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현상에 대해서, 그것은 최면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릇 최면술이라고 한다면 술자와 피술자 사이에 암시라는 교섭이 있어야 한다. 또 자기 최면술 역시 자기 자신에게 암시를 걸지 않고서는 안 된다.
영적 현상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사고에서 떠난 마음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며, 목적에 대해서 자기의 의지가 작용했을 때 현상화되는 것이다.
또 수호령이나 지도령의 개성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으며, 상단계의 빛의 대지도령이 의식을 지배할 경우에는 몸이 확대되는 느낌이 든다. 상대방의 지도령이나 수호령과의 대화가 가능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상대방의 탄생의 내력에서부터 현재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는 의문까지 알아내고 해답을 가르쳐 주는 경우가 많다.
수호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선 행위일 경우에만 말을 건네오는 경우도 있다.
독자들 중에는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은 우리들에게 와서 한번 시험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본인이 직접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저 세상의 수호령, 지도령을 즉각 불러서 그 사람의 전모를 당장에 알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영도가 열린 사람들은 상대의 마음을 보면 그 사람의 의식의 움직임, 상념의 상태 등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계만이 전부이며, 현세의 이익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자에겐 영의 수호를 기대하기가 곤란하다. 그리고 자기가 뿌린 죄의 씨앗은 조만간 자기 자신이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신불의 자녀로서의 철칙이다. 인간계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곳에서 죄업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세상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면 중 꿈의 세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은 원래 영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육체적인 번뇌에 지배되어 상념이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잠재의식의 90%와 표면의식의 10%의 다이알이 맞지 않고 있을 뿐이다.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일상 생활을 하고 있으면 누구든지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은 올바른 상념 행위에 따라 각자의 목적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면 그 목적에 상응하는 지도령이 우리들의 의식에 협력하여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육감을 보내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면술은 자신의 의식의 중심인 마음의 왕국을 자신 이외의 지배자의 암시에 의해서 명도하는 행위이다. 이 때 만일 부조화한 어두운 세계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되면 미치광이가 되는 수가 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깊이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리는 우리들의 지·정·의(지성감성·의지)의 삼체(세개의 형체)와 실천행위에 의해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들은 그 조화에 의해서 안심입명의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안심입명* 유일·절대의 최고신을 내세우지 않는 불교나 유교, 또는 그리스·로마의 사상가들이 궁극의 경지를 추구한 결과, 아무것에 의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완전히 평정(平定)한 편안함에 달한 마음의 상태.
안심(安心)은 불교용어이고, 입명(立命)은 《맹자(孟子)》의 진심장(盡心章)에서 온 말인데, 후세에 선종(禪宗)에서 이 말을 받아들여 선수행을 통하여 견성(見性)의 경지에 다다른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그리스어로는 아파테이아(apatheia)라 하고, 불교에서는 니르바나[涅槃:열반]라고 한다.
조화에서의 투시
육체적인 육근번뇌에 사로잡히지 않고 올바른 상념과 행위가 축적되어 나갈 때 우리의 마음은 신불의 빛에 싸여 영역(영적인 영역)이 정화되고 마음의 평안이 생겨난다.
이 때 차원이 다른 실재계에서 수호령이나 지도령이 내려와 우리를 지도해 주게 된다. 여러 가지 현상과 신리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다.
하지만 번뇌 많은 부조화한 마음이 그 문을 열면 어김없이 동물령이나 지옥령이 침입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왕국을 부조화한 영에게 빼앗겨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영적 현상도 이와 같이 조화가 이루어진 빛의 천사에 의해서 협력을 얻어서 되는 것과, 부조화한 검은 상념에 의해서 지옥의 마왕이나 동물령에 지배되어 정신병자처럼 되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지옥의 마왕이나 동물령에 지배당하고 있는 사람은 자아가 강하고 마음에 평안이 없으며,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은 노여움, 험담, 질투, 원망, 오만, 우상숭배, 조상공양 등을 서슴없이 권하고 있으며 불행에 빠진 사람을 대하면 신앙이 부족하다, 보시가 부족하다, 벌을 받는다 등으로 공포심을 심기 일쑤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주인공인 전지 전능한 마음도 모르고 사주·관상·역점 등 기복으로 인생을 헤매게 된다.
