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오, 라마여! 깨어 있는 상태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꿈 속에 보이는 대상들은 꿈꾸는 동안에는 진짜인 듯해도 깨어나면 진짜가 아닌 것과 같이, 이 세상은 물질로 보이지만 실재로는 순수 의식입니다. 신기루에는 일시적이거나 미묘한 강조차도 없습니다. 그처럼 세상이라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오로지 순수 의식만이 있을 뿐입니다. 무지에 바탕을 둔 지식만이 세상이라는 개념에 매달립니다. 사실 '세상', '브람만 혹은 무한한 것', '참나'라는 말들의 의미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꿈 속에서 본 도시가 깨어 있는 상태의 의식의 경험과 관련해서는 진실이듯이, 세상도 브람만과 관련해서는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우주적 의식'은 같은 말입니다.
오, 라마여!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만다빠의 이야기를 해 주겠으니 잘 듣도록 하십시오.
오, 라마여! 옛날에 빠드마라는 왕이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습니다. 그의 성품과 행동으로 인해 왕조의 영광이 높아졌습니다. 바다가 해안의 권위를 존중하듯이 그는 종교적 전통을 존중하였습니다. 태양이 어둠을 물리치듯이 그는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불이 건초를 잿더미로 만들 듯이 그는 사회악을 없앴습니다. 그는 덕을 지닌 왕이었습니다. 광풍이 담쟁이를 날려 보내듯이 그는 전쟁터에서 적들을 떨게 했습니다. 그는 학식이 높았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신 나라야나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듯이, 그에게도 이룰 수 없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 왕에게는 릴라라는 이름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자로서 지녀야 할 교양이 있었으며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나라야나의 아내인 여신 락슈미가 땅에 화신으로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말씨는 부드러웠고, 걸음걸이는 조용하고 우아했으며, 웃음은 달빛의 서늘한 즐거움을 발산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으며 꿀처럼 달콤하였습니다. 팔은 부드럽고 섬세했으며, 몸은 성스런 강가 강의 물처럼 순수하고 맑았습니다. 강가 강의 물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희열이 생기듯이, 그녀를 만지는 것은 희열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인 빠드마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섬기고 기쁘게 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왕과 하나가 되어 슬픔과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왕이 화를 낼 때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는 빠드마의 변형된 자아였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빠드마 왕과 릴라 왕비는 이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가능한 그리고 바른 방법으로 삶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신들처럼 젊었으며, 서로를 향한 사랑은 위선적이거나 인위적이지 않았으며 순수하고 강렬했습니다.
어느 날 릴라 왕비는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 잘생긴 왕인 내 남편은 나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 우리가 영원히 삶의 즐거움을 누리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열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성스러운 이들이 권하는 금욕 생활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성스러운 이들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왕비시여! 금욕이나 고행, 만뜨라의 반복, 자제하는 생활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오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 불가능합니다!"
왕비는 이 충고를 깊게 생각하고서 결심했습니다. "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참나 지식을 얻어 슬픔에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먼저 죽는다면, 남편의 지바가 궁궐을 떠날 수 없게 하도록 하는 은총을 신들로부터 얻도록 애쓸 것이다. 남편이 항상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면, 나는 궁궐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결심하고서 이 계획을 남편과 의논하지 않은 채 릴라는 여신 사라스와띠에게 정성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신, 성스러운 이들, 가르침을 주는 자, 학식 있는 자, 현자들을 정성으로 경배한 후에야 3일에 한 번씩 식사를 했습니다. 그녀는 이런 고행이 결실을 낳게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확신은 지금 행한 고행을 더욱 열심히 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의도를 왕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고행으로 인해 남편을 섬기는 일이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한 3일 밤 동안의 경배를 백 번 하자, 여신 사라스와띠가 나타나서 은혜를 청하라고 말했습니다. 릴라가 청했습니다. "오, 성스런 어머니시여! 두 가지 은혜를 주십시오. 첫째는 제 남편이 몸을 떠나면, 그의 지바가 궁궐에 남아 있도록 해 주십시오. 둘째는 제가 당신께 기도할 때마다 당신을 보게 해 주십시오." 여신 사라스와띠는 이 두 은혜를 허락하고 사라졌습니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습니다. 빠드마 왕은 전쟁터에서 치면적인 부상을 입고 궁궐에서 죽었습니다. 릴라 왕비는 비탄해 하며 슬픔에 잠겼습니다. 비탄에 잠겨 있을 때 하늘의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사라스와띠의 천상의 목소리는 말했습니다.
나의 아기야! 왕의 죽은 몸을 꽃들로 덮어라. 그러면 썩지 않을 것이다. 그는 궁궐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릴라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가난으로 고통을 받는 척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여신 사라스와띠에게 빌었습니다. 그러자 여신은 그녀 앞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가야! 왜 그렇게 비탄해 하느냐! 신기루 속의 물처럼 슬픔은 환영이다.
릴라는 여신에게 물었습니다.
부디 제 남편이 있을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오, 릴라여! 물질적 공간, 마음의 공간, 무한한 의식의 공간이라는 세 개의 공간이 있다. 이들 중 가장 미묘한 것은 무한한 의식의 공간이다. 이 무한한 의식의 공간을 깊이 명상하면, 여기서는 그를 볼 수 없지만 그대의 남편과 같은 자의 현존을 보고 경험할 수 있다. 그의 몸은 무한한 공간이다. 무한한 지성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여행할 때 중간에 있는 것이 무한한 공간이다. 모든 생각을 버린다면 그대는 지금 여기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깨달음에 도달할 것이다. 보통은 우주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자만이 이것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대는 나의 은혜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릴라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즉시 그녀는 모든 혼란들로부터 자유로운, 의식의 가장 높은 상태인 니르비깔빠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무한한 의식의 공간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왕으로 있으면서 그를 숭배하는 다른 왕들, 많은 현자들, 베다를 찬송하는 성스러운 이들, 많은 여인들,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에워싸여 있는 왕을 다시 보았습니다. 생각의 형상이 자신에게만 보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듯이, 그녀는 그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그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왕이 젊은 몸을 지닌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빠드마 왕의 많은 왕실 사람들을 궁중에서 보았습니다. 그녀는 의아했습니다. 그들 역시 모두 죽은 것이었습니다!
사라스와띠 여신의 은혜로 릴라는 자신의 궁전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시중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깨워서 왕실 사람들을 어서 모이도록 했습니다. 사자들을 보내어 모두를 즉시 소집했습니다. 곧 빠드마 왕의 궁전은 대신들, 현자들, 신하들, 친척들, 친구들로 가득해졌습니다. 모두가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릴라는 기뻤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왕실의 모든 사람을 보자, 릴라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이상하다. 이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두 장소에 있는 듯이 보이니 말이다. 그들이 명상 중 내가 본 곳과 바로 여기 내 앞에 있다니 말이다. 산이 거울의 안과 밖 모두에서 보이듯이, 창조물 역시 의식의 안과 밖 둘 다에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중 실재하는 것은 어느 것이며, 그림자는 어느 것인가? 사라스와띠 여신에게 여쭤 보아야겠다." 그녀는 사라스와띠 여신에 대한 숭배를 올렸고, 여신이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릴라는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으로 나타난 그것은 지극히 순수하며 나ㅟ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그것의 반사로서는 그것 안에, 굳은 물질로서는 바깥이라는 둘 다에 있습니다. 어떤 것이 실재이며, 어떤 것이 그림자입니까?
사라스와띠가 물었습니다.
그대가 먼저 말해 보라. 그대는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실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릴라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있고 당신은 제 앞에 있습니다. 이것은 실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남편이 있는 그곳,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비실재가 실재의 결과가 될 수 있는가? 결과는 원인에서 나온다. 거기에는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항아리의 경우에 항아리는 물을 담을 수 있지만 항아리의 원인인 흙은 물을 담지 못하는 것처럼,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함께 하는 원인들 때문이다. 그대의 남편을 태어나게 했던 물질적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왜냐하면 물질적인 원인은 물질적인 결과만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을 찾지 못할 때는 틀림없이 그 원인은 과거 즉 기억에 있다. 기억은 공간처럼 비어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창조물은 그런 비어 있음에서 생긴 결과이다. 그러므로 창조물 역시 비어 있다. 그대 남편의 탄생조차도 기억이 만들어 낸 환영의 산물이다. 내게는 이 모든 상상이 만들어 낸 환영이며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창조물이 지닌 꿈과 같은 본성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해 주겠다. 순수 의식인 창조주의 마음 한 구석에 푸른 천장으로 덮인 낡고 초라한 성소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열넷의 세상을 방으로 갖고 있었다. 세 개의 공간 구역에는 구멍이 있었다. 태양이 빛이었다. 그 안에는 작은 개미 언덕인 도시, 작은 흙더미인 산, 작은 물웅덩이인 바다가 있었다. 이것이 창조이며 우주이다. 그것의 아주 작은 모퉁이에 성스러운 사람이 아내와 아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그는 건강했으며 두려움이 없었다. 그는 종교 의식과 사회적 의무를 훌륭하게 행하였다.
사라스와띠가 계속하였습니다.
그 성스러운 사람은 바시슈타였으며 그의 아내는 아룬다띠였다. 비록 그들은 전설적인 인물인 바시슈타와 아룬다띠와는 달랐지만, 어느날 그 성스러운 사람이 언덕 꼭대기에 앉아 있을 때, 그는 그 언덕 아래에서 화려한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행렬에는 멋진 코끼리를 탄 왕이 있었고 군대와 왕실이 쓰는 물건들이 왕을 따르고 있었다. 이것을 보자 성자의 가슴속에 소망이 일어났다. "나는 언제 왕실의 코끼리를 타고, 저처럼 군대의 호위를 받을 것인가?"
이후 시간이 흘러 그 성스러운 자는 늙게 되었다. 죽음이 그를 데려갔다. 그에게 헌신했던 그의 아내가 간청하며 남편의 영혼이 집을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그대가 했던 것과 같은 부탁을 했다. 나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그 성스러운 자는 에테르의 존재였지만 그의 전생에서 계속되었던 소망의 힘으로 인해 강한 왕이 되었고, 땅 위에 있는 천국과 닮은 거대한 제국을 다스렸다. 그는 적들에게는 두려움이었으며, 여성들에게는 사랑의 사자였고, 유혹에 대해서는 산처럼 안정되고 확고했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거울처럼 모든 경전이 비추어져 있었으며, 모든 이의 소망을 들어주는 자였고, 성스러운 이들에게 있어서는 휴식의 장소였다. 실로 그는 올바름에 있어서 보름달과 같은 존재였다. 아룬다띠 역시 몸을 버리고 남편과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이런 일이 생긴 후 8일째 되던 날이었다.
릴라여! 지금의 그대 남편이 바로 그 성스러운 자이다. 그의 아내였던 그 아룬다띠는 그대이다. 무지와 기만 때문에 무한한 의식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대는 이 모든 것을 진실이나 거짓으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릴라가 질문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이 모든 것이 제게는 믿어지지 않거나 이상스럽게 보입니다. 거대한 코끼리가 겨자씨 가운데 묶여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원자 속에서 모기가 사자와 싸우고, 연꽃 꼬투리 안에 산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나의 아이야! 나는 거짓은 말하지 않으며 진리만을 말한다. 믿지 못하겠지만, 어떤 성스러운 이의 궁궐에 대한 욕망 때문에 그 성스러운 이의 오두막 안에 이 궁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기억은 잊혀지고, 그대 둘은 다시 일어났다. 죽음은 꿈에서 깨어난 것에 불과하다. 신기루 속의 물결처럼, 소망에서 생겨난 탄생은 소망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 아니다!
