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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발견

제2장 전생의 갈대-과거세의 세계

by Yuneelif 2023. 1. 31.

지도령과 수호령의 모습

불교도 기독교도 배운 바 없는 내가 어느새 그 신리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석가와 그리스도 당시의 상황까지 환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원투스리는 상단계의 빛의 대지도령이며 신장이 2미터가 넘는 거한이다. 머리에는 왕관, 팔에는 금팔찌를 낀 BC 1300년대의 이집트의 복장이었다. 본명은 모세라고 한다.

'포와이 신 포와이 신포오'는 머리카락이 목까지 길었고 턱수염이 난 신장 1미터 78센티 정도의 분으로서 역시 상단계의 빛의 대지도령이며 1세기 이스라엘에서 활약한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분신의 이름이었다.

'왜 본명을 말해 주지 않았을까'하고 내가 생각하자 신포오는 이렇게 말했다.

"본명을 밝히면 너는 놀랐을 것이다. 종래의 그리스도교처럼 되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사랑으로 충만한 말씀이었다.

 

1968년 9월 19일 아름다운 인도 복장을 한 두 사람의 여성이 불상처럼 환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모세나 예수의 머리 위에도 금빛의 테가 있는데 이 두 사람에게도 같은 광환이 있었다. 엷은 분홍빛 비단옷을 입었으며 아름다운 귀고리도 달고 있었다. 그 중 연꽃을 손에 들고 있는 분이 나의 누이동생의 의식 속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일본말이 아주 유창한, 기품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나는 너무나 고전적인 그 모습이 조금 불안했다.

누이동생은 이 말을 듣고 겁을 먹고 거절했다. 그러나 나의 간청에 못이겨 결국 승낙하였다. 누이동생의 마음을 조화시키고 빛을 넣으니 그 몸이 공중에 뜨게 되어 나는 급히 그 어깨를 눌러 앉혀야만 했다.

다시 마음을 조화시키니 부드러운 말이 그 입을 통해서 굴러나왔다. 그 음성은 누이동생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성 관세음보살입니다."

그와 동시에 누이는 심안이 열려 영시가 가능해졌다. 이 날 밤부터 약 일 주일 동안 누이동생은 관세음보살님의 무릎 위에서 지냈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빙의한 부조화한 영들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누이동생은 히브리어, 인도의 마가다어, 중국어 등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람의 마음은 물론 수호령·지도령과도 대화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되었다. 육체의 조상들과도 전생의 일들, 죽을 때의 상황 등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연고자 중 저승에 간 사람들을 불러 대화하면서 생존시의 모습들을 재현시켜 보여주기도 했다.

누이동생은 창가학회에서 불법을 배운 지 10년, 그 교리 실력은 나보다 앞섰지만 광신도는 아니었으며 늘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올바른 해답을 얻지 못해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후일에 술회하는 것이었다.

이제 누이동생은 자신의 전생윤회한 과거세를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생명은 영원불멸입니다. 나는 기원전 7000년 경 아틀란티스 제국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이 훠로리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미륵보살님은 나다리어라는 이름으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우리들은 아가샤 대왕님의 밑에서 신의 가르침을 배워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부드러운 아틀란티스 시대의 말을 했으며 일본 말로 풀이하기도 했다.

"아틀란티스의 문명은 매우 발달했으며 국민들의 생활은 풍족했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풍부한 반면 본심을 잃고 마음을 악마에게 빼앗겨 신의 자식으로서의 긍지를 저버린 자가 많았습니다. 아가샤 대왕은 자비심 많은 분으로서 철없는 민초들에게 대자연의 은혜에 감사할 것을 가르쳤지만 악마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우리들을 붙잡아 대중 앞에서 처형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생명의 불멸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의 사자로서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던 많은 천사들이 처형당했기 때문에 마침내 아틀란티스 대륙은 신의 권능으로 함몰하고 말았습니다."

하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 후 그녀의 분신이 다시 지상에 태어난 기억을 다음과 같이 들려 주었다.

"그 후 나는 기원전 4,000년 경 다시 여성의 몸으로 이집트에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아시카 미요다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당시의 이집트 말과 일본 말로써 들려주었다.

"나는 바라라는 농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집 앞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 냇가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거기서 한 사람의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강둑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옷소매가 헤어져 너덜거렸습니다. 그래서 기워드렸습니다. 그 때 나는 발에 종기가 나서 몹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그 수행자는 신에게 기도드려 고통을 없애주었습니다. 그 수행자는 자비심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신리를 믿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포교하였습니다. 그 수행자는 기원전 1세기에 이스라엘에서 탄생하였던 예수님의 전신이었으며 그라리오라는 분이었습니다.

당시는 태양 신앙이었으며 백성은 임금이 파라오신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피라밋도 내세를 믿었던 측근자들이 파라오의 보물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미래에 다시 태어났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이었습니다."

