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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발견

제2장 전생의 갈대-전생윤회

by Yuneelif 2023. 2. 1.

육친의 둘레에

1967년 가을.

우리 부부와 누이동생은 핫조호리의 오지마야에 초대되었다. 부부가 함께 외출한 적이 별로 없는 우리들이었지만 그 초대는 거절할 수가 없었으며 우리는 안내에 따라 2층에 올라갔다. 그 상점 안주인은 신불에 대해서는 가히 광신적이었으며 어디 용한데가 있다고만 들으면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찾아나서는 열성파였다. 신앙에 대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그만큼 장사도 번창하여 분주했다. 하지만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시고 빌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안주인은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상품이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다. 이 상품에 자신들의 생활 기반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진심으로 장사에 감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감사에 대한 보은으로써의 신앙이었을지도 모른다.

안주인은 또 신비한 영능에 대한 호기심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하지만 의문을 가지고 탐구하는 신앙심은 자신을 닦는데 보다 유익한 자세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랫층에서 안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쯔코야, 다카하시 선생님이 오셨어. 한 번 뵈옵고 말씀 들어봐요."

때마침 그 집에 와 있던 안주인의 여동생은 예기치 않던 사실에 놀란듯 대답한다.

"나처럼 신불을 믿지 않는 여자가 그런 자리에 끼면 그거야말로 부조화가 아니겠어요? 난 사양하겠어요."

안주인은 상관하지 않고 이층으로 올라왔다. 이 안주인은 종교단체 사람들을 자주 초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왜냐 하면 마쯔코가 '언니도 참 변덕쟁이야. 또 새로운 교조같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으니'라고 푸념하고 있는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방안에는 또 다른 여동생인 나쯔구리 부인이 이미 자리를 잡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생로병사의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에 그 마쯔코가 차를 날라왔다. 마쯔코의 수호령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인도 시대 우바리의 비서를 담당하고 있었던 당시의 젋은 복장이다.

한 시간 정도 신리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별안간 마쯔코가 울기 시작했다. 나의 아내와 누이동생의 인도 당시의 모습이 그녀의 영시로 보였기 때문이다. 금빛으로 싸인 미륵 보살과 관세음보살상이 각기 육체 위에 이중으로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 위에 둥근 광륜이 비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 놀라 '착각이 아닌가'하고 몇 번인가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이다'라고 하면서 마쯔코는 또 울고 말았다.

나는 마쯔코의 불편한 다리에 빛을 넣었다. 그러자 구부러지지 않던 다리가 금방 구부려지게 되었다. 그 자신 가장 부조화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던 사람이 맨 먼저 영시가 가능해 졌으며, 그 결과 사람들의 마음의 조화도를 빛의 단계에 따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이 마쯔코의 남편은 음악가였다. 따라서 남편의 음악을 통해서 조화라는 개념이 늘 마음 속에 새겨지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녀의 과거세는 인도 당시 데가라라고 불렸으며 그 이름의 유래는 출생지의 지명이었다. 당시에는 동명인이 많았으므로 곧잘 출생지를 대명사로 불렀다. 또 마우드갈리아야나(몽가라나)라는 이름도 많아 크다는 뜻의 마하를 붙여 마하 마우드갈리아야나(몽가라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마쯔코가 금방 영시가 가능해진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마이트레야와 가리나를 과거세에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요, 둘째는 붓다의 제자로서 함께 비구니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그녀가 이러한 신리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한 사명을 실재계에서 부여받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동석한 나쯔구리 부인도 그의 남편과 함께 신리의 빛에 접할 기회를 얻어 그 후 정법을 일상 생활 속에 실천하고 있다. 두분은 지금 신의 빛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의 조화가 잘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1969년 5월.

