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미끼가 말하였다.
신들, 반신들, 현자들, 왕실 사람들을 포함한 이들은 현인 바시슈타의 지혜에 관한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다샤라타 왕과 대신들은 왕실의 업무와 즐거움을 당분간 접어 두고 현인의 가르침에 몰두했다. 정오에 소라 나팔 소리가 시간을 알려 주었고 한낮의 휴식을 위해 집회가 중단되었다. 저녁에 그 집회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끝났고, 왕등과 왕자들이 일어나 뜰을 나설 때 눈부신 장식물들이 번쩍거렸다. 뜰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보였다.
그렇게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흩어졌을 때, 다샤라타 왕은 예를 갖추어 현인들에게 존경을 표했고 그들의 축복을 받았다. 이렇게 한 후, 바시슈타는 왕자들인 라마와 그의 형제들에게 그 날을 마치고 떠나기 위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 역시 그 현인의 발치에 엎드려 그의 축복을 받았다.
밤이 되자, 라마를 제외하고 모두 잠을 자러 갔다. 그러나 라마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라마는 현인 바시슈타의 빛나는 말씀들을 이렇게 명상했다.
이 세상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 모든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다른 존재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왜 여기에 나타났으며, 어데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마음은 무엇이며, 마음은 어떻게 침묵을 얻는가? 이 우주적 환영(마야)은 어떻게 처음 일어났으며, 그것은 어떻게 끝나는가? 이런 환영을 끝내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 어떻게 제한적인 것이 무한한 참나 안으로 들어갔는가?
현인 바시슈타가 감각들과 마음의 정복을 위해 지시한 방법은 정확히 무엇인가? 감각들과 마음은 분명히 슬픔의 근원이다. 쾌락의 즐거움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런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슬픔을 끝낼 수 없다. 이것은 정말로 문제다. 그러나 마음이 이 모든 것 중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마음이 한번 세상의 모든 환영이 없는 지고의 평화로움을 맛본다면, 마음은 그것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감각적 쾌락을 좇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순수해져 지고의 상태에서 쉴 수 있을 때는 언제인가? 파도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다시 하나가 되듯이 나의 마음이 무한함 속에서 쉬게 될 때는 언제인가? 이 모든 갈망에서 내가 자유로워질 때는 언제인가? 모든 것을 동일하게 보는 축복이 내게는 언제 주어질 것인가? 내가 이 끔찍한 속세의 열기를 버릴 때는 언제인가?
오, 마음이여! 위대한 현인들에 의해 보여진 지혜 속에 너는 확고히 있을 것인가? 오, 나의 지성이여! 너는 나의 친구이다.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오는 비참함에서 너와 나 둘 다를 구해 줄 방법인 현인 바시슈타의 가르침을 명상하라.
발미끼가 계속 말했다.
새벽이 되자, 라마와 사람들은 일어나서 아침 종교 의식을 치르고 현인 바시슈타의 집으로 갔다. 현인은 새벽 기도를 마치고 깊은 명상에 잡겨 있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다샤라타 왕의 궁전으로 갔다. 그들이 궁전 뜰에 도착하자, 왕이 세 발짝 걸어 나와 적절한 경의를 표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곧, 집회에 참여하는 다른 구성원들인 신들, 반신들, 현인들, 그 외 사람들이 집회 장소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 날의 집회를 열면서 다샤라타 왕이 말했다.
오, 축복 받은 신이시여! 어제 강연의 피로에서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제 당신이 말씀하신 지고의 지혜로 인해 높이 앙양되었습니다. 깨달은 현인들의 말씀은 모든 이들의 슬픔을 없애고 희열을 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말씀들은 우리들의 사악한 행위로 생겨난 불순을 몰아냈습니다. 간절한 갈망, 탐욕 등의 나쁜 경향성들이 당신의 지혜로 인해 약해졌습니다. 세상 모습의 실재성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믿음 역시 힘찬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 라마여! 그런 현인들이 숭배 받는 날만이 가치가 있으며 그 외의 날들은 어둡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네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배울 만한 가치 있는 것을 현인에게 묻고 배워라.
바시슈타는 말했다.
