊임없는 이들 존재들에 대하여는 슬퍼하지 않느냐?

사랑하는 아우야! 네가 보고 있는 세상은 단지 환영일 뿐이다. 사실 친구도 친척도 없다. 따라서 죽음도 이별도 없다. 네 주변에서 일어난 엄청난 번영의 징조들은 3일이나 5일 동안 지속되는 속임수들에 불과하다! 너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진리를 구하여라. '나', '너', '그는 죽었다.', '그는 갔다.' 등과 같은 개념들을 버려라. 이 모든 것은 단지 개념일 뿐 진리가 아니다."

뿐야는 계속하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 친척 등과 같은 거짓 개념들은 바람에 의해 먼지가 날아가듯이 지혜로 깨끗이 사라진다. 이들 친척들은 진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단지 말들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친구인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다른 사람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로서 보일 때, 친구와 다른 사람의 구분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우야! 네 자신 안을 탐구하라. 몸은 둔하며, 피와 살과 뼈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 안에 '나'란 무엇인가? 네가 이와 같이 진리를 탐구한다면, 너는 '너'인 것도 없으며 '나'인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뿐야나 빠바나라고 불리는 것은 단지 잘못된 개념일 뿐이다.

그래도 만약 네가 여전히 '나는 존재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지난 윤회의 과정 속에서 네게는 아주 많은 친척들이 있었다. 왜 너는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지 않는가? 네가 백조였을 때 많은 백조 친척들이 있었고, 네가 나무였을 때 많은 나무 친척들이 있었고, 네가 사자였을 때 많은 사자 친척들이 있었으며, 네가 물고기였을 때 많은 물고기 친척들이 있었다. 왜 너는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느냐? 너는 왕자였으며, 당나귀였으며, 인도 보리수나무였으며, 뱅골 보리수였다. 너는 브람마나 계급이었으며, 파리였으며, 또한 모기였고, 개미였다. 너는 반년 동안 전갈이었고, 벌이었으며, 지금은 나의 형제이다. 이들 많은 형상들 속에 너는 끝없이 다시 태어났었다.

이처럼 나도 수많은 몸을 가졌었다. 나는 순수하고 명확하며 신비한 지력으로 너와 나의 모든 윤회를 보았다. 나는 새, 개구리, 나무, 낙타, 왕, 호랑이, 그리고 지금은 너의 형이다. 십 년 동안 나는 독수리였으며, 다섯 달 동안 악어였다. 그리고 백 년 동안 나는 사자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너의 형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무지와 망상의 상태에서 격었던 더 많은 환생들을 기억한다. 이 모든 환생들 속에서 수없이 많은 친척들이 있었다. 누구를 위해서 내가 슬퍼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고려하고서,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숲에 난 길 위에 떨어진 마른 잎들처럼, 삶이라는 길을 따라 친척들이 흩뿌려진다. 아우야! 이 세상에서 무엇이 슬픔과 기쁨의 적당한 이유가 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무지한 개념들을 포기하고 평온하라. 너의 마음속에 '나'로서 일어나는 세상이라는 개념을 포기하라. 올라가거나 떨어지지 말고 고요하라. 불행, 탄생, 아버지, 어머니가 네게는 없다. 너는 참나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현인들은 중도를 지각하며, 그들은 이 순간에 있는 것을 알며, 그들은 평화 안에 있다. 목격의 의식에 자리 잡은 그들은 어둠 속에서 등불처럼 빛난다. 그 불빛 안에서 사건들이 벌어진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형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빠바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지혜와 직접적인 깨달음을 지닌 깨달은 존재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하였지만 흠 없이 숲을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은 몸을 버리고, 연료 없는 램프처럼 궁극의 해방을 얻었습니다.

오, 라마여! 갈망은 모든 슬픔의 근원입니다. 유일한 지성적인 방법은 모든 갈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것들을 탐닉하지 않는 것입니다. 연료가 공급될 때 불이 모든 것을 더욱 맹렬히 태우는 것처럼, 생각은 생각함으로써 증가됩니다. 따라서 생각은 단지 생각의 단절에 의해서만 없앨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음의 수레를 끌어올리십시오. 그리고 슬픔에 빠진 세상을 동정심과 끝없는 관찰로 지켜보십시오. 오, 라마여! 일어나십시오.

이것은 참으로 순수하고 갈망과 질병이 없는 브람만의 상태입니다. 심지어 바보였던 사람도 이것을 얻게 되면 환영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지혜를 친구로 가지고, 깨달음을 애인으로 가지고 지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습니다.

삼계에서 가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가지기를 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갈망이라는 열병을 치료한 이들은 몸을 가진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떨어지는 과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마음은 갈망과 소망을 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완전한 초연애 이해서만 성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집착과 갈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삼계는 송아지의 발자국 넓이와 같고, 온 세상의 윤회가 한 순간입니다. 히말라야 산의 꼭대기에 있는 얼음 덩어리의 차가움은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운 현명한 자의 마음의 초연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갈망이 제거된 마음은 보름달보다 밝고, 바다보다 가득 차고, 행운의 여신의 얼굴보다 더 빛납니다.

마음의 나뭇가지 같은 모든 갈망과 소망을 제거했을 때, 마음은 자신의 근원을 되찾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갈망과 소망에 의지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면,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생각의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마음은 마음 없음의 상태가 됩니다. 그것이 해방입니다. 소망과 갈망에 의해 유발된 생각을 '브리띠' 즉 생각의 움직임이라 합니다. 소망과 갈망이 포기되었을 때, 브리띠 또한 없습니다. 화나게 하는 원인이 제거될 때 화의 행위도 제거됩니다. 마음에 평화를 회복하기 위하여, 방해하는 원인인 갈망과 소망을 제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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