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슈바미뜨라가 말하였다.
오, 라마여! 그대는 실로 현자들 중의 으뜸이며, 진정 그대가 알아야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의 지식은 확증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슈까가 이해를 넘어선 평화를 발견하기 전, 그의 참나 지식을 자나까에게 확증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라마가 답하였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어떻게 하여 슈까가 그의 지식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나중에는 어떻게 평화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비슈바미뜨라가 말하였다.
오, 라마여! 들으십시오. 그대에게 타고난 현자 슈까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다. 슈까는 지금 그대의 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베다비야사의 아들입니다.
그대처럼 슈까도 이 세상의 덧없음에 대해 깊이 숙고한 후 존재에 대한 진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분명히 단언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혼자 얻은 지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론 궁극적이고 지고한 초연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슈까는 아버지 베다비야사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이 세상의 다양한 창조물이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끝나겠습니까?" 베다비야사는 이 질문에 상세히 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슈까는 '그것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하고는 감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베다비야사 역시 이 점을 느끼고 슈까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나는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보다 많은 ㄱ서을 아는 땅 위의 현자 자나까 왕이 있다. 그에게 가 보거라."
그래서 즉시 슈까는 자나까의 궁전으로 갔습니다. 왕궁의 문지기가 젊은 슈까가 왔다고 알렸으나, 자나까는 일주일 동안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슈까는 참을성 있게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한 주일이 지난 후 자나까는 슈까를 궁전으로 데려와 무희들과 음악가들의 시중을 받게 했습니다. 슈까는 이것에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슈까는 왕 앞으로 안내되었고, 자나까가 말했습니다. "그대는 진리를 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슈까는 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을 다시 말했고, 자나까 역시 슈까의 아버지가 했던 답을 했습니다. 슈까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경전 역시 그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지금 당신도 그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그 진리란, '다양성은 마음의 변형으로 인해 일어나며, 마음의 변형이 멈추면 다양성 역시 그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참나 지식이 확증되자, 슈까는 평화를 얻고 니르비깔빠 사마디에 잠겼습니다.
비슈바미뜨라가 모인 현자들에게 말하였다.
슈까처럼 라마 또한 최고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최고의 지혜를 가진 이의 가장 확실한 표시는 그가 이 세상의 쾌락에 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미묘한 경향성들조차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 경향성들이 강할 때 구속이 있고, 그것들이 멈추면 해방이 있습니다. 명성이나 다른 보상이라는 동기 없이, 자연적으로 감각적 쾌락들에 흔들리지 않는 이가 참으로 해방된 현자입니다. 라마가 자신의 지혜 안에서 확고해지고 우리 역시 고무되도록 라마를 가르쳐야 한다고 나는 현자 바시슈타에게 청했습니다. 틀림없이 바시슈타의 가르침은 가장 위대한 지혜, 경전 중의 최고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깨달은 현자가 자격 있고 초연한 제자에게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시슈타가 말하였다.
그대의 청을 수락하겠습니다. 오, 라마여! 이제, 신성한 창조주 브람마 자신이 제게 보여 주신 지혜를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라마가 말하였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이것을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베다비야사는 해방을 얻지 못했다고 간주되는데, 그의 아들 슈까는 해방된 현자로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시슈타가 말하였다.
오, 라마여! 존재했다 용해된 수많은 우주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우주들조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가슴속에서 즉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공중에 지은 누각처럼 이 모든 우주들은 갈망하는 이의 가슴속에 이 세상을 그려 내고, 살아 있는 동안 이 환영을 굳힙니다. 죽으면 저 세상을 그려 내고 그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질경이 줄기 층에 있는 층들처럼, 세상들 속에서도 세상들이 생겨납니다. 정말이지 물질이라는 세상도, 창조의 형식들도 실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들만이 그것들을 실재한다고 생각하며 느낍니다. 이 진리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 모습이 유지됩니다.
오, 라마여! 존재라는 이 우주의 바다에서 다른 것들과 동등한 존재들이 여기저기 생깁니다. 또 다른 것들과 차이 나는 존재들도 생깁니다. 창조라는 이 흐름 속에서 이 베다비야사는 23번째 존재입니다. 베다비야사와 다른 현자들은 거듭해서 몸이 생겼다 소멸되었다 합니다. 그들은 어느 때는 다른 존재와 같을 것이고, 어느 때는 다를 것입니다. 지금의 구현된 몸 안에서 베다비야사는 실로 해방된 현자입니다. 그런 해방된 현자들 또한 무수한 몸들로 나타나며, 그들은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갖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다른 존재들과 같고, 때로는 배움, 행동 등에서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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