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분재(불교에서 사후에 고통받는 자를 위해 음력 7월15일에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피안회의 의미
"불교에는 우란분재라든가 피안회라고 하는 불사가 있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유래가 있는 것입니까."
어느 종교대학 학생의 질문이다.
이 두 가지는 불교의 행사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이다. 그리고 두 가지는 다같이 선조 공양과 연관된다. 조상을 숭배하는 국민성이 생활 속에 융화되고 습간화되어 어느새 자연의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중날 곧 음력 7월 보름날에는 조상의 영이 집을 찾아 오므로 음식을 차려 공양하고 등을 켜고 춤을 추어 그들을 위안하는 한편 살아 있는 자신들도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여 오늘날과 같은 떠들썩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스님들의 대목철이기도 하여 경문도 공양된다.
이와 같은 습관을 경험하고 떠난 자들 중에는 백중날을 큰 낙으로 삼고 기다리고 있는 자도 있다. 자손과 조상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일정한 계절을 정하여 조상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행위는 좋은 일이다.
우란분재의 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고타마 붓다가 38세 때의 일이다. 카피라 바스투에서 붓다를 호위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다가 아라한이 된 5인의 크샤트리아 중의 한 사람인 아사지가 마가다국의 라자그리하 근교를 거닐고 있을 때 바라문의 우바뎃사(훗날의 샤리푸트라)가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아사지는 지적인 종교논쟁을 다른 종파에서 걸어오는 일이 있더라도 거기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붓다로부터 평소에 주의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를 경원하고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샤리푸트라는 아사지를 보고 이 분은 보통의 인물이 아니다, 여느 사마나나 수라마나들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침착하고 얼굴색도 좋으며 태도도 겸허하여 결코 교만하지 않다, 그런 모습에 끌려 어떻게 해서든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아래인 아사지의 뒤를 밟고 따라갔다. 그리고 대화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마침 아사지가 시주받은 죽이 든 바리를 왼손에 들고 앉을 자리를 살피고 있는지라 샤리푸트라는 얼른 자기가 선정할 때 쓰는 풀로 엮은 방석을 나무그늘에 깔아주고 "수라마나여, 부디 이 방석 위에 앉아서 공양을 드십시오."하고 권했다. 아사지는 사양했으나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샤리푸트라와 함께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논쟁을 걸어올 것으로 여겼던 아사지는 샤리푸트라의 너무나 친절한 행위에 대해서
"저 같은 어린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어 참으로 감사합니다."하고 고마워 했다.
"원, 별말씀을. 저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뒤를 좇아왔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샤리푸트라가 대꾸했다. 아사지는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놓여 경계심이 풀렸다. 그 당시의 바라문 교도는 학문적으로 매우 수준이 높았으며 진리에 대한 논쟁을 즐겨하는 자가 많았다. 샤리푸트라가 물었다.
"수라마나여, 당신은 어디서 깨달음을 얻었습니까?" 그러자 아사지는 겸손하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아라한의 경지입니다. 붓다의 경지에 이르기에는 요원합니다."
"당신을 보고 붓다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과 같은 훌륭한 제자를 두신 스승은 행복하시겠습니다. 스승은 훨씬 더 훌륭한 분이시겠지요. 당신의 스승은 어떠한 수행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샤리푸트라의 말은 간곡했다.
아사지는 평소에 고타마 붓다가 가르치는 법을 실천하고 있으면 다른 수행자의 눈에 훌륭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엇인가 가슴뿌듯하게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사지는 대답했다.
"저의 스승은 코사라국 카피라 바스투의 왕자 고타마 싯달다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 분은 모든 원인과 결과 그리고 연생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마음의 척도를 팔정도로써 정하여 일상의 상념과 행위를 바르게 하여 수행에 정진하라고 지도하고 계십니다."
샤리푸트라는 이야말로 진짜이다, 신을 모셔놓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이것이야말로 진짜가 아닐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드어 설레는 가슴을 달래면서
"당신의 스승에게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찾아헤매던 분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하고 아사지의 손을 잡고 감격하는 것이었다.
"라자그리하에서 북동쪽으로 산골짜기를 타고 한참 나아가면 나란다라고 하는 고을이 나옵니다. 저는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스승은 아산쟈라고 불리는 바라문입니다. 이 스승 밑에서 우파니샤드를 공부하고 엄격한 수행을 쌓고 있는 수라마나입니다. 저와 함께 수행하는 친한 친구가 한 사람 있는데 우리가 참 붓다를 만나게 되면 서로 연락하여 함께 공부하자는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꼭 함께 소개해 주십시오."
하고 아사지의 손을 잡고 흔드는 것이었다.
아사지는 망설여졌지만 붓다에게 의논들여 보고 내일 이 장소에서 대답해 주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베느베나로 돌아왔다. 베느베나로 돌아오자마자 아사지는 그날 있었던 일을 붓다에게 여쭈었다. 붓다는 이야기를 다 듣고나자 이렇게 말했다.
"그 두 사람은, 전세에서도 나의 법을 공부하여 정도를 닦은 사람들이다. 금세에서도 도를 닦아 나와 함께 다시 중생의 마음에 광명의 등불을 켤 것이다. 마침내 서로 만날 기회가 왔나보다. 아사지여, 과거세의 연생의 벗이 오는구나. 내일 설법하는 시간에 그들을 안내해 오도록 하여라."