신을 위한 인간인가, 인간을 위한 신인가. 올바른 신앙의 길을 잃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반성하여, 부조화한 영에 빙의된 사실을 깨닫고 하루 빨리 정법의 길로 돌아서야 한다.
조화를 이룬 사람들은 평안의 영역에 싸여 관자재의 영적인 힘을 지닐 수 있다. 거리의 원근을 초월해서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볼 수 있다. 물질의 내부를 투시할 능력도 가지게 되며 실재계(저세상)의 풍경이나 빛의 천사들, 지난 날 자신이 살던 저 세상의 집을 보고 오는 것도 가능하다. 나아가 장차 일어날 일들을 사전에 예견할 능력도 갖추게 된다.
우리 그룹의 영도자들은 지옥, 극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도 있고 즉각 불러내어 생존시의 일들이며 그 사람의 성격 혹은 육체적인 특징까지 다 집어 낼 수 있다. 현세의 사람들에게 붙어 있는 빙의령이나 지도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천상계의 천사가 돌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환한 신불의 빛에 싸여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지옥령의 부조화한 영이 붙어 있을 경우에는 아로의 어두운 곳에 희게 빙의되어 있다. 희게 빙의된 부분은 거의 대부분 질병의 치범을 받고 있는 곳이다.
영적 능력자 가운데에도 동물령에 지배 당한 사람이 많으며 여우, 뱀, 지네, 너구리 등의 모습이 그대로 우리 그룹의 영도자들 눈에는 보인다.
오늘날 이러한 동물령에 빙의된 인간들이 신·부처·보살 등을 자칭하면서 많은 중생들을 혼미하게 하고 있다. 신도들은 흡사 자기집 개에게 합장하고 있는 꼴이다. 어리석고 맹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신의 자녀라는 사실을 자각하여 우상숭배에 빠진 위선자들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그들도 역시 구제받아야 하는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동물령이라 해도 일시적으로 예언이 적중될 수도 있고 질병을 한 두번 고칠 수도 있다. 하지만 올바른 정법의 정신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구제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사법(그릇된 길)에 빠져서는 안 된다.
영적심안
영적현상 가운데 영적심안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러 현상을 수호령, 지도령의 힘을 빌어 마음의 눈을 통해서 육안에 투영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심안으로, 잘못된 신앙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동물령에 지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물령들은 우리들 영능자에게 틀키면 여러 가지로 둔갑한다. 보살이나 스님의 모습으로도 둔갑하지만 이것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들 영도자들로서는 매우 간단한 일이다. 그들은 장시간 둔갑할 수 없다. 여우같은 것은 여름날 개처럼 땅바닥에 엎드려 혀를 빼물고 당장에 정체를 드러낸다.
동물령 가운데 뱀에게 빙의된 사람들은 허리에서 다리에 걸쳐 빙의되는 수가 많으며 때로는 머리에 붙을 때도 있다. 머리에 빙의된 사람은 거의 사고력을 상실하고 있다.
지금 후지산에서 보살을 자칭하는 영들의 100%는 동물령이다. 영역(영적인 영역)이 아주 혼탁한 부조화한 장소이며 영봉후지(신령스러운 후지산)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채 영적 현상만을 좇고 육체적 고행으로 번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런 수행자는, 육체적 고통에 마음이 빼앗겨 심부재(마음이 없는 상태) 중에 동물령이 보살상으로 둔갑하여 그 모습을 모여주기 때문에 '보살을 보았다'라는 착각에 빠져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양 행세하게 되는 수가 많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다 수행과는 관계없이 신불의 자녀이며 사자(사명을 맡은 사람)이다.
악령은 여러 가지로 신리 비슷한 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질투, 비방, 노여움의 감정을 거침없이 노출시킨다. 경문의 공양과 금품의 보시를 강요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형식적인 종교 의식을 그들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저주문도 왼다. 하지만 그 저주의 상대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일 경우에는 그 저주의 기도가 고스란히 그들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무자비의 신앙은 정법이 아니라 사법임을 우리는 이와같은 보기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하물며 인간이 자기보존을 위해서 상대를 불행하게 하는 기도를 하는 종교 따위는 사종으로서 논외의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것이 정법인가 사법인가를 간파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심안이 열린 보기를 하나 소개한다.
