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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쌍윳따니까야

제22장 존재의 다발 쌍윳따Khandhasamyutta I.근본오십경 1.나꿀라삐따의 품 Nakulapituvagga

by Yuneelif 2018. 10. 15.

22:1 나꿀라삐따의 경 Nakulapitu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박가 국의 쑹쑤마라기리에 있는 베싸깔라바나 숲의 미가다야 공원에 계셨다.

그때 장자 나꿀라삐따가 세존게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장자 나꿀라삐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장자]"세존이시여, 저는 늙고 노쇠하고 고령인데다가 만년에 이르러서 몸에 병이 들어 종종 병고에 시달립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조노가 존경스러운 수행승들의 모습을 친견하러 오는 것조차 힘듭니다. 제가 오랫동안 안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세존]"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그대의 몸은 허약하고 낡아버렸습니다. 장자여, 하물며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아주 잠시라도 건강하다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나의 몸은 괴로워하여도 나의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배워야 합니다.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그러자 장자 나꿀라삐따는 세존께 하신 말씀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존자 싸리뿟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싸리뿟따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은 나꿀라삐따에게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장자여, 그대의 감관은 고요하며 안색이 청정하고 밝습니다. 오늘 세존을 친견하고 설법을 듣지 않았습니까?"

[장자]"존자여,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존자여, 저는 지금 세존께서 가르치신 설법으로 감로와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존자여, 바로 전에 제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저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늙고 노쇠하고 고령인데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몸에 병이 들어 종종 병고에 시달립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존과 존경스러운 수행승들의 모습을 결코 친견하러 오는 것조차 힘듭니다. 제가 오랫동안 안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슴드리자 세존께서는 제게 이와 같이 '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장자여, 그대의 몸은 허약하고 낡아버렸습니다. 장자여, 하물며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아주 잠시라도 건강하다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나의 몸은 괴로워하여도 나의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배워야 합니다.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자여, 이와 같이 저는 세존께서 가르치신 감로와 같은 설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싸리뿟따]"장자여, 그런데 그대는 세존께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면 몸도 괴로워하고 마음도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더 질문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장자]"존자여, 저는 존자 싸리뿟따를 뵙고 그 말씀하신 것의 뜻을 알려고 멀리서 온 것입니다. 존자 싸리뿟따께서 그 말씀하신 것의 뜻을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싸리뿟따]"장자여,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숙고하십시오.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장자]"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장자 나꿀라삐따는 존자 싸리뿟따에게 대답했다.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장자여, 어떻게 해서 ㅗㅁ도 괴로워하고 마음도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되지만 그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라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느낌을 자아로 여기거나, 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느낌이 있다고 여기거나, 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느김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되미나 그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지각을 자아로 여기거나, 지각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거나, 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지각이고 지각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지각이고 지각의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되어 지내지만 그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형성을 자아로 여기거나, 형성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거나, 형성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되지만 그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형성이 ㅣ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장자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의식을 자아로 여기거나, 의식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거나, 의식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며, '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됩니다. 그는 '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겨 속박되지만 그 의식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장자여, 이렇게 해서 몸도 괴로워하고 마음도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장자여, 어떻게 하면 몸은 괴로워하여도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는 것입니까?

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글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서, 물질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위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느낌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느김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고, 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지각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지각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지각이고 지각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지각이고 지각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지각이 ㅣ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나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형성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형성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형성이고 형성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의식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의식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의식이고 의식은 나의 것이다.'라고 여기지 않아 속박되지 않지만, 그 의식은 변화하고 달라집니다. 그렇지만 그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렇게 하면 몸은 괴로워하여도 마음은 괴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장자 나꿀라삐따는 존자 싸리뿟따가 말한 것에 대해 환희하고 기뻐했다.



22:2 데바다하의 경 Devadah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끼야 족이 사는 데바다하 라는 싸끼야 족의 마을에 계셨다. 그때 많은 수행승들이 서쪽 지방으로 여행하다가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슴드렸다.

