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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4장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노사의 투쟁

by Yuneelif 2023. 3. 5.

노사의 투쟁

"저는 노동조합의 서기로서 일하고 있습니다마는 노사의 투쟁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률이 인정하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약한 자들이 한데 뭉쳐 나아가지 않는 한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임금이건 후생시설이건 간에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위하는 일이야말로 자본가의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투쟁이 현대의 문명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사는 본질적으로 서로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며 입장이 서로 다른 이상 투쟁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국가의 체제가 사회주의라면 몰라도 현재의 체제 아래에서는 투쟁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정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투쟁하여 사는 것을 보람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약육강식은 동물적 본능이며 인간도 또한 약해서는 살아남지 못한다라고도 말한다.

현대인의 세계관은 대체로 이 청년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도 마르크스주의도 모두 물질경제가 근본이어서 마음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잃은 사상이 생활의 지혜로서 문명을 만들어내므로 공해를 낳고, 정신공해까지 낳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들의 괴로움은 영원한 영혼 곧 자기 자신의 마음을 상실했을 때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을 잃고 무슨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는가. 투쟁심은 언제나 파괴밖에 낳는 것이 없으며 그 파괴의 결과는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사상의 대립도 서로가 같은 인간 동지의 사이이다. 다만 그 입장이 다르다는 것 뿐이다. 따라서 입장의 다름을 서로 이해하고 대조화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스스로를 점점 더 괴로움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말 것이다.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투쟁하여 승리를 얻은 자가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었던가. 만족할 줄 모르는 돈의 망령들의 행복 따위는 한 때의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가도 안정되지 않고 투쟁하여 획득한 것들을 도로 토해 내고 있지 않는가. 

사회주의의 나라들에 진정한 자유가 있는 것일까. 권력자들은 합법적인 폭력이나 무력으로 국가와 민중을 지배하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 자기 자신이 실각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늘 불안을 안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라는 것은 비록 그 행동력이 지배당하는 일이 있어도 그 마음까지 지배당하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자유다. 그러므로 무력이나 권력에 의한 지배가 계속되더라도 인간의 마음은 항상 자유이어서 그릇된 사상에 대한 비판은 없어지지 않는다.

비록 세뇌를 당하더라도 신리가 아닌 것에는 모순이 생겨나므로 의문의 마음이 일어난다. 다만 민중은 입으로 말하지 않으며 행동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권력자들은 마음을 잃어버린 자들이기 때문에 예사로 동지를 배반하며 남의 목숨조차도 간단히 빼앗아버린다. 하지만 육체주의 뱃사공인 마음까지 빼앗아가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누구든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 사상에 관계없이 이 점만은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행복해지는 조건이 모두 경제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인류는 이제 겨우 봉건 사회에서 벗어나서 인간 평등의 입장에서 노사도 또한 대화를 통한 조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인류가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스스로 뿌린 부조화한 씨앗을 베어내고 겨우 도달하게 된 단계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의 존엄성을 깨닫지 않는 한 참된 유토피아는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들 인간이 기본적인 마음의 존엄성을 확립한다면 노사의 다툼도 없고 문명은 보다 발달하여 생활이 조화를 이룰 것이며 원시 공산사회보다도 훨씬 진보된 공존공영의 사회가 될 것이다.

자본가나 지도자는 그러므로 자기의 입장을 고집하지 말고 대중을 위하여 마음을 넓고 넉넉하게 가지는, 자애에 찬 참된 용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지 말고 대중에게 봉사하는 실천력을 발휘해야 한다.

인간은 감사하는 마음을 잃었을 때 불만이 일어나는 법이다. 불만의 마음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데에 대한 초조감과 자기보존이 뿌리가 되어 있다.

서로의 의사가 소통되지 않는 것도 또한 원인이다.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하며 심중에 맺혀 있는 감정을 속에 가두어 넣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해야 할 말도 못하게 된다.

