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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5장 신은 빛이며 나와 함께 있다-예술과 정도

by Yuneelif 2023. 3. 6.

예술과 정도

예술가는 표현을 통하여 어떻게 제3자의 마음에 호소할 것인가 하는 일로 늘 고심하고 있습니다마는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자칫하면 타락하기 쉽고 또한 작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자기 만족의 독선적인 생활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마음자리를 어디에 두면 좋겠습니까?"

이것은 어떤 여자 배우의 예술과 정법에 대한 질문이었다. 마음이 없는 예술은 일시적으로는 인기를 얻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배우들은 대개가 팬들에게 둘러싸여 떠받들어지므로 교만한 마음이 생겨 사생활과 예술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함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대중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과거의 사람으로 잊혀져가는 것이 통례이다.

그 원인은 마음과 행위에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비록 화려한 환경 속에 있더라도 오만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겸허한 자세로 예술의 길에 정진해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 어두운 상념을 만들지 않게 되므로 광명에 차게 될 것이다. 

배우가 하나의 연기를 통하여 완전하게 그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과 행위까지 완전한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의 마음은 일념삼천 선에도 악에도 통하게 되는 것이므로 악역, 병자, 자살, 연인 등의 연기를 통하여 마음도 몸도 완전히 그 연기 중의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연기에서 풀려났을 때에는 올바른 마음의 척도로써 자기가 연기한 주인공의 선악을 똑똑히 반성하여 착한 것은 마음에 새기고 악한 부분은 버려야 한다. 그래서 현실 생활에서는 자기의 마음과 행위에 그것이 연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조화한 장면은 반드시 차원을 넘어서서 부조화한 세계와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병자의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사이에 실제로 주인공의 질병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주인공의 배역이 되어 있는 이상 당연히 주인공의 의식과 함께 통하고 말기 때문이다.

특히 사망한 주인공의 장면을 재현하는 경우 연기에만 그쳐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그 반작용이 현상화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원망, 질투, 비방, 노여움, 시기 따위의 연기는 그 자체가 부조화한 영들에게 통하고 있으므로 올바른 마음의 기준을 잊고 무심히 생활하고 있으면 배우 자신의 마음도 같은 상태가 되기 쉬운 것이다.

시나리오의 줄거리를 통하여 인생의 표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그 가운데서 스스로의 마음을 넉넉하게 키워나가는 것이 훌륭한 연기자의 태도라고 하겠다.

조화된 연기 내용은 관중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연기자도 조화된 인격이 될 수 있으므로 그러한 배역에서는 자기 자신을 더욱 닦아나갈 수 있다.

오락영화나 신파극 같은 데서 관중들의 마음에 악의 씨를 뿌리거나 마음을 어지럽히는 장면들은 반드시 그 반작용이 어두운 마음을 가진 연기자나 제작자한테로 돌아올 것이다.

악은 신의 빛을 가로막아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마련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주는 조화된 작품은 대중의 호응과 지지를 얻어 불멸의 명작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자극을 주고 악의 씨를 흩뿌리는, 무책임한 자들의 상업 행위는 언젠가는 엄중한 재판을 받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원작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 등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선악을 판단하는 중도에 눈뜰수록 올바른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항상 대중고 함께 숨쉬며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직업일수록 마음의 존엄성을 깨달아 행동해야 한다. 대중들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이 짇하다는 자각과 책임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단 배우뿐만 아니라 예술의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정법에 귀의하여 고도의 정신수양을 하면서 그린 그림이 최고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 주인공은 D라는 화가이다. 이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데 기교에만 치중하여 왔다.50년 가까이 지난 끝에 화가는 기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정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은 그 사람이 보내 온 편지의 내용이다.

"1971년도, 일본미술원 56회전에 출품한 저의 150호 짜리 '여름의 물'이 다행스럽게도 최고상인 미술원상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미술원상을 타는 것이 가장 큰 꿈이요 동경입니다. 그것은 큰 명예인 동시에 하나의 또 다른 관문을 통과한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로서 저의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저에게요!

저는 작년 4월 M상점의 사장으로부터 '연생의 배'를 받고 또한 토요강연에도 나가서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 때 비로소 인간의 마음과 행이의 올바른 척도를 배웠던 것입니다. 강연장엔ㄴ 입추의 여지도 없이 청중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토록 사람들이 많은데에도 놀랐지만 한편으로 저를 감동시킨 책의 저자의 풍격이 정작 종교가라기보다는 예술가다운 데에 더욱 놀랐습니다.