사라스와띠가 계속 말했습니다.
릴라여! 그대의 집, 그대, 나와 이 모든 것은 순수 의식일 뿐이다. 그대의 집 역시 성자 바시슈타의 집 안에 있었다. 그의 지바의 공간 안에 강과 산 등이 있다. 그 성스러운 이의 집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창조된 후에도, 그것은 전처럼 남아 있다. 정말이지, 모든 원자 안에는 세상들 안의 세상들이 있다.
릴라가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당신은 그 성스러운 자가 죽은 지 겨우 8일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남편은 이렇게 오랜 기간을 살았습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오, 릴라여! 공간이 고정된 범위를 가지지 않듯이, 시간에도 고정된 시간의 범위가 없다. 세상과 그것의 창조물이 모습들에 불과하듯이, 순간과 시대 역시 실재가 아닌 상상일 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바는 죽음의 경험이라는 환영을 겪고는, 전에 일어났던 일을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무한한 의식 안에서 '나는 이러하다.', '나는 누구의 아들이며, 몇 살이다.' 등을 생각한다. 이 세상의 경험과 다른 세상의 경험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무한한 의식 안에 있는 생각의 형태들이다. 그것들은 같은 바다에 있는 두 개의 파도와 같다. 이 세상들이 결코 창조되지 않았기에, 그것들은 결코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것이 법칙이다. 그것들의 진정한 본성은 의식이다.
꿈 속에서조차 탄생, 죽음, 관계 등 이 모든 것이 아주 잛은 시간 안에 있다. 사랑하고 있는 자에게는 연인 없는 하룻밤이 한 시대로 느껴지듯이, 지바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경험된 대상들과 경험되지 않은 대상들을 생각한다. 바로 그 후, 지바는 그런 것들(세상)이 실재라고 상상한다. 경험하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들조차도 꿈 속에서처럼 그 앞에 그들 스스로 나타난다.
이 세상과 이 창조물은 기억과 꿈에 지나지 않는다. 순간과 나이 같은 거리와 시간의 단위들은 모두 환영이다. 이것은 지식의 한 종류인 기억이다. 과거 경험의 기억에 기초하지 않은 다른 것이 있다. 이것은 그것 자신의 결과들을 낳을 수 있는 원자와 의식의 우연한 만남이다.
해방은 우주와 같은 그러한 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것은 자아와 우주의 존재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후자는 반쪽 지식에 불과하다. 해방은 이 모든 것이 순수 의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릴라가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이전의 환영이 없이 성자와 그의 아내를 창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사라스와띠는 말했습니다.
정말이지, 그것은 창조자 브람마가 생각한 모습에 기인한 것이다. 브람마는 숨겨진 생각의 형태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창조에 앞서 소멸이 있었으며 그때 창조주는 이미 해방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가 시작할 즈음에, 누군가가 창조자의 역할을 맡고 '내가 새 창조자다.'라고 생각한다. 서로 관계가 없지만, 까마귀가 야자나무에 앉자 야자열매가 떨어지는 것처럼, 이것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우연일 뿐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조는 없다는 점을 잊지 말라! 하나의 무한한 의식만이 생각의 형태이며 경험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없다. 원인과 결과는 단어들에 불과한 것이며 사실이 아니다. 무한한 의식은 늘 무한한 의식 안에 있다.
릴라가 말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당신의 말씀들은 깨달음을 오게 합니다. 하지만 예전에 당신의 말씀들을 접해 본 적이 없으므로 지혜가 잘 서지 않습니다. 성스러운 바시슈타의 원래 집을 보고 싶습니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오, 릴라여! 그대의 지금의 모습을 버리고, 순수한 영적 통찰을 얻도록 하라. 왜냐하면 브람만만이 브람만을 정말로 보거나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몸은 순수한 빛, 순수한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대의 몸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그대 몸으로는 그대가 상상하는 곳조차 방문할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다른 사람이 상상하는 장소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빛으로 된 몸을 얻는다면, 그대는 곧 성스러운 자의 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나는 나의 이 몸을 떠나 빛의 몸을 취할 것이다. 향의 냄새처럼, 나는 그 몸으로 그 성자의 집으로 갈 것이다.'라고 확실히 단언하라. 물과 물이 섞이는 것처럼, 그대는 의식의 장과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한 명상을 끊임없이 함으로써 그대의 몸조차도 순수 의식이 되며 그래서 미묘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이 몸마저 의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대는 물질이라는 세상을 보기 때문에, 마치 무지한 사람이 귀중한 돌을 조약돌로 여기는 것처럼, 그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한 무지는 그 스스로 일어나지만 지혜와 탐구로 없앨 수 있다. 사실상, 그런 무지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지혜롭지 않음도 무지도 없다. 속박도 없고 해방도 없다. 오로지 하나의 순수 의식만이 있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릴라여! 꿈 속에서 꿈의 몸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몸의 실재는 사라진다. 이와 같이 기억과 잠재적 경향성들에 의해 지탱되는 신체적 몸이 실재가 아닌 것을 알게 될 때, 실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꿈이 끝날 때, 그대는 에테르의 몸을 지각하게 된다. 꿈이 끝나면, 깊은 잠이 온다. 생각의 씨앗들이 사라지면, 그대는 해방된다. 해방 속에는 생각의 씨앗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방된 현자가 살고 있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마루 위에 놓인 타 버린 천 조각처럼 그는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의 씨앗이 숨겨져 있는 깊은 잠이나 무의식과는 다른 것이다.
꾸준한 수행(아비야사)으로 자아를 고요하게 할 수 있다. 그때 그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식 안에 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각된 우주는 소멸의 지점으로 향할 것이다. 수행이라 불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며, 다른 이들과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것, 그것에만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 이것이 현자들이 말하는 아비야사 즉 수행이다. 자신의 지성이 아름다움과 희열로 채월질 때, 자신의 통찰이 넓어질 때,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열정이 자신 안에 없을 때, 이것이 수행이다. 이 우주는 결코 창조된 적이 없으므로 세상은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고한 확신 속에 있을 때, '이것은 세상이다. 이것이 나다.'라는 생각들이 자신 안에 전혀 일어나지 않을 때, 이것이 아비야사 즉 수행이다. 그렇게 되면 애착과 혐오가 일어나지 않는다. 의지력을 사용하여 애착과 혐오를 극복하는 것은 고행이지 지혜는 아니다.
(이맘때쯤 저녁이 왔고, 궁전에 모인 사람들은 해산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들은 모였고 바시슈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오, 라마여! 사라스와띠와 릴라 왕비는 즉시 깊은 명상 즉 니르비깔빠 사마디에 든 채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몸의 의식 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모든 개념을 버렸기 때문에, 세상은 그들의 의식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지혜의 몸 속에서 자유로이 돌아다녔습니다. 공간 속에서 수백만 마일을 여행한 것 같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식의 다른 차원에 있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사라스와띠와 릴라는 서서히 공간 속에 있는 먼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공간은 몹시도 순수했으며 전적으로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축인 메루 산의 꼭대기에서 쉬었습니다. 달의 궤도를 벗어남에 따라 재미있는 수많은 광경들을 보았습니다. 공간 속에 있는 거대한 구름 속을 거닐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무한의 세상들 안에 있는 무한한 공간, 자궁 그리고 무한한 존재들의 원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우주 속에서 일곱 개의 큰 산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소멸의 불처럼 빛났습니다. 메루 산 가까이 있는 금빛의 평원과 짗은 어두운 형태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들인 싯다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악마들, 악귀들의 무리와 다른 영혼들의 무리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공간 운송 기구들이 온갖 곳으로 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늘 요정들이 노해하고 춤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갖가지 새들과 동물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천사들과 신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상서러운 자질을 갖춘 위대한 요기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창조자의 거처, 쉬바 및 다른 존재들의 거처를 보았습니다. 한쌍의 모기처럼 그들은 이 모든 평원을 거닐었습니다.
(주: 원본에는 묘사가 사실적이고 상세하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사라스와띠의 마음속에 이미 있었던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라스와띠가 릴라 왕비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것의 꽃잎을 향하고, 진흙 같은 지옥 속에서 자라며, 뿌리는 신성한 뱀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가슴의 연꽃 같았습니다.
이 연꽃 속에서, 그들은 잠부드비빠라고 알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무수한 나라와 대륙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금기 있는 바다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것 너머에는 우유의 바다로 둘러싸인 샤까드비빠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응유의 바다로 되어 있는 쿠샤드비빠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크라운짜드비빠와 기(응유)의 바다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포도주로 둘러싸여 있는 샬말리드비빠가 있습니다. 고메다비빠는 사탕수수 주스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달콤한 물의 바다로 둘러싸인 푸슈까라드비빠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주 홀(hole)이 있습니다. 그것 너머에 찬란하게 빛나는 로까로까 산이 있습니다. 그 너머에 무한한 숲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한한 공간, 완전한 텅 빔이 있습니다.
(주: 바가바땀에서 기술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라.)
바다들, 산들, 우주의 보호자들, 신들의 왕국, 하늘과 땅을 본 후에 릴라는 자신의 집을 보았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오, 라마여! 두 여인은 그때 성스러운 이의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온 식구가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슬퍼하고 있었으므로 집의 분위기도 침울하였습니다. 순수한 지혜의 요가 수행으로 릴라는 자신의 생각들이 즉시 물질로 나타나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원했습니다. "나의 친척들인 이들은 나와 사라스와띠 여신을 보통의 여인들처럼 보아야 한다." 그들은 애도하는 가족들에게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두 여인은 초자연적인 빛이어서, 집안에 스며 있는 우울함을 없앴습니다.
죽은 성스러운 부부의 장남은 두 여인을 숲의 천사들이라 여기고 환대했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오, 숲의 천사들이여! 당신들은 사별 속에 처해 있는 우리의 비탄을 덜어 주러 이곳에 온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이 신성한 분들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이들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를 열망합니다."
두 여인은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모든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슬픔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성스러운 부부의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오, 여인들이여! 이 집에는 경건한 남자와 그의 헌신적인 아내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올바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최근에 자녀와 손자, 집과 가축을 버리고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온 세상이 허무해 보입니다. 보십시오. 오, 여인들이여! 새들조차 떠나간 분들을 위하여 울지 않습니까? 신들도 비통해 울고 있습니다(비처럼 내리는 눈물!). 나무도 아침마다 눈물을 흘립니다(이슬방울). 이 땅을 버리고, 나의 부모님은 불멸의 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이 말을 듣고 릴라는 그 젊은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즉시 그는 슬픔에서 벗어났습니다. 이것을 보자, 다른 모든 이들 역시 슬픔이 덜어졌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오, 성스러운 분이시여! 릴라가 자신의 아들에게 어머니로서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시슈타가 답했다.
라마여! 물질적 실체들의 비실재성을 깨달은 이는 모든 곳에서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의 의식만을 볼 뿐입니다. 꿈꾸는 자는 이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깊은 혼수상태에 있는 자들조차도 다른 세상을 봅니다. 릴라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브람만, 참나 등이 하나의 무한한 의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에게 아들, 친구, 아내 등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녀가 손을 젊은이의 머리 위에 얹은 것조차 브람만의 은총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이렇게 고인이 된 성수러운 이의 가족을 축복하고서, 두 여인은 사라졌습니다. 위로를 받은 가족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릴라는 사라스와띠를 돌아보고 질문했습니다. 물론 이런 상태에서는 그들의 몸은 흙과 같은 물질이나 생명의 호흡 같은 정신신체적인 요소들로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두 개의 꿈과 같은 대상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릴라가 사라스와띠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의 나의 가족은 우리를 봤습니다. 우리가 나의 남편인 왕을 방문하였을 때, 왕국을 다스리던 왕인 그가 우리를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라스와띠가 답했습니다.
