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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4장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마음의 녹

by Yuneelif 2023. 3. 5.

마음의 녹

"일단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도 관자재력을 잃는 경우가 있는가, 아니면 살아 있는 동안 그 경지는 변함이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우리들 영능자 그룹 가운데서 나왔다.

매우 좋은 질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쇠라는 것은 산화되기 쉽다. 그대로 방치해 두면 산소O2와 철Fe의 표면이 화합하여 Fe2O2라는 산화제이철, 곧 녹으로 변하고 만다. 이 산화제이철은 이미 Fe라는 철의 성질을 잃어 본디의 철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녹이 슬은 철물 표면에 도장을 해도 언젠가는 도장의 껍질을 뚫고 표면에 녹이 드러난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감을 얻고자 하여 아무리 정법에 귀의하더라도 마음 속에 녹슬어 있는 부조화한 상념이나 행위를 반성하여 그 녹을 긁어내지 않는 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따름이다. 표면만을 정법이라는 도장으로 가렸을 뿐 녹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 녹이 마왕이나 동물령, 지옥령들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그들 악령들의 지배하에 들게 되면 자기를 잃게 되어 자기 아닌 자기가 되고 만다. 이미 슬은 녹은 올바른 중도의 자로써 반성을 하고, 진심으로 신에게 사죄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녹은 씻기며 흐렸던 마음은 개여 신의 빛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 다시 같은 과오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생활을 통해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자들도 정도를 벗어나게 되면 영적 현상인 관자재의 힘은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영적 능력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다는 것은 그 마음에 부조화한 구름이 끼어 빛의 천사들이 가까이 올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육체고행을 쌓았다고 하는 자들은 정법이라는 마음의 자를 갖지 못하고 있으므로 부동명왕이니 무슨 보살, 무슨 신이니 하고 영적 현상이 나타나기는 해도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힘이 없다. 저 세상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없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동물령이나 지옥령들도 병을 고치거나 분실물을 찾아주는 일쯤은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수행자들은 영매적인 일은 할 수 있어도 육체적으로 부조화한 현상이 일어나거나 그 자식에게 부조화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여 마음의 평안은 없다.

초조한 마음, 노여운 마음, 비방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오만한 마음이 싹터 까닭없이 남을 업신여기게 된다. 

이에 반하여 정법을 깨달은 분들은 가족도 원만하게 조화를 이루고 항상 팔정도를 마음의 척도로 삼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갈등도 없다. 그것은 자기가 올바르다고 하는 마음의 기준을 지니고 생활하고 있는 까닭이다.

쇠의 표면에 파카라이징이라는 화학처리를 하면 도장한 뒤에도 녹이 나타나는 일이 없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법을 좇는 생활을 하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은 항상 신의 빛으로 감싸인다.

쇠의 포면도 늘 닦아주면 녹슬지 않는다. 금강석도 갈면 갈수록 그 광택이 더 난다.

정법을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 나날의 생활을 실천해 나가면 우리의 마음은 더욱 넓고, 크고, 둥근 깃이 되어 빛의 천사들과 자유롭게 교신할 수 있으며 저 세상의 일도 환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어릴 때 신동이라고 일컬어지던 아이가 20세가 넘어서는 범인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이상과 같은 말을 실증해 주는 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구름이 끼지 않을 때에는 지도령이나 수호령들의 협력을 얻어 천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차츰 마음이 흐려짐에 따라 수호령·지도령들의 도움을 받기가 불가능해지므로 결국 범재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정법을 실천하는 노력 이외에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지도령이나 수호령의 힘과 우리들의 마음과 행위는 마치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은 관계인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패달을 밟고 앞바퀴로써 방향을 자는 것과 같이 올바른 노력을 기울여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마음세계의 법칙도 이것과 다름 없다.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우리들의 마음과 행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