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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uism/하타프라디피카

4. Caturthopadesah/Shambhavi-mudra

by Yuneelif 2017. 2. 2.

4-35 Shambhavi-mudra

Vedas, Sastras, Pranas 등 경전들은 대중에게 노출된 매춘부와 같지만,  Shambhavi-mudra는 대중들에게 노출이 안된 양가집 규수와 같다.


4-36

마음을 안따르락스야(내적 대상)에 고정시키고, 눈을 깜빡거리는 것 없이 계속해서 뜨고 있는 것을 베다와 사스트라에서도 비밀리에 보존되어 있는 삼바비 무드라이다.

(내적인 감각이나 이미지에 마음을 고정시킨다. 예를 들어 차크라 중 한 군데에마음을 집중하고 시선은 외부의 일정한 대상에 고정을 시킨 상태에서 깜박거리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다. Laksya락스야는 어떤 특정한 대상이 없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것이고, Alambana알람바나는 실질적 혹은 심리적인 특정한 대상이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하타요가쁘라디피카-


마음작용의 대상을 내부의 차크라에 두고 시선을 위로 향해서 눈동자를 미간으로 모아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샴바비 무드라이다. 이 방법은 베다와 사스크라 교전敎典 등에도 비장秘藏되어 있다.-요가비전-)


4-37

찌따와 쁘라나를 안따르락스야(내적 대상)에 잃어버린 채로 있으면서, 시선은 바깥을 향하고 있으나 어떤 것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이것이 바로 삼바비 무드라이다. 이것은 스승의 은총에 의해 얻어진다. 순야(공)든 순야가 아니든 삼부의 궁극적인 원리로 빛을 발한다.

(삼부는 시바신을 말한다. 시바는 공의 상태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空으로서으 공은 비어있는 공이 아니고, Saccidananda(환희)로 채워져 있다.


4-38

샴바비 무드라와 케차리 무드라는 그 상태와 집중하는 초점은 다르지만 찌뜨수까(환희심으로 가득한 존재)의 특징인 라야의 상태에 이르는 축복을 가져다준다.


(삼바비 무드라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응시하면서 눈을 고정시키는 반면, 케짜리 무드라는 혀를 입천장 뒤 연구개로 삽입을 하고 시선은 양미간 사이의 내면을 응시하면서 고정시킨다. 참고로 어떤 책에서는 삼바비 무드라는 심장 즉 아나하따 차크라에 의식을 집중해 주는 것도 있다. -하타요가쁘라디피카-)


4-39

두 눈동자를 치켜 떠 미간의 빛을 향하고 눈썹을 조금 올린다. 앞에서 말한 요가의 방법(삼바비무드라)에 따라 마음이 안정되면, 곧 운마니의 상태가 된다.


4-40

몇몇 사람은 아가마에 설명되어 있는 모순된 견해에 현혹되고, 몇몇은 니가마에 의해, 다른 몇몇은 스스로의 논법에 현혹되어 있지만, 그 누구도 어느 것이 진실로 해방으로 이끌어 주는지 모른다.

(공식적으로는 초기에는 베다를 Agama로 간주하고, 다른 경전들은 Nigama로 분류되었으나 차후에 이러한 구분이 사라지고, 태고 적붙어 전해 내려온 모든 책들은 이제 구분없이 불리워진다. 아가마, 니가마는 베다와 같은 경전이나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 교의나 주의, 학설, 가르침을 실은 교전이나 성전을 일컫는 말이다.-하타요가쁘라디피카-)


어떤 사람들은 교전의 그물에 걸려 현혹되고, 어떤 사람들은 제사의식에 관한 규정의 번잡스러움에 의해 현혹되고, 어떤 사람들은 철학적 논의에 의해 현혹되어 그 어느쪽도 생사를 초월하게 하는 Taraka(인도자, 구제자)의 진정한 오의를 알지 못한다.-요가비전-


4-41

요기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눈은 반쯤 감아 코 끝에 시선을 고정한다. 이다와 핑갈라로부터 수슘나로 쁘라나가 흐르게 한다. 찬드라(이다)와 태양(핑갈라)을 소멸의 상태로 이끌어 갈 때 빛의 형상을 띠는 천지만물의 완전한 원인인 종자, 최고의 진실, 궁극적인 실재에 이른다는 것은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4-42

diva낮(핑갈라)나 ratri밤(이다)가 작용을 하고 있을 때는 Lingam에 예배(명상)해선 안된다. 언제든 낮과 밤(이다와 핑갈라)을 억제하고 링감을 모셔야 한다.

(이다와 핑갈라에 기가 흐르고 있을 때는 아트만을 명상하지 말라는 상징적인 구절이다.  삼매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슘나에 기가 흘러야 함을 뜻한다. 이 두 나디가 호흡수행에 의해 흐름을 멈추고 수슘나만이 열리는 가장 좋은 명상의 시간은 새벽과 해질녘, 한 낮과 늦은 밤이라고 경전들은 언급하고 있다.

링감의 예배는 의식의 집중, 곧 아트만의 명상을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요가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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