그때 그대는 여전히 '나는 릴라이다.'라는 개념에 매달려 있었다. 이제 그대는 그런 몸에 대한 의식을 극복했다. 이원적 의식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는 그대가 무한한 의식 속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그대는 그것을 이해할 수조차 없다. 그것은 마치 태양 아래 서 있는 사람이 나무 그늘의 서늘함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제 그대가 남편에게 간다면, 그대는 전처럼 그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릴라가 말했습니다.
오, 신성한 분이시여! 남편이 신성한 사람이었으며, 제가 그의 아내였던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저는 그의 왕비였습니다. 여기에서 남편은 죽었는데, 다시 그는 이곳에서 통치하고 있습니다. 청하건대, 그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저를 데리고 가 주십시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릴라여! 그대와 그대의 남편은 여러 몸을 거쳐 왔으며, 그들 중 셋은 그대도 안다. 이번 환생에서 그대의 남편은 세상이라는 올가미 속에 빠져 '나는 군주다. 나는 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등을 생각한다. 영적 관점을 통해서는 전 우주를 지금 경험할 수 있지만, 물질적 관점에서는 수백만 마일의 땅을 분리시킨다. 무한한 의식 속에서, 그것의 모든 원자 속에서, 마치 지붕에 난 구멍을 통해 비취는 햇빛 속 먼지처럼, 우주들이 오고 간다. 이것들은 바다의 물결처럼 오간다.
릴라는 회상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무한한 의식 안에서 반사로 나타난 후, 저는 팔백 번을 태어났습니다. 오늘에야 이것이 보입니다. 저는 요정, 악녀, 뱀, 숲 속 부족의 여자였던 때가 있었으며, 악한 행위들로 인해 넝쿨이 되었습니다. 또 현자들을 가까이 하였으므로 현자의 딸이 되기도 했습니다. 왕이 된 적도 있습니다. 이때 행한 나쁜 행위 때문에 모기, 벌, 사슴, 새, 물고기가 되었으며, 다시 하늘에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거북, 백조가 되었고 다시 모기가 되었습니다. 천상의 존재들인 남성들이 제 발아래 무너지곤 했던 천상의 요정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저울의 바늘이 끊임없이 시소를 타듯, 이렇게 반복되는 존재 즉 삼사라라는 시소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라마가 질문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거리가 먼 우주의 은하를 여인이 어떻게 이동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장애들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어디에 우주가 있으며, 어디에 은하가 있으며, 어디에 장애들이 있단 말입니까? 두 여인은 왕비가 사용하던 왕궁의 내실 방에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바시슈타가 비두라따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던 곳은 거기였습니다. 전의 빠드마 왕도 다름 아닌 그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순수한 공간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무런 우주도, 먼 곳도, 장애도 없습니다.
서로 대화하면서, 두 여인은 방에서 나와 산 위에 있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 산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곳의 모든 집들은 말 그대로 나무에서 계속 떨어지는 꽃들로 덮여 있었습니다. 젊은 여인들은 자신들의 방 안에서 구름들로 만들어진 침대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지혜의 요가를 집중적으로 수행함으로 릴라는 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돌이키며, 그녀는 사라스와띠에게 말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얼마 전까지 저는 나이 든 여인으로 여기에 살았습니다. 저는 여러 면으로 옳은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본성 속으로의 탐구, 즉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남편 또한 착하고 정의롭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내면의 지성은 일깨워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행위들의 모범이었으며, 그러한 행위들로 우리는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말한 후, 릴라는 사라스와띠에게 그녀가 살던 곳을 보여 주면서, "보십시오. 이것은 제가 귀여워하였던 송아지입니다. 서로 떨어지게 되었으므로, 그것은 풀을 먹지 않고 지난 8일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제 남편은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그의 강한 의지 때문에 그리고 그가 곧 위대한 왕이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몹시 길게 보이기는 하지만, 8일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공기가 공간에서 보이지 않은 채 움직이듯이, 이 집의 공간에서 제 남편은 눈에 보이지 않은 채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 만한 작은 공간인 이곳에서, 우리는 남편의 왕국이 백만 마일이 된다고 상상합니다. 오, 신이시여! 남편과 저는 모두 순수 의식인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수수께끼 같은 환영의 힘인 마야로 인하여, 남편의 왕국이 수백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신기합니다. 저는 남편이 통치하고 있는 수도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도록 합시다. 근면한 자에게 성취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사라스와띠와 함께 릴라 왕비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극에 있는 별의 영역 너머로, 완성을 이룬 현자들의 영역 너머로, 신들의 영역 너머로, 창조자인 브람마의 영역 너머로, 그리고 고로까, 쉬바, 사자의 영혼, 해방된 이들의 영역 너머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릴라는 태양과 달조차 멀리 밑에 있어서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라스와띠는 릴라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이것조차 넘어서 창조의 정점까지 가야 한다. 그대가 봤던 것은 그곳에서 나온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 곧 그들은 이곳의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식이 순수하고 견고하여 그들의 의지가 다이아몬드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릴라는 이 창조물이 물, 불, 공기, 공간들의 층에 의해 싸여 있으며, 그 너머에 순수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지고의 무한한 의식은 순수하며, 평화롭고, 환영들이 없고, 자신의 영광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릴라는 빛 속에 있는 먼지 입자처럼 떠다니는 수많은 창조물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우주들 속에 거주하고 있는 지바들의 자기 투사들이 그것들에게 그것들의 형태들과 내용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 무한한 의식의 근본적 본성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계속하여 일어나며, 그것들 자신의 생각하는 힘에 의하여 평온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하는 자발적인 놀이와 같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무한한 것만이 진리일 때, 사람들이 말하는 '위', '아래' 등과 같은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작은 대미들이 둥근 바위 위를 여기저기 기어 다닐 때, 그들의 발아래 있는 것은 늘 '아래'에 있는 것이며, 등 뒤에 있는 것은 늘 '위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방향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오, 라마여! 수많은 우주들 중 어떤 곳에는 식물만이 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브람마, 비슈누, 루드라 등이 있으며, 또 다른 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곳에는 동물과 새들만이 있고, 어떤 곳에는 바다만이 있으며, 어떤 곳에는 단단한 바위들이 있고, 어떤 곳은 벌레들만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짗은 어둠이 퍼져 있으며, 어떤 곳에는 신들이 거주합니다. 어떤 곳은 항상 빛으로 환합니다. 어떤 곳은 소멸되려 하고, 어떤 곳은 소멸을 향하여 공간 안으로 떨어지는 듯 보입니다. 의식은 모든 곳에서 늘 존재하고 있으므로, 이 우주들의 창조와 그것들의 소멸 역시 모든 곳에서 영원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비한 힘에 의해 함께 결합되어 있습니다. 라마여! 모든 것은 하나의 무한한 의식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일어납니다. 그것만이 모든 것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본 후, 릴라는 궁궐의 내실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왕의 시체가 꽃들 아래 묻혀 있었습니다. 남편의 또 다른 삶을 보고 싶다는 강한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우주의 정상을 헤치고, 남편이 지금 통치하는 왕국 안으로 갔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신두 지역을 다스리는 힘센 왕이 남편의 왕국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싸움이 벌어지는 전장 위의 공간을 달릴 때, 두 여인은 거기서 전쟁과 위대한 영웅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천상의 존재들을 만났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런 분이시여! 누가 군인들 가운데 영웅이며, 누가 짐승 즉 전쟁 범죄자입니까? 말해 주십시오.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결점 없는 행위를 하는 정의로운 왕을 위하여 경전의 지시들에 따라 전쟁을 하는 자는 전쟁에서 죽든 승리하든 영웅입니다. 백성을 괴롭히며 그들의 몸을 불구로 만드는 정의롭지 않은 왕을 위해 싸우는 자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었을지라도 짐승이나 죄인입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갑니다. 가축, 성스러운 이들, 친구들, 자신에게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자는 하늘을 장식합니다. 반면에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왕을 위해 싸우는 자들은 그들이 왕이든 지주이든 지옥으로 갑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영웅만이 천국으로 갑니다. 전쟁터에서 죽었지만 정의롭지 않게 싸운 자들은 천국으로 가지 않습니다.
오, 라마여! 그때까지 하늘에 서 있으면서, 릴라는 두 대군이 전투에 임할 태세를 갖추고 서로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군대의 준비 상태, 각각 다른 전투 배치, 전쟁의 격렬함, 그에 따른 파괴의 섬뜩한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뒤를 잇는다. 이 모든 것이 이 책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ㅡ S.V.)
저녁이 되자, 릴라의 남편은 대신들과 함께 아침에 있었던 일에 관해 희의를 한 뒤 잠에 들었습니다.
두 여인은 치열한 전쟁을 서서 바라보던 장소를 떠나 공기의 흐름처럼 이동하여, 왕이 자고 있는 궁궐의 내실로 들어갔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몸은 크고 무거워 보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갑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자신이 물질적인 몸이라는 생각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작은 구멍이나 관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런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몸이다.'라는 깊은 내적 확신이 사실상 장애입니다. 앞의 확신이 없어지면 장애도 없어집니다.
물은 늘 물로 있으면서 아래로 흐르고, 불은 올라가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의식은 언제나 의식으로 머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의 미묘함이나 진정한 본질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해가 그러하면 그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마음을 만드는 것은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방향은 많은 노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행위들은 그 사람의 마음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에테르라는 것을 아는 자가 있다면 어떻게 그의 움직임이 방해받는다는 말입니까? 사실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이의 몸은 순수한 의식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슴속에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고 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같은 무한한 의식이 또한 개체적 의식인 마음과 우주적 공간인 물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테르의 몸은 어디서든 어떤 것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가슴이 소망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갈 수 있습니다.
오, 라마여! 모든 사람의 의식에는 이러한 본성과 힘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의식에는 세상에 관한 각기 다른 생각이 있습니다. 죽음과 같은 경험은 우주의 소멸, 우주 의식의 밤과 같습니다. 그것이 끝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들, 개념들, 미혹들의 구체화인 그 자신의 심적 창조물에 대해 깨어납니다. 우주의 소멸 후 우주적 존재가 우주를 창조하듯이, 개체들은 죽은 후에 자신의 세상을 창조합니다.
그러나 브람마, 비슈누, 쉬바와 같은 신들이나 성스러운 현자들은 우주가 소멸되는 동안 궁극의 해방을 얻습니다. 다음 번 윤회에서 그들의 창조는 기억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다른 존재들의 경우에, 죽은 이후의 새로운 탄생은 이전의 경험이 남긴 인상들에 의해 조건 지어 집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죽은 바로 뒤의 상태는 그 사람이 여기에 있는 것도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때 의식은 말하자면 그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눈을 조금 뜹니다. 그 상태는 쁘라다나, 즉 의식의 물질적 혹은 둔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또한 에테르의 본질 또는 나타남이 없는 본질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지각력이 있거나 없는 것 둘 다로 간주됩니다. 기억과 기억 없음에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번 탄생에 책임이 있습니다.
에테르의 본질이 일깨워질 때, 그리고 그것의 의식 안에서 자아감이 그 스스로를 나타낼 때, 그것은 다섯 원소인 흙, 물, 불, 공기, 에테르와 시공간의 연속체 그리고 물질적 탄생과 존재에 필요한 여타의 것들을 만듭니다. 그때 이것들은 자기들의 물질적 대응물 속으로 응축됩니다. 꿈꾸는 동안이나 깨어 있는 상태에서 그것들은 물질적 몸의 느낌을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이 지바의 에테르 몸을 구성합니다.