라고 피라밋의 유래까지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의 생명은 기원전 약 6세기 중앙인도의 마가다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빔비사라 라잔(왕)의 친척으로 가란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베느베나(기원정사)를 고타마님께 기증한 분입니다. 형제는 셋이었으며 나는 막내딸로서 가리나라고 불렸으며 몹시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이따금 나를 베느베나까지 데려갔으며 고타마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신앙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28세 때 고타마님의 제자로 입문했습니다. 그러나 가르침에 의문이 있었고 수행도 고통스러웠으며 타고난 응석 때문에 좀체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타마님은 '정법은 스스로 깨닫는 것. 산중에서 7일간 수행하면서 28년간의 과거를 반성하고 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산중에는 하이에나, 뱀 등이 많아 밤이 되면 나무와 풀까지 악마로 보여 겁에 질린 나는 하루만에 수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 때 고타마님의 제자가 되려면 반성의 산중 수행을 한 다음 세 가지 구족계라는 세례를 받는 것이 정해진 절차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역시 나는 만족한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남편과 헤어지고 36세에 고타마님께 청원드려 제자가 된 것입니다.

이 때 나는 마이트레야와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나는 종을 치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 신리의 포교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고타마님은 81세에 쿠시나가라 교외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때 샤리푸트라님, 마하 마우드갈리아야나님, 푸루나도라야 야니부트라님은 이미 실재계로 떠난 뒤였습니다. 고타마님의 사후 90일째 되는 날 마하 카샤파를 중심으로 만치우리야, 우파리, 아난다, 라후라, 마이트레야님들이 모여 후세에 법을 전달하기 위해 구술도 하고 기록도 하면서 각자 분다하여 붓다의 사적을 남길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하고 설명하였다.

우리들의 의식, 즉 영혼은 자신의 전생윤회의 기억을 잠재의식에서 되살려 낼 수가 있다. 믿고 안 믿고 간에 이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시 누이동생은 전생윤회를 기억해 나간다.

"나는 69세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 2세기에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사휘라는 이름으로 남편 마구가리스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전도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나의 본체인 호시요꼬의 수호령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본체의 지도령은 나의 남편, 그라리오님, 예수님이 맡고 계십니다. 사휘 이후 나의 본체는 5세기에 중국 광동에서 임장이라는 여성으로 태어나 병자를 구제하면서 불도를 중국 전토에 포교하였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중장이라고 했으며, 인도의 시대에는 가란다라고 하는 분이었습니다. 동생은 오장이라고 했으며 다 함께 불도로서 중생을 제도하였습니다. 제자들 중에 관음이라는 분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7세기에 일본에서 태어나 고호라고 불렸으며 동생은 니찌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후 나는 일본에서 두 번 태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내 친구는 의문을 품고 달려왔다. 친구는 흥미있게 신리를 듣고 있었다. 사흘이 지나자 의문이 다 풀리고 눈을 흘리면서 인도 말로 '우파리 우피리'하며 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시 9월 23일,

나의 중학교 친구인 사토군이 그의 친구 고시바씨를 데리고 왔다. 사토군과 함께 이 분도 오랫동안 종교단체에 몸담고 있었으므로 이해가 빨랐다. 또한 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현상의 문헌도 많이 읽고 있었다. 다만 종교의 근본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정통하지 못한 것 같았으나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현상에 대해서 큰 흥미를 가지고 우리 집을 드나들고 있었다.

몇 번인가 신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등 뒤에 금빛에 싸힌 인도 복장의 수호령이 똑똑하게 나타났다. 우리들에게 합장하면서 수호령들끼리 서로 대화하고 있었다. 나의 눈엔 그것이 잘 보였다. 그러나 나의 지도령인 원투스리가 '과거세의 이름을 가르쳐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의하고 있었다.

"자기의 과거세나 수호령의 존재에 대해서는 신리를 깨닫고 올바른 마음의 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알게 되는 일이므로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숨겨둠이 좋은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서는 참으로 자비심 많은 생각이라고 감탄했다.

원투스리(모세)는 다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탈출할 때의 상황과 10계명의 성립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고타마도 예수도 나의 친구다. 신의 사자로서 인류에게 평화와 안심의 신리를 설법하는 동지다. 전생윤회를 하면서 과거세에 설법한 신리가 지상계에서 2천 년 3천 년 지나면 인간의 지와 의의 먼지에 뒤덮이고 만다. 그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다.

먼지가 끼면 신리의 싹이 눈뜨지 못한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읽고 사회는 조화를 상실한다. 고타마도 예수도 우상 숭배의 대상물이 되었으며 어떤 조직은 신을 상품화하여 그 그늘에서 생활하고 있다.

철학화된 신리는 우상으로 변하고 교조는 그 우상의 문지기가 된다. 신앙은 형식적인 의식이 되고 우상 숭배는 생활의 액세서리처럼 돼 버린다. 이러한 타력 신앙이 중생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육체를 지닌 빛의 천사는 오늘날의 철학화된 신리를 원래의 원점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 저항이 심해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다.

2천 년 전의 고타마도 인도에서 당시의 화석화 된 낡은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의 성전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혀 설법에 어려움을 겪었다. 예수도 내가 설한 10계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아 결국 몸을 희생시키는 결과가 됐다.

신리에 낀 먼지를 털기 위해서 많은 빛의 천사들이 지상계에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지만 어떤 자는 생불이 되어 일종파를 형성하여 그 속에 안주하다가 돌아오는 수도 많았다.