이미 붓다는 자기에게 귀의해올 두 사람의 일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사지는 약속한 대로 이튿날 샤리푸트라를 붓다 앞으로 인도했다. 붓다는 콘타니아, 우르베라 카샤파 등 천 수백 명의 수라마나들 앞에서 "지금 찾아온 두 사람의 사로몬은 과거세에서 나와 함께 정법을 닦은 사람들인데 금세에서도 도를 닦아 상가의 지도자가 되리라."라는 말로써 모든 제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코스타니아를 비롯한 고참 제자들은 방금 입문한 신참자가 어째서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불만스럽고 의아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붓다의 말에 크게 놀란 것은 고참 제자들이 아니라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가슴에 솟아오르는 뜨거운 감격과 까닭없는 눈물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오랜 재회의 기쁨처럼 이유도 없이 그저 한없이 기쁘기만 하고 눈물이 흐르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 뒤 상가의 공기는 고참 사로몬들의 불만 때문에 적지 않게 조화가 흔들렸다.
"수라마나들이여, 잘 들어라. 법에 신구가 없는 것처럼 제자에게 신구의 차이가 없다. 금세만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일찍 온 자와 늦게 온 자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제자가 된 자는 후배를 잘 지도할 수 있ㄷ록 자신을 바로잡아 정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지 아니한가.
붓다는 과거세도 현세도 내세도 꿰뚫어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최근에 온 샤리푸트라도 마하 몽가라나(목련존자)도 금세에 있어서는 다른 수라마나들보다 늦게 온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세에서는 나와 함께 정법을 설법한 인연인 만큼 가장 오래된 고참 제자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과거세에서 수행을 쌓은 두 사람은 곧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전생윤회의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금세만의 판단으로 신구의 차별을 두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서로 열심히 도를 닦아 마음을 바로잡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도자라든가 지배자라는 것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그 능력과 행동을 보고 받들게 됨으로써 자연히 정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신구에 의해서 혹은 무력이나 권력에 의해서 사람의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지혜와 용기와 노력으로 중도의 생활을 쌓아나갈 때 사람들은 자애에 넘치는 그를 지도자로 받들고 흠모하게 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쌓아온 수행에 의해서 그 그릇이 크며 그 마음은 원만하고 풍족하다. 멀지 않아 이 사실이 증명될 날이 있을 것이다."하고 힘주어 설법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몽가라나는 마음의 문을 열고 천상계와 지옥계를 꿰뚫어 보는 영능을 얻어 천안의 제일인자가 되었다.
그래서 고타마 붓다가 과거세에서도 붓다였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며 상대방의 육체적 결함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까지도 똑똑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아라한이 되었다. 몽가라나가 그의 천안으로 자기의 어머니가 어디서 살고 있는가 하고 찾아보았더니 어두운 세계에서 혼자 외롭게 일을 하고 있었다. 몽가라나는 물 한 모금이나마 어머니에게 공양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물은 별안간 화염에 싸이고 마는 것이었다.
이 일을 붓다에게 여쭈었더니 "너의 어머니는 생전에 자기만을 위할 줄 알았지 타인에게 보시할 줄 몰랐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베풀어 준 적이 없었다. 항상 자기 중심으로 살았고 남에게서 받기만을 바랐다. 자기의 뜻에 맞지 않은 자는 바라문 신분을 내세워 수드라를 대하는 것처럼 업신여기는 짓을 서슴없이 해댔다. 그러한 자신의 마음과 행위에 대한 응보로서 지금 화염지옥에 떨어져 시련받고 있는 것이다. 몽가라나여, 너는 너의 모친을 대신하여 어려운 사람들에게 되도록 많이 보시하여라. 너의 모친은 그런 너의 행위를 보고 자신의 삶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너의 노력과 자비행이 모친을 구하리라." 하고 타이르듯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붓다의 말씀대로 어머니를 위하여, 또한 저를 위하여, 괴로워하는 중생들에게 보시 공양하겠습니다."
몽가라나는 그 뒤 일정한 날을 정하여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자애의 보시행을 실천하였다.
이와 같이 본래의 우란분재의 목적은 죽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하지 않았던 보시행을 살아 있는 자손이 대신 행하는 일을 말한다. 습관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형되고 본래의 모습에서 멀어지기 일쑤이다.
그 뒤 3개월쯤 지나 샤리푸트라도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여 과거세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상가의 지도자가 되었다. 붓다의 예언대로 샤리푸트라와 마하 몽가라나는 마음을 깨달았고 많은 수라마나들은 그들의 지도자로서의 그릇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오다쿠에 살고 있는 A.K(당년 23세)의 과거세, 즉 전생은 아사지였다. 그래서 A.K는 인도시대의 기억을 당시의 코사라말로써 어제의 일처럼 설명하면서 우란분재의 유래를 이상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90%의 잠재의식 중에는 마치 테이프 레코더나 비디오 테이프처럼 과거세의 일체가 기록 녹화되어 있다.
정법 생활을 실천하여 마음의 구름이 걷히면 스위치를 눌러서 그 테이프 레코더를 재생시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반야바라밀다라는 말로써 표현하고 있다. '내재되어 있는 위대한 지혜에 도달한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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