"팔정도는 생활 가운데 있는 것이며 자신의 상념을 신불의 빛으로 정화시키는 절대 조건이다. 팔정도의 실천으로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보존, 아아아욕에서 해방되는 동시에 자기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아야 한다. 보다 더 훌륭한 인생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한 협력과 노력에는 자비와 사랑이 따라야 하며 보수를 바라지 않는 보살심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러한 행위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안심입명의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빛의 세계에 통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집회에서 내가 이러한 신리를 설법하고 있을 때 나쯔구리 부인의 잠재의식의 보고가 열려 과거세에 배운 온갖 경험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인의 지도령은 1세기경 이집트에서 태어난 후리데라는 빛의 천사였으며, 베드로의 제자로서 기독교를 포교하고 병든 사람의 마음에 복음을 전하면서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부인의 생명의 본체인 다라구리나 분신인 와이리야스타데, 도안덴 환 덴 등은 육체 고행을 할때 부인의 마음과 조화하기 위해서 매우 고생을 한 모양이다.

부인의 주위에는 다시 여섯 명의 영도자가 나타나 제각기 출생국의 말로써 전생윤회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15세의 학생은 과거세에 인도 로시니강의 데바다바 바스투에서 생활한 여성이었으며 야쇼다라 공주(석가의 부인)의 친구로서 자주 카필라 바스투에 놀러 갔었다고 말했다. 당시의 이름은 화이리어리라고 불렸으며 크샤트리아와 결혼하였었는데, 주인이 전사한 후로는 불법에 귀의하여 비구니 생활을 하였다고 당시의 말로써 기억해 냈다.

그 당시 카필라 바스투에 자주 출입하였던 식당 종업원도 영도가 열려 화이어리를 기억해 내어 2천 5백 수십년만에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고 있으니 전생윤회의 영원함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집에서 핵분열을 일으킨 신리의 불길은 차례차례로 퍼져 나갔다. 믿든 안 믿든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영도가 열린 이들은 결코 광신자도 맹신자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젊은이로서 특수한 체질과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다. 늘 겸손하고 얌전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5월은 오지마가의 사람들이 신리의 증명자로서 등장한 기록적인 달이었다.

나쯔구리 부인은 기원전 1세기, 이집트의 시데리어라는 여성으로 태어났으며, 베드로의 제자였던 오다오와 결혼하여 신리의 전도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이 부인은 결혼 중매를 후리데가 하였으며 오다오는 후리데의 제자이기도 했었다. 이들은 금생에서도 부부 사이이며, 인연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뜨게질의 실처럼 어딘가에서 이어져 있으며 결코 우연의 현상은 아니다.

부인의 입을 빌어 말하는 지도령 후리데는 당시의 이집트 고어로 '물질지상주의에 빠진 중생에게 불성, 신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신리의 증인으로 지명되어 지도령을 맡고 있다'는 요지를 구체적인 경위를 들어 설명하였다.

"본인은 나쯔구리 도쿠코의 지도령 후리데입니다. 지금부터 나쯔구리 도쿠코의 잠재의식의 문을 열어 그 속에 기억되어 있는 드라마를 당사자의 성대를 빌어 당시의 말과 일본어로 통역하여 전생윤회의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리라는 것은 실천해야만 그 가치가 나타난다. 마음의 보고를 열고 생명의 전생윤회를 깨닫게 되면 죽음이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육체의 배를 버리고 자신의 본성인 광자체의 비를 갈아타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화한 육체의 주인공은 차원이 다른 저 세상의 새로운 광자의 육체를 갈아입고 전생해간다. 그 때문에 우리들의 의식의 기억실 속에는 오랜 기억이 비디오처럼 녹화되어 있다.

두뇌는 오관이란 신경 계통을 통해서 포착한 현상을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대뇌 소뇌에 전기적 변화를 일으켜서 육체의 주인공인 의식에 전달한다. 기억 상실증은 의식 세계의 발신을 뇌 속의 담당 세포피질이 수신하는 능력을 상실했을 경우에 일어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경우에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밖에 부조화한 악령의 지배를 받고 일어날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지도령은 전생윤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원전 1만 년경 광대한 아틀란티스 대륙의 험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가족을 보호하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육안으로 악마가 보였으며, 생활 환경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숲 속이나 동굴 속에서 살았으며 좀 더 살기 좋른 곳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녔습니다. 그 때의 고생을 생각하면 현대인의 불평 불만은 정말 사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나쯔구리의 지도령을 맡고 있는 후리데가 1세기 이집트에 태어났을 때에는 내가 지도령을 맡고 있었습니다. 후리데는 훌륭한 남성이었습니다. 내 이름은 호회로우와우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윤회과정에 있어서 인연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수호를 받기도 하고 지도를 받기도 한다.