[수행승들]"세존이시여, 우리는 서쪽 지방으로 가서 서쪽 지방에서 지내고자 합니다."

[세존]"수행승들이여, 싸리뿟따에게 들러 인사를 하였는가?"

[수행승들]"세존이시여, 존자 싸리뿟따에게 들르지 못했습니다."

[세존]"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싸리뿟따에게 들러 인사를 해라. 수행승들이여, 싸리뿟따는 현자로서 청정한 삶을 닦는 수행승들의 수호자이다."

[수행승들]"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그런데 그때 존자 싸리뿟따는 세존께서 계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엘라갈라 나무가 우거진 숲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 수행승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인사드리고 세존의 오른쪽을 돌아 존자 싸리뿟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싸리뿟따와 인사를 나누고 안불르 주고받은 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수행승들은 존자 싸리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수행승들]
벗이여 싸리뿟따여, 우리는 서쪽 지방으로 가서 서쪽 지방에서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스승께 들러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싸리뿟따]"벗들이여, 여러 다른 지방을 돌아다니며 수행승들에게 질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은 무엇을 설하고 무엇을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나는 존자들이 가르침을 잘 배웠고, 잘 이해했고, 잘 경쳥했고, 숙고했고, 지혜로 잘 통찰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대들이 대답할 때 세존께서 말씀하신대로 말해야지 진실이 아닌 것으로 잘못 대변하지 말고, 가르침에 일치하도록 설명하여, 그대들의 주장의 결론이 비판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수행승들]"벗이여, 우리는 존자 싸리뿟따를 뵙고 말씀하신 그 뜻을 배우기 위해 멀리서 왔습니다. 존자 싸리뿟따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분명하게 밝혀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싸리뿟따]"그렇다면 벗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숙고하십시오."

[수행승들]"벗이여,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그 수행승들은 존자 싸리뿟따에게 대답했다. 존자 싸리뿟따는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벗들이여, 다른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는 수행승들에게 질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은 무엇을 설하고 무엇을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이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이 설하더라도 더 질문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무엇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현자들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느낌에 관한 욕마오가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이 설하더라도 더 질문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위험을 보는 까닭에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만약 물질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벗들이여, 만약 느낌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ㄴ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벗들이여, 만약 지각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ㄴ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벗들이여, 만약 형성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벗들이여, 만약 의식에 관해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정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열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마오가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위험을 보는 까닭에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이 설하더라도 더 질문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왕족의 현자나 바라문의 현자나 장자의 현자나 수행자의 현자로서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마오가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 벗들이여, 그대가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어떠한 공덕을 보고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설하고 가르치는가?'라고 질문하는 호기심 많은 현자들이 있습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합니다.

'벗들이여, 만약 물질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만약 느낌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만약 지각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만약 형성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만약 의식에 관해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열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나면, 그에게는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물질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느낌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깓락에 지각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형성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우리의 스승께서는 이와 같은 공덕을 보는 까닭에 의식에 관한 욕망과 탐욕의 극복을 가르칩니다.

벗들이여, 만약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더라도, 바로 현세에서 즐겁게 살고 장애없이 고뇌 없이 번뇌 없이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도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다면, 세존께서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끊는 것을 찬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벗들이여, 만약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면, 바로 현세에서 괴롭게 살고 장애가 많고 고뇌가 많고 번뇌가 많아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므로, 세존께서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끊는 것을 찬탄하신 것입니다.

벗들이여, 만약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더라도, 바로 현세에서 장애가 많고 고뇌가 많고 번뇌가 많아 괴롭게 살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불행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다면, 세존께서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는 것을 찬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벗들이여, 만약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실천하며 지내면 바로 현세에서 장애가 없고 고뇌가 없고 번뇌가 없이 즐겁게 살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이 자명하므로, 세존께서는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성취하는 것을 찬탄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존자 싸리뿟따는 설했다. 그 수행승들은 거기서 존자 싸리뿟따가 설한 바에 대해 환희하고 기뻐했다.