비록 이 모든 것이 공기 속의 진동이나 움직임들처럼 일어나지만, '나는 몸이다.'라는 생각이 깊이 스며들면, 이 똑같은 에테르의 몸이 눈 등과 같은 몸의 물질적 특성들을 발전시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꿈 속의 성적 쾌락의 경험만큼이나 비실재적인 것입니다.
죽을 때마다 바로 그곳에서 지바는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 봅니다. 그 공간에서, 의식 그 자체의 바로 그 장에서, 그는 '이것은 세상이다. 이것은 나다.'라고 상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났다고 믿으면서, 그는 공간에 불과한 세상을 경험합니다. 그 사람 즉 지바 역시 공간입니다! '그는 내 아버지고, 그녀는 내 어머니다. 이것은 나의 재산이고, 나는 이 놀라운 행위를 하였다. 아! 나는 죄를 지었다.'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그는 '나는 어린아이가 되었고, 지금은 젊은이가 되었다.'고 상상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그의 가슴속에서 봅니다.
창조물이라는 이 숲은 모든 지바의 가슴 안에서 일어납니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때 거기서 그는 이 숲을 봅니다. 이런 방법으로, 개체적 지바들의 의식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세상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처럼 수많은 브람마들, 루드라들, 비슈누들 그리고 태양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창조에 관한 환영적인 지각이 수도 없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은 생각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은 무한한 의식과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마음의 활동은 단지 의식일 뿐이며, 그 의식은 지고의 진리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두 개의 달처럼 빛나는 두 여인은 신들처럼 왕의 내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은총으로 왕의 시종들은 빨리 잠들었습니다. 그들이 앉자 왕은 깨어나서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은 일어나 그들의 연꽃 같은 발을 꽃으로 숭배했습니다. 사라스와띠는 왕의 대신이 릴라에게 왕의 조상에 대해 알려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대신이 깨어났습니다.
사라스와띠가 왕이 누구인지를 묻자, 그 대신은 그는 위대한 왕 익슈바꾸의 자손이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10세 때 왕궁을 아들에게 맡기고 영적 삶을 살기 위해 숲 속으로 물러난 나보라타라고 두 여인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왕의 이름은 바두라타였습니다. 그때 사라스와띠가 왕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과거의 삶들에 대한 사실들을 기억하게 하는 영감을 주었습니다. 즉시 왕은 곧 모든 것을 기억하고는 사라스와띠에게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제가 죽은 지 하루가 되지 않았지만, 이 몸 안에서 70년을 산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사라스와띠가 답했습니다.
"오, 왕이여! 지금 여기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대가 죽는 바로 그 순간, 그대가 죽는 바로 그 장소에서 나타났다. 이 모든 것은 성스러운 바시슈타가 살았던 언덕 마을이다. 그것이 그의 세상이고, 그 세상 속에 빠드마 왕의 세상이 있다. 그리고 빠드마 왕의 그 세상 속에 그대가 있는 세상이 있다. 그 속에 살면서 그대는 생각한다. '이들은 나이 친척이다. 이들은 나의 백성이다. 이들이 나의 대신이다. 이들은 나의 적이다.' 그대는 자신이 통치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종교 의식들을 행하고, 적들과 싸우고, 그들에게 패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자신이 우리를 보고 있고, 우리를 경배하고 있으며, 우리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나는 모든 슬픔을 극복하고 지고의 희열을 즐긴다. 나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 속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데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 그것은 전 생애가 꿈 속의 드라마로 상연되는 데 아무런 시간이 들지 않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대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보지 않지만 그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무한한 의식과 다르지 않은데, 누가 무엇을 본단 말인가?
(비두라타가 "그러면 이 모든 나의 대신들은 독립된 존재가 아닙니까?"라고 묻자, 사라스와띠가 대답했습니다.)
깨달은 자에게는 오직 하나의 무한한 의식만이 있을 뿐, '내가 존재한다.'거나 '이것들이 존재한다.'와 같은 개념이 없다.
바시슈타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또 하루가 끝났다.
사라스와띠는 계속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미숙하고 유치한 자에게는 이 세상이 계속 실재한다. 그것은 귀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아이에게는 평생 동안 귀신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팔찌의 겉모습에 반하면, 팔찌가 금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궁궐, 코끼리, 도시의 장관을 보는 자는 유일한 진리인 무한한 의식을 보지 못한다.
이 우주는 긴 꿈에 불과하다. 다른 것들이 있다는 상상과 자아감은 꿈 속의 대상들만큼 실재한다. 단 하나의 실재는 무한한 의식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순수하며, 고요하고, 전능하다. 그리고 그것의 몸과 존재는 절대 의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상도 아니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의식이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나타나든 간에, 의식은 그것이 된다. 그러므로 보는 자가 인간의 존재를 본다고 공상하면, 인간 존재가 거기에 나타난다. 바탕(무한한 의식)은 실재이다. 비록 실재가 바탕이지만, 그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모든 것은 실재성을 얻는다. 이 우주와 그 속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긴 꿈에 불과하다. 그대에게는 내가, 나에게는 그대가 실재한다. 이런 상대적인 실재성은 꿈 속 대상들의 실재와 같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꿈 속에서 나타난 도시의 경우, 그것이 진짜 도시라면 그것은 계속 존재합니다. 이것이 당신의 가르침 속에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하였다.
맞습니다. 오, 라마여! 도시 등에 대한 꿈은 무한한 의식이라는 진정한 토대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이 꿈의 대상들은 실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의식의 상태와 꿈의 상태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에서 사실인 것이 다른 하나에서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두 상태는 본질적으로는 같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거나 꿈꾸는 의식의 상태에 있는 대상들은 똑같이 실재가 아닙니다. 그것들을 받치고 있는 무한한 의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왕에게 이 가르침을 준 후, 사라스와띠는 그를 축복한 후 말했습니다. "모든 경사로운 일이 그대에게 함께 하기를, 그대는 보아야 할 것을 보았다. 우리를 가도록 해 달라."
비두라타가 말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수면 속에서 이 꿈에서 저 꿈으로 가듯이, 저는 여기에서 갈 것입니다. 청컨대, 저의 대신들과 처녀인 제 딸이 저와 함께 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의 청을 들어준 뒤 사라스와띠는 말했습니다.
오, 왕이여! 그대는 이 전쟁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대의 왕국을 다시 되찾을 것이다. 그대는 지금의 몸으로 죽은 후, 그대의 딸과 그대의 대신들과 함께 예전의 도시로 갈 것이다. 우리 둘은 여기 왔던 것처럼 갈 것이다. 물론 그대들 모두는 자신에 맞는 적당한 절차로 우리를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말, 코끼리, 낙타가 하는 동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사라스와띠가 왕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충성스런 사자가 급히 와서, 적군이 수도에 들어와 파괴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방화 습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도시가 불타올랐습니다. 두 여인, 왕 그리고 대신들은 창가로 가서 그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도시에 대한 약탈이 시작되었습니다. 약탈자들은 모든 곳에서 사납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온 도시가 짗은 연기로 뒤덮였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렸습니다. 반달 모양의 날아다니는 무기(폭탄)들이 집 위에 떨어져 집들과 그 주변의 거리들을 파괴하고 있었습니다.
왕과 다른 이들은 백성들의 비참한 외침을 들었습니다. 도처에서 울고 흐느끼고 있었으며, 여인들과 아이들의 비통한 외침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울고 있었습니다. "아! 이 여인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 아이를 잃었다. 그년느 죽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의 비극은 가슴을 태우고 있다." 어떤 이들은 소리쳤습니다. "빨리 집 밖으로 나가라. 집이 무너질 것이다." 다른 이는 소리쳤습니다. "폭탄들과 무기들이 모든 집으로 비처럼 쏟아진다." 날아다니는 무기들이 우주적 소멸 앞에 오는 비처럼 퍼부었습니다. 집 주위의 모든 나무들이 타 버렸으며, 모든 곳이 황폐해 보였습니다. 코끼리처럼 보이는 것이 전쟁터에서 하늘로 치솟아, 도시에 불을 뿜고 있었습니다. 모든 곳에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애착으로 인해 남자들은 불타는 집 안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찾으며 머물렀습니다. 왕실 여인들조차 침입한 군인들에게 끌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신분이 높은 왕실 여인들은 흐느껴 울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소리쳤습니다. "아! 이 끔찍한 처지에 있는 우리를 누가 도와 줄 것인가?" 그들은 군인들에 의해 둘러싸였습니다.
이런 것이 통치, 왕국, 제국의 영광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그 사이 왕비가 거기에 도착했습니다. 시녀는 그녀가 왔음을 왕에게 알렸습니다. 왕비는 말했습니다. "폐하! 규방의 모든 여지들은 적군들에게 난폭하게 끌려갔습니다. 말할 수 없는 재난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이는 폐하뿐입니다."
왕은 사라스와띠에게 절하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적들과 대적하기 위해 전선으로 갈 것입니다. 그 동안은 저의 아내인 이 사람이 당신의 시중을 들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는 왕비의 모습이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녀는 사라스와띠에게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그녀가 저와 똑같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는 젊었을 때의 제 모습과 같습니다. 이것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기 대신들 역시 옛날 우리 궁궐에 있었던 그들과 같습니다. 그들이 단지 우리의 환영의 투영이나 대상들에 불과하다면, 그들은 지각이 있으며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까?
사라스와띠가 답했습니다.
오, 릴라여!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지라도 그것은 즉시 경험된다. 말하자면, 주체로서의 의식이 지식의 대상이 된다. 의식 안에 세상의 이미지가 일어나면, 바로 그 즉시 의식은 그렇게 된다. 시간, 공간, 기간, 객관성은 물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물질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식 안에 비추어진 것은 바깥에서도 빛난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경험되는 객관적인 세계로 여거지는 것은, 꿈꾸는(잠자는) 동안에 경험하는 것들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 아니다. 잠자는 동안에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처럼 죽음은 삶과 모순된다. 즉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에는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의 경험을 결합시키는 것이 다른 쪽에는 없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실재한다고도 실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의 바탕은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는 브람만 안에 오직 단어나 생각으로만 존재한다. 밧줄이 뱀으로 오인될 때 밧줄 속의 뱀이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듯이, 우주는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다. 지바도 그렇다. 지바는 자신잉 바라는 것을 경험한다. 지바는 자신이 예전에 경험했던 것을 경험한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새로운 경험이다. 그것들은 때로는 유사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경험은 근본적으로는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것이 이 대신들과 다른 이들의 본성이다. 그처럼 지금의 이 릴라도 의식 속 투영의 산물로 존재한다. 그대, 나, 다른 모든 이들도 다 그렇다. 이것을 깨닫고 평화 속에 머물러라.
두 번째 릴라가 사라스와띠에게 말했습니다.
오, 신이시여! 저는 사라스와띠 여신을 경배했으며, 그분은 저의 꿈 속에서 나타나곤 했습니다. 당신은 그분과 똑같아 보입니다. 추측하건대, 당신은 사라스와띠 여신입니다. 황송하게도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남편이 전장에서 죽게 되면, 그가 어느 왕국으로 가든, 지금의 이 몸으로 저도 남편과 함께 하게 해 주십시오.
사라스와띠가 답했습니다.
오, 그대여! 그대는 강한 헌신으로 오랫동안 나를 경배해 왔다. 그러므로 그대가 원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도록 하겠다.
첫 번째 릴라가 사라스와띠에게 말했습니다.