"나는 기원전 7천년 경 아틀란티스 제국에서 태어났던 화우리어리라는 남성입니다. 아가샤 대왕님을 모신 신관으로서 정치에도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문명이 매우 발달하여 국민들의 생활은 풍족했습니다. 심부재로 사람들의 마음은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이런 세상을 우려한 아가샤 대왕님은 신리를 설법하면서 자연의 은혜에 감사할 것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악마에게 마음을 팔아버린 사람들은 대왕님과 나를 체포하여 군중들 앞에서 본보기로 처형했던 것입니다. 이 때 함께 처형돈 사람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다리아(여) 호로리아(여) 호리오(남) 세제라도우(남) 호토레(남) 회리데(남) 호레세우도아르(남) 도와라토데(여) 디세페라(여) 체리세오(남) 후로와(남) 슈체레야(여) 디레라우(남) 호레세데유아르(남) 야와토르드(남) 회세타와토우(남) 제와라(남) 디와우(남) 토레와세레우(남) 호데레야(여)-

이 분들은 영생을 믿고 언제나 함께 지내기를 서로 약속한 동지들이었습니다.

그밖에 아가샤 대왕님의 설법을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동굴 속에 갇혀 생매장 당했습니다. 악마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잔인한 짓을 예사로 해치웠던 것입니다.

나는 대왕님으로부터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잘 들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즉 죽음에 대한 공포는 육체에 대한 집착심이 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생과 사는 옷갈아입기와 같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으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미래에 언젠가 다시 육체를 지니고 태어날 때에도 대왕님을 모시고 함께 신리를 포교해 나가자고 서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는 악이 번창하던 시대였으므로 선량한 사람은 몹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선악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이 부족하여 몹시 부조화한 어두운 상념에 싸여 있었습니다. 아틀란티스 제국은 신의 사명을 띠고 신리를 펴는 빛의 천사들을 처형했기 때문에 마침내 신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륙은 검은 상념에 뒤덮혀 신불의 빛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바다 속으로 함몰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늘 태양을 신앙하였으며 만생만물에 감사하면서 마음의 태양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정법을 설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와있기 때문에 신의 버림을 받게 될 일도 없으며 부조화를 조화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행복합니다.

한편 이 때의 나다리아님은 후일 인도 시대에 출생한 마이트레야(미륵보살)라는 분입니다. 호로리아님은 관세음 보살이라고 불렸던 분입니다."

 

연생의 배

신리를 펴는 천사들이 실재계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언제나 한 그룹이 되어 내려온다는 것은 아틀란티스 시대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와 같이 전생윤회의 과정은 과거세에서도 부모자식, 형제자매, 친구, 사제지간의 관계를 맺어 연생을 실감시킨다. 저 세상의 관청에도 등록제가 있어서 이 세상에 출생하기 전에는 그 쪽 계획에 따른다. 물론 본인의 희망이 중요시되는 것은 사실이며, 따라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관계가 깊었던 사람들과 동아리 짓고 가장 께닫기 쉬운 환경을 선택해서 동시대에 태어나는 것이 상례이다.

대개의 지도령·수호령은 우리들로 하여금 인생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해 가는 것이지만, 깨달음이란 역시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 알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날마다의 상념과 행위의 선악을 자신의 마음(양심)에 묻고 항상 반성의 생활을 하고 있으면 인간의 사명과 목적은 절로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면 지구 인류는 모두 신불의 자식이며 형제들이라는 사실도 이해하게 된다.

아틀란티스, 이집트, 인도, 중국, 일본 등으로 인생 항로의 배인 육체는 바뀌어도 선장인 의식, 즉 영혼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하지만 배를 타고 나면 육체배의 눈·귀·코·혀·몸·뜻의 육근번뇌에 사로잡혀 본심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신을 모르게 된다.