나도 육체를 지니면 과거의 철학화 된 망령에 아마 시달리게 되겠지만, 지상계의 인류는 하루 빨리 신불의 자식된 긍지를 일깨워 고타마나 예수 당시의 신리를 되찾아야 하며 이것만이 미망에 빠진 마음을 구제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고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였다.

이와 같이 빛의 천사는 정법을 행하고 포교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모세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이상과 같은 현상이나 신리를 부정하기 전에 종교의 자세를 역사적으로도 잘 고찰하여 스스로의 마음 속에 있는 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의문에 대해서는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그 해답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생기고 다시 줄기찬 탐구를 거쳐 새로운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문과 해답의 윤회를 통해서 우리는 마침내 신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수호령의 여러 모습 1

1천 년, 3천 년이 지나는 동안 그때그때 통치자나 그 나라의 국민성, 습관, 풍습 등에 의해서 한 가지 신리가 천차 만별로 변모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신의 의식인 신리가 시대의 흐름이나 천재지변에 의해서 변할 리 없다.

원투스리라고 자칭하는 나의 수호령 모세가 가르쳐 주는 신리는 신비의 베일을 벗고 인간미마저 풍긴다. 외국어 사투리가 섞인 말이지만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가르침은 나의 마음 속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평안과 기쁨이 되었다. 내가 쓴 모세의 말을 아내에게 읽어주고 있을 동안에도 곁에 와서 나의 저서에 대해서 비판을 해 준다.

"내가 출생했던 당시에 비해서 현대는 물질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편리한 점이 많다. 쓰는 것도 자유롭고 통신망도 발달되어 있다. 커뮤니케이션도 자유롭다. 단 한 가지 어려운 것은 경제 제일주의 속에 상실돼 버린 인간성의 회복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문명의 시대라고 하지만 여러 가지 영적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에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이 눈뜰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와 같이 실재계의 천사와 직접 대화할 수 있다.

나는 이럴 때 사는 보람을 느낀다. 천사의 사랑의 말씀에 젖는 기쁨은 비할 데가 없다.

가령 부모가 없는 아이에 대해서도

"인간은 누구나 신의 자식이다. 육체의 부모는 내 자식을 사랑하고 정성껏 키워준다. 그것도 신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불행하게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여, 하늘인 아버지에게 의지하여라. 너희는 모두 신의 자식이다. 너희의 마음의 세계를 보다 따뜻한 하늘의 아버지가 육체의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사랑으로 감싸줄 것이다. 하늘인 아버지께 사랑을 구하라.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힘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여, 하늘인 아버지의 품으로 들라."

하고.

이럴 때 나의 가슴은 벅차오른다. 우리들은 모두 신불의 자식이란 자각을 가지고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새삼 다짐하게 된다.

과거 푸르나도라야 야니푸트라라고 불렸던 사토군과 수부티라고 불렸던 고시바씨는 과거세에 있어서도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것 같다.

푸르나는 지금부터 2626년 전에 인도 서해안의 숫파라카에서 태어났던 사람이다. 목재상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오두전단이란 향을 가지고 코사라의 사바티, 카시의 바라나시 사케타, 콘산피, 팟치 등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행상하였다.

어느 날 그는 배 안에서 사바티의 상인으로부터 고타마 붓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라자그리하 근교에 있는 베느베나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그는 불법을 깨달았고, 고타마와는 같은 나이였으며 설법을 잘한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중부 인도의 팟치국에 가서 불법 포교에 힘썼다.

고타마가 입적하기 2년 전에 79세로 이 현상계를 하직했다. 그 후 중국에서 한 번, 일본에서 세 번 육체를 지니고 수행하였다고 수호령은 알려 주고 있다.

수부티는 중부 인도 코사라국의 사람이었다. 사바티와 카필라 바스투에 카시산의 비단과 생활용품을 팔던 상인이었다. 카필라 바스투의 외교 관계의 장관이었던 토라이 맛슈엘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후에 카필라 바스투의 외무를 담당하였다. 맛슈엘 장관의 후임이 된 젊은 고세를 이 나라에 데려온 인연으로 고타마 싯달다의 불제자가 되었다.

그는 저승인 실재계와 이승인 현상계의 관계 즉 색즉시공의 신리에 특히 통달한 분이었다고 수호령은 말하고 있다. 그 후 4세기경 중국에서 태어나 대흑천으로서 신리를 설법하는 빛의 천사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하였다.

대흑천의 역할을 담당한 제천선신은 그 수가 많다. 불교적인 이름이지만 실재계에서는 이렇게 호칭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고시바씨의 친척 가운데 인도 시대에 아사지라고 불렸던 고타마의 제자가 육체를 지니고 있다. 이런 사실은 영도가 열린 카필라 바스투 시대의 고세나 맛슈엘의 후신이 과거세를 회상하며 말하고 있다. 