진실로 당신의 말씀은 실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것은 항상 이루어집니다. 저에게는 같은 몸을 지니고 의식의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이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는지 그 이유를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사라스와띠가 답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릴라여! 사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모든 지바는 스스로가 한 행위로 자신의 상태를 얻는다. 나는 모든 존재의 지성을 지배하는 신일 따름이다. 나는 모든 존재의 의식의 힘이며 생명력이다. 살아 있는 존재의 에너지가 그 자신 안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면, 그것만이 시간이 감에 따라 결실을 맺는다. 그대는 해방을 원했다. 그래서 그대는 그것을 얻었다. 그대는 그것을 금욕 생활이나 신을 경배한 결실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대에게 결실을 부여한 것은 오로지 의식일 뿐이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이 보이는 과일이 사실은 나무에서 떨어진 것과 같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을 때, 비두라타 왕은 빛나는 마차에 올라서 전선으로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적의 진영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자신과 적군의 힘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두 명의 릴라, 사라스와띠, 그리고 여신의 축복을 받은 공주는 궁궐의 내실에서 이 끔찍한 전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양군에서 쏘아 올린 화살, 탄환, 돌로 가들했으며, 전사들이 외치는 함성이 도처에서 들렸습니다. 온 도시가 연기와 먼지의 장막으로 뒤덮였습니다.
비두라타 왕은 적의 진영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는 격렬한 십자 포화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화살과 탄환 등이 충돌함에 따라, 무기 소리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두 번째 릴라가 사라스와띠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남편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라스와띠가 답했습니다.
확실히 비두라타 왕은 나를 오랫동안 경배했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서의 승리는 빌지 않았다. 나는 모든 존재의 이해 속에 거주하고 있는 의식이므로 나는 그 사람이 구하는 것을 그 사람에게 준다.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나는 그에게 그 결실을 준다. 불이 그대에게 열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해방을 청했다. 그래서 그는 해방을 얻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신두 왕은 나를 숭배하였고, 전쟁에서 승리를 빌었다. 그래서 비두라타 왕은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며, 그리고 그는 그대 둘 다와 재회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하면 해방을 얻을 것이다. 이 신두 왕은 전쟁에서 이기고 승리한 군주로서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여인들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을 때, 동쪽의 지평선에서는 마치 이 끔찍한 전투의 결말 부분을 보고자 하는 듯이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각각 천여 명의 군인들에 의해 둘러싸인 채, 두 왕은 서로 싸웠습니다. 그들의 날아다니는 무기들은 모양과 크기가 여러 가지였습니다. 어떤 미사일은 땅을 떠날 때는 탄두가 하나였지만, 공중에서 수천으로 늘어서, 목표물을 쳤을 때는 글자 그대로 수십만이 되어 비처럼 쏟아졌습니다.
두 왕은 힘이나 용맹에 있어서 어울리는 짝이었습니다. 비두라타 왕의 힘과 용맹은 타고난 것이었습니다. 반면 적의 강인함은 나라야나 신에게서 얻은 은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싸우는 동안, 그들의 군대는 어쩔 줄 모르고 지켜보았습니다.
첫 번째 싸움에서는 비두라타가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릴라는 의기양양해 하면서 사라스와띠에게 그를 가리켰습니다. 바로 그 다음 순간, 적이 다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쪽에서 치명적인 미사일들을 쏘아 올리면 다른 쪽에서는 그에 대항하는 미사일들을 발사하였습니다. 낙담시키는 미사일이 날아오다 격추되면 전사들은 고무되었습니다. 뱀 미사일에는 그에 대응하는 미사일이 있었습니다. 물 미사일은 불 미사일에 의해 대응되었습니다. 비슈누 미사일은 두 왕에 의하여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두 왕은 그들의 전차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 서서 계속 싸웠습니다. 비두라타가 새 전채에 오르려는 순간, 그는 신두 왕의 칼에 맞았습니다. 곧 비두라타의 몸은 궁전으로 옮겨졌습니다. 사라스와띠가 있었기 때문에 적들은 궁전 안으로는 쫓아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비두라타 왕이 쓰러지자 곧 도시는 전쟁 후의 혼란과 혼동이 완연했습니다. 신두 왕은 자신의 아들이 새로운 통치자가 될 것임을 알렸습니다. 그의 국민들은 기뻐했으며, 대신들은 대관식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즉시 새로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자 그 나라는 평화와 질서가 회복되었습니다.
비두라타 왕이 쓰러진 것을 보고, 두 번째 릴라 역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첫 번째 릴라가 사라스와띠에게 말하였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지금 제 남편은 죽으려 합니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모든 끔찍한 전쟁, 이 파괴와 죽음은 꿈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왕국도 영토도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성스러운 이인 바시슈타의 집 안에서 벌어졌다. 궁전, 전쟁터 및 그 밖의 모든 것은 그대 궁궐의 내실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실은 온 우주가 그곳에 있다. 왜냐하면 거룩한 자의 집 속에 빠드마 왕의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세상 안에 있는 왕의 궁궐 내부에 그대가 여기서 보았던 모든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상상이며 환영이다. 존재하는 것은 유일의 실재이다. 그것은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 무지한 자에 의해 우주라고 지각되는 것은 그 무한한 의식이다.
온 도시가 꿈꾸는 자의 내부에 있듯이, 삼계도 작은 원자 안에 있다. 확실히, 저 세상들 안에 원자들이 있다. 그리고 물론 이 원자들 각각은 삼계를 포함하고 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또 다른 릴라는 그대의 남편인 빠드마의 몸이 누워 있는 세상에 이미 도착했다.
첫 번째 릴라가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어떻게 그녀는 거기에 벌써 갔습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에게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사라스와띠가 대답했습니다.
그대 둘 모두 왕이 상상했던 대상들이듯이, 왕과 나도 꿈의 대상들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지각의 대상들'을 찾기를 포기한다. 무한한 의식 안에서 우리는 상상 속에서 서로를 창조하였다. 젊은 릴라는 정말이지 그대였다. 그녀는 나를 숭배했고, 자신이 남편을 잃는 과부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비두라타 왕이 죽기 전에 그녀는 이곳을 떠났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들 모두는 개체화된 우주적 의식이지만, 나는 우주적 의식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일어나게 한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오, 라마여! 사라스와띠로부터 은혜를 얻었던 두 번째 릴라는 하늘로 올라갔으며 그곳에서 자신의 딸을 만났습니다. 딸은 릴라에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릴라는 딸에게 남편인 왕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날아갔습니다.
먼저 그들은 구름의 영역을 통과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공기의 영역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는 태양의 궤도를 통과하여 별이 반짝이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창조자 브람마, 비슈누, 쉬바의 영역들로 계속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우주의 정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항아리를 깨지 않고도 얼음의 차가움이 항아리로부터 나올 수 있듯이,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로느 생각으로 만들어진 에테르의 몸을 가진 릴라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경험했습니다.
이 우주조차 넘어가면서, 릴라는 우주를 감싸고 있는 바다들과 다른 원소들을 가로질렀습니다. 그래서 무한한 의식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무한한 의식 안에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수많은 우주가 있습니다.
릴라는 그 우주들 중의 하나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는 꽃 더미로 뒤덮인 왕 빠드마의 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브람마 등과 같은 신들의 영역들을 통과하여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왕의 몸이 누워 있는 궁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ㅣ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그녀는 딸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신비스럽게도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왕이 자신의 남편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전장에서 전사다운 영광스러운 죽음을 당했으므로 그가 영웅의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사라스와띠의 은총으로, 나는 육체로서 이곳에 이르렀다. 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축복 받은 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왕의 몸을 부채질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릴라가 사라스와띠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를 보고서 왕의 신하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사라스와띠가 대답했습니다.
왕, 왕실의 하인들, 그 밖의 모든 사람은 무한한 의식일 뿐이다. 하지만 바탕이 실재인 무한한 의식의 반사이고, 그리고 공상에서 나온 창조의 질서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남편은 '그녀는 나의 아내이다.' 그리고 아내는 '그는 나의 남편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육체적 몸으로는 새로운 영역에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무지라는 눈먼 개념이 있는 한, 지혜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에테르 몸에 관련한 지혜가 일어날 때, 육체적 몸이 사실이라 인식되는 것이 끝난다. 이것은 내가 그녀에게 허락한 은총의 결실이다. 은총을 받은 이는 '당신이 당신의 은총으로 저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 바대로, 그렇게 저는 존재합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이 육체적 몸으로 남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지하게도 밧줄 안에서 뱀을 본다. 그러나 밧줄은 뱀처럼 움직일 수 없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지혜에 도달한 자만이 에테르의 영역으로 오를 수 있다. 오, 릴라여! 다른 이들은 갈 수 없다. 이 릴라는 그와 같은 지혜가 없다. 따라서 그녀는 남편이 거주하는 도시에 도착했다고 상상했을 뿐이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말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당신의 말씀대로 되소서. 하지만 제게 말해 주십시오. 불 속의 열, 얼음 속의 차가움, 땅 속의 견고함처럼, 대상들은 어떻게 그들의 특성을 얻었습니까? 어떻게 세상의 질서(니야띠)가 먼저 일어나고, 탄생과 죽음 또한 일어났습니까?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우주가 소멸할 때 온 우주는 사라지고, 오직 무한한 브람만만이 평화 속에 있다. 의식의 본성을 지닌 이 무한한 존재는 '나는 있다.'라고 느낀다. 그러고 나서 '나는 빛의 원자다.'라고 느낀다. 이리하여 그것은 그 자신 안에서 그 말의 진실을 경험한다. 그것은 또한 자신 안에 다양한 창조물의 존재를 상상한다. 그것의 본성은 순수하고 절대적 의식이기 때문에, 그 공상적 창조는 무한한 의식의 공상과 엄격하게 일치하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 대상들과 함께, 진정한 창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첫 번째 창조 동안 무한한 의식에 의하여 생각되고 상상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어디에 있든지, 어떠하든지 간에, 그 모두는 그 방법과 그 특성을 가지고 존재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제한적 질서가 이곳에 존재하게 되었다.
사실, 이 질서는 무한한 의식 속에 내재하고 있다. 이 모든 대상과 그 특성들은 우주의 소멸 동안에도 그것 안에서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그 밖의 어디로 소멸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어떻게 어떤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겠는가? 팔찌로 보이는 금은 모습이 완전히 없어질 수가 없다.
이 창조물의 모든 원소는 전적으로 비어 있다. 그러나 어떤 원소가 처음으로 어떤 특성과 함께 시작한다고 상상하면, 그것은 그렇게 되고 그래서 그 질서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상대적 관점으로 볼 때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전혀 창조되지 않았으며,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무한한 의식이지 그 이외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실재가 아니지만 실재처럼 보이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것이 우주 안의 질서이다. 지금껏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 없었다. 무한한 의식은 이 모든 원소들이 그 자신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자신 안에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물질화되어 나타난다.
사라스와띠는 계속 말하였습니다.
첫 번째 창조에 있었던 질서에 따르면, 인간은 백, 이백, 삼백, 사백 살까지의 수명을 받았다. 수명의 길고 짦음은 나라, 시간, 활동, 쓰이고 소비되는 물질 등의 요인들이 순수한가 불순한가에 달려 있다. 경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는 그 경전들이 보증한 수명을 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거나 짧은 삶을 살다가 삶의 끝에 이른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말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죽음에 대하여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은 유쾌한 것입니까, 아니면 불쾌한 것입니까? 그리고 죽음 후에는 무엇이 일어납니까?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세 유형의 인간이 있다. 어리석은 자, 집중과 명상을 수행하는 자, 지성적인 인간인 요기가 그들이다. 뒤의 두 유형은 집중과 명상의 요가 수행으로 몸을 버린다. 그리고 달콤한 의지와 쾌락을 떠난다. 그러나 집중이나 명상을 수행하지 않은 어리것은 자들은 바깥의 힘들에 좌우되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오면 커다란 고뇌를 경험한다.
