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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1장 마음의 원점-대자연

by Yuneelif 2023. 2. 18.

자혜를 베푸는 대자연

우리는 위대한 신의 자비에 의해서 살려지고 또한 살고 있다. 만물만생은 모두가 신의 현현이고 신의 자비에 의해서 생활하고 있다 하겠다. 

이를테면, 우리의 육체는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 등의 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그 보존이 가능하며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서 춘하추동의 자연 현상이 일어나고, 그래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그 하나라고 하겠다.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가 지구에게 조화된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태양의 에너지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우리들에게 365일 쉬지 않고 평등하게 그 은혜를 베풀고 있다.

태양은 인간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열과 빛을 방사하고 있을 뿐이다. 태양은 신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마음의 표현은 사랑과 자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이 만들어 낸 전력이나 가스 연료는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공급을 중단하고 만다.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고 돈이 없는 사람은 쓰지 못한다. 신의 마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태양은 지구에게 1초 동안에 약 200만톤의 석탄을 태운 정도의 열에너지를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공급하고 있다.

세계의 인류가 태양의 열과 빛의 요금을 부담하도록 청구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전 인류는 당장에 파산하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는 참으로 자비로움의 발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인간은 그 대자비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면 투덜대고 가뭄이 계속되면 투덜댄다. 말하자면 감사할 줄 모른다.

만약 태양의 열이 없어진다면 지구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아 우리의 생존은 불가능할 것이다. 태양이 없는 세계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한편, 지구도 살아 있어서 그 내부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공존하고 있다. 화산, 지진의 현상을 보더라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태양의 열에 비교하면 보잘것 없지만 지열이라는 것이 있다. 온천 따위는 그 때문에 있는 은혜라고 하겠다.

우리의 육체도 마찬가지이다.

동식물의 음식물이 위로 들어가 소화되어 여러 기관을 거쳐서, 피가 되고 혈관을 통해서 오체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그 덕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대자연의 짜임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 짜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대자연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있다. 대자연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태양을 예배하라, 조상 공양을 하라고 하는 설교는 지금까지 많은 종교가들에 의해서 강조되어 왔으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그것에 상응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대자연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혼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을 가지게 되며 마땅히 사회나 인류를 위해서 보시하는 보은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보편적인 신의 자비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고 마음과 마음과의 대조화에 의한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그런 감사의 마음과 보은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태양계의 혹성집단

 

자연계에도 마음이 있다

지구를 포함한 대우주 전체는 의식 그 자체이고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이상 거기 마음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마음을 에워싼 기능이기 때문이다.

대우주는 신이라고 하는 마음을 중심으로 하여 회전하고 있다.

곧 태양을 둘러싼 혹성군, 소천체군은 태양의 인력권 안에 있어서 저마다의 궤도를 규칙적으로 날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태양이라고 하는 항성이 있어서 그것드은 태양의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극미한 소립자에도 핵이 있고 그 주위를 음외전자가 돌고 있다. 만약 그것이 흐트러져 무질서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원자라고 하는 체마저도 형성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에는 모두 중심이 있다. 우리들의 의식인들 그와 다르지 않다. 대우주의 의식도 중심이 있어서 마음이라고 하는 의사=의지를 가지고 우리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마음이 있는 이상 대우주의 마음은 자비와 사랑이 뭉쳐진 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다.

왜 '자비와 사랑'이냐고 하면 우리 인간을 비롯한 일체의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환경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이라고 하는 열과 빛, 지구라고 하는 장, 공기와 물, 모두가 다 그렇지 아니한가. 

일반적으로 자비라고 하면 동정, 자애, 긍휼을 뜻한다. 남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고 싶다. 고생을 면하고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라고 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확대한 넓은 마음, 높은 경지를 말한다.

일찍이 석가는 이 자비의 마음을 설법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마음이 있으므로 인간으로서의 자격과 권능(깨달음)이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자비의 마음은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평등하게 열과 빛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저 태양과 같은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도 자비도 다같이 신의 빛이다. 자비를 우주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조화를 목적으로 한 지상의 빛이다.

사랑의 근본도 마음에 있으며 그 작용은 서로 돕고 서로 보완하고 서로 용서하는 관용의 마음이다. 사랑은 무한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인류애, 사회애, 부성애, 모성애, 그리고 애교심, 애사심, 자연애 등 끝없이 넓어져 간다.

인간이 태어날 때에는 신의 자식으로서 순백한 마음을 가지고 육체를 타고 나온다. 그것은 인생항로에의 출범이며 곧 출생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이든 지옥계에서는 태어나지 않는다.

전세의 인생에서 행한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는 지옥계나 천상계에서 수정하고 나오는 것이라고 나의 지도령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몇 %인가의 부조화한 업은 소멸하지 않고 육체를 가졌을 때에 나타난다'라는 말도 한다. 아뭏든 태어날 때에는 둥글고 착한 마음을 지니고 나온다고 한다.

태어난 환경, 부모의 교육, 습관, 사회의 사상 등에 따라 잠재하고 있는 의식의 자아가 싹트며 이윽고 그 표면의식은 선아와 위아를 만들어 내어 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본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이 지상계에 태어나지마 성장함에 따라 마음이 어두운 상념의 구름에 가려 죄를 범하고 만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반성이라는 자비를 부여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저 세상에서는 표면의식이 90%(이 세상의 표면의식은 10%)나 표출되기 때문에, 선악의 판단이 이내 가려진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에 부조화가 있으면 즉각 육체적으로 빛의 양이 줄게 되므로 반성하여 잘못을 수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 현상계에 태어나면 표면의식은 10%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여 잘못을 범하고 만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부조화한 상념행위에 대해서 마음으로 반성하여 두번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때에는 보다 광명에 찬 넉넉한 마음을 만들어내므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된다.

용서한다고 하는 사랑의 작용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서로의 죄를 용서하고 각자 사는 기쁨을 느끼고 서로 손을 잡고 서로 도와 조화를 이루어 감으로써 지상의 대조화라고 하는 환경이 쌓여져 가는 것이다. 

자비를 신불의 종적인 빛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지상의 횡적인 빛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종횡으로 조화된 자비의 빛이 결합했을 때 사람은 신을 발견하게 되고 불성인 자기를 깨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대우주 전체는 이처럼 자비와 사랑에 의해서 조화되고 유지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자비와 사랑의 뭉쳐진 덩어리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