22:3 할릿디까니의 경 1 Pathamahaliddikan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존자 마하 깟짜나는 아반띠 국의 꾸라라가라 시의 산중턱에 있었다.

그때 장자 할릿디까니는 존자 마하 깟짜나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장로 마하 깟짜나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장자 할릿디까니는 존자 마하 깟짜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할릿디까니]"존자여, 세존께서는 여덟 게송의 품의 학인 마간디야의 질문의 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재가의 삶을 버리고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며

성자의 삶을 사는 님은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비우고

선호를 뛰어넘어,

사람들과는 다툼을 여의어야 하리라.'"

[할릿디까니]"존자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간략이 말씀하셨는데 그 상세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마하 깟짜나] 장자여, 어떻게 재가의 삶을 사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물질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물질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장자여, 느낌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느낌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장자여, 지각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지각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장자여, 형성의 세계는 의식의 집이니, 의식이 형성의 세계에 대한 탐욕에 묶이면, 재가의 삶이라고 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재가의 삶을 사는 자가 됩니다.

장자여, 어떻게 출가의 삶을 사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물질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느낌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지각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고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형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의식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출가의 삶을 사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출가의 삶을 사는 자란 이와 같습니다.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형상이라는 이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소리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냄새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맛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감촉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사실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으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를 주처에 매인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형상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귾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소리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냄새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맛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주처를 여은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감촉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사실이라는 인상의 주처에서 방황하는 것과 구속되는 것이 있지만, 여래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지고, 뿌리째 뽑히고,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해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라고 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마을에서의 사귐에 매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사람이 속인과 교류하고 즐거움을 나누고 괴로움을 나누며 즐거울 때에 즐거워하고 괴로울 때에 괴로워하고 해야 할 일에 연루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의 사귐에 매인 자가 됩니다.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읜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던 사람이 속인과 교류하지 않고 즐거움을 나누지 않고 괴로움을 나누지 않으면 즐거울 때에도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울 때에도 괴로워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연루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읜 자가 됩니다.

장자여, 어덯게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가득 채운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을 떠나지 않고 욕망을 떠나지 않고 애착을 떠나지 않고 갈증을 떠나지 않고 번뇌를 떠나지 않고 갈애를 떠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가득 채운 자가 됩니다.

장자여, 어떻게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비운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던 사람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떠나고 탐욕을 떠나고 애착을 떠나고 갈증을 떠나고 번뇌를 떠나고 갈애를 떠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비운 자가 됩니다.

장자여, 어덯게 선호에 묶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나는 미래에 이와 같은 물질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느낌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지각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형성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의식을 취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선호에 묶인 자가 됩니다.

장자여, 어덯게 선호를 뛰어넘는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나는 미래에 이와 같은 물질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느낌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지각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형성을 취할 것이며, 이와 같은 의식을 취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선호를 뛰어넘는 자가 됩니다.

장자여, 어떻게 다툼에 매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알지 못하지만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안다. 그대는 가릠고 계율에 관해 아는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고 나는 올바로 실천한다. 그대는 앞에서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하고 뒤에서 설해야할 것을 앞에서 설한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가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그대의 이론은 성취되었더라도 그 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행해야 한다. 그대는 싸움에서 진 것이다. 어디 해명해 보라'라고 논쟁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다툼에 매인 자가 됩니다.

장자여, 어떻게 다툼을 여읜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알지 못하지만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안다.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아는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고 나는 올바로 실천한다. 그대는 앞에서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하고 뒤에서 설해야할 것을 앞에서 설한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가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그대의 이론은 성취되었더라도 그 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행해야 한다. 그대는 싸움에서 진 것이다. 어디 해명해 보라'라고 논쟁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다툼을 여읜 자가 됩니다.

