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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1장 마음의 원점-천국과 지옥

by Yuneelif 2023. 2. 28.

천국과 지옥

인간의 혼에는 삼세가 있다. 과거세, 현세 그리고 내세, 현재 이 지상에 자기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반드시 과거세가 있었음이다. 인간은 우연하게 양친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다.

과거세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현상계에서 말한다면 저 세상이고 또한 그 이전에 자기가 지상에서 생활했던 전세를 말한다. 우리는 고락의 인생을 공부하고 있는데 현세에 태어나기 전에는 실재계 곧 천상계에서 살았었다. 우리는 실재계와 현상계를 윤회하고 있다.

전세에서 어두운 상념을 지니고 일단 지옥계로 갔다가 거기서 혼을 닦고 정화시켜 천상계로 진화했던 자도 있을 것이다. 지옥계로 떨어진 자도 죽기 전에는 이 지상계에서의 생활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하여 천상계로 올라간다.

과거세에서 체험한 여러 가지 지식은 누구든지 가지고 있지만 이 현상계에 나오게 되면 모두 잠재해 버리고 우리가 신의 자녀라고 하는 자각을 잃고 만다.

육체주의 오관이 절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 때문에 과거세의 일을 기억해 내기가 어렵게 되고 만다.

육체주의 오관이 절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 때문에 과거세의 일을 기억해 내기가 어렵게 되고 만다.

테이프 레코드나 비디오 레코드처럼 인간의 영혼-곧 의식 속에는 과거세의 체험이 엄연히 기억되고 있다.

이 현상계는 원래 고체적이고 불안정한 세계로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영위기의 상태에 따라서 변화한다. 악은 부조화한 영위기를 만들어 내고 선은 정묘하게 조화된 영위기를 만들어 낸다. 왜 그런가 하면 이 현상계는 신의 자녀인 인류가 조화된 지구를 완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의 의지에 의해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사명과 목적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조화를 잃은 비방, 노여움, 질투, 원한, 욕망, 투쟁, 파괴 등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이것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현상계에 나왔던 조상들 중에는, 지옥계로 떨어져 수행하고 있는 자도 많다.

그들은 지상계에 대한 집착심이 강한 나머지 지옥령이 되거나 빙의령이 되어 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상의 인간에 빙의하여 현상계에 혼란을 빚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일념삼천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하고 있다.

마음의 바늘은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어두운 지옥계에도 광명에 찬 천상계에도 자유롭게 통한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는 어디까지나 중도를 근본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보통 10%의 표면의식에 매달린 오관을 통해서 판단하게 되므로 차원이 다른 세계를 알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상계는 물질과 생명이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물질적 현상계는 열, , 전자력, 중력의 에너지입자가 집중된 질량과 분산된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는 에너지의 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다.

실재계 즉 천상계에는 의식이 90%나 표면에 나와 있기 때문에 서로 상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만다. 그런 만큼 실재계는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다.

육체주를 타고 나면 의식이 장님과도 같아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 속을 보이는 일이 적으므로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바르게 판단하여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영혼의 수행 장소로서는 실재계에 비해서 이 현상계가 훨씬 더 적합하다 하겠다.

차원이 다른 세계로부터 오는 통신을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는 수신할 수도 있으나 보통은 매우 어렵다. 그것은 이 현상계라고 하는 3차원의 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거울이나 스크린 속의 사람에게 통신을 보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거울이나 스크린은 2차원의 세계이므로 3차원의 세계인 현상계에서는 그것을 볼 수 있을 뿐 서로 통신은 불가능하다.

그처럼 4차원의 세계에서 이 현상계를 보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서로 통신을 받고 보낸다는 것은 3차원의 영위기가 정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스크린 속의 인물과 대화하는 길은 필름이나 토오키에 취입하는 방법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저 세상과 이 세상은 이와 같이 먼 곳이기도 하고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의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현상계에는 우리의 육체주를 보존할 수 있는 환경의 일체가 주어져 있다.

이야말로 신의 마음, 곧 자비와 사랑의 나타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지금의 환경에 대해서 마땅히 감사해야 하며 이 감사의 마음을 보은이라는 행위로서 보답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결국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은혜를 입고 있는 이상 그것에 만족할 줄 알고 남는 여분은 남에게 베푸는 보은의 행위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영혼의 향상은 마음의 평안으로 이어지며 객관적으로는 구애받거나 속박받지 않는 정신상태인 것이다.

마음의 평안은 조화이고 조화의 정도가 늘어남에 따라 이 지상은 평화로운 유토피아로 바뀌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저 세상에 대해서 좀더 언급해 보면 저 세상, 곧 내세란 어차피 우리가 육체주를 버리고 광자체의 배를 타고 돌아가는 세계이다.

우리의 지금의 육체주는 부모의 연에 이해서 주어진 원자세포의 육체이다.

그리고 이 원자세포로 된 육체주를 감싸듯이 광자체가 있고, 광자체에 우리의 의식, 곧 영혼이 있어서 육체주를 지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원자체, 광자체, 영자체(영혼의 중심에 있는 마음)의 삼체가 하나로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육체를 지닌 지금의 우리의 생명체인 것이다.

원자체 광자체(영자체)는 영자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써 연결되어 있다.