사이타마에 사는 휴가 찌가코는 신리의 실천 생활 끝에 심안을 열 수 있었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경 인도의 시라바스티에서 스탓다 장자의 딸로 태어났던 자신의 과거세를 알게 되었다. 젯다베나에서 고타마 싯달다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스탓다 장자의 공양을 받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어느날 밤 새벽 2시경에 어두운 집안이 갑자기 부드러운 황금빛에 싸여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관세음 보살이 보이더니 그 후 자주 현세의 사람처럼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그 어머니께 보여준 분은 관세음 보살의 분신으로서 헤이안 시대 일본에서 태어난 적이 있는 시라기쿠라는 사람임을 나는 실재계의 지도령으로부터 통신 받아 알고 있었다. 시라기쿠씨에게 물어보니
"저 분은 연로하기 때문에 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해시킬 수 있다고 판단되어 한 짓이옵니다. 저 분은 나를 보더니 그만 이불 위헤 꿇어 앉아 합장하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설명했다.
이밖에 대흑천이 가끔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분은 이름을 스탓다라고 하며 인도 당시 신리를 설법하는 분들의 경제적인 뒷바라지를 하신 분이었으며, 이분이야말로 금세에서는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선친에 다름 아니다.
5세기 경 중국에서도 역시 천태대사의 경제적 원조를 하신 분이 스탓다의 분신이었으며 대흑천이라고 불려 이따금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정법 포교에 협력해 주신 분들을 불교에서는 대흑천이라고 부른다.
인도 당시 스탓다의 딸이었던 휴가 찌가코는 선정 중에 실재계에 올라가서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그 곳을 종종 구경하고 온다. 우리 영능자들은 지도령, 수호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꿰뚫어 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세 시간 동안이나 선정 삼매에서 실재계의 천연색 영화를 구경하기도 한 모양이다.
옛 인도 시대에 마하 마우드갈리아야나(몽가라나)나 아르닛다가 심안을 연 것처럼 우리들 그룹에서도 차례차례로 영능자가 나타나 잠재의식의 문을 열고 지혜의 눈을 뜨고 있다.
이케가미에 사는 이가라시 부인도 인도 시대 데카라라는 이름으로 우파리의 비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였으며 이 분도 심안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 빙의령, 수호령, 지도령을 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하여 육체에서 방사되는 후광의 상태를 똑똑하게 알 수 있다.
가정도 마찬가지다. 한 마음으로 조화가 잘 되어 있는 가정은 빛에 싸여 있으며, 부조화한 가정은 어두운 상념의 빛에 덮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두운 가정에서는 질병, 사고 등 여러 가지 부조화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 전생윤회의 신리를 설명하기 위한 증인으로서 지금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남미, 프랑스, 대만, 한국, 필리핀, 독일 등 세계 각국에 우리들의 동료들이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 있다. 저마다 신리의 빛과 인연을 맺고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현상은 모두 실재계인 저 세상의 빛의 천사들에 의해서 계획된 일이기 때문이다.
영청
영청적 현상은 차원이 다른 세계의 목소리를 똑똑하게 두 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심안과 마찬가지로 정법을 깨닫고 상념과 행동이 일치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우리들의 영혼의 형제들, 육체적인 연관자, 수호령, 지도령들이 그의 사고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인간으로서의 목적과 사명을 일깨워 주기도 하며 저 세상의 생활 등을 들려 주기도 하는 것이다. 육체적 조상이 이 현상계에 육체를 지니고 살았던 당시와 똑같은 말로써 버릇으로 이야기해 줄 때도 있다.
수호령은 육체를 지닌 당사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영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부조화한 영에 대해서는 거부를 표시할 때도 있다.
또 우리들의 분신이나 본체가 직접 대화를 걸어올 때도 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외국인의 분신이나 본체라 할지라도 마음은 한결같이 신리에 통달해 있으며, 영혼으 형제들은 국적이나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모두 신불의 자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강연을 하고 있을 때
'목소리는 아랫배에서 내어라. 아랫배에 힘을 주어라. 좀더 천천히 이야기해' 등으로 지도해 준다.