아사지의 수호령은 인도 당시를 상기시키면서 

"나는 고타마님의 아버지 슛도다나왕의 명령을 받들어 코스다니야, 마하나만, 밧데야, 웃파카 등과 함께 카필라성을 떠나 수행하고 있는 고타마님을 호위하면서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을 여행하였습니다. 고타마님이 깨달으신 후 우리들은 미가다야에서 제자가 되었는데 나는 라자그리하 근교에서 만난 샤리푸트라를 베느베나에 계신 붓다에게 안내한 사람입니다. 샤리푸트라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라고 설명했다.

또 맛슈엘은 카필라 바스투에서 장관직에 있었으며 고타마 싯달다보다는 40세 연상이었다. 슛도다나왕과 마하프라자바티에 관한 일을 잘 기억하여 당시의 생활상이며 고타마가 출가할 때의 양친의 슬픔과 괴로움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현재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인도 시대에는 남성이었다. 

고세는 맛슈엘 장관 은퇴 후의 경제 장관이었지만 말년에 전생윤회의 과정을 깨달았으며 현재는 정법 포교를 위한 증명 역할의 사명을 띠고 활약하고 있다. 

가와쿠치시에 살고 있는 아라이 씨도 자신의 과거세가 카필라 바스투의 식사당번이었다는 것을 코사라어로 말하고 있다. 인도 당시의 이름은 레바리라고 하였다. 또 레바리의 친구가 영도를 열어 카샤파 찬다카라고 자칭하면서 고타마가 출가할 때 말을 몬 마부였다고 말했다. 시부야구의 곤토씨이다.

이와 같이 카필라 바스투와 관계가 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영도가 열려 약 2500여 년이 지난 오늘 당시의 상황을 어젯일처럼 기억하고 그 때의 말로 대화하고 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옛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다.

또 마가다, 코산비, 팟치, 코사라, 크루, 사케다, 찬바, 카피라, 미슈라 등 여러 나라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과거세가 열려 당시의 풍습, 노래 춤 등이 재현되기도 한다.

9월경부터 자주 나타나던 불상처럼 아름다운 한 여성이 내 앞에 나타나 부드러운 말을 건네왔다.

"저는 미륵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오랫만입니다."

그 인사말에 나는 놀랐다. 관세음 보살과 같은 차림이었지만 옷은 좀더 화려하게 보였다. 몸 전체가 황금빛 아로로 싸여 있었다. 눈의 착각이 아닌가 하여 잘 살펴보아도 산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누이동생의 눈에도 보였던지

"앗 나와 가까운 친구입니다. 인도 때도 중국 때도 몹시 폐를 끼친 분인데 미륵 보살이라고 합니다."

하고 누이의 수호령 사휘씨가 말했다. 미륵 보살은 나에게 

"당신 부인의 수호령입니다."

라고 말해서 나는 또 한번 놀랐다.

나는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은 피했다. 왜냐하면 아내는 태어나서 30여 년이 지나도록 신앙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영적 현상에 대해서도 매우 냉정했으며, 자신에겐 아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신앙에 대해서 강제로 권하는 일이 없었다. 강요하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는 내 사업의 대리를 맡고 있는 시간이 많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안심해서 사업과 신리 탐구 두 가지 일에 힘쓸 수 있었던 것도 아내의 노력과 협조가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훌륭한 수호령이 평소에 아내를 지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안심하였다.

다음 날 밤 나는 응접실에서 친구와 아내를 앞에 놓고 신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인도 시대의 경문이 내 입을 통해 줄줄 흘러나왔으며 어느새 그 목소리의 파장을 타고 내 마음은 빛의 세계로 올라갔다. 아내의 마음은 신리의 빛에 싸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격의 눈물이었다. 

이 날부터 사흘 동안 아내는 이 순간을 사기할 때마다 절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 기분을

"남편의 경문이 제 마음 속에 울려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 지더니 치밀어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라고 술회하고 있다.

어쩌면 누이동생처럼 수호령이 아내의 의식을 빌어 말할지 모르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영도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부조화한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은 부조화한 세계를 통해서 악마나 동물령의 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오늘부터 일 주일 동안 새벽 한 시부터 두 시까지 옥상에 올라가서 지금까지의 인생을 철저하게 반성해서 마음의 조화를 이루시오." 하고 주의시켰다. 

우리들 마음의 왕국은 무한대로 넓다. 하지만 부조화한 상념을 가지면 빛이 없는 어두운 세계로 통하여 여러 가지 고민의 원인을 만든다.

노이로제·불안·초조·노여움·질투·오만 등에 빠지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비록 빛의 천사가 수호하고 있지만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검은 상념에 덮히게 되면 수호령도 옆에서 그 상태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흡사 텔레비전의 다이얼처럼 빛의 세계로 통하는 것도 어두운 세계로 통하는 것도 자신의 의사가 결정한다. 행동은 의사의 작용에 따라 나타난다. 마음이 늘 어두운 세계로 통해 있으면 현상은 괴로움과 슬픔으로 나타난다. 항상 밝은 세계로 채널이 맞추어져 있으면 현상도 역시 밝고 평화로운 생활이 된다. 이 지상계는 선도 악도 자신이 지어내는 것이며 그 어느쪽을 택하든 선택의 권리는 인간 자신이 신으로부터 부여받고 있다. 그 결과 선의 결과에는 기쁨과 즐거움의 열매가 열리고 악의 결과에는 투쟁과 파괴·고통·원한·시샘·비방·병마 등의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다. 이 현상계는 수행장이다.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어서 나타난다.