죽음은 원자체와의 결별인데 영자선이 끊어질 때이다. 영자체는 광자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차원이 다른 저 세상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광자체나 영자체는 우리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으나 마음이 조화된 사람들의 심안으로는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마음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고 반성하는 일도 어려운 것이다.

천국의 생활은 이 세상의 생활에 비해서 기쁨에 찬 것이고 반성의 정도가 빠르다. 서로 마음을 (90%) 드러내 놓고 생활하기 때문에 악의 부조화한 상념에 자기의 마음을 더럽히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지옥에 떨어지면 어둡고, 악하고, 부조화한 상념의 파장 속에 살게 된다.

그 곳은 좀체로 반성할 겨를도 없는 세계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신의 빛을 가로막고 있다. 한번 거기에 떨어지면 몇 백년이나 같은 장소에서 고통을 겪고 신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 저 세상과 상관없이 연속적인 것이므로 그 사람이 지상에서의 생활을 욕심대로 살다가 마치면 그 욕심을 그대로 저 세상에서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육체의 배를 타고 있는 동안에는 좀체로 마음가짐을 알 수 없지만 육체의 배에서 떠나면 의식의 파동은 민감하게 되기 때문에 생각하는 바가 즉시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살아 있을 때보다 그 반성은 훨씬 더 어렵고 준엄하다.

구름이 태양의 빛을 가리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가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어둠으로 덮혀 명암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스스로의 상념과 행위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니 중도에 이해서 반성하고 두 번 다시 어둡고 괴로운 원인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할 때 우리의 마음의 구름은 걷히고 광명으로 충만하여 천상계로 올라갈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 광자량 곧 빛의 양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양에 따라서 단계가 지어지게 된다. 요컨대 사람의 마음가짐이 그와 같은 단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신이 자애의 빛을 평등하게 내리고 있어도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그 빛의 수용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신과 표리일체인 제령은 마음이 조화되고, 만족할 줄 알며, 일체의 집착으로부터 떠나서 우주가 곧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빛의 양이 많다. 무한량의 광명으로 충만해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면 불타 혹은 여래가 되며 곧 빛의 대지도령들이다. 이 대지도령들은 저 세상과 이 세상의 사람들을 선도하여 신의 자녀로서의 길을 가르쳐 주는 천사들이다.

고타마 붓다, 예수, 모세 등이 이 빛의 대지도령, 곧 여래들이다. 신으로부터 일체를 위임받고 있는 천사들이다. 저 세상의 빛의 단계를 구분하면 유계, 영계, 신계, 보살계, 여래계, 우주계로 나눌 수 있다.

이 실험은 우리가 지옥에 떨어져 있는 영들에게 우리의 육체를 지배시키면 몸이 매우 무거워지는데 비해서 빛의 단계가 위로 올라갈수록 매우 가벼워지는 현상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특히 마음이 조화되어 대지도령이 지배하게 되면 육체가 매우 편안해진다. 우리 그룹의 사람들의 실험결과가 모두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심안으로 보면 마음이 조화되어 있는 사람한테는 반드시 후광이 뚜렷하게 보인다. 불상이나 예수그리스도의 상에서도 반드시 후광이 비친다.

대지도령들의 빛은 특별히 크기 때문에 곧 알 수 있다.

때로는 동물령이 보살이나 여래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나타나는 일이 있지만 그들은 극히 짧은 동안밖에 둔갑할 수 없으며 후광의 빛이 흐려 있으므로 쉽게 그 정체가 드러난다. 같은 황금색이라도 평온함이 없는 푸른빛이기 때문에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옥계는 지상계에 집착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지상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토지나 집이나 묘지나 절간 따위에 대한 집착심이 강하며 영들이 집착하는 장소를 거처로 삼고 지옥계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런 영들을 자박령이라고 한다.

지옥에도 단계가 있다. 반드시 마왕이나 아슈라.라잔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지ᅟᅩᆨ계는 이 지상계와는 전혀 딴판인 신난한 세계로서 모든 것이 어두컴컴하며 극한의 세계, 혹은 화염에 휩싸인 세계도 있다.

나는 선정에 든 채 의식이 육체를 빠져나가서 지옥계로 가보는 일이 가끔 있다.

그 곳은 지상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음침한 곳이다. 어둡기 때문에 푸른색도 검게 물들고 햇빛이 쬐지 않는 언제나 습기가 차 있는 곳이다.

내가 거기서 그 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때의 일이다.

그 사람들은 도저히 바로볼 수 없는 귀신 같은 얼굴들이다. 입이 찢어진 잔혹한 몰골을 하고 있는 무리들이다. 자비도 사랑도 없고 마왕의 절대적 지배하에 놓여져 있는 세계이다.

어떤 자는 너의 팔을 내놓아라라 하고, 또 어떤 자는 네 엉덩이 살점을 내놓아라하면서 험악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라하고 몸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은 갑자기 보통 사람의 얼굴로 돌아 온다.

어떤 마왕이라도, 자비와 사랑 앞에는 반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 곳에서 약 두 시간 남짓 신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왔다. 돌아오는 길은, 골짜기 밑의 마을에서 올라옴에 따라, 검은 색이 차츰 엷어지고, 천상계에서는 아름다운 새싹이 눈 떠서 마치 이야기라도 걸어올 듯 상쾌함과 따뜻함이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