경제계의 사토 마사다다 사장의 수호령은 인도 시대 파세나데와 빔비사라 임금 등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으므로 손짓 몸짓으로 그 당시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었으며, 지금 육체를 지니고 있는 사토 사장을 이래저래 비판하기도 한다. 명랑한 분이며 사장의 출생 당시부터 오늘날까지의 경력과 그의 사람됨을 나에게 들려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영청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어디까지나 육체를 지니고 수행하고 있는 몸인 만큼 저 세상의 사람만을 상대하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도 각자 일을 하며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주성이 있어야 한다. 잘못이나 실패도 또한 발전을 위한 경험에 다름 아니고, 고통도 영혼을 닦기 위한 수련이며 인내를 기르기 위한 한 방법이다. 우리들과 깊은 관계가 있는 분들이 몸이 불편해서 괴로워하고 있으면 반드시 그의 수호령이 '어디어디가 이렇게 되어 있으니 본인에게 전달해 주시오'하고 가르쳐 준다.
인생이 얼마나 뜻 깊은 것인가를 이해하게 되고 마음이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영적 감응만을 구하는 사람들은 자칫 악령에 지배되어 있기 때문에 수호령도 접근을 못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따름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본인이 정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고 있으면 어두운 상념에 의해서 영역이 흐려져서 수호령이나 지도령은 파장이 맞지 않는 그와는 접근도 지도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옥계의 영은 이러한 사람들의 귓가에서 여러 가지 부조화한 말을 지껄이고 마음을 불안스럽게 한다. 어떤 늙은 할머니의 이야기로는 부조화한 영이 귓가에서
"너는 자동차를 타서는 안 된다. 반드시 트럭과 충돌한다. 그 트럭은 너를 죽이려고 한다." 라고 속삭여댄다고 한다. 참으로 심상치 않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어떤 때는 "저 집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악마들이다. 불행해지기 때문에 말을 건네서도 안 된다." 하고 자기 일을 제쳐놓고 제삼자를 악인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잇다. 인간은 누구나 잘 반성해서 조화의 생활을 보내야 할 필요가 여기에도 있다.
또 지도령이나 수호령이 신선계나 천구계의 영인일 경우 육체를 지닌 자의 영도를 열어버리는 수도 있다.
마음이 정법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구름이 끼어 부조화한 영의 지배를 받아 일생을 폐인으로 마치는 경우도 많다.
영몽
영몽 현상은 많은 사람에 의해서 체험되고 있다. 의식이 육체를 벗어나 90%의 잠재의식의 부분으로 들어가서 저 세상의 자신과 관계가 있는 곳을 보고 올 경우, 비록 의식이 육체로 돌아와도 거의 기억에는 남지 않는다. 10%의 표면의식으로 보고 올 경우에는 기억에 남는 수가 많다.
자연의 풍경이 천연색으로 보인다든가, 낯선 사람과 치근하게 이야기한다든가 꿈은 과거세의 장면일 경우가 많다. 또 장차 일어날 현상을 미리 볼 경우도 있다. 이러한 꿈은 거의가 다 영몽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현몽·영시·광자체
현몽이라는 것은 죽음을 앞둔 영혼이 친근한 사람에게 이별의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 꿈 속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들의 감응력보다 죽는 사람의 영혼의 파장이 강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은 많다.
마음이 부조화하여 일상 생활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은 좋은 꿈을 꿀 수 없다.