신의 빈틈없는 인과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 빛의 천사라 할지라도 어두운 마음의 인간을 구제할 수는 없다. 신리를 알고 마음을 선으로 돌려야 한다. 그렇지 못한 채 영도를 열면 마음은 부조화한 것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래서 아내의 경우도 나는 신중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시대는 바뀌었다. 마음의 수행장은 산중이 아니라 도시 한 가운데이며 그것도 우리 집 옥상이다. 새벽 한 시가 되면 도시의 하늘도 맑아지고 날씨가 좋을 때는 별도 보인다. 조용하여 마음을 조화시키기에는 다시 없는 시간이다. 하루 한 시간 씩의 반성하는 명상을 통해서 아내의 마음은 빛에 싸여 정화되어 갔다.

10월 23일 밤, 내가 조화의 빛을 넣자 마침내 아내의 의식을 수호령이 지배하여 부드러운 일본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미륵보살이라고 합니다. 지금 일본 여성으로 태어나 있는 이 친구의 수호령·지도령의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본체의 마음의 문이 열렸기 때문에 내가 수호령을 맡고자 합니다. 나는 본체의 분신이며 15세기 중국에서 가란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라고 말했다. 아내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여성이었다. 인도의 옷차림이었으며 미륵보살로서의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그 이후부터는 거의 중국 옷차림이 아니면 저 세상에서의 최신의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가란은 아내의 잠재 의식의 실마리를 풀고 인도 당시의 말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부터 2607년 전 인도의 바라나시의 교외 카파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마이트레야라고 합니다마는 애칭 마타레, 타레이아 혹은 사치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 집안은 마하 바라문이었으며 카시국의 바라나시에 교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아버지는 바바리라고 하며 제정을 맡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바라문을 공부하였습니다마는 거의 형식에 사로잡힌 학문이었고 마음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습니다."

아내는 금생에서는 별로 사찰에 다니는 일도 없었으며 불교는 물론 신불에 대해서도 그야말로 풋내기였다. 이 때 아내의 육체는 조그마하게 보였으며 '또 한 사람의 광채'로 빛나는 몸체는 놀랄만큼 크게 보였다. 흡사 진주가 조개껍질을 열고 커다랗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이 수호령이 지배하고 있을 때의 우리들의 육체는 조그마하게 앞으로 밀려나고 그 뒤에 운체 같은 '또 한 사람의 자신'은 광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는 이 광자체와 육체가 일체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광자량은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만큼 신리에 도달하고 있는가 그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말하자면 그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 신리에 적응한 상념과 행위에 비례해서 광자량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세상을 떠날 때의 영혼이 바로 '또 한 사람의 광자체'이다. 수호령은 광자체의 옆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당사자의 의식을 지배해서 뇌 속으로 신호를 보내고 성대를 빌어 말을 하기도 한다. 우리들 그룹의 대부분은, 자신의 상념행위를 조화했을 경우에 상대방의 광자체를 볼 수 있다. 물론 빙의령도 똑똑하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인간의 질병이 빙의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발견했다. 빙의령은 동물령·부유령·지옥령·마왕 등이 대부분이며 그 사람의 어두운 광자체에 붙어 있다. 빙의된 사람들의 후광은 어두우며 마음이 조화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노이로제의 99%는 머리 둘레에 빙의령이 붙어 있다. 자신의 의식을 점령 당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우리가 신리에 맞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을 때이다. 90%의 잠재의식과 10%의 표면의식이 조화되고 두 의식 사이에 있는 상념의 필름에서 부조화의 구름이 걷힐 때 마음의 문이 열려 영시가 가능해진다. 

마음의 조화라는 것은 망원경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것과 흡사하다.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조화는 신리라고 하는 법칙에 따른 생활 행위와 상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수호령이나 지도령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의 의식이 광자체를 지배하여 아무리 먼 곳에라도 금방 가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들의 현세의 육체와 광자체는 영자선이라고 하는 선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이 영자선이 끊어지면 육체와는 결별이다. 즉 육체의 죽음이다.

이러한 사실이 차례차례 밝혀졌다. 그런데 만일 무당이나 영매가 부조화한 영을 불러들이고 있으면 몸이 몹시 무겁게 되거나 또는 쓰러지기도 한다. 이럴 때 빙의령이 떠난 뒤에도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 여운이 남게 되며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마침내 육체 의식까지 침범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악령에 의한 최후는 비참하기 그지없다. 