장자여, 세존께서는 여덟 게송의 품의 마간디야의 질문에 대한 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재가의 삶을 버리고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며

성자의 삶을 사는 님은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비우고

선호를 뛰어넘어, 

사람들과는 다툼을 여의어야 하리라.'

장자여,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이 말씀하셨는데 그 상세한 의미는 이와 같습니다."



22:4 할릿디까니의 경 2 Dutiyahaliddikani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존자 마하 깟짜나는 아반띠 국의 꾸라라가라 시의 산 중턱에 있었다.

그때 장자 할릿디까니는 존자 마하 깟짜나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마하 깟짜나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장자 할릿디까니는 존자 마하 깟짜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할릿디까니]"존자여, 세존께서는 제석천의 질문에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들의 갈애가 다하여 해탈하면,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하고, 궁극적인 안온에 도달하고, 궁극적인 청정에 도달하고, 궁극적인 구경에 도달하고, 하늘사람과 인간의 최상자가 된다.'라고 말슴하셨습니다. 존자여, 세존게서 이처럼 간략히 말씀하셨는데 그 상세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하 깟짜나]

"장자여, 물질의 세계에 대해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다면,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 모든 것을 부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시키고, 끊어버리고, 여의어서 마음이 해탈된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장자여, 느낌의 세계에 대해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다면,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 모든 것을 부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시키고, 끊어버리고 여의어서 마음이 해탈된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장자여, 지각의 세계에 대해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다면,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 모든 것을 부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시키고, 끊어버리고, 여의어서 마음이 해탈된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장자여, 형성의 세계에 대해 욕망이 있고, 탐욕이 있고, 환락이 있고, 갈애가 있고, 그리고 접근과 집착, 마음의 독단과 주착과 경향이 있다면,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 모든 것을 부수고, 사라지게 하고, 소멸시키고, 끊어버리고, 여의어서 마음이 해탈된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장자여, 세존께서는 제석천의 질문에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 그들의 갈애가 다하여 해탈하면,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하고, 궁극적인 안온에 도달하고, 궁극적인 청정에 도달하고, 궁극적인 구경에 도달하고, 하늘사람고 인간의 최상자가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자여, 세존께서 이처럼 간략히 말씀하셨는데 그 상세한 의미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22:5 삼매의 경 Samadhi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와나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부르셨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수행승들이여, 삼매를 닦아라. 수행승들이여, 삼매에 들면 수행승은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아는가? 물질의 발생과 소멸, 느낌의 발생과 소멸, 지각의 발생과 소멸, 형성의 발생과 소멸, 의식의 발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의 발생이고, 무엇이 느낌의 발생이고, 무엇이 지각의 발생이고, 무엇이 형성의 발생이고, 무엇이 의식의 발생인가?

수행승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의 발생이고, 무엇이 느낌의 발생이고, 무엇이 지각의 발생이고, 무엇이 형성의 발생이고, 무엇이 의식의 발생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사람이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무엇이 그가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하는 것인가?

그는 물질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물질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물질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느낌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느낌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느낌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지각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지각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느낌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형성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형성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느낌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의식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의식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느낌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발생이며, 이것이 느낌의 발생이며, 이것이 지각의 발생이며, 이것이 형성의 발생이며, 이것이 의식의 발생이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물질의 소멸이고, 무엇이 느낌의 소멸이고, 무엇이 지각의 소멸이고 무엇이 형성의 소멸이고 , 무엇이 의식의 소멸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사람이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가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 것인가? 

그는 물질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타착하지 않는다. 물질에 대한 환희가 없고 환호가 없고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물질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느낌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느낌에 대한 혼희가 없고 환호가 없고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느낌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지각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지각에 대한 환희가 없고 환호가 없고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지각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형성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형성에 대한 환희가 없고 환호가 업속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형성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의식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의식에 대한 환희가 없고 환호가 없고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의식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소멸이고, 이것이 느낌의 소멸이고, 이것이 지각의 소멸이고, 이것이 형성의 소멸이고, 이것이 의식의 소멸이다."