남 앞에서 자기를 꾸미려고 하는 마음이나 손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은 언젠가는 부조화를 만들어 내고 만다.

약한 자들이 단결이라는 집단행동으로 불만을 폭발시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것은 자체의 내부에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조의 지도자는 단순한 불만의 대표자가 되어 올바른 견해를 잊거나 혹은 노조 우두머리의 자리에 집착을 가지고 조직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잘못을 저지르기가 일쑤이다. 감정적인 집단은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하여 아예 조화와는 거리가 먼, 투쟁과 파괴의 수라장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또한 물질 경제를 주체로 한 마음을 잃은 집단의식은 반드시 자체 내부를 투쟁과 분열의 온상으로 만들어 버리게 마련이다.

무력이나 권력으로 일시적인 강압통제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힘으로 지배한 것은 필경 힘에 의해서 어느 날엔가는 무너지게 마련이며 스스로의 목을 자르는 칼이 되기도 한다. 작용 부작용의 법칙에도 해당되는 당연한 귀결이다.

감정적인 마음과 행위를 버리고 도리에 맞게 판단하는 것, 이것이 조화에 이르는 지름길이며 불퇴전의 신리라는 말이다. 경영자이든 노조의 지도자이든 간에 자기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종업원이나 집단의 마으의 향방을 잘 파악하여 중도를 척도로 삼고 지도해 나가야 한다. 중도를 근본으로 한 마음과 행위가 있으면 투쟁과 파괴 따위는 일어날 리가 없다. 

경제적인 문제는 서로 양보하는 행위에 의하여 대조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경제의 노예로부터 스스로의 마음을 해방시켜서 서로가 힘을 합쳐서 평화로운 집단을 이룩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전생윤회를 되풀이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느 때는 힘겨운 노예의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영혼을 연마하기 위한 수업들이다. 우리가 이 신리를 깨닫는다면 지금 생활하고 있는 일에 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지위나 경제력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보다 좋은 생활의 터전을 닦는 일에 당연히 힘써야 하지 않는가. 만물의 영장이요, 신의 아들인 인간이 서로 동물적인 투쟁을 되풀이하여 피로써 피를 씻는 싸움의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노사가 구래의 누습을 깨트리고 서로의 입장을 떠나 인간끼리의 번영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보은하는 행위를 실천하는 길 이외에 대조화를 열어나갈 방도는 없다.

거짓의 마음을 버린 진심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 기준이 중도 즉 팔정도가 되는 것이며 사회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자본의 힘으로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생활의 지식으로 획득한 경제력이 인간을 참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

인간은 모두 신의 자식이다. 모두 평등하다. 그런데 조그마한 지구 위에서 서로 다투고 있다니! 대우주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가엾고 어리석은 것은 마음을 잊어버린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죽어서 재산을 저 세상에 가져갈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동안에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그것을 써야만 생활의 지혜도 열매를 맺는다고 말할 수 있다.

투쟁과 파괴만큼 어리석은 행위가 없다는 것을 언제인가 인류는 눈뜰 날이 있을 것이다.

법률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사회 생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보살심의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에서 정해져 있는 것은 모두 당연하다라는 생각은 중도의 마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법률은 행동에 대하여 제약은 가할 수 있지만 마음에 대한 제약은 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로운 마음은 신리인 정법을 두고는 얻을 수 없고 평안의 길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빗나가면 스스로 괴로움을 짓게 되고 스스로 심판받지 않으면 안 될 날이 온다. 정도의 마음이야말로 공평 무사한 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평등한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의 마음이 정도를 깨달았을 때 시정될 것이다. 그리고 빗나간 사상이 인류의 마음에서 사라질 때 유토피아는 이룩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내려 스스로의 마음을 이겨나가는 극기심이 선결 문제가 된다.

경제적 빈부의 차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의해서 마음의 크고 작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환경을 조화하여 풍성하고 평안이 깃든 마음의 수확을 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