반대로 빛의 천사가 지도하고 있을 때에는 우리의 육체는 경쾌하고 마음고 평안하다. 경문 등을 외면서 나타나는 영의 급수는 저단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관자재 보살은 그러한 경문의 구역과는 관계가 없다. 경에 쓰인 신리대로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내의 수호령은 아내의 잠재의식을 문을 열고 과거세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바라문은 우파니샤드나 베다로써 대자연의 본질을 배우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비교이기도 했습니다. 날마다 종교적인 생활을 되풀이하였으며 아이들은 우파니샤드를 주로 가정에서 배웠고 마음에 대한 구체적인 공부는 없었습니다. 일정한 기간 가정을 이끌고 그 가운데에서 신앙 생활을 이어 나가다가 나중에는 혼자 요가의 수행을 위해서 입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말년에는 사로몬으로서 유행하는 것이 바라문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바라문도 오랜 역사를 겇는 동안 가족제도가 자손중심주의로 바뀜에 따라 종족 보존의 번뇌가 쌓여 정법의 마음을 상실하였고 형식적인 제정 행사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욱이 계급제도는 신리에서 크게 벗어나 가혹한 인종차별이 생겨났으며 바이샤나 수드라와는 혼인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바라문의 교육이며 가정 등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었다. 바라문의 자손은 아무리 무능해도 사회적 대우를 받았으며 반대로 계급이 낮은 신분의 자식은 아무리 훌륭한 재능이 있어도 무시당하는 사회상이었던 것 같다.

바라문 내에도 다시 계층이 있어서 마하 바라문의 지위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크샤트리아는 바라문의 다음 단계의 무사 계급으로서 라잔(왕)의 지배 하에 있었다.

고타마 싯달다는 카필라 바스투의 슛도다나 라잔(왕)의 본부인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카필라성은 그렇게 큰 성이 아니었으며 본채는 지금의 평수로 약 500평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성벽은 사암으로 쌓아졌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다. 본채에 크샤트리아의 대기실이 있었다고 했다.

지바현 정도의 면적밖에 되지 않는 나라였으며 코사라국의 속국이었다. 때는 전란시대였으며 언제 평화스러운 보금자리가 파괴될지 몰랐다. 타국의 스파이들이 숨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늘 받고 있었다. 특히 독살이 많아다. 그래서 식사 당번은 가장 신임 받는 인물이 맡고 있었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을 영도가 열린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속국의 왕도 정치 권력이 강력해지면 무력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하게 되었으며 바라문의 권위는 날로 실추되고 있었다. 왕들의 경제적 뒷받침은 거의가 상고업자인 바이샤 계급의 부자들이 했다. 나아가 최하 계급인 수드라들의 공물과 노동력에 의해서 국토 방위의 체게가 구축되고 있었다.

고타마는 이러한 계급 제도에 모순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누구에게나 평등한 인격으로 대했다.

인간이 만든 지위나 명예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며 오직 중도의 생활을 통해서 조화와 평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설법하였다. 바라문은 제정을 위한 공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또한 라잔, 바이샤, 수드라 등의 경제적 원조를 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는 일본의 봉건시대의 사농공상의 계급제도와 흡사했다. 자기들의 종족을 지키기 위해 권력, 무력, 경제력으로 계급제도를 확립하여 약한 자를 노예처럼 부렸던 차별 사회에 다름 아니다.

신불은 전 인류에게 평등한 자비를 베풀고 있다. 인간의 지와 의가 만들어 낸 인종 차별은 신불에 대한 모독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은 모두 평등한 신의 자식이며 신의 육체로써 이 현상계에서 수행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구상의 만생 만물은 신의 나타남이며 원래 인간의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수행장으로 빌리고 있는 이 지구상에 인류는 어리석게도 권력, 경제력, 폭력 등의 집단 사회를 제멋대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 차별은 현대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릇된 상념과 행위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야간 자의 근면과 노력에 대해서 강자들은 언제가는 그 가치성에 눈뜨게 되며 마음의 조화를 이룰 것이다.

수호령과 지도령은 이렇게 여러 가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수호령인 가란씨는 말을 계속한다.

"현대 사회의 불균형과 마찬가지로 바라문은 바라문 종족의 일방적인 권위의식 때문에 배타적이 되어 정법에서 어긋난 길에 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코사라국, 마가다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라잔의 지배 하에 넘어갔으며 바라문 종족의 힘은 쇠퇴해졌습니다. 대 바라문의 지도자였던 나의 백부님 바바리는 이런 정국을 몹시 안타까워 했습니다. 사회의 혼란은 신리가 실추되고 인간의 마음이 상실된 결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시대에는 반드시 붓다가 나타난다고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백부님은 신의 계시에 의해서 '코사락국의 카필라 바스투에서 고타마 싯달타라는 붓다가 나타나 지금 마가다국의 도시 라자그리하 교외에 있는 그리트락터 다나에서 신리를 설법하고 있다'라고 하시면서 덧붙여 '이 붓다는 삼계를 꿰뚫어보는 법력을 갖추었으며 마음을 깨달으신 분이다'하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라문은 학문적인 지의 깨달음이지만 붓다는 마음을 깨달으신 위대한 분이다. 너희들이 이 붓다에 귀의하여 마음과 그 수행법을 공부하도록 하여라'라고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바라문의 무력함을 개탄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붓다에 사사할 사람의 인선이 끝났는데 저도 거기 뽑혔습니다. 그 때의 명단을 기억나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 마이트레야, 사라난다, 포사라 등이 여성이었으며, 최연소는 푼나카, 멧타그, 청년은 도다카, 헤이마카, 우파시바, 캇파, 난다, 바드라비다, 아지타, 우다야, 학자인 자토칸닌, 몽가라자, 그리고 나의 종형 핀기야가 40대의 나이로 일행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남성 13명, 여성 4명, 도합 17명의 일행은 한 방에 모여 백부님으로부터 여행에 대한 주의점, 붓다에게 드릴 질문 등 상세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백부님은 당시 120세로서 건강하였습니다마는 나이가 너무 많아 먼 마가다국까지 여행하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붓다를 직접 만나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우리 일해 17명을 떠나보냄으로서 달래시었습니다.