22:6 홀로 명상의 경 Patisallana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세존]"수행승들이여, 홀로 고요히 명상하며 수행을 닦아라. 수행승들이여, 홀로 고요히 명상하면, 수행승들은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아는가? 물질의 발생과 소멸, 느낌의 발생과 소멸, 지각의 발생과 소멸, 형성의 발생과 소멸, 의식의 발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물질의 발생이고, 무엇이 느낌의 발생이고, 무엇이 지각의 발생이고, 무엇이 형성의 발생이고, 무엇이 의식의 발생인가?

수행승들이여,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사람이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무엇이 그가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하는 것인가?

그는 물질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물질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물질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느낌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느낌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느낌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지각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지각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지각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형성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형성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형성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그는 의식에 환희하고 환호하고 탐착한다. 의식에 대한 환희가 있고 환호가 있고 탐착이 있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난다. 의식에 대해 환락이 생겨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난다. 그 집착을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발생이며, 이것이 느낌의 발생이며, 이것이 지각의 발생이며, 이것이 형성의 발생이며, 이것이 의식의 발생이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물질의 소멸이고, 무엇이 느낌의 소멸이고 무엇이 지각의 소멸이고 무엇이 형성의 소멸이고, 무엇이 의식의 소멸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사람이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가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 것인가?

그는 물질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물질에 대한 환희가 없고 환호가 없고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물질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느낌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느낌에 대한 환희가 없고 환호가 없고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느낌에 대해 환락이 소멸함녀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지각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지각에 대한 환희가 업속 환호가 업속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지각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형성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형성에 대한 혼흐가 없고 환호가 업속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형성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하낟.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그는 의식에 환희하지 않고 환호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의식에 대한 환희가 없고 환호가 없고 탐착이 없다면, 그에게 환락이 생겨나지 않는다. 의식에 대해 환락이 소멸하면 그것에 대한 집착이 소멸한다.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물질의 소멸이며, 이것이 느낌의 소멸이며, 이것이 지각의 소멸이며, 이것이 형성의 소멸이며, 이것이 의식의 소멸이다."



22:7 집착의 두려움에 대한 경 1 Pathamupadaparitassana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세존]"수행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집착의 두려움과 무착의 안온에 관해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새기도록 해라. 내가 설하겠다."

[수행승들]"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행승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수행승들이여, 집착의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한 자에게도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에게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면, 물질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한다. 그리고 그에게 물질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면 그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이 사로잡히면 곤혹해하고 간구하고 집착하고 전율하고 공포에 떤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지지 않아서, 느낌을 자아로 여기거나, 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느낌이 있다고 여기거나, 느김 가운데 자아ㅏㄱ 있다고 여긴다. 그러한 자에게도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에게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면, 느낌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한다. 그리고 그에게 느낌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면 그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이 사로잡히면 곤혹해하고 간구하고 집착하고 전율하고 공포에 떤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지각을 자아로 여기거나, 지각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거나, 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한 자에게도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에게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면, 지각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ㅜㄹ현한다. 그리고 그에게 지각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면 그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이 사로잡히면 곤혹해하고 간구하고 집착하고 전율하고 공포에 떤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형성을 자아로 여기거나, 형성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거나, 형성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한 자에게도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에게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면, 형성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한다. 그리고 그에게 형성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면 그것들이 그들의 마으을 사로잡는다. 마음이 사로잡히면 곤혹해하고 간구하고 집착하고 전율하고 공포에 떤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지지 않아서, 의식을 자아로 여기거나, 의식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거나, 의식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한 자에게도 의식은 변호하고 달라진다. 그에게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면, 의식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한다 그리고 그에게 의식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면 그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이 사로잡히면 곤혹해하고 간구하고 집착하고 전율하고 공포에 떤다.

