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보는 자연의 섭리
이 지상계는 인간 이외에도 많은 영혼이 수행하고 있는 도장이다. 동물도 식물도 이 지상에서 혼을 닦고 있다.
여기서 잠깐 동물과 식물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동물의 종류는 곤충을 포함해서 그 수가 몇 천, 몇 만에 달하여 매우 많다. 미발견의 동물(곤충을 포함하여)도 아직 많이 있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 박테리아를 먹고 있는 벌레, 그 벌레를 먹고 있는 곤충, 다시 그 곤충을 잡아먹는 더 큰 동물, 이처럼 큰 동물은 작은 동물을, 강한 것은 약한 것을 먹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 그들의 세계이다.
동물의 세계를 밖에서 바라보면 거기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며 생명의 덧없음과 무정을 느끼게 한다. 자연에 대해서 분노마저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동물의 생태는 실은 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거기에는 모순도 당착도 없다.
백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는 글자 그대로 대적할 상대가 없다. 사자를 눕힐 상대가 없으므로 왕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길 상대가 없으면 지상은 사자로 메워질 것이다. 그런데 사자의 수는 조금도 늘지 않는다. 늘지 않는 이유는 먹이(다른 동물)의 수에 제약이 있고 또한 비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자의 먹이가 되는 동물의 수도 조금도 줄지 않도록 되어 있다. 가령 사자에게 먹히는 동물의 수가 백 마리 있다고 하면 그것을 먹는 사자의 수는 그것에 비례하는 범위 안의 숫자밖에 살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 하면 자연이 그들을 감시하고 그들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의 습격도 받지 않고 성장한 사자는 분명 왕자이고 우아하며 특권 계급의 레텔을 붙여도 좋을 것같이 여겨진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불공평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굶주림이라고 하는 고통이 주어져 있다. 그들은 먹이를 잡는 일에 몹시 고생한다. 때로는 몇 십 일이나 굶주림과의 싸움을 강요당할 때도 있다. 기진맥진해서야 겨우 먹이가 얻어걸리낟. 이것은 비단 사자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육식동물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그들은 결코 특권 계급도 아니요 우아하지도 않다. 한편 초식동물은 어떤가 하면 이들은 풀과 나무가 충분히 주어져 있기 때문에 굶주릴 걱정은 없다. 따라서 그냥 놓아두면 그들의 종족은 자꾸 불어난다.
그러나 초목이 마르면 그들의 생존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초식동물과 초목과의 조정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사자를 비롯한 육식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목은 무리지어 사는 초식동물의 배설물이 거름이 되어 초목 자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꽃과 꿀벌의 관계를 들 수 있다.
꿀벌이나 나비는 꽃에 있는 꿀을 찾고 꽃은 꿀벌이나 나비의 중개로 꽃가루를 얻어 꽃을 더욱 아름답게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와 같이 동물과 초목과의 관계는 서로 도우면서 자연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따로따로 독립해서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전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저마다의 입장에서 삶을 얻어 자기의 몸을 공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약육강식의 처참한 실상은 아닌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강자가 약자를 먹는 꼴을 보이고 있지만 그 내면은 전체를 살리는 전체에의 조화이고 제 몸을 내던지는 희생에 의해서 다른 종족이 보존되고 있다는 순리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그들은 절대로 무익한 살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누구로부터도 습격받지 않는 사자도 일단 먹이를 얻어 배를 채우고 나면 절대로 그 이상의 먹이를 구하는 일을 하지 ㅇ낳는다. 눈 앞에 먹이감이 지나가도 그들을 덮치는 법이 없다.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의 섭리'이다. 만약 그들이 재미로 약자를 마구 죽이는 일을 한다면 이윽고는 그들 자신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필요한 것밖에 잡지 않는다. 굶주림이 가시면 그들은 거기서 만족한다. 만족할 줄 알고 있다. 알고 있다기보다는 하늘이 부여한 그들의 본능이다.
자연이 그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동물이나 식물의 이 세상에서의 사명은 석유나 석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지상계의 진보와 조화의 초석이 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혼의 진화가 촉진되어 훗날 그들은 누구에게서도 범해지지 않을 혼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한 치의 벌레에도 오푼의 혼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은 그 주어진 환경 속에서 힘껏 살면서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자연계의 모습을 올바르게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표면에 나타나는 모습만으로 이를 사회나 인생관에 적용시켜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이상을 가지고 보다 나은 사회 보다 조화된 지구국가를 이룩하여 동식물을 포함한 대자연계의 보다 훌륭한 지배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사명이다.
한편 과학의 발달에 의해서 살충제 따위를 쓰기도 하고 사과나 복숭아 등의 과일을 인공 수정시키기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화학제가 인체에도 해독을 주게 되었다. 산과 들의 동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남획되고 차츰 그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현대의 불행이다. 하천의 공해, 공기의 오염과 같은 자연의 파괴가 갈수록 인간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여 동물 이하의 추한 파괴적인 인간이나 마음을 잊은 학문적인 인간만이 되어 자연의 조화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는 이 대자연의 보다 나은 조화 속에서 다른 동식물과 함께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데, 자연을 해치는 다툼을 계속한다면 동식물의 생태에도 많은 이상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동물, 식물의 실태를 바르게 인식하고 한층 더 영혼의 향상을 지향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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