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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5장 신은 빛이며 나와 함께 있다-정법은 조화의 길

by Yuneelif 2023. 11. 17.

정법은 조화의 길

정법이란 대자연의 법칙이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법칙이 조화된 중도를 말한다.

춘하추동의 사계절, 주야의 구별, 생자필멸, 인과응보, 모두가 다 정법에 부합되지 않음이 없다.

자연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 한 정법도 바뀌지 않는다. 정법은 영원한 것이며 불교의 철학적 용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까운 생활환경 속에 정법은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고 싶으면 정법을 공부하고 정법을 실천하는 방법밖에 없다.

자연은 항상 지상의 인간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대자비를 베풀고 있다. 참은 거짓의 반대이니만큼 거짓이 있으므로 참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정법의 이치는 오직 한 가지 신의 이치를 말한다. 정법의 신리는 대자연이 가르치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유는 유를 부르고 친구는 친구를 부른다. 마음은 만물을 살리고 사랑은 만물을 감싼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며 낮은 데로 흐름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하는 자는 남도 살린다. 정법에 기초한 신리는 영원하며 불변이다. 

실천이 없는 정법은 그림의 떡이다. 그 맛을 모른다. 정법은 생활 가운데 살아 있으며 살려지고 있다.

자연을 보라. 자연은 일초의 휴식도 없이 활동하고 있다. 결코 정지함이 없다. 자연은 항상 숨쉬고 움직이고 있으므로 정법은 그 가운데 살아 있다. 이와 같이 정법은 중도에 의해서 살아 있다.

정법은 지식이 아니다. 관념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생활 행위이다. 정법을 깨달은 자는 행위에 의해서 대자연과 일체가 된다. 우주즉아의 경지는 그 극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계의 만생만물은 모두 윤회하며 한 시도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무상의 모습이다. 인간의 상념도 윤회의 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악의 상념은 악으로 통한다. 행복을 원한다면 우선 악의 상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여움, 미움, 시기, 질투, 모략 중상 등 이러한 상념을 뽑아버리고 책임, 박애, 용기, 지혜, 노력, 진보, 조화 등의 선의 상념을 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행·불행은 일상의 상념과 행위의 결과에 달렸다.

 

많은 물질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 어느 쪽이 행복할까. 가진 자일까, 못 가진 자일까. 만일 가진 자가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거나 더욱 더 많이 가지려고 용을 쓴다면 괴로울 것이다. 못 가진 자가 그것을 가지려고 탐을 내면 욕망의 포로가 된다. 이 둘 다 불행한 자들이며 마음이 빈약한 가난뱅이다. 

하루의 양ㅇ식은 몇 조각의 빵으로 족하며 잠자리는 몇 평도 되지 않는다. 

소유물의 다과로써 행·불행을 저울질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모든 물질은 언젠가는 대지로 환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벌거숭이다. 행복한 자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며 항상 만족할 줄 알고 생활하는 평화인이다.

 

이 대자연계는 신의 자비와 사랑에 의해서 존재한다. 인간도 또한 자비와 사랑의 소유자다. 

정법이라고 하는, 신불의 법에 귀의한 자는 우선 그 마음을 체득하고 그 뜻을 이해하여 실천에 옮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자비를 법에 비유하면 사랑은 법의 실천 행위다. 자비를 신이라고 하면 사랑은 인간의 행위를 의미한다. 자비는 만생만물에게 무한의 빛을 부여하며 사랑은 관용하고 상부상조하며 서로 용서하는 행위다. 자비도 사랑도 스스로 돕는 자에게 그 빛이 내린다. 마음을 소홀히 하는 자 실천을 주저하는 자는 빛을 받지 못한다.

 

사랑을 원하는 자는 사랑의 행위를 보여야 한다. 자비의 문을 들어가려고 하는 자는 법의 마음을 체득해야 한다. 말법을 구제하는 자는 여래요 신의 사자다. 여래는 정법을 설하고 자비와 사랑의 광명을 중생에게 부여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자비는 사랑의 행위에 의해서 윤회한다. 자비는 신의 세로의 빛이고 사랑은 인간의 가로의 빛이다.

 

노여움은 비록 거기에 어떠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파장은 언젠가는 자신에게 되돌아오며 영혼의 전진을 저해한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해야 한다.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지는 벼이삭이 되어야 한다. 집착하지 앟는 유순한 마음은 신의 마음이요, 법의 마음이다. 

타협은 조화의 모습은 아니다. 자아가 따르기 때무이다. 타협에 의해서 일시적인 균형은 유지되었다 하더라도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서로가 고집부리면 이 세상은 일순간에 암흑이 된다. 타협은 파괴를 막는 일시적인 방파제에 지나지 않는다. 영속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타협에는 진심의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조화는 무한의 진보와 평안을 약속한다. 조화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자기 주장이 없다. 뽐냄도 없고 아첨도 없다. 기쁨이나 슬픔이 있어도 거기 사로잡히지 않는다. 괴로워하는 자가 있으면 그 괴로움을 덜어주고 슬픈 자가 있으면 빛을 비추어 희망을 안겨준다. 사랑은 신의 마음이며 사심이 없는 , 신으로 통하는 위대한 가교이다.
이 세상이 사랑으로 충만하면 지상에는 불국토가 탄생한다. 신은 그것을 바라고 그 날이 오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다. 지상계의 인류가 조화의 영위기에 싸여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