좋은 꿈이란 편안함을 느끼고 마음에 부담이 없는 평화스러운 꿈이다. 부조화한 꿈은 아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악몽은 의식이 지옥에 떨어져 마음의 평안이 없는 곳과 통할 때 꾸는 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취 때처럼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그것은 수호령이 부조화한 마음을 잠잘 동안에 닦아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이럴 때는 전날의 일을 잘 반성해 보면 반드시 마음잡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은 정법을 실천하고 잠자리에 들 때 '수호령님, 제 마음을 닦아 주시오'하고 진심으로 기도해 보면 의식이 닦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는 숙취 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만 이틀 후부터는 딴사람처럼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이 때 주의할 것은 3분지 1정도만 닦아주기를 부탁해야 한다. 전부 부탁하면 호흡 곤란을 일으킬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마음이 부조화한 사람일수록 상념의 때를 벗기는데 힘이 든다'하는 수호령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조화됨에 따라 가볍게 눈을 감으면 눈앞이 황금빛으로 덮이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고 또한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이 보이기도 하며 깨어 있는 상태에서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참선 중에 '또 한 사람의 자신'인 광자체가 차원이 다른 세계나 자신이 원하는 곳과 사람을 만나보고 올 수 있다. 마음의 조화도가 높아질수록 그 힘은 막강하다. '또 한 사람의 자신'이 육체를 이탈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수호령, 지도령, 영혼의 형제들이 협력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의 마음이 정법 생활을 통해서 조화되어 평안할 때에는 별다른 저항없이 이탈할 수가 있지만, 어두운 상념을 지니고 있을 때에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심장이 짓눌리는 고통이 오는데 이것은 몸에 힘이 주어지는 탓이다. 그 원인은 육체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고통이라고 볼 수 있다.
육체를 이탈한 광자체는 아주 가볍다. 현상계의 원자 육체는 참선의 자세 그대로이며, 누워 있을 때는 누운 상태 그대로이다. 자신의 육체를 자신이 바라본다는 것은 이 또한 즐거운 일이다.
천상계에 갈 때에는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돔 속을 맹렬한 속도로 상승해 간다. 별들이 뒤로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죽은 사람들이 중간까지 따라올 때도 있다. 하지만 빛의 정도에 맞게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저 쪽 이치에 따라 그들은 그들의 마음의 조화도에 맞는 빛의 단계에서 떨어져 나간다. 왜냐하면 육체를 이탈한 광자체는 그 광자의 양이 마음의 조화도와 비례하기 때문에 이미 그의 저 쪽 세계는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착륙하는 장소는 언제나 비둘기 같은 아름다운 새가 신록의 숲 속을 날아다니며 고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고 있다. 평화스러운 잔디가 깔려 있으며 가지가지 빛깔의 꽃들이 자지러지게 피어 있다.
마을에는 여러 나라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들은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그 곳의 영역은 격족 높으며 마음은 풍부하고 평화스럽기 이를 데 없다.
실재계(저승)의 나의 집에 가보면 집을 지키는 사람을 위시해서 여러 분들이 나에게 인사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환경에 들어가도 마음은 평온하며 이 현상계(이승)에 있을 때와는 달리 뽐내는 마음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을 조화시키는 도량 같은 곳도 있으며, 그 곳에서 사람들은 신불의 빛을 받아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
이 지구상의 서쪽의 천상계에 살고 있는 빛의 천사의 집을 방문해 보니 얕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으며, 신록의 수목에 둘러싸인 돔형의 큰 저택이었다.
연구실 같은 방안에는 먼지 하나 없다. 우주에서 오는 모든 통신을 수신할 수 있는 전선 같은 것이 택트판에 거미줄처럼 배선되어 있다. 전기 방면의 전문가인 내가 보아도 현상계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 곳의 빛의 천사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현상계에 육체를 지닌 적이 있는 상단계의 빛의 대지도령인데 연령은 40세, 언제나 탄력성 있게 활동하며 현상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수호령을 담당해 주기도 한 분이며, 나 때문에 겪은 고충담도 들려 주었다. 가슴에는 흡사 Y셔츠의 단추 같은 것을 세 개 달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말의 동시통역기 같은 것인데 나의 일본말은 즉시 상대국의 말로 바뀐다.
나는 언제나 이 제품을 지상계에서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과학 문명의 차이가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현단계에서는 제조가 불가능하다. 나는 그 곳에서 포도주, 커피 등을 종종 대접받고 있다.
이 현상계에 육체를 지닌 사람들 몇몇이 나처럼 거리 다녀오기도 하며 그 곳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올 경우도 있다.
육체에 의식이 돌아올 때에는 이탈할 때보다 훨씬 더 쉬우며 저항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유체가 이탈한 육체 곁에서 현상계의 사람들이 불러깨울 때에는 육체적으로 얼마간의 저항을 받는다. 이와 같이 육체를 이탈해서 조화와 평안의 실재계에 도달하는 것을 삼매의 경지라고 한다.