수행승들이여, 집착의 두려움이란 이와 같다. 그렇다면, 수행승들이여, 무착의 안온함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물질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한 자에게도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물질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하지 않는다. 물질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더라도 그것들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으면 곤혹해하지 않고 간구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글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서, 느낌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느김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느낌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한 자에게도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느낌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하지 않는다. 느낌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더라도 그것ㄷㄹ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으면 곤혹해하지 않고 간구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서, 지각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지각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지각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지각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한 자에게도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지각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하지 않는다. 지각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더라도 그것들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으면 곤혹해하지 않고 간구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는다.

수행승ㄷ르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글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치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서, 형성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형성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ㄴ고, 자아 가운데 형성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형성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한 자에게도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겐ㄴ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형성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하지 않는다. 형성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더라도 그것들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으면 곤혹해하지 않고 간구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라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의식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의식을 가진 것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 가운데 의식이 있다고 여기지 않고, 의식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한 자에게도 의식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러나 그에게는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의식의 변화에 따라 수반하는 의식이 출현하지 않는다. 의식의 변화에 따라 수반된 두려운 현상들이 생겨나더라도 그것들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다.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으면 곤혹해하지 않고 간구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무착의 안온함은 이와 같다."



22:8 집착의 두려움에 대한 경 2 Dutiyupadaparitassana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세존]"수행승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집착의 두려움과 무착의 안온함에 관해 설하겠다. 그것을 듣고 잘 새기도록 해라. 내가 설하겠다."

[수행승들]"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행승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수해승들이여, 집착의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물질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글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느낌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지각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아서, 형성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형성의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수행승드리여, 세상에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은 고귀한 님을 보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려지지 않고, 참사라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지지 않아서, 의식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의식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의식의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집착의 두려움이란 이와 같다. 그러면 수행승들이여, 무착의 안온함이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치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물질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물질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렇지만 물질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느낌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느낌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렇지만 느낌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지각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지각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렇지만 지각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글려서, 형성을 '이것은 나으 ㅣ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형성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렇지만 형성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는다. 수해승들이여, 세상에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고귀한 님을 보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을 알고 고귀한 님의 가르침에 이글리고, 참사람을 보고 참사람의 가르침을 알고 참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려서, 의식을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에게도 의식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렇지만 의식이 변화하고 달라지더라도, 그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무착의 안온함은 이와 같다."



22:9 과거,미래,현재의 경 1 Pathamatitanagatapaccuppanna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무상한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물질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오 같이 보아서 과거의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물질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물질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느낌이 무상한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느낌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느낌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느낌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느낌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지각이 무상한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지각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지각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지각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지각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형성이 무상한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형성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형성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형성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형성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의식이 무상한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의식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의식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의식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의식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22:10 과거, 미래, 현재의 경 2 Dutiyatitanagatapaccuppanna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와나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부르셨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물질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물질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물질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느낌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느낌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느낌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느낌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느낌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지각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혅의 지각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지각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지각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지각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형성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형성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형성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형성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형성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의식이 괴로운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의식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의식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의식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의식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22:11 과거, 미래, 현재의 경 3 Tatiyatitanagatapaccuppannasutta


한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의 제따와나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수행승들이여'라고 수행승들을 부르셨다. 수행승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물질이 실체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물질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물질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물질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느낌이 실체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느낌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느낌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느낌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느낌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지각이 실체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지각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지각에 마음ㅇ르 두지 않고, 미래의 지각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지각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형성이 실체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형성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형성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형성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형성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

수행승들이여, 과거와 미래의 의식이 실체가 없는 것인데, 하물며 현재의 의식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수행승들이여,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과거의 의식에 마음을 두지 않고, 미래의 의식을 추구하지 않고, 현재의 의식에서 싫어하여 떠나고, 그것이 사라지고 소멸하도록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