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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ism/카발라

비전의 카발라 - 25장. 내부 성소의 건설

by Yuneelif 2017. 7. 29.

25장

 

내부 성소의 건설

 

 

계시록 21장에서 성 요한은 자신이 본 천상의 예루살렘에 대한 비젼vision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이 본 천상에서 내려온 이 새 예루살렘은 사실 새로 거듭난 인간을 상징한다. 이 성도聖都를 이루고 있는 온갖 보석과 진주는 성품들을 나타낸다. 성도의 문들은 진주로 이루어져 있다. 왜 진주인가? 진주는 순수의 상징이다. 그 문들은 인체의 모든 문들, 즉 눈, 귀, 입 등을 의미한다.

 

천상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그 문들은 절대적으로 순수하게 유지되고 지켜져야만 한다. 복음서의 가르침과 우리의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옛 아담에서 그리스도로 변형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전을 건설하는 메이슨(석공)들처럼 일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신전은 돌과 모르타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친절, 겸손, 관용 등의 지극히 정묘한 재료로 만들어진다. 인간 존재의 지극히 숭고하고 성스러운 모든 순간들에 강력한 영적 충동이나 감정을 체험할 때 우리는 순수한 원소와 입자들을 방출한다. 그것들은 내면의 신전의 건설에 사용되는 건설 재료이다.

 

슬프고 모욕 받고 학대 당할 때 사람들은 억압감을 표현하고 심지어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림, 음악, 시 등을 통해 신성한 미를 체험할 때 사람들은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 것이 품위 있다고 생각한다. 눈물을 보이는 것은 창피한 행동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나는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모욕이나 억압에 직면하면 당신은 의연하고 고요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반면 미를 체험했을 때 여린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할 이유가 없다. 미적 체험에서 나오는 눈물은 이슬이다. 그것은 천상의 소나기이며 영광의 조류潮流이다. 그것은 당신을 정화시킨다. 그것은 당신 내면의 정원에 있는 꽃들에 물을 주는 것이고, 당신이 앞으로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실망과 고뇌의 눈물은 당신에게 어떤 위안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경이와 찬미의 눈물 속에는 신성한 힘이 담겨 있다.

 

마스터 페테르 되노프는 그런 눈물을 흘릴 때는 깨끗한 손수건으로 닦아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눈물 속에는 마법적인 힘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경이와 찬미의 눈물 속에는 신적인 특별한 것이 담겨 있다. 그런 영적인 감정은 우리의 힘을 새롭게 해주고 내면의 신전, 새 예루살렘을 지을 수 있는 불굴의 인내심을 주기 때문이다.

 

내면의 신전, 새 예루살렘, 영체, 영광의 체 등 이 모든 용어들은 사실상 동일한 것을 상징한다. 만일 내면의 신전, 영체를 건설하지 못하면 우리는 천국에 다시 들 수 없다. 여기서 천국이란 신이 끊임 없이 창조하고 있는 '새로운 땅'를 말한다.

 

이것은 우주백색형제단에서 우리들 각자가 하고 있는 작업의 중요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상징적으로 황금과 보석이라는 불멸의 재료로 자신의 내적 신전을 건설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신전을 건설해야만 한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술집에 앉아 맥주잔이나 기울이고 게으르게 담배나 피고 소세지나 먹으면서는 새 예루살렘이 강림하지 않는다! 환상을 버리는 게 낫다. 당신의 신전, 새 예루살렘을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당신의 순수한 빛나는 사고와 감정과 행동을 통해서이다.

 

이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자신의 신전을 건설하고 있는 자들, 창조주를 자신의 내적 신전에 거주하도록 초대하는 자들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의 영광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일에 대한 어떤 칭찬이나 보답을 기대하지 말라. 그저 당신이 과거의 모든 위대한 영들이 걸은 길, 진리의 길을 선택했다는 내적 확신을 기르고 강화시켜라. 그것이 전부이다. 칭찬과 보상을 구하면 단지 당신의 신전 건설을 지연시킬 뿐이다. 앞으로 계속 전진하라. 결코 멈추지 말라. 당신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운명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모든 힘들을 소유하고 있다.

 

이 새로운 상황을 열망하는 자는 자신의 낡은 생활 방식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무 것도 자신에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나의 말을 믿으라. 약간의 노력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신은 너무도 자비로워서 확신을 가지고 간구하는 자들에게 그 구하는 것을 준다. 그러나 당신 안에 그를 위한 처소를 준비해야만 한다. 만일 당신의 가슴 속에 그를 위해 특별한 처소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는 올 수 없다.