마음의 세계는 무한대이다. 잠재의식 속에는 우리들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다만 육체의 표면의식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전생윤회는 이어진다. 화우리어리는 아틀란티스 제국 다음에는 지금의 남미 페루에서 남자로 태어났다. 이 나라의 왕은 리엔토 알 크라우도라는 이름의 육체베를 타고 있었다.

나쯔구리 부인의 생명도 또한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있다.

"나는 지금부터 4천 년 전 지금의 페루라는 나라에 태어났습니다. 센체라 알 칸토라라는 이름이었으며 왕을 모신 식사 당번이었습니다. 임금은 자비로운 분이었고 공주님은 나자레라고 했으며 미륵 보살의 전생의 생명이었습니다. 당시의 페루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산중이었지만 문명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언제나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셨으며 국민들은 태양을 신앙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칸타레'라는 말은 태양을 의미하였으며 '하레'란 마음을 가리켰습니다. 어느 때 외국의 침략을 받았는데 임금님은 국민들이 피를 흘려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 인디오들과 함께 산중에 숨어 신리를 좇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인간은 다 평등하며 태양도 인간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모두가 다 태양의 자식들이었으며 신의 자식답게 조화된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지금의 안데스 산맥의 페루보다 더 높은 고지였습니다.

이윽고 침략자들이 살던 평지는 작열지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고시바씨는 이 때에도 나와 함께였으며, 그 후 인도에서 태어나 수부티라고 불린 분이다.

나쯔구리 부인의 생명은 다음으로 

"이집트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이름을 회리가라고 했으며 오데야 라카르수티라는 장군의 처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다음의 생명으로는 남성으로서 기원전 600년경 인도에서 태어나 번뇌를 멸하는 길은 육체 고행에 있으며 깨달음도 거기 있다고 생각하여 가야다나의 가시밭에서 참선을 하기도 했고 몸을 불꽃에 그을리거나 땅 속에 묻기도 하면서 온갖 고행을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나는 와이야리스 스타디라고 합니다.

어느 날 많은 수도자들과 함께 수행을 하고 있는데 한 고뇌에 빠진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 젊은 청년에게 가혹한 고행을 하는 사람일수록 존경을 받으며 인간은 어디까지나 고통을 견디는 생명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청년은 '무엇 때문에 이러한 고행을 하는 것입니까.' 하고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짓이야 별로 고행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천상계에 태어나기 위해서 번뇌를 멸해야 하고, 번뇌를 멸하는 길은 육체의 고행뿐입니다."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깊이 생각한 끝에 '낙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고행을 한단 말인가. 천상계에서 낙을 얻었다 해도 이 지상계에서는 또 다시 괴로워 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고행에 의해서 정말로 천상계의 낙 속에 태어나는 것일까. 태어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청년이 고행에 겁이 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고행에는 충분히 존경합니다마는 그 댓가를 바라고 고행한다면 언제까지나 고행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고와 낙은 영원히 윤회할 뿐입니다.'

나는 이 청년이 '마음'을 알고 있다고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이 청년이야말로 위대한 대각자가 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카필라 바스투의 크샤트리아 고타마 싯달다(석가모니)였던 것입니다.

는 이 때 이미 79세의 노령으로 이 현생계에서는 붓다의 법에 귀의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실재계에 돌아가서는 오랜 시일 동안 수행을 쌓았던 것입니다. 지금 여기 육체를 지니고 있는 나쯔구리 도쿠코는 육체 수행도 하지 않고 신리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간절한 염원이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하고 와이야리스 스타디는 당시의 인도말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늘어놓는 것이었다. 이어서 1세기에 이집트에서 태어났던 여성이 교체하여 이집트 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집트에서 태어났던 세테리아라고 합니다. 우리 집은 사막의 오아시스였으며 대상들을 위한 식당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 일행이 신리의 전도를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그 때 베드로님의 제자인 오다오와 결혼하여 중생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기 위해서 함께 그리스도교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법의 실천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현재 지도령을 맡고 있는 후리데님이 주인과 친밀한 연분이 있었으므로 부부의 지도령을 맡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어서 남성의 생명을 지니고 티베트에서 태어났었다. 정확한 티베트 발음의 유창한 말이 흘러나온다.