마음에 소개하는 현상은 1970년 4월, 이 신리를 배워 실천하고 있는 가와코시에 사는 오노 다카코씨 집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이 분은 전생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파우로(바울)의 모친으로서 육체를 지녔던 사람이다. 오노 다카코씨의 친정 아버지는 유명한 나가다 슌수이 화백이다. 제전 무감사인 화백의 장례식 전날에 일어난 사건인데 이것은 5월 10일자 토쿄신문에 기사로 실려 나가기도 했다. 기사 제목은 '집단 가출한 새들의 불가사의'였으며 내용은 '여덟 마리의 공작이 가출한 것은 4일 아침이었다...'로 시작되고 있다.
다음은 오노씨가 사건의 전모를 밝힌 체험담이다.
"자, 이젠 그만 울어라. 이 영혼의 내가 진짜 나야.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영혼은 살아 있는 것이란다. 육체가 이젠 누더기처럼 낡았으니 벗어던지는 것뿐이란다. 자, 나를 배웅해 다오."
이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딘지 모르지만 환한 빛 속이었습니다. 상당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밝은 터널 속 같구나." 하고 아버지는 말씀하시면서
"나는 저쪽 나라에 간단다. 거기는 먼 곳이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를 뒤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아버지, 저는 그 곳까지는 도저히 배웅 못하겠어요."하고 우는 소리를 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좋아요. 이쯤에서 헤어지자구. 나는 먼 길을 떠나야 한단다. 또 만나자."
"아버지, 이 다음에도 또 아버지가 되어 주실래요?" 나는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아버지는 "응, 그래. 그럼 몸 조심해. 잘 있어..." 하시면서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며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하였습니다.
이 날 아침에 아버지는 영면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승천하시기 1주일 전부터 나는 밤마다 아버지 병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도령의 주의로 졸음에서 깨어나 아버지에게 경을 읽어 드리며 밤을 새우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5월 1일 새벽, 아버지가 승천하시기 전인 그 시간에 내가 잠이 들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나는 누군지 몰랐습니다. 처음엔 '남편이 부르는 것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내가 어릴 때 아버지의 목마를 타고 듣던 우에노산 종소리처럼 온갖 추억이 담긴 아버지의 정다운 목소리였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아버지를 부르며 아버지 품에 뛰어들어 울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나는 아버지와 손을 잡고 환한 빛의 터널 속을 유치원 시절 소풍 갈 때의 즐거운 마음으로 새처럼 날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4일, 시나노마찌 천일회당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 날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장 정성들여 그리신 그림 족자를 관 옆에 걸어 두었습니다. 이 그림은 모란과 여덟 말의 공자기 어우러진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림이었습니다. 대단한 역작이었으며, 아마 아버지가 그리신 공작 그림 가운데 최후의 작품이었으며 소중하게 집에 간직해 두었던 것입니다.
장례식은 무사히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조문하러 온 이웃집 아주머니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영혼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었지요. 4일 아침이었습니다. 여덟 마리의 공작이 우리집 정원에 날아왔다가 조금 후에 선생님 댁으로 날아가 벚꽃 나무 사이를 천천히 세 바퀴 돈 다음 현관 앞에서 한바탕 울고나서는 어디론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아름다움이란 말로 다 못하겠어요. 낙화한 벚꽃 위를 그 공작들이 날개를 활짝 벌리고 걷는 모습은 바로 극락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겠는가 하고 저는 침을 삼키면서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그 말을 듣고 나서는 이승과 저승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일은 장례식 날 저녁에 이바라기 현에 사는 아우의 집에도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와서는 장례식에 참석했던 스님들, 아우, 조카들의 손등과 어깨에 앉아 뺨을 쪼기도 하며 좀체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다'하면서 반가워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인간은 물질이 아니라 영혼이며, 신의 분령으로서 참으로 깊고 먼 하늘에서 강림한 생명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는 다카하시 선생의 깊은 신리의 가르침에 의해서 , 아버지의 45일간의 입원 생활은 아버지의 영혼의 마지막 연마 기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신계에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신비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 영능자의 눈으로 보면 신비스러운 사건도 아무 것도 아니다. 오노씨는 영시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다 거짓없는 사실이다.
