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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5장 신은 빛이며 나와 함께 있다-심행의 참 언어

by Yuneelif 2023. 11. 17.

심행의 참 언어

대자연의 지배자인 신은 공평무사하며 인간도 또한 평등하고 차별심이 없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에는 능력의 차이, 기호의 차이, 체력의 차이, 지식의 차이, 절도의 차이, 태어나는 환경의 차이가 있으며 희노애락에도 차이가 있음은 어쩐 일인가. 부지러한 자와 게으른 자, 행동하는 자와 방관하는 자, 공부하는 자와 향락에 빠지는 자, 건강한 자와 병약한 자, 자신에게 엄한 자와 남을 탓하는 자, 애정이 깊은 자와 냉정한 자, 화합을 으뜸으로 여기는 자와 분쟁의 씨를 뿌리는 자, 겸허한 자와 오만한 자, 책임감이 강한 자와 의뢰심이 강한 자, 만족할 줄 아는 자와 욕심이 많은 자.... 이러한 차이가 평등이어야 할 인간에게 불평등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신은 결코 인간을 불평등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사념과 행동의 조화도가 그 사람을 만들고 있으며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은 늘 광명과 평안에 싸인다. 마치 청천의 햇빛이 만생만물을 육성하는 에너지로 바뀌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의 에너지도 온갖 것들을 키운다. 어두운 마음은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차단하고 성장하는 것들을 키워낸다.

그래서 신은 평등하게 자비의 빛을 쏟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달렸다.

사랑이란 관용이다. 포용력이다. 용서하는 것이다. 만일 이 지상에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물이 없는 사막의 나그네처럼 기갈에 울고 남을 돌볼 겨를조차 없을 것이다.

사랑은 서로 돕고 서로 보살피며 서로 감싸주고 서로 용서하는 그런 가운데 살아 있다.

사랑은 신의 빛이다. 지상의 등불이다. 암야를 헤매는 인간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고 살 맛이 나게 한다.

사랑이란 등대의 불빛이다. 하지만 사랑에 맹목적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 사랑은 준엄하다. 사랑은 자신에게 이기는 자, 향상을 목표로 삼고 땀흘리는 자에게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암야의 세계는 자신의 진로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전도에 무슨 장애가 있는지도 모르며 언제 웅덩이에 빠질지도 모른다. 초조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암흑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불량배들의 군상, 협박, 강도, 박해, 폭행, 사기... 등은 그대로 공포의 세계요 끝없는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고해이다.

그것은 광명을 잃은 자들의 악상념이 만들어  낸 세계이다. 투쟁과 파괴, 폭력과 무력이 득세하는 세계이다.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자는 스스로 평안한 마음을 만들어 남의 마음에 광명을 주며 악령을 물리치는 올바른 길, 신도를 걷는 자이다.

악령에게 이기는 길은 자애의 마음과 행동 이외에는 없다. 악마는 누구의 마음을 막론하고 숨어 있다. 정도를 깨닫고 용기와 노력으로 실천하고 위대한 지혜가 가세하여 자신의 결점을 수정할 때 마음 속의 악마는 멸망할 것이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자야말로 진정한 용자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은 전생윤회라는 신의 설계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의 자녀이며 신불 자신이기 때문이다.

신불은 무한의 진화를 목표삼고 무한의 대조화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인간의 전생윤회는 그 목적과 함께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대자연의 윤회와 그 틀을 함께 하고 있으며 인간만이 예외일 수는 없다.

인간이 만일 이 법을 거슬러 자의대로 하고 자아에 몸을 맡기면 그 분량만큼 보상의 짐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물질도 또한 윤회를 되풀이하고 있다. 집중과 분산이라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그 에너지는 영원한 활동을 지속한다. 그것도 모두 외부에서의 연의 작용에 의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라는 '법'을 굽힐 수는 없다.

물질활동의 목적은 생명의 전생윤회를 돕고 한 편으로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생명도 물질도 이와 같이 전생윤회라고 하는 신의 '법' 아래 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인간은 잠이 깨어 있을 때는 육체를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잠들고 있을 때는 육체가 자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 3자의 자극을 받지 않는 한 잠자고 있을 동안에는 무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육체주에서 뱃사공이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부모도, 형제도,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직장도, 아무 것도 모른다. 오관의 기능이 아무 것도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콧구멍도 귓구멍도 분명히 열려 있다. 그런데 다만 의식을 작용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비로소 육체주의 자신을 자각하게되고 아내나 가족둘의 존재도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세상의 일체의 '것'은 자기라는 의식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는 의미가 된다. 자기라는 의식이 없으면 이 대우주도 지상 세계도 자기의 육체도 인식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의식이라는 것은 이렇게 위대한 것이며 의식은 우주대의 넓이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식이야말로 신의 마음으로 통하는 진짜 자기 자신의 마음이다. 불변의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