강연이 진행됨에 따라 성실하고 티끌만한 의심도 끼어들 틈이 없는 신리가 저의 몸과 마음을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허기진 사람이 음식을 탐하듯 매 토요일의 강연회에 나갔습니다. 신리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듯하였지만 마음의 향상은 아직도 요원한 듯하여 스스로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14세에 그림에 뜻을 두고 그 뒤 40년 이상을 이 길에 외곩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 겨우 미술원상을 받게 되었습니다만은 젋어서부터 세상에 알려진 재능있는 화가들에 비하면 부끄러운 화가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마음이 미숙함에 이르러서는 붓을 들고 있는 지금도 어딘가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다만 저와 같은 이런 사람도 4개월 동안 신리를 배운 것만으로도 이와 같은 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실재계에서 현상계에 태어날 때 매우 강한 결심을 하고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기에 그림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회의도 갖지 않고 오늘날까지 시종일관 정진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맏아들로 태어난 제가 큐슈에서 도쿄로 올라올 수 있게 된 일이나, 중학교에도 갈 수 없었던 처지에서 화가로서의 소양을 닦기 위해 근근히 독학을 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제국미술에 적을 얹고 학습의 소망을 이루게 된 일이나, 카시야마 난뿌우 선생에의 제자 입문을, 소개자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었는데 마침 거기서 선생으로 있던 국민학교 동기생의 인연으로 반년 뒤에는 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난뿌우 선생의 추천으로 동경하던 요코야마 다이칸 선생의 내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일, 또한 그림으로는 결정적 영향을 저에게 남기고 죽은 학우가 있었던 일, 후원자의 덕분에 그림을 팔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었던 일 등 일일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과 물질의 은혜를 받아 온, 지난 날의 기적같은 일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호령의 힘이었던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무명작가나 다름없는 제가 이런 시대에 자신의 창작 작업에만 몰두하여 살아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보답이 없었던 기나긴 실의의 시기를 간신히 견뎌낸 끝에 3년쯤 전부터 겨우 장려상 정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재작년에는 차점까지는 올라갔지만 원상이란 멀고도 먼 존재로 여겨졌었습니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반성을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은 저의 마음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상념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상당한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만으로써 승부하려고 덤벼들었던 어리석음을 나이가 되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난 해 출품할 그림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도 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물이 흐르듯 자연에 맡겨놓은 담담한 심경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이야말로 지도령의 이끌어줌이라고 믿고 저는 주저없이 작업에 착수하여 순식간에 기초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카시야마 선생 댁에서 있었던 기초 그림의 비평회 석상에서 선생을 비롯한 여러 선배들로부터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듣고 큰 의욕이 솟아났습니다.

곧장 본 그림에 착수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병으로 붓을 잡지 못하는 날이 많아 초조해졌습니다. 마침 그 무렵 도찌기현의 만원사에서 연수회가 열려 저는 처음으로 거기에 참석하였습니다.

병든 몸이었습니다마는 3일 동안의 일정은 설법과 수행으로 짜여진 참으로 고마운 나날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덕택에 집으로 돌아온 뒤 건강이 회복되어 예정대로 그림을 완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림을 액자에 넣고 전년도의 작품을 꺼내어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그림에는 빛이 있으며 보기드문 걸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그림에 빛이 불어넣어지기를 염하면서 그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뚜렷이 빛이 나타난 점에 댛서 저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4개월 남짓밖에 선생님의 강연을 듣지 못했던 저로서는 영혼의 향상에 전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림에 혼이 나타난 것을 보고 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연생의 배'를 인연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은 여간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절실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길은 이제부터 더 한층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과의 이 소중한 인연을 마음에 새겨 어느 날엔가 실재계로 빛과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더욱 더 팔정도를 실천해 나가려고 다짐하는 바입니다."

일본 화가 와카키야마

이와 같이 올바른 마음의 기준을 깨닫고 생활함으로써 구름은 걷히고 마음은 광명에 찬다. 이런 밝은 마음으로 한 가지 목적에 매진하면 거기 비례하는 지도령의 보다 훌륭한 협력이 부여된다. 화가의 이야기는 하나의 좋은 현상례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이야말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으뜸의 문제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통하여 인간의 깨달음이 궁극적으로 마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