이 어리석은 자들은 불타는 자신의 내부에서 끔찍한 느낌을 경험한다. 호흡은 어렵고 힘들어진다. 그의 몸은 쇠약해진다. 그는 짙은 어둠 안으로 들어가서 낮에도 별을 본다. 그는 어지러워지며 시야가 혼란스러워진다. 즉, 그는 땅을 공간으로 보며 하늘을 단단한 땅으로 본다. 우물 속에 빠지고, 돌 안으로 들어가며, 빠른 운송 기구를 타고, 눈처럼 녹아내리며, 밧줄을 끌리고, 풀잎처럼 떠다니는 등 온갖 종류의 정신착란의 감각들을 경험한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점차 그의 감각들은 힘을 잃고, 그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지혜롭지 못함과 무지 속으로 가라앉는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물었습니다.
각각의 사람에게 여덟 개의 수족이 주어졌음에도 그가 이 모든 고뇌와 무지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라스와띠가 대답했습니다.
무한한 의식에 의하여 창조가 시작될 때 세워진 질서가 그런 것이다. 생명의 호흡이 자유롭게 흐르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상상이다. 어떻게 무한한 의식이 존재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인간은 다름 아닌 무한한 의식이다. 누가 언제 죽는단 말인가? 누구에게 이 무한한 이식이 속하며, 어떻게 속한다는 말인가? 수백만의 몸들이 죽을 때도, 이 의식은 쇠퇴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말했습니다.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주십시오. 그 말씀을 다시 듣는다면 제 지혜가 깊이를 더할 것입니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생명의 호흡의 흐름이 멈출 때, 개체들이 의식은 전적으로 수동적이 된다. 오, 릴라여! 그 의식은 순수하고 영원하며 무한하다는 것을 제발 기억하라. 그 의식은 일어나지도 않고, 존재하는 것을 멈추지도 않는다. 그것은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창조물들 속에, 하늘 속에, 산 위에, 불과 공기 속의 거기에 늘 존재하고 있다. 생명의 호흡이 멈출 때, 몸이 '죽었다'거나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명의 호흡은 자신의 근원인 공기로 돌아가고, 기억과 경향성들에서 자유롭게 된 의식은 참나로서 남는다.
이 기억의 경향성들을 가지고 있는 원자 같은 에테르의 입자를 지바라 한다. 지바는 죽은 몸이 있는 공간 안의 거기에 남는다. 그것을 프레따(죽은 영혼)라고 한다. 그 지바는 이제 그것의 생각이나 그것이 그때까지 보아왔던 것을 버리고, 다른 것들을 꿈꾸거나 한낮의 백일몽처럼 지각한다.
의식이 순간적으로 상실될 때, 지바는 자신이 다른 몸, 다른 세상, 다른 수명을 본다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오, 릴라여! 죽은 영혼에는 여섯 범주가 있는데, 나쁜, 더 나쁜, 가장 나쁜 죄인들과 좋은, 더 좋은, 가장 고결한 자들이 있다. 물론 이들 간에도 역시 하위 구분들이 있다. 가장 나쁜 죄인들의 경우, 의식의 순간적인 상실이 상당 시간 지속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죄를 지은 존재들은 지옥에서 끔찍한 고통들을 경험한다. 그들의 괴로움의 끝을 보기 이전에, 그들은 수많은 살아 있는 종들로 태어난다. 그들은 오랫동안 나무로 있을지도 모른다.
중간 정도의 죄를 지은 자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의식의 살실로 고통을 당한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벌레와 동물로 태어난다.
가벼운 죄인들은 곧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최고로 올바른 이들은 천국으로 올라가소 거기에서 삶을 즐긴다. 후에 그들은 지상의 선하고 부유한 가족들에 태어난다.
중간 정도의 올바른 이들은 요정들의 영역으로 가고 브람마나 등의 자녀들로 땅으로 돌아온다.
죽은 자 가운데서도 올바른 자들 역시 그러한 천상의 기쁨을 즐긴 후에 그들이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불순함의 결실들을 치르기 위해 반신의 영역들을 통과해야 한다.
사라스와띠는 계속했습니다.
이 모든 죽은 영혼들은 과거 행위들의 결실을 그들 자신 속에서 경험한다. 처음에는 '나는 죽는다.'라는 개념이, 다음에는 '죽음의 신이 보낸 사자들이 나를 데려가고 있다.'라는 개념이 있다. 그들 중 올바른 이들은 천국으로 간다고 상상하며, 보통 죄인들은 죽음의 신의 법정 안에 서 있으며, 찌뜨라굽타(자신의 행위들의 숨겨진 기록)의 도움으로 그들의 과거 삶에 대한 재판과 판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상상한다.
지바가 보는 것이 무엇이든, 지바는 그것을 경험한다. 왜냐하면 무한한 의식이라는 이 빈 공간에는 시간, 행동 등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지바는 '죽음의 신이 나를 천국 혹은 지옥으로 보냈다.'라거나 '나는 천국이나 지옥의 즐거움 또는 고통을 누리거나 겪었다.'라거나 '나는 죽음의 신에 의하여 동물 등으로 태어난다.'라고 상상한다.
그 순간 지바는 먹은 음식을 통하여 남성의 몸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여성에게로 옮겨져 세상에 나오는데, 그곳에서 지바는 과거에 행한 행위들의 결과에 따라서 다시 삶을 겪는다. 그것은 그곳에서 달처럼 기울고 찬다. 또다시 늙음과 죽음을 겪는다. 이것은 지바가 참나 지식에 의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계속된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맨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사라스와띠가 대답했습니다.
산, 숲, 땅 그리고 하늘, 이 모든 것은 다름 아닌 무한한 의식이다. 무한한 의식만이 모든 것의 참다운 존재이며, 모든 것 안에 있는 실재이다. 순수한 무한한 의식이 자신을 나타낼 때마다, 그것이 취하는 형태가 무엇이든 그것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그것은 그렇게 되기를 계속하고 있다. 생명의 호흡이 몸 속으로 들어가 몸의 여러 부분들을 진동시키기 시작할 때, 그 몸은 살아 있게 된다. 그러한 살아 있는 몸들은 창조의 맨 처음부터 존재해 오고 있다. 샘영의 호흡이 들어간 몸들이 진동하지 않았을 때, 그것들을 나무나 식물이라 한다. 이들 몸 속에서 지성이 되는 것은 정말이지 무한한 의식의 작은 부분이다. 몸 속으로 들어간 이 지성은 눈 등과 같은 여러 기관들이 있게 한다.
이 의식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그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모든 것의 이 참나는 움직이는 몸들의 특성으로서는 움직임을, 움직이지 않는 몸들의 특성으로서는 부동성을 지닌 채 모든 몸들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몸들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라스와띠가 계속했습니다.
무한한 의식의 부분인 지성이 자신을 나무라고 상상하였기에, 무한한 의식은 나무가 되었다. 바위라고 상상하였기에, 그것은 바위가 되었다. 풀이라고 상상하였기에, 그것은 풀이 되었다. 감각이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 간에는, 둔함과 지성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질들의 본질에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한한 의식은 모든 곳에 동등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성이 자신을 다른 물질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차이가 만들어진다. 동일한 무한한 의식이 여러 물질들에서는 여러 이름들로 알려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성이 벌레, 개미, 새로 동일시하는 것은 같은 무한한 의식이다. 그것 안에는 아무런 비교도, 차이에 대한 감각도 없다. 그것은 마치 북극에 사는 사람이 남극에 사는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북극에 산느 사람들은 자신을 남극에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이 지성에 의하여 동일시된 각각의 독립적 물체들은 다른 물체들과 구분이 없이 그것 자신에 의하여 존재하고 있다. 자신들을 '감각이 있는 것'과 '감각이 없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바위 속에서 태어난 개구리가 자신을 감각이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바위 바깥에서 태어난 개구리는 자신을 감각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무한한 의식의 한 부분인 지성은 모든 곳에 있으며, 그것은 모든 것이다. 그 지성이 자신이라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창조의 맨 처음에 그것은 그렇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것은 그것으로 늘 있게 되었다.
지성은 자신을 공간이라 생각했고, 지성은 자신을 움직이는 공기라 생각했으며, 지성은 자신을 감각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지성은 자신을 감각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성이 상상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모습은 실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가 아니다.
오, 릴라여! 지금 비두라타 왕은 빠드마 왕의 가슴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가 그곳으로 향해 가고 있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말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가십시다.
사라스와띠가 말했습니다.
빠드마 왕의 가슴 안에 있는 자아이 원리로 향하면서, 비두라타 왕은 자신이 다른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로 가도록 하자. 사람은 다른 이의 길을 걸을 수가 없다!
바시슈타는 계속했다.
새들이 쓰러지려고 하는 나무를 버리듯이, 그 사이 생명의 호흡은 비두라타 왕이 몸을 떠났습니다. 그의 지성은 에테르의 모습으로 공간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릴라와 사라스와띠는 이것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잠시 후, 죽은 뒤 무의식의 기간이 끝나자, 에테르의 모습이 의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친척들이 수습한 육체의 모습까지 보았다고 상상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난 뒤 그는 남쪽을 여행하여 죽음의 신의 거처에 도달했습니다. 죽음의 신은 왕이 죄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자에게 왕으로 하여금 향료로 방부 처리된 이전의 몸인 빠드마 왕의 몸으로 들어가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즉시 비두라타의 지바는 여러 우주를 가로질러 빠드마 왕의 몸이 누워 있는 궁궐에 도착했습니다. 먼 나라들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보물을 묻어 둔 곳에 늘 집착하고 있듯이, 확실히 비두라타는 빠드마 왕의 자아를 통해 빠드마 왕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오, 성스런 분이시여! 자신의 친척들이 장례식을 적절하게 치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에테르의 모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가 답했다.
장례식이 적당하게 치러졌든 치러지지 않았든 상관없이, 죽은 자가 장례식이 잘 치러졌다고 믿는다면 그는 에테르 모습의 이익을 갖습니다.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신의 의식이 무엇이 되면, 그 무엇으로 그는 존재합니다. 대상이나 물질 같은 대상들은 자신의 생각 혹은 관념과 같은 공상 때문에 존재 안으로 들어옵니다. 자신의 공상 또한 사물들로부터 일어납니다. 독은 자신의 신념인 공상을 통하여 감로주로 변합니다. 그처럼 그와 같은 강한 신념이 있다면, 실제로 있지 않은 대상이나 물체가 실재가 됩니다. 원인이 없이는 결과는 언제, 어디서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공상도 생각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원인이 없는 무한한 의식에게는 어떠한 것도 결코 일어나거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확신하십시오.
죽은 자의 영혼이 극히 부도덕하지 않은 한, 장례식이 올바른 신념을 지닌 자신의 친척들에 의하여 치러진다면 그것은 죽은 영혼의 지성을 돕습니다.
빠드마 왕의 궁궐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앞서 말한 대로 릴라와 사라스와띠는 아름다운 궁궐로 다시 들어가 향료가 발라진 빠드마 왕의 몸이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왕실의 하인들은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했다.