 

예수는 말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오늘날 주님은 똑 같은 말을 할 것이다. '너의 가슴 속에는 온갖 야생 짐승들, 즉 온갖 악과 욕정을 위한 거소는 있으되 나를 위한 거소는 없구나.' 단언컨대 신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는 날 그 사람은 잃어버린 존재가 될 것이다.

 

내가 인도에서 보고 무척 기뻐했고, 나로 하여금 많은 사색을 하게 했던 것들 중의 하나는 가난한 오두막집이든 대궐 같은 부잣집이든 모든 집들마다 작은 제단이 마련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단에는 신들의 조각상이나 사진이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작은 등불이 켜져 있고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인도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축복을 얻기 우해 빛의 영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별도로 마련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제단은 때로는 건물 내부에 때로는 외부에 있었다. 심지어 호텔 베란다나 뜰에도 작은 성소가 갖추어져 있었다. 거리에서도 많은 제단들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단들이 썩 잘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온갖 물건들로 가득한 방 안에 제단이 설치돼 있고 심지어 사진들이 종종 구겨지거나 얼룩이 묻어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제단의 청결이나 정돈, 그리고 그것의 상징적 측면에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신비가나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홀로 명상할 장소가 필요하다. 확실히 명상은 방해 받지 않는 곳에서 혼자 하는 것이 더 좋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가능하다면 당신 집안에 명상을 위한 작은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라고 강하게 권하는 것이다. 신성한 장소로서 사람들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없는 그런 공간을. 공중전화 박스보다 더 크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주위 환경과 별개의 공간으로 성별돼 있고, 정묘한 진동과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서 당신이 천상의 존재들과 보다 쉽게 교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옛날 불가리아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거기서는 모든 집마다 작은 벽감에 신상을 두고 있었다. 매일 저녁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그 신상 앞에 작은 등불을 밝히고 잠시 조용히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그것은 다른 많은 나라들에도 있었던 관습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인도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빛나는 힘들과의 유대를 상실하였다. 그들은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가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물리적 보호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더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물론 물질 차원에서 모종의 보호 수단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과학은 신변의 안전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장비들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천상의 존재들을 통한 영적 차원의 보호 역시 반드시 필요로 한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곳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내가 말하고 있는 성별된 작은 성소는 은밀한 장소에 대한 물질계상의 구현일 뿐이다. 이 '은밀한 곳'은 의식의 상태이다. 그것은 자기부정, 친절, 희생, 사랑이다. 이런 의식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평화요, 빛이요, 생명인 신에게 이를 수 있다. 당신 집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실로 신이 당신을 찾아오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가슴과 혼 속에 한 장소를 성별聖別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장소는 주님을 위한, 성모를 위한, 그리스도를 위한, 대천사 미카엘을 위한 장소입니다.' 나의 말을 믿으라. 이 영광의 존재들을 위한 별도의 장소를 마련한다면 그들은 그곳으로 강림해 올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많은 빛의 영들 역시 인류를 돕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려올 적절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에 내려올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의아해 할 것이다. 당신은 말할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것도 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 그들은 모든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법칙을 존중한다. 그들은 억지로 어떤 곳에 들어갈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이 법칙이다. 그들은 지상의 거의 누구도 자신들을 기억하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 걸 보고 무척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곳에 갈 수는 없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이 법칙이다. 영적인 세계의 존재들이라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허락도 받지 않은 곳에 간다면 그들은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법칙을 알고 있는 위대한 마기는 사악한 영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마법 공식이나 심벌의 수단에 의해 자신들이 특별히 안전하기를 원하는 장소들을 보호한다. 이것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저급한 영들의 길 속에 어떤 장애가 놓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침입하여 들어와 돌아다니며 온갖 위해를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빛의 영들과 달리 그들은 들어가기 전에 특별한 초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 법칙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성한 힘들에 의해 그렇게 하는 것을 명백히(표현적으로) 금지받았을 때만 들어가기를 삼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다..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그들이 분쇄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실제로 금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서슴치 않고 침입해 올 것이다. 결국 당신은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허락한다면 어째서 신은 그들을 벌해야만 하는가? 인간은 어둠의 영들과 맞서는데 필요한 모든 힘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빛의 영들을 초대하여 강하고 아름다운 내면의 성소를 건설하는 것을 돕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세브레, 1960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