"나는 지금부터 1450년 전 티베트의 빈 농가에서 태어났던 나쯔구리 도쿠코의 본체 다다구리입니다. 어릴 때부터 불교에 흥미가 있어서 히말라야에서 육체 고행을 한 라마승입니다. 

당시 중국에서 인도에 가기 위해서는 티베트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 인도로 가는 고승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에서는 불교의 스님들이 우대받고 있다는 것을 그 분들을 통해서 알았으므로 나도 스승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천태지의라는 고승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긴 여행 끝에 마침내 천태산에 입산하여 천태교의 법화경을 배웠습니다. 그 때 일본에서 오노 이모코씨가 유학와 있었으므로 나는 일본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알 수 있게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때 중국에서는 문화 사절단이 구성되어 기악을 알리는 예술가, 공예가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입니다.

일본의 태자가 법화경을 공부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뜻밖에도 이 나라에 가도록 지명을 받았습니다.

나의 친구인 다츄도 치코다 라잔도 동행하였으며, 라잔은 달필이어서 경전을 정서하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나중에 일본에 귀화하였습니다. 구마지라우님은 라잔의 육체적 조상입니다.

그 때 나의 누님 이가라시 마쯔코는 소가의 딸이었습니다. 누님의 남편은 샨 민얀, 남편의 동생은 겐 민얀이라고 했으며 기악의 대표자로서 수나라의 음악을 전했습니다. 오노 이모코씨는 훌륭한 사신이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풍족한 대국이라는 것을 중국인에게 인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모코씨가 그만큼 위엄을 갖춘 인격자였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나의 어머니는 그 때 우리들 일행이 도중에 유숙했던 마을에 살면서 많은 보시를 해 준 친절한 부인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긴 여행에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있었습니다마는 이러한 친절한 분들의 도움으로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본체 다다구리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 티베트에서 중국으로, 다시 일본으로, 일생을 도보와 배와 말로써 세 나라를 여행하였던 분이다. 우리들은 저마다 신의 특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8세기에 남자로서 중국에 태어나 이름을 도완텐 환텐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태어나던 당시의 중국은 아주 문화가 발달되어 학문을 닦아 관리가 되는 것이 가장 빠른 출세의 길이었습니다. 나는 유학을 공부하여 입신 출세하는 것이 희망이었습니다. 외동아들인 분텐완(현재 나의 주인의 누님의 아들로서 중학교 2년생인데 14년간이나 천식으로 고생하다가 신리를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동안에 완전히 나았다)이 병약하여 결국 죽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일체를 포기하고 출가했던 것입니다.

그 후 천태산의 스승을 찾아 불교를 공부했습니다. 당시의 스승은 도완 텐 엔이라는 노승이었습니다(현재 일본인으로서 동경 세다야에 살고 있음). 따라서 나는 지금도 법화경을 기억하고 그 해설이 가능합니다. 그 때 천태산에는 일본의 사이조 스님도 유학 와 있었으므로 8개월 동안 함께 법화경을 공부했던 사이입니다. 그 후 사이조 스님의 권유를 받아 천태교를 포교하러 일본으로 건너가 히에이산 연력사에서 젊은 승려들을 상대로 법화경의 강의를 했습니다.

나는 사이조 스님의 손님으로 특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당시의 연력사는 산중턱에 있었는데 암자 같은 모습이었으며 그 후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일본에 귀화하여 이름을 겐신이라고 개명했습니다."

이 겐신은 그 후에도 일본에서 호조씨의 가문에 태어나 노후에는 정치가였던 그의 주인이 죽은 뒤 그의 보리를 조위하기 위해서 불문에 귀의한 분이다.

이와 같이 대우주체, 신체의 일부인 이 지구라는 환경에서 실재계(저세상)와 현상계(이세상) 사이를 인간은 전생윤회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