거기서, 그들은 빠드마 왕의 몸 가까이 앉아서 왕에게 열심히 부채질하고 있는 두 번째 릴라를 보았습니다. 첫 번째 릴라와 사라스와띠는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첫 번째 릴라는 왕 가까이에 있는 그녀의 몸을 잠시 떠나 에테르의 몸으로 사라스와띠와 함께 여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첫 번째 릴라의 몸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첫 번째 릴라가 깨달음을 얻게 되자, 그녀의 자아에서 나온 진정한 존재에 대한 공상은 사라져 그녀는 육체와의 연결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눈처럼 녹아 버렸습니다. 사실, 릴라가 자신이 육체적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릴라의 무지한 공상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난느 사슴이다.'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꿈을 꾸고서, 깨어나 잃어버린 사슴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슴을 찾으러 가야 합니까? 미혹된 마음 안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밧줄이지 뱀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어 미혹이 추방되면, 거기에는 더 이상 무지한 공상이 없게 됩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이 실재 한다는 공상에서 나온 확신은 되풀이하면 깊어집니다.
꿈 속에서 앞의 모습을 버리지 않고 또 다른 모습을 취할 수 있듯이, 하나의 에테르 몸에서 그 몸을 버리지 않고 다른 에테르의 몸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요기의 몸은 무지한 자의 눈에는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기의 몸은 진실로 보이지 않으며 미묘합니다. 그 자신의 무지로 '이 요기는 죽었다.'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자는 그런 식으로 보는 자입니다. 몸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존재하며, 무엇이 죽는단 말입니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직 미혹만이 사라졌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그러면 요기의 육체적 몸이 에테르의 몸이 됩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여러 번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에테르의 몸만이 있습니다. 계속되는 상상으로 인해, 그것이 육체적 몸과 관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을 육체적 몸이라고 생각한느 무지한 자가 죽어서 화장될 때, 그는 미묘한 몸을 가집니다. 그처럼 살아 있는 동안에 깨달음을 얻은 요기는 에테르의 몸을 가집니다.
육체적 몸은 그 사람의 무지한 상상의 창조물일 따름이며, 실재가 아닙니다. 몸과 무지 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이 둘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정말이지 되풀이되는 삶인 삼사라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라스와띠는 비두라타의 지바가 빠드마 왕의 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사라스와띠에게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제가 여기서 지금까지 명상하면서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사라스와띠가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명상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다. 처음 15일 동안에 그대의 몸은 쁘라나야마에 이해 생긴 열로 수분이 증발되었다. 그래서 그대의 몸은 마른 잎처럼 되어 떨어졌다. 그래서 굳고 차가워졌다. 그러자 대신들은 그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 몸을 화장했다. 그대의 소원 때문에 이제 그대는 에테르의 몸으로 여기에 나타나 있다. 그대 안에는 과거 삶에 대한 기억들도, 이전의 환생에서 나온 잠재된 경향성들도 없다. 젊은 나이에 이르게 되면 자신이 태아였을 때의 삶을 잊듯이, 지성이 자신의 에테르의 본질에 대하여 확신이 서면 몸은 잊혀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31일째이고 그대는 여기에 있다. 우리 자신을 다른 릴라에게 드러내도록 하자.
두 번째 릴라는 그녀 앞에 있는 그들을 보고서 그들의 발아래에 엎드려 경배했다.
사라스와띠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대가 여기에 왔는지 우리에게 말해 보거라.
두 번째 릴라가 대답했다.
비두라타의 궁전에서 기절했을 때,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때 저는 제 미묘한 몸이 하늘로 올라가 공기와 같은 운송 수단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저는 비두라타가 화원 안에 누워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가 전쟁을 하여 지쳤다고 생각하고는 그를 깨우지 않고 부채질을 하였습니다.
사라스와띠는 즉시 비두라타의 지바를 몸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왕은 선잠에서 깬 듯 바로 깨어났습니다. 두 명의 릴라는 그에게 절했습니다.
왕은 깨달음을 얻은 릴라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저 여인은 누구인가? 그녀는 어디에서 왔는가?"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답했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전생의 당신 아내이며, 말 그대로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이 릴라는 당신의 또 다른 아내입니다. 그녀는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제가 만든 나 자신의 그림자입니다. 저쪽 황금의 옥좌에 앉아 계시는 분은 사라스와띠 여신이십니다. 우리의 대단한 행운으로 인해 그분이 여기에 계십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바로 앉아 사라스와띠를 경배했습니다. 사라스와띠는 그에게 장수와 부 등과 깨달음의 은총을 내려 주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희망했던 은총들을 왕에게 내린 후, 사라스와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왕과 왕비는 서로 정답게 껴안았습니다. 왕의 몸을 지키던 시종들도 깨어났으며 왕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나라는 큰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릴라 왕비가 왕에 대한 선물로서 또 다른 릴라를 데리고 다른 세상에서 되돌아왔는지를 오랫동안 서로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왕은 깨달음을 얻은 릴라로부터 지난 달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들었습니다. 그는 계속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 자신의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이 확실한 사라스와띠의 은총을 통해 왕은 삼계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 라마여! 이것이 그대에게 내가 상세히 설명한 릴라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묵상하면 그대는 지각되는 대상들이 지니고 있는 실재성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마음으로부터 사라질 것입니다. 사실, 진실인 것만이 없애질 수 있다면, 어떻게 실재가 아닌 것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없애야 할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흙 등과 같이 그대의 눈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오로지 무한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만들어졌다면, 그것마저도 의식 안에서 의식에 의하여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태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야의 창조물이라고 그대는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야 자체도 실재가 아닙니다!
라마가 말했다.
신이시여! 당신은 제게 궁극의 진리에 대한 커다란 통찰을 주셨습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하지만 제 안에는 깨달음을 주는 당신의 감로주 같은 말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습니다. 청컨대, 제게 시간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릴라의 이야기에서 어떤 경우에는 8일 만에 전 생애를 살았고, 때로는 한 달 만에 전 생애를 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여러 우주 속에 각기 다른 시간의 척도가 있습니까?
바시슈타는 대답했다.
오, 라마여! 사람이 자신의 지성으로 자신 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만을 그는 경험합니다. 감로주마저도 독이라고 상상하면 독으로 체험됩니다. 내적 태도에 따라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적이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대상은 자신의 내적 느낌에 따라 그 사람에 의해 정확히 경험됩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하룻밤은 한 시대와 같습니다. 환락의 밤은 순간처럼 지나갑니다. 꿈 속에서 한 순간은 한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마누의 전 생애는 브람마에게 한 시간 반일 따름입니다. 브람마의 전 생애는 비슈누의 하루입니다. 비슈누의 전 생애는 쉬바의 하루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의식의 한계들을 극복한 현자에게는 낮도 밤도 없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요기들은 달콤한 것이 쓴 것으로 바뀌고 또 그 반대가 되는 것, 친구가 적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되는 것은 오직 마음의 상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꿈으로써 그리고 계속적인 수행을 함으로, 흥미롭지 않았던 경전들에 대한 연구와 자빠 등에 대한 취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질은 대상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뱃멀미하는 사람이 세상이 돌고 있다고 보듯이, 무지한 사람들은 이런 자질이 대상들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 취한 사람은 벽들이 있는 곳에서 빈 공간을 보며, 존재하지도 않는 악귀가 미혹된 사람을 죽입니다.
이 세상은 다름 아닌 의식의 단순한 진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지한 자의 눈에 악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듯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마야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의식과 눈에 보이는 우주의 존재 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깨어 있는 사람이 꾸는 놀라운 꿈과도 같습니다.
오, 라마여! 가을에는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립니다. 봄에는 같은 나무들이 자신들 안에 확실히 있었던 새로운 잎들을 싹 틔웁니다. 그처럼 이 창조물은 절대 의식 안에 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금 안에 늘 있는 유동성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한 기대를 만든 창조자가 해방을 얻고, 그리고 만약 다음 시대의 창조자가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투사한다면, 그 기억조차 다름 아닌 무한한 의식일 뿐입니다.
라마가 물었다.
신이시여! 왕과 시민들 또한 동일한 외적인 것을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시슈타는 대답했다.
오, 라마여! 그렇게 된 것은 모든 지바의 지성이 하나의 무한한 의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 역시 자신들의 왕이 그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의 진동은 무한한 의식 안에서는 자연스럽고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기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왕의 지성은 '나는 왕 비두라타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도 그러합니다. 자신의 지성이 무한한 의식에 관련한 이 진리 안에 자리 잡는다면, 그는 해방이라는 지고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그의 자기 노력의 강렬함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 개의 각기 다른 방향에 이끌립니다. 하나는 절대자인 브람만을 깨닫고자 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이 실재라는 것을 부지하게 수용하는 방향입니다. 강렬한 열정으로 노력하는 것이 이깁니다! 일단 무지를 극복하면, 실재가 아닌 것에 대한 미혹된 시각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나'와 '세상'이라는 미혹된 개념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바시슈타는 대답했다.
모든 것에 지성이 똑같이 깃들여 있듯이, 모든 것은 늘 그리고 모든 면에서 창조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참나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말의 형태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무한한 의식 즉 브람만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팔찌와 금, 파도들과 물 사이에 아무런 구분이 없듯이, 우주와 무한한 의식 사이에도 아무런 분리가 없습니다. 무한한 의식만이 우주입니다. 팔찌가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금이 팔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과 같이, 우주로서의 우주는 무한한 의식이 아닙니다. 사람과 그의 수족을 하나이며 같다고 여기듯이, 우리가 모든 존재들로서의 무한한 의식을 말할 때, 그 말은 무한한 존재 안에 어떤 구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무한한 의식 안에는 자신의 무한한 본성에 대한 비인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무한한 의식은 '나'와 '세상'으로 나타나는 듯이 보입니다. 조각되지는 않았지만 대리석 석판 속에 어떤 이미지가 있듯이, '나'와 '세상'이라는 개념은 무한한 의식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고요한 바다에 파도들이 잠재적인 상태로 있듯이, 세상은 무한한 의식 안에 잠재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세상의 창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창조'라는 단어가 이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창조도 지고의 존재 혹은 무한한 의식 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한한 의식은 창조에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분리된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바람이 그 자신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듯이, 이 무한한 의식은 지성과 다르지 않지만, 이 무한한 의식은 그 자신의 가슴 안에서 그 자신을 지성이라 여깁니다. 실재하지 않는 구분이 생기는 바로 그 순간, 그 의식 안에 공간이라는 개념이 일어납니다. 의식의 힘 때문에 의식은 공간 혹은 에테르라고 알려져 있는 원소로서 나타납니다. 나중에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공기라고 믿으며, 다음에는 불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불과 빛의 모습이 생깁니다. 그것은 나아가 맛이라는 내재적 기능을 가진 물의 개념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냄새라는 내재적 가능과 고형의 특성을 가진 흙이 자신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해서 물과 흙 원소들은 그것들 스스로가 드러난 것처럼 보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동시에, 같은 무한한 의식은 눈을 백만 번 깜박이는 것에 해당하는 한 단위의 시간 개념을 자신 안에 가졌습니다. 이것으로부터 네 시기가 한 주기로 구성되는 시대들이라는 시간의 척도로 발전됩니다. 그것이 한 우주적 창조의 수명입니다. 무한한 의식 그 자체는 이것들 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의식에는 모든 시간 척도의 본질이 일어났다가 지는 것이 없으며, 시작, 중간,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무한한 의식만이 늘 깨어 있고 깨달아 있는 실재입니다. 창조물과 함께 해도 그것은 같은 채로 있습니다. 그 무한한 의식만이 이 창조물의 깨닫지 못한 나타남입니다. 이 창조물 이후에도 무한한 의식은 항상 같은 채로 있습니다. 그것은 늘 같은 채로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참나에 의해 참나 안에서 의식이 절대적 브람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때 그는 마치 하나의 에너지가 자신의 모든 수족에 있는 것처럼, 참나를 모든 것으로서 경험합니다.