오, 라마여! 내가 그대에게 전해 준 가르침을 깊이 명상하였습니까? 밤새 그것들을 숙고하고 가슴에 새겼습니까? 내가 마음은 사람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까? 이 우주의 생성에 대해 말했던 상세한 내용들을 기억합니까? 그런 가르침들을 자주 기억함으로써 그것들에 명확해집니다.
라마가 말했다.
신이시여!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잠을 자지 않고, 당신의 깨우침의 말씀에 대하여 명상하고, 그 말씀이 뜻하는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면서 온 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가슴속에 그 진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들이 가장 고귀한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 당신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담아 두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동시에 그 말씀들은 듣기에 매우 달콤하고 모든 종류의 경사스러움을 증가시켜 주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들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오, 신이시여! 청컨데 탁월한 당신의 말씀을 계속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시슈타가 말하였다.
오, 라마여! 우주의 소멸과 지고의 평온을 이룸에 대한 이 강의 를 들어 보십시오.
외관상 끝없어 보이는 이 세상의 모습은 건물이 기둥들에 의해 지탱되는 것처럼, 불순한 존재들(라자사)과 우둔한 존재들(따마사)에 의해 유지됩니다. 그러나 뱀이 허물을 쉽게 벗듯이, 순수한 본성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노는 것처럼 쉽게 버립니다. 순결한(사뜨바) 본성을 가진 존재들과 행동들(라자사)이 순수함과 빛(사뜨바)에 기초를 둔 존재들은 삶을 기계적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 모습의 본질과 기원에 대해 탐구합니다. 올바른 경전의 공부와 성스러운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런 탐구가 행해지면, 램프 속의 빛처럼 자신 안에서 명확한 이해가 일어나며 그 속에서 진리가 보입니다. 혼자 힘으로 스스로 그런 탐구를 하여 진리를 얻기 전에는 진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 라마여! 그대의 본성은 진정으로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거짓의 본성에 대하여 탐구하고 진리에 전념하십시오. 처음에는 없었고 어느 시기가 지나면 사라질 것, 그것이 어떻게 진리로 여겨질 수 있겠습니까? 항상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만이 진리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오, 라마여! 탄생은 마음의 탄생입니다. 성장 역시 마음의 것입니다. 진리가 명백히 보이면, 자신의 무지에서 해방되는 것도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경전들을 공부하고, 현인들과 교제하며, 초연을 기름으로써 마음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갖추어지면, 지혜가 완벽한 구루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구루의 가르침에 성실히 따름으로써 점차 완전한 순수의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라마여! 서늘한 달이 온 공간을 지각하고 있듯이, 순수한 질문을 통하여 참나에 의하여 참나를 보십시오. 참나 탐구라는 든든한 배를 타지 않는 한, 사람들은 지푸라기처럼 환영과 같은 세상의 파도 위에서 흔들립니다. 물 속에 떠다니는 모래 입자가 물이 아주 고요해지면 가라앉듯이, 진리를 알게 된 이의 마음도 완전한 평온 속에서 가라앉습니다. 일단 진리에 대한 이 지식을 얻게 되면, 그거은 잃어지지 않습니다. 금 조각이 잿더미 속에 놓여 있더라도, 금 세공인은 그것을 쉽게 찾아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게 되면, 혼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참나에 대한 무지가 그대 슬픔의 원인입니다. 참나에 대한 지식은 기쁨과 평온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바시슈타가 계속했다.
몸과 참나 사이의 혼란을 해결하십시오. 그러면 즉시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진흙 속에 떨어진 금 덩어리가 진흙 때문에 손상되지 않듯이, 참나는 몸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나는 확실히 이것을 다시 선언합니다. "물과 연꽃처럼 몸과 참나는 별개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생기 없고 둔한 마음이 쾌락의 길을 추구하는 한, 환영과 같은 세상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깨어나 참나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 어둠은 즉시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변화의 과정을 넘어설 수 있도록, 몸 안에 거주하고 있는 마음이 깨어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변화의 과정에는 슬픔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그 속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듯이, 참나는 몸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늘이 먼지에 의해 오염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듯이, 참나가 쾌락과 고통을 경험한다고 잘못 상상합니다. 사실 쾌락과 고통은 몸의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초월하는 참나의 것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무지에 속할 뿐입니다. 그것들을 잃는 것은 잃는 것도 아닙니다. 쾌락과 고통은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진실로 지고의 평화이며 무한인 참나입니다.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오, 라마여!
