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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uism/요가 바시슈타

까짜의 노래

by Yuneelif 2018. 4. 8.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오, 라마여! 이것에 관련하여, 나는 신들의 스승의 아들 까짜가 부른 감동적인 노래를 기억합니다. 이 까짜는 참나 지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메루 산의 동굴에 살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최고의 지혜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마음은 다섯 원소들로 아루어진 세상의 어떤 대상들에도 이끌리지 않았습니다. 절망을 가장하면서, 까짜는 이 의미 있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것을 들어 보십시오.

까짜는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나는 무엇을 잡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이 온 우주는 참나로 퍼져 있다. 불행이나 슬픔은 참나이다. 행복 역시 참나이다. 왜냐하면 모든 욕망은 비어 있는 공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참나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몸의 안과 밖에서, 위와 아래에서, 여기든 저기든, 어디든 오직 참나만이 있을 뿐이며 참나 아닌 것은 없다. 참나만이 모든 곳에 있다. 모든 것은 참나로서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이 진정으로 참나이다. 나는 참나로서 참나 안에 있다. 실재가 이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듯이, 나는 이 모든 것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나는 충만이다. 나는 참나 희열이다. 나는 우주의 바다처럼 온 우주를 채우고 있다.

이와 같이 그는 노래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신성한 단어 '옴'을 읊었습니다. 그는 그 신성한 소리 안에 그의 온 존재를 몰입시켰습니다. 그는 내부의 어떤 것도, 외부의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현자는 참나 안에 완전히 몰입한 채 그것 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오, 라마여! 이 세상에는 먹고 마시고 성교하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습니까? 현명한 이가 찾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다섯 원소들로 된 이 세상과 살, 피, 털 등으로 이루어진 이 몸을 무지한 사람들은 실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그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자들은 이 모든 것을 일시적인 것이며 실재가 아닌 무서운 독으로 봅니다.

라마가 물었다.

모든 개념을 파괴함으로써 마음이 창조주와 같은 상태를 회복했을 때, 어떻게 세상의 개념이 그 안에 일어날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라마여! 무한한 의식의 자궁으로부터 생겨난 최초의 창조주는 '브람마'라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조주 브람마라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창조주는 처음에 빛의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빛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빛 안에서 그는 그 자신이 우주적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였습니다. 그래서 빛나는 태양으로부터 공간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대상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한한 불곷과 같은 빛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불꽃은 다양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이 브람마와 모든 다른 존재들이 된 것은 오로지 우주적 마음입니다. 태초에 이 브람마가 창조한 것이 오늘까지도 보입니다.

이 비실재의 세상은 그것의 존재에 대한 개념의 지속성 때문에 실체성을 얻었습니다. 이 우주 안의 모든 존재들은 그들 자신의 개념과 생각들로써 유지됩니다.

자신의 사고하는 힘으로 우주를 창조한 후, 나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 나는 그것을 충분히 했다. 이제 그거은 저절로 지속될 ㄱ서이다. 나는 쉬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창조주 브람마는 깊은 명상을 하며 자신의 참나 안에 쉬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창조물들에 대한 자비심이 일어나 창조주는 참나 지식을 담은 경전들을 드러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는 모든 개념과 묘사들 너머에 있는 그 자신의 참나에 대한 지식 안에 몰입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가장 높은 '창조주의 상태'(브람미 스티띠)입니다.