꿈이 아니고 깨어있는 상태에서 광자체가 육체를 이탈하여 오노씨는 아버지를 배웅했던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최대의 보은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정
1969년 8월, 내가 신슈의 공장에 출장갔을 때의 일이다. 공장 입구 우측에 아름다운 여름꽃이 만발해 있었다. 사쿠 고원의 공기는 토쿄같은 도시에 비하면 별천지의 감이 든다. 하늘은 한없이 높푸르며 햇빝은 따가울 정도로 눈부시다. 그늘에 일단 들어서면 상쾌한 자연의 서늘함이 몸을 감싼다.
나는 풀밭에 누워 글라디올러스와 달리아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디즈니의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예쁜 소녀가 꽃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머리 위에 꽃을 꽂은 날씬하고 우아한 자태는 도저히 이 지상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소녀는 나에게 생긋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꽃의 요정입니다. 우리들은 자연계를 온갖 빛깔로 장식하며 조화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평안을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있습니다. "
나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비록 식물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지니며 이 현상계에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하였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현상이었으므로 꿈을 구고 있지 않은가 착각할 정도로 당혹하였다. 나도 일어나 그 자리에서 꽃의 요정에 인사를 하였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그저 놀라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자연과 벗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이 자연계를 더욱 아픔답게 꾸며 주십시오."
얼굴도 체구도 인간 그대로이며, 피부는 투명한 유리처럼 아름다웠다. 저 세상인 실재계의 사람들과 다른 점은 체구가 작다는 것뿐이었으며 말하는 것도 분명했다.
꽃의 요정은 "인간은 훌륭한 육체를 지니고 위대한 창조력과 실행력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마는 어리석은 사람도 참 많네요." 하고 인간을 비판하고 웃는다.
"어째서 인간이 어리석은가요." 내가 묻자 그녀는 즉시
"신의 자녀인 인간은 마음을 상실하고 평안이 없으며 자기 본위로만 사물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독약으로 생물을 죽이고, 자신이 뿌린 농약에 몸까지 망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 속은 욕심의 덩어리이며 인간끼리의 신의도 없습니다. 추악한 싸움과 파괴. 우리는 아득한 옛날부터 이 지상에 꽃을 피우면서 인간 사회를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자연 그대로 살며 항상 아름답게 자연을 꾸미고 아욕이 없습니다. 인간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간은 매정스럽게도 우리를 꺾어버리거나 돌보지 않는 무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불평하지 않고 오로지 조화와 평안의 환경을 꾸미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힘껏 발휘애서 인간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 없는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꽃의 요정에게 고개를 들어 할말이 없었다.
"인간도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우리들과 같이 조화로운 자연을 꾸며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하고 꽃의 요정은 말꼬리를 달았다.
날카로운 꾸중이었다.
사상의 대립, 종교의 대립, 전쟁, 파괴 등 꽃의 요정보다 못한 인간의 군상들을 생각하면 그 꾸중을 듣고도 남음이 있으며 우리들은 크게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마음의 문을 연 그 만큼 신불의 자식된 사명과 목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나는 새삼스럽게 가다듬었다.
꽃의 요정은 "너무 많이 지껄여서 미안합니다." 하고 말을 끝맺고는 이내 꽃 속으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내가 설법하고 있는 대자연의 법을 깨달은 사람 가운데에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분도 더러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리를 깨닫고 생활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사실을 경험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자재 보살이라고 불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마음의 문을 연 사람들, 진실한 인생을 영위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남에게 자비를 베풀며 만생 만물에 대한 감사 보은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잇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생물의 요정과 교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지 이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러한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요는 정법의 실천 생활 이외에는 길은 열리지 않는 법이다.
꽃의 요정은 이 현상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실재계에서도 항상 아름다우며 자연과의 조화를 목적으로 그 종족이 보존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의 때가 씻기고 영도가 열리면 거의 모든 요정과의 대화가 가능해지며 대자연의 짜임새, 만생 만물의 상호관계를 서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꽃의 요정 중에서도 등꽃은 예쁜 눈을 가진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소나무는 노인이 많다. 또 나비에도 물고기에도 마찬가지로 영혼이 있다. 그들도 불멸의 영혼이며 저승과 이승 사이를 전생윤회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후 더 많은 정법 실천자들에 의해서 증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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