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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uism/요가 바시슈타

소개-요가 바시슈타

by Yuneelif 2018. 4. 8.

학자들은 이 불후의 경전을 지은 저자와 그 학문적인 중요성에 대해 생각한다. 신의 축복으로 그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바시슈타 요가』는 영적인 깨달음과 참된 진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도움을 준다. 그것은 확실하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이 이것이라면, 여러분이『바시슈타 요가』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


이 책은 반복이 많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독자들이 반복을 싫어한다면, 다음 글귀를 읽어 보라.


하늘의 푸름이 시각적인 환영인 것처럼 이 세상의 모습 역시 혼동이다. 마음이 세상에 거주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무시하는 것이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귀는 경전에 여러 번 나타나며, 아주 근본이 되는 가르침인 듯하다.


그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경전을 읽어 보라. 이러한 진리가 표현되는 여러 방법으로 여러분의 마음은 문을 열 것이다.


하루에 한 쪽만을 읽는 것이 현명하다. 이곳의 가르침은 혁명적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은 그 가르침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매일 이 책을 읽은 후 명상하라. 이 책의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스며들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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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야자나무에 내려앉는 순간, 익은 야자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인 까까딸리야는 이 경전에서 종종 나타나는 표현이다. 인과 관계가 없는데도 이처럼 관련 없는 두 사건이 시간과 공간에서는 관련되는 것처럼 보인다.


삶은 그렇다. '창조' 역시 그렇다. 하지만 '왜'라는 논리적 물음에 갇힌 마음은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왜'와 '이유'를 만든다. 그러면서 편리에 따라 지성적 마음을 아직 따라다니는 불편하게 하는 질문을 무시하기도 한다.


바시슈타는 마음과 그것의 움직임, 그것의 개념들, 그것의 추리, 추측하는 원인과 투사된 결과, 관찰 대상과 관찰 등 이러한 것들을 무한한 의식으로서의 분리할 수 없는 통일성의 관점에서 직접적으로 보기를 요구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고의 것이라고 말하는 이 경전의 독특함이다.


이 경전을 통하지 않으면, 지금이나 어느 때라도 선한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고의 진리를 완벽하게 깨우치기 위해서는 이 경전을 열심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고의 것은 책이나 현인이 아니라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바시슈타는 감히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이 경전이 인간으로부터 기원한 것이기에 믿을 만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참나 지식이나 궁극의 해방을 다루는 다른 경전들을 읽을 수 있다.


어느 경전을 택했든지 어떤 길을 택했든지에 상관없이, 심리적 조건화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는 멈추지 말라. 그러므로 바시슈타는 구도자에게 다음의 내용을 간곡히 타이른다.


매일 이 경전을 조금이라도 읽어라. 이 경전의 아름다움은 이 경전을 배우는 이들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명확하지 않을지라도, 깊이 연구하면 그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