저를 보고 

'이제 마이트레야와도 만나지 못하겠구나. 부디 붓다의 제자가 되어 자신을 깨닫기 바란다. 너의 이름을 미륵이라고 개명해 주겠다. 미륵이란 자비와 조화라는 뜻이다.'하고 정답게 손을 잡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척 저를 아끼고 귀여워해 주신 백부님을 하직하면서 저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백부님은 일행에게 '나의 출생, 이름, 제자의 숫자 등 모든 것을 너흐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붓다는 다 아실 것이다. 진짜 붓다라는 것이 확인되거든 신리를 잘 배워 훌륭한 제자가 되어라. 그리고 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한 사람은 나에게 돌아오도록 하여라. 도중에는 험난한 계곡과 산길이 많다. 밤에는 산길을 피하도록 하여라. 산적과 산짐승을 조심해야 한다. 핀기야는 단단히 책임을 지고 떠나라. 여자들도 남자처럼 녹피옷을 남장을 할 것, 위험할 때에는 전후좌우에 남자들이 에워쌀 것, 서로 도와가며 여행할 것이며 깨닫기 전에는 돌아와서는 안 된다'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자비로운 송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 저의 나이는 21세였습니다. 여행의 걱정보다는 고타마님은 어떤 분인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우리들은 백부님께 작별의 인사를 올리고 각자 집에 돌아가 여장을 갖추고 교회에 모여 새벾녘에 강가의 강둑을 따라 일로 마가다국을 향해서 내려갔습니다."

가란씨는 지금부터 2586년 전의 기억을 잠재의식에서 풀어내어 당시의 상황을 어제일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수호령은 나의 펜을 끌고 물흐르듯이 이 끌을 써내려 간다.

 

수호령의 여러 모습 2

아내의 수호령은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우리들 일행은 강가 강둑을 따라 동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평지, 산, 계곡 등을 타고 파타리가마까지 걸었습니다. 핀기야는 녹피에 글ㄴ 지도를 보면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강의 지류를 타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상류에 있는 라자그리하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마가다국의 도시에는 수행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랐습니다."

바바리가 주의시켰던 것처럼 산과 계곡은 험난하였으며 호랑이, 하이에나, 뱀, 산적들을 피하느라고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힘드는 여행길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의 거리로 약 400킬로미터 정도의 여행이었다.

라자그리하 교외에 높이 솟은 그리트락터 다나의 산정에 일행이 당도했을 때 고타마는 많은 사로몬들을 상대로 연생에 대해서 설법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들 일행은 맨 뒷자리에 앉아 고타마님의 설법을 듣고 있었습니다. 아지타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고타마님의 머리둘레가 황금 빛으로 빛나고 있다'하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아지타는 금방 영시가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설법이 끝나자 우리들은 고타마님 앞으로 나아가 오른쪽으로부터 핀기야 이하 17명이 한 줄로 늘어서서 절을 했습니다.

고타마님은 '원로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오시는 날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바리님은 언제나 건강해서 좋군요. 그 분은 훌륭한 분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백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들 마음 속을 완전히 읽고 계셨습니다. 몽가라자는 아니타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고타마님 앞에서 엎드려 우른 것이었습니다. 가장 의문을 많이 품고 있었던 두 사람에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으며 우리들도 붓다의 위대함에 경복하여 그 길로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의 설법은 생로병사에 대한 것이었으며 마음이 어떻게 번뇌의 원인이 되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이트레야는 고타마의 신변의 시중을 들기도 했고 법회가 시작되기 전에 종을 울리면서 마을 사람들을 모으는 일도 하였던 것 같다. 우파니샤드와 베다의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다들 고타마의 신리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고 수호령은 말한다.

제자로 입문한 다음날 핀기야는 바바리에게 보고하기 우해서 귀로에 올랐다고 한다.

바바리는 지금 실재계에 있는 상단계의 대지도령이며 불교에서는 아축여래라고 불리는 분이다. 이따금 아내의 지도령으로서 우리 집에 올 때가 있다.

인도 시대의 바바리가 바라문을 정법으로 바로잡기 위한 사명을 띠고 바라문 신분으로 내어났으며 마이트레야가 붓다와 중생과의 교량 역할을 하기 위해서 바라문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등도 당시의 신리의 계획에 따라 실현된 것이었다. 마이트레야가 제자로 입문했을 때 고타마의 나이는 40이었다고 한다.

마이트레야는 40년 가까이 고타마의 종단에서 포교에 진력했으며 고타마가 81세의 나이로 쿠시나가라에서 실재계로 승천할 때는 62세였으며 그 때 그녀는 베느베나에 있었다고 한다.