이 세상의 모습이 의식의 나타남인 한 그리고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한, 이 세상을 실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마음과 감각 기관들로 이해될 때, 그것은 실재가 아닙니다. 바람이 움직일 때, 바람은 실재라고 지각됩니다. 움직임이 없을 때,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습은 실재와 비실재 둘 다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삼계의 이 신기루 같은 나타남은 절대적 브람만과 다르지 않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싹이 씨앗 안에, 흐름이 물 안에, 부드러움이 우유 안에, 매운맛이 고추 안에 있듯이, 창조물은 브람만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 속에서는 창조물이 브람만과 다르고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절대적 브람만 안의 순수 투영으로서의 이 세상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된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창조물에 대한 개념이 있을 때, 창조는 존재하는 듯이 보입니다. 자기 노력을 통해 창조되지 않음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아무런 세상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것도 창조된 적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끝에 이르지 않습니다. 절대적 브람만이 모든 것이며, 지고의 평화이며, 태어나지 않음이며, 순수 의식이며, 영원입니다. 세상들 안의 세상들이 매 원자 안에 나타납니다. 무엇이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이것들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나'와 '세상'이라는 개념들로부터 얼굴을 돌릴 때, 그 사람은 해방됩니다. '나는 이것이다.'라는 개념이 여기에 있는 유일한 굴레입니다. 무한한 의식을 우주의 이름 없는, 형상 없는 바탕으로 아는 이들은 반복되는 역사인 삼사라에 대해 승리를 거둡니다.
라마가 물었다.
브람만만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오, 성스러운 현자시여! 그러나 신에 의해 미리 정해진 것처럼, 현자들과 지혜로운 이들은 이 세상 안에 왜 존재합니까? 그리고 신은 무엇입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무한한 의식의 힘이나 에너지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시대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만이 모든 필연적 미래 사건들의 실재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대상의 본성이 정해진 것은 바로 이 힘에 의해서입니다. 그 힘(찌뜨 샥띠)은 또한 위대한 존재인 마하삿따, 위대한 지성인 마하찌띠, 위대한 힘인 마하샥띠, 위대한 통찰인 마하드르슈띠, 위대한 행위자 또는 행위인 마하끄리야, 위대한 생성인 마호드바바, 위대한 진동인 마하스빤다라고 합니다. 모든 것에 그것의 독특한 성질을 부여하는 것은 이 힘입니다. 그러나 이 힘은 절대적 브람만과 다르거나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림의 떡만큼 실재합니다. 현자들은 브람만과 그 힘을 구분하여 창조물을 그 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전체로서의 몸과 그것의 부분들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구분은 언어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몸에 있는 팔과 다리를 자각하게 되듯이, 무한한 의식은 자신의 내재적 힘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자각을 일컬어 본성을 결정하는 절대자의 힘인 니야따라고 합니다. 그것은 또한 다이바, 즉 성스러운 섭리라고도 합니다.
그대가 나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해야 하는 것도 역시 니야따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나의 가르침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도 또한 니야따에 의해 정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이 나를 먹여 살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빈둥거리고 있다면, 그것 또한 니야따의 작용입니다. 루드라 같은 신들조차 이 니야따를 물러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이것 때문에 자기 노력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니야따는 자기 노력으로서 그리고 자기 노력을 통해서만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니야따는 인간적인 면과 초인간적인 면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집니다. 전자는 자기 노력이 결실을 맺는 곳에서 보이며, 후자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 보입니다.
니야따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 줄 것이라 믿으면서 나태하게 지낸다면, 그는 곧 그의 삶이 마감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최고로 높은 초의식의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그는 숨을 멈추고 해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가장 큰 노력입니다!
무한한 의식만이 한 곳에서는 하나의 사물로, 다른 곳에서는 또 다른 사물로 나타납니다. 파도들과 물, 수족들과 몸에 분리가 없듯이, 의식과 그 힘 사이에는 아무런 분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분리는 무지한 자들에 의해서만 경험됩니다.
라마가 물었다.
유일한 실재가 무한한 의식이며 그것의 내재하는 동적인 힘이라면, 어떻게 지바가 두 번째라는 것이 없는 단일성 안에서 어떤 모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는 대답하였다.
무지한 자들의 마음속에만 지바라 불리는 끔찍한 악귀가, 투사된 실재나 모습으로 일어납니다. 아무도, 지혜로운 이들이나 현자들조차도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의 본성에 대한 어떤 징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의식의 거울 안에는 수많은 투영들이 보입니다. 이것들이 세상의 모습을 이룹니다. 이것들이 지바입니다. 지바는 브람만의 바다 표면에 있는 그냥 작은 흔들림과 같습니다. 혹은 바람 없는 방에 놓인 촛불의 작은 움직임과 같습니다. 그 약간의 흔들림으로 무한한 의식의 무한함이 장막에 가려지면, 의식의 제한이 일어납니다. 이것 역시 그 무한한 의식 안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의식의 그와 같은 제한이 지바입니다.
불꽃에서 나온 불똥이 가연성의 물질과 부딪히면 독립된 불꽃이 되는 것처럼, 이 의식의 제한에 잠재적 경향성들과 기억들이 주어지면, 그것은 자아 즉 '나'라는 것 속으로 응축됩니다. 이 '나'라는 것은 견고한 실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바는 하늘의 프름처럼 그것을 실재라고 봅니다. 자아가 그것 자신의 개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마음과 같은 것, 독립되고 분리된 지바의 개념, 마음, 우주적 환영이라는 마야, 우주적인 성품 등을 만듭니다. 이러한 개념들을 가진 지성은 흙, 물, 불, 공기, 공간과 같은 자연의 원소들을 만듭니다. 이것들과 결합하여, 같은 지성이 비록 그것이 진리 속에 있는 우주적 빛임에도 불구하고 빛의 불꽃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수많은 형상들로 응축됩니다. 그것은 어떤 곳에서는 나무, 어떤 곳에서는 세, 어떤 곳에서는 악귀, 어떤 곳에서는 반신들이 됩니다. 생각과 의지로 그런 변형들의 첫 번째는 창조자 브람마가 됩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을 창조합니다. 따라서 의식 안의 진동만이 지바, 까르마, 신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마음이라는 창조물은 단지 의식 안의 동요일 뿐입니다. 세상은 마음 안에 존재합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비전과 이해 때문에 존재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긴 꿈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된다면, 모든 이원성은 끝납니다. 브람만, 지바, 마음, 마야, 행위자, 행위, 세상이 하나의 비이원의 무한한 의식과 동일하게 보일 것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하였다.
오, 라마여! 하나는 결코 다수가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초들이 다른 초로부터 불붙여질 때, 모든 초에서 타는 것은 똑같은 불꽃입니다. 그처럼 하나의 브람만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다양성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명상하면, 그는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지바는 의식의 제한에 불과합니다. 제한이 사라지면 평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구두를 신은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가죽으로 깔린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무엇입니까? 요리용 바나나 줄기가 잎들에 불과하듯이, 이 세상은 외적 모습에 불과합니다. 술이 빈 하늘에서 온갖 환영들을 보게 하듯이, 마음도 사람으로 하여금 단일성 속에서 다양성을 보게 만듭니다. 술 취한 사람이 나무가 움직이는 것을 보듯이, 무지한 사람은 이 세상 속에서 움직임을 봅니다.
마음이 이원성을 지각하면, 그때 이원성과 그것의 짝인 일원성이 있습니다. 마음이 이원성의 지각을 그만둘 때, 이원성도 일원성도 없습니다. 하나의 무한한 의식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을 때, 조용하게 있든 일을 하든 상관없이 그 사람은 그 자신과의 관계에서 평화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지고의 상태에 자리 잡을 때, 그 상태를 자기 아닌 상태라거나 공 혹은 텅 빔의 지식의 상태라 합니다.
마음의 동요 때문에, 의식은 지식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 마음속에 '나는 태어난다.' 등과 같은 온갖 종류의 거짓 개념들이 일어납니다. 그런 지식은 마음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무지 혹은 미혹이라 합니다.
자신으로부터 이 삼사라나 세상이 모습이라는 질병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혜나 참나 지식 이외의 다른 치료법이 없습니다. 지식만이 밧줄을 뱀으로 보는 잘못된 지각의 치료제입니다. 그러한 지식이 있다면, 무지를 악화시키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마음속의 갈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갈망이 있다면, 그것을 충족시키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단 말입니까?
마음이 대상들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이면, 마음 내에 동요나 움직임이 있습니다. 대상들이나 생각들이 없으면, 마음속에 아무런 생각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움직임이 있을 때, 세상은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움직임이 없을 때, 세상의 모습은 정지합니다. 생각의 움직이을 지바, 원인 그리고 행위라 합니다. 그것이 세상 나타남의 씨앗입니다. 그때 몸이라는 창조물이 그 뒤를 따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하였다.
여러 원인들 때문에 생각의 이 움직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평생을 지낸 후에야 이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천 번의 탄생 후에 이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생각의 움직임이 있을 때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때 '내가 존재한다.'와 '이것은 나의 것이다.' 등과 같은 생각이 있습니다.
세상이 모습은 의식의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자아는 의식의 꿈꾸는 상태입니다. 마음의 성분은 의식의 깊은 잠의 상태입니다. 순수 의식은 네 번째 상태 혹은 모순 없는 진리입니다. 이 네 번째 상태 너머에 의식의 절대적 순수가 있습니다. 그 안에 자리를 잡은 이는 슬픔 너러로 갑니다.
하늘(공간)이 나무의 상징의 원인(하늘은 나무의 성장을 가로막지 않고, 나무의 성장을 촉진시키거나 일으키기 때문입니다)인 것과 꼭 같이, 세상의 모습은 그것의 원인으로서 절대적 브람만을 가진다고 얘기됩니다. 사실, 브람만은 능동적인 원인의 요인이 아닙니다. 이것은 탐구에 의하여 드러납니다. 땅을 파는 사람이 계속 땅을 파면 텅 빈 공간을 발견하듯이, 탐구를 계속하면, 이 모든 것이 다름 아닌 무한한 의식이라는 진리를 발견할 것입니다.
라마가 물었다.
바라건대, 이 창조가 어떻게 큰 규모로 일어나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무한한 의식 내의 흔들림은 의식 자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흔들림으로부터 지바가 나타나듯이, 지바로부터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지바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다섯 원소들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이고, 자기를 그런 원소들로 변형시킵니다.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든 마음은 오로지 그것만을 봅니다. 이 이후에 지바는 혀, 눈, 코, 촉각 등과 같은 감각 기관들을 얻습니다. 이 과정에 마음과 감각 기관들 사이에 인과 관계의 관련성은 없지만, 생각과 감각 기관들의 나타남에 우연한 일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까마귀가 야자나무에 앉자 우연히 야자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그래서 까마귀가 열매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리하여 첫 번째 우주적 지바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무지가 진리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해방과 탐구에 대해 왜 고민해야 합니까?
바시슈타는 대답했다.
라마여! 그 생각은 그것 자신에게 맞는 시간이 되었을 때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적당한 때가 되면 꽃들이 피어나고 과일이 익습니다.
우주적 지바는 '옴'을 읊조림으로 그리고 순수 의지로 다양한 대상을 창조합니다. 창조자 브람마가 의지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벌레도 존재하게 됩니다. 벌레는 불순함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것의 행위는 보잘것이 없습니다. 구분은 환영입니다. 진실로, 아무런 창조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구분도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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