거기에서 계속, 창조된 존재들은 자신들이 연관하고 있던 것들의 특징들을 얻었습니다. 선한 것과 연관된 것들은 선해지고, 세속적인 것과 연결된 것들은 세속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세상의 모습에 묶여 있습니다. 어떤 이는 또한 해방되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세상을 창조한 후에, 이 세상의 모습은 물병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창조물들은 마치 밧줄에 묶인 것처럼, '살고자하는 욕망'에 묶여, 어두운 우물 속을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합니다. 파도들이나 물결들처럼 무한한 의식의 바다에서 일어난 이 살아 있는 존재들은 물질로 된 공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공기, 불, 물, 흙과 같은 원소들이 전개되자 그들은 그것들과 관련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탄생과 죽음의 윤회가 순환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지바들은 달빛을 타고 내려와서 식물과 약초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것들은 그 식물들의 열매가 되고 그 열매들은 태양의 빛에 의해 익습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은 몸을 가질 준비를 합니다. 미묘한 개념들, 생각들, 마음의 조건화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 안에 잠복하고 있습니다. 출행할 때 그것들을 덮고 있던 베일이 벗겨집니다.

이런 존재들 중 어떤 것들은 순수하고 깨달음을 얻은 채(사뜨비까) 태어납니다. 이전의 삶에서조차도 그들은 감각적 쾌락의 유혹으로부터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영속시키기 위하여 태어난 다른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순수와 불순과 어두움이 석여 있습니다. 약간 불순하지만 순수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열중하며 고귀한 자질들이 충만해 있습니다. 무지라는 어두움이 없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은 무지와 어리석음의 암흑에 뒤덮여 있습니다. 그들은 바위나 언덕들과 같습니다!

약간의 불순을 지니고 있으나 순수가 우세한 이들(라자스 사뜨비까)은 늘 행복하고 밝으며,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무들처럼 이기적이지 않으며 또 새로운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과거 행위의 결과들을 경험하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들은 욕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안에서 평화로우며 최악의 재난 속에서조차도 이 평화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동등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은 슬픔의 바다에 빠지지 않습니다.

모든 수단을 다하여 슬픔의 바다에 빠지는 것은 피해야 하며,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의 환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라는 참나의 본성의 탐구에 몰두하십시오. 그래서 몸 속에 있는 이기심과 세상에의 이끌림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인가가 공간 안에 있든 없든, 공간에는 아무런 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태양 속에서 빛나고 있는 의식이 구멍 안에 살고 있는 작은 벌레에도 머물고 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하였다.

오, 라마여! 현명하며 그리고 진리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는 선하고 학식이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는 경전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스승은 쾌락의 욕구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또한 진리를 직접 경험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도움으로 경전을 연구하고, 대단한 요가 수행으로 궁극의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오, 라마여! 그대는 정말로 영적인 영웅이며 또한 선한 자질들이 가득합니다. 그대는 슬픔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대는 평온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최고의 지성을 사용하여 모든 망상을 버리십시오. 세상의 대상들에 대한 모든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대는 비이원의 의식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그것이 궁극의 해방입니다. 이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참나 지식의 현자들이 그대의 고결한 예를 따를 것입니다.

라마여! 그대처럼 지적이며, 선한 본성과 동등한 시각을 갖고 있으며 그리고 선한 것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지혜의 시각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오, 라마여! 몸으로 있는 한, 좋고 싫은 것과 이끌림과 혐오에 흔들리지 말고, 그대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준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 없이 살아가십시오. 성스러운 이들이 한느 것처럼, 궁극의 평화를 발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십시오.

궁극의 상태를 향하여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신성한 이들의 예와 겨루는 것입니다. 이번 삶에서 얻은 것을, 이 수명이 다한 뒤에도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이는 그러한 경향성들을 극복할 수 있으며 또한 암흑과 어리석음(따마스), 불순(라자스)의 상태들로부터 자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를 사용함으로 이 상태들로부터 순수와 밝음(사뜨바)의 상태로 오를 수 있습니다.

강한 자기 노력에 의해서만 좋은 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한 자기 노력으로 얻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브람마차리야(금욕 혹은 브람만에 모든 영혼을 다하여 헌신함)의 수행, 용기, 인내, 초연, 상식에 기초한 수행으로, 얻고자 하는 참나 지식을 얻습니다.

라마여! 그대는 이미 해방된 존재입니다. 그런 이들처럼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