"고타마님이 입적하신 지 90일째 되던 날 마하 카샤파님을 중심으로 한 집회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들 500명 제자들은 베느베나 근교의 동굴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보현님 측근자들이 빠진 476명이 모였습니다. 고타마님이 45년간 설법하신 내용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서 아난다님이 중심이 되어 법문을 기억하여 구전하였으며 우파리님은 수행승이 지켜야 할 계율을 정리했던 것입니다.

고타마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자신의 마음을 믿어라',

'지금은 어둡지만 내일이면 동쪽에서 해가 떠 오른다',

내가 떠나도 너희들 세계에는 언제나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등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어제일처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불멸이다.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도 이 신리를 이어받아 인간들의 잃어버린 마음에 불멸의 빛을 밝혀 주려고 하는 것이다. 

올바른 법의 빛에 의해서 어느 날엔가 이 현상계에 평화로운 유토피아가 건설될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다시 수호령은 말한다.

"나는 제1회 결집이 끝난 후 고향인 카파리로 돌아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불교를 지도했습니다. 나는 특히 내가 장래에 다시 육체를 지니고 쟈브토우바의 켄토마테 도시에 태어날 것이며 그 도시는 아름다운 도로, 루비나 다이아로 장식된 건물들로 숲을 이룰 것이며, 앉아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고타마님이 늘 나에게 예언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미래불이라고 불렸으며,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또다시 이 현상계에 태어날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78세로 이 세상을 하직했던 것입니다."

아내의 수호령은 이와 같이 인도 당시의 생애의 대략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저 세상과 이 세상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뻤다. 지금까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 받아온 내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지고 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아내의 과거세에 대해서 가란씨는 말을 이어간다. 

"나의 분신은 그 후 4세기에 중국의 광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을 만도라고 했습니다. 임장씨의 정법 포교에 협력했던 것입니다. 이 때 현재의 일본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의 분신은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이 분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이트레야가 태어났던 인도 시대와 만도가 태어났던 중국 시대 사이에 나의 분신 그레타파우모우타가 이집트에서 태어났었다. 기원전 200년경이다. 이 분신은 그 후 9세기에 다시 일본에서 태어났었다. 

마이트레야의 분신은 그 후 일본의 전국 시대에 지금의 나라에서 기무라라는 마을 촌장의 딸로 태어났으며, 철이 들어서는 교토와 나라의 사찰에 나가서 법문을 곧잘 들었다. 오하라메(독특한 옷을 입고 교토에 나가서 물건을 팔던 여인들)라는 장사를 하였으며 즐거운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미찌코라는 이름이었으며 아내의 말씨와 매우 닮았다. 가란씨와 마찬가지로 불교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어 내 생각과 같은 것을 설법하기 때문에 나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신리에 관한 대화는 전혀 없었다. 

미찌코씨 다음으로는 중국에서 15세기에 또다시 가란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유학을 공부해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도 교육자였으며 매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결혼해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실수없는 일생을 보냈다.

이어서 1969년 11월 과거세의 마이트레야의 사촌이었던 핀기야가 일본에서 태어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어떤 종교 단체의 간부로 포교 활동을 하고 있던 중 나의 '마음'에 대한 강연을 듣고 나서는 과거세와 같은 경로로 신리에 귀의했던 것이다. 실업가로서 대사업을 해온 사람답게 지금까지의 종교적 사고 방식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의 세계로 돌아온 것 같다.  그전까지는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종교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의문을 품은 채 마음의 평화는 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 원인이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에 있었음을 깨닫고 지금은 올바른 생활 방식을 되찾았다고 기뻐하고 있다.

마이트레야 일행이 그리트락터 다나에 도착했을 때 코스타이야 등 다섯 명의 최고의 제자를 비롯해서 카샤파 형제, 샤리푸트라, 마우드갈리아야나 등이 귀의하여 이미 1,300여명의 종단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은 나의 수호령도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다. 

이러한 영적 현상이 우리집을 중심으로 일어나 형제들조차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것이 차례차례로 실증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러 오는 자, 병환자, 종교 단체의 스파이, 영감을 얻어 장사에 이용하려는 자 등 그 내방자들은 여러 가지였다. 하지만 나쁜 마음을 품고 온 사람들도 우리의 신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더 이상 거짓말을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기 보존 자아아욕에 찬 그들은 그 어떠한 비밀도 숨길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는 차원이 다른 저 세상의 협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전국 각지에 포교가 되어 정법은 핵분열되어 그 그룹에서 다시 영능자가 나타나 신리의 증명에 활약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신리를 설법한 빛의 천사들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자, 전문적인 학자, 영시가 가능한 자, 영청 능력자, 수호령·지도령이 영능자의 입을 빌어 설법하는 자, 등등 제각기 역할을 담당하여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기적이라고 생각되는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다 저승의 빛의 대지도령을 비롯한 천사들의 협력에 의해서 일어난다. 이 영적 사실을 가지고 신흥 종교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오로지 '마음'의 부활을 부르짖을 따름이다.

올바르게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라고 부르짖고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