참나와 세상은 동일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진리의 반사일 뿐입니다. 브람만만이 존재합니다. '나는 이것과는 다르다.'는 것은 완전한 상상에 불과합니다. 오, 라마여! 그것을 버리십시오. 하나인 참나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자신을 무한한 의식으로 지각합니다. 그러므로 슬픔도, 망상도, 출생(창조)도, 창조물도 없습니다. 소뇌에서 떠나십시오. 오, 라마여! 이원성에서 떠나십시오. 그대의 안녕에 대한 근심마저 버리고, 참나 속에 굳건한 채 머물러 계십시오. 한결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안에서 평화로우십시오. 그대의 마음 안에 슬픔을 두지 마십시오. 내면의 침묵 속에서 휴식하십시오. 스스로 일으키는 생각들이 없이, 홀로 있으십시오. 마음과 감각들을 정복하고는, 용감하십시오. 욕망 없이 존재하십시오. 구하지 않았지만 오는 것에 만족하십시오. 어떤 것을 잡거나 포기하는 것 없이, 노력 없이 살아가십시오. 모든 마음의 타락과 환영에 눈먼 오점으로부터 자유로우십시오. 그대 자신의 참나에 만족하십시오. 그래서 모든 절망에서 자유로워지십시오. 넓은 바다처럼, 참나 안의 광대함에 머무르십시오. 보름달의 희열에 찬 광선처럼, 참나에 의해 참나 안에서 즐거워하십시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오, 라마여! 그럴 의도 없이 수정이 자신의 주위에 있는 물체들을 비추는 것처럼,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행위들이 그냥 일어날 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해방되어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뒤에도 비의도적인 행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다시 지옥에서 천국으로 갑니다.
모든 활동에서 돌아서거나 억누르고, 활동하지 않음에 전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지옥으로, 슬픔에서 슬픔으로, 두려움에서 두려움으로 오갑니다. 어떤 이들은 행위에서 생긴 결실을 두고 그들이 지닌 경향성이나 의도에 의하여 구속당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벌레와 해충으로, 다음에는 나무와 식물로, 그리고 벌레와 해충으로 태어납니다. 참나를 아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본성을 주의해서 탐구하며 모든 갈망을 극복했습니다. 그들은 의식의 더 높은 경지에 오릅니다.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마지막인 사람은 빛(사뜨바)과 약간의 불순(라자스)이 섞여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성스럽게 자랍니다. 보다 고상한 형태의 지식이 쉽게 그의 안으로 들어옵니다. 우정, 동정, 선함, 관대함 같은 모든 고상한 자질들이 그를 찾아와 그의 내부에 자리 잡습니다. 그는 적절히 활동을 하지만, 그 활동의 결과가 이익이 되든지 손해가 되든지 흔들리지 않고 합니다. 기분이 들뜨거나 우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가슴은 깨끗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많이 따릅니다.
모든 고상한 자질들로 차 있는 그런 사람은 참나 지식의 길로 안내해주는 깨달은 스승을 찾아내고 난 뒤에 그를 따라야 합니다. 그때 그는 우주적 존재인 참나를 깨닫습니다. 이렇게 해방된 자는 지금껏 잠자고 있던 내면의 지성이 일깨워집니다. 이 일깨워진 지성은 즉시 그 스스로가 무한한 의식임을 압니다. 끊임없이 내면의 빛을 자각하고 있는 그와 같은 축복을 받은 이는 즉시 지극히 순수한 상태 속으로 올라갑니다.
오, 라마여! 이것이 보통의 진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 규칙에도 예외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들의 경우에 있어서, 해방을 얻는 데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스승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감으로써 구도자가 점차 해방의 목표에 이르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 그대로 참나 지식이 무릎 위에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즉시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둘째 유형의 깨달음을 설명해 주는 옛 전설을 들려주겠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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