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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uism/요가 바시슈타

까짜의 이야기

by Yuneelif 2018. 6. 25.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동이 트자, 부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기도를 올렸습니다. 추달라는 생각의 힘으로 일곱 바다의 신성한 물을 담고 있는 황금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이 성수로 그녀는 왕을 씻어 주고, 그를 황제의 자리에 앉혀 주었습니다. 그녀는 "당신은 이 우주를 보호하는 여덟 명의 신성한 수호신이 발하는 광채를 갖추소서."라고 기원했습니다.

왕은 다시 추달라를 그의 왕비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생각의 힘으로 군대를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했습니다.

가장 위풍당당한 코끼리를 탄 왕과 왕비를 선두로 하여, 전 군대가 그들의 왕국으로 진군해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쉬키드바자는 그의 고행 생활과 관련된 여러 장소들을 추달라에게 손으로 가리켜 주었습니다. 그들은 곧 그들의 도성 외곽에 당도했고, 거기에서 그들은 시민들로부터 놀랄 만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추달라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쉬키드바자는 일만 년이란 기간에 걸쳐 그 왕국을 통치했습니다. 그 후 그는 윤회를 통한 어떤 환생도 없는 니르바나(석유 없는 등불 같은 해방)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왕 중에서도 으뜸가는 왕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쾌락을 향유하며,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산 뒤에, 그에게는 오직 약간의 사뜨바 잔류물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최고의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오, 라마여! 그와 꼭 같이, 아무 슬픔도 없이, 자발적이고도 자연스러운 활동에 종사하십시오. 일어나십시오. 세상의 쾌락을 즐기시고, 또한 궁극의 해방도 즐기십시오.

오, 라마여! 나는 이와 같이 그대에게 쉬키드바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그대는 결코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쉬키드바자가 통치했듯이 통치하십시오. 그대는 이 세상의 쾌락을 향유하고, 또한 궁극의 해방을 얻을 것입니다. 신들의 스승인 브리하스빠띠의 아들, 까짜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라마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신이시여! 브리하스빠띠의 아들인 까짜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지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바시슈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쉬키드바자처럼, 까짜 역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어느 날, 그는 무척이나 삼사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브리하스빠띠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 이 삼사라의 우리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브리하스빠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삼사라의 이 감옥 같은 집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오직 완전한 포기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까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브리하스빠띠는 이러한 사태의 변화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같이 살거나 헤어지는 일로 인하여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8년간에 걸친 은둔과 고행 후에, 까짜는 우연히 아버지를 다시 만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한 뒤에 8년 동안이나 고행을 했습니다. 제가 아직도 지고의 평화를 얻지 못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브리하스빠띠는 단지 그가 전에 말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서 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하나의 단서로 삼아서, 까짜는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나무껍질조차 버렸습니다. 이렇게 그는 또 3년 동안 고행을 계속했습니다. 다시 그는 아버지를 찾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한 뒤에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팡이와 옷 등도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는 참나 지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브리하스빠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모든 것은 오직 마음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포기야말로 완전한 포기이다." 이렇게 말한 뒤에, 브리하스빠띠는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까짜는 마음을 버릴 수 있도록, 마음을 찾기 위하여 내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찾아 봐도 그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찾을 수 없자, 그는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몸과 같은 신체적인 물질은 마음으로 간주될 수 없지. 그렇다면 왜 내가 헛되이 이 무고한 몸을 벌해야 하나?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가서, 마음이라는 그 무서운 적의 서재를 물어봐야겠구나. 그것을 알면, 나는 그것을 포기하겠다."

이렇게 결심을 하고, 까짜는 아버지를 찾아, "제가 마음을 버릴 수 있도록 부디 마음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물었습니다. 브리하스빠띠는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마음이 '나'라고 한다. 너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아감이 마음이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어렵습니다."라고 까짜는 말했습니다. 그에 대해 브리하스빠띠는 "다른 한편으로 보면, 네 손아귀에 있는 꽃을 뭉개는 것보다 더 쉽고, 너의 두 눈을 감는 것보다도 더 쉽지. 왜냐하면 무지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자아감이란 것도 없다. 그것은 무지와 망상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자아감이 어디에 있나? 그것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것은 무엇이냐? 모든 존재들에게는 언제나 오직 하나의 순수한 의식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이 자아감은 말에 불과하다. 아들아! 그것을 포기하라. 그리고 자기 한계나 마음의 조건화를 버려라. 너는 시간이나 공간 등에 의해 결코 제한받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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