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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ism/카발라

아이반호프의 비전학 1. 하라센터(하단전)

by Yuneelif 2017. 7. 29.

아이반호프의 비전학(Initiatic Science)  

 

 

    

 

들어가는 글

 

아이반호프는 카발라 외에도  에소테릭 기독교, 연금술, 마법, 점성학, 교육, 요가, 성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가르침을 남겼다. 자신이 가르치는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 그는  비전학Initiatic Science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아이반호프의 여러 책들에서 에소테릭적인 주제들을 랜덤하게 골라 올릴 예정이다.

 

- 조하선 -     

 

 

  

 1.하라 센터 (Hara Center - 하단전) 

 

  

(아이반호프는 '하라'센터라는 일본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히 그것은 하단전을 일컫는 것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 서양에 소개된 선도仙道 용어는 일본 책을 통해 알려진 것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가 하라센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아이반호프는 '하단전'에 대해 이제까지 그 어떤 책에도 나와 있지 않는 독창적인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동양의 선도 스승들보다 더 깊이 있는 해석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는 우리나라의 선도 책들보다 아이반호프의 이 글을 통해 하단전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더 깊이있게 알았던 것 같다.  - 역주)  

 

 

만일 그대가 언젠가 인도에 가게 된다면, 많은 사두와 요기들의 배가 유난히 불룩 나온 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대는 거의 모든 부처상, 성자상들이 장구통배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비전가(秘傳家)에게 있어서 둥근 배는 힘과 능력의 표시이다. 그것은 그가 오랜 기간동안 특별한 호흡수련을 한 결과 쌓이게 된  영적인 축적의 표시이다. 호흡을 길게 하는 수련은 신체중 배를 발달시킨다. 왜냐하면 비전가로 하여금 질병을 치유하고 해로운 영향들을 분해시키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특별한 성분들이 저장된 곳이 바로 거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룩 나온 배는 물질적인 생활방식 아니면 영적인 생활방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오직 먹고 마시고 자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그의 비만은 나쁜 징조이다. 그것은 그가 거칠고 물질적이며 육욕적인 사람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순수하고 투명하고 지성적인 사람이 뚱뚱하다면 그것은 그가 타인을 치유하고 선한 행위들을 많이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축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쩍 마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을 보라. 그들 중에는 엄청나게 큰 배를 갖고 있음에도 매우 유연하고 강하고 지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말하는 하라 센터를 계발시켰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배꼽으로 부터 4센티미터 아래에 위치한다. 일본어로 하라는 ‘배’를 의미한다. 그대들은 모두 하라키리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배를 갈라서 자결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현인들에 따르면 하라는 인간의 생명 센터, 중심, 우주 센터이다. 만일 그곳에 의식을 집중하여 충분히 계발시킨다면 우리는 피로를 모르고 굉장히 강해질 것이다. 하라센터를 계발시키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그들이 매우 균형을 잘 잡는다는 점이다. 우리시대의 전형적인 많은 문제들은 삶의 균형을 상실함으로써 온다.

 

특히 서양인들은 그들의 중심, 그들의 생명센터에 대한 집중을 상실했다. 대신 인간의 원주(圓周) 상에 있는 머리가 중심의 지위를 빼앗았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 걱정, 과도한 두뇌활동은 우리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신경체계가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 쉽게 균형을 잃고 회복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심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심이 정상적으로 작용한다면 그 상태를 치유시켰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만일 하라 센터에 집중하고 정확히 그것을 계발하는 법을 안다면 신경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서구인들의 경우 문제가 있다. 오랫동안 그들은 육체의 하부에 있는 힘 센터들은 영적인 삶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센터’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거의 최고의 센터, 신, 최초의 원인 등을 뜻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들에게 육체에서 인간의 진정한 센터는 배꼽 바로 밑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 왔다. 그대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대들은 이 센터를 뚫고 탐험할 준비가, 이 센터를 계발시키는 법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 존재의 근원을 발견할 준비가 되었다. 그대는 그대 존재의 근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거기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자주 그대에게 해왔던 말이 있다. ‘파라! 당신 자신 밖에서 또는 표면에서 해결책을 찾지 말라. 파라. 깊이 파라. 그러면 당신은 황금과 석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상징적인 말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파야할 곳이 바로 여기임을, 무의식 속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었다.

 

하라 센터는 많은 비교(秘敎)서적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종종 매우 상이한 방식들을 통해서이다. 유명한 연금술사 바실르 발렌틴은 그의 책 ‘12개의 열쇠’에서 철학자의 돌을 찾으려면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시타(Visita) 인테리오라(interiora) 테라에(terae), 렉티피칸도(rectificando) 인베니에스(invenies) 오쿨툼(occultum) 라피뎀(lapidem), 베람(veram) 메디키남(medicinam)’

 

그 의미는 이렇다.

 

‘지구의 중심을 방문하라. 만일 당신이 바로잡는다면 숨겨진 돌, 진정한 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 라틴어의 앞 문자들을 취하면 VITRIOLUM(황산)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물론 발렌틴의 말은 실제로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가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 속, 우리 자신의 중심 속으로 내려가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온갖 보물과 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 신은 브라마, 비쉬누, 쉬바이다. 힌두 경전에 따르면 브라마는 배에, 비쉬누는 가슴에, 쉬바는 두뇌 속에 산다고 한다. 어째서 창조자 브라마는 배 속에 산다고 일컬어지는 것일까? 만일 배가 저급한 곳이고 두뇌가 귀한 곳이라면 힌두의 신비가들은 브라마를 두뇌에 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두뇌에 연결된 것은 바로 쉬바이다.

 

왜냐하면 쉬바는 위대한 파괴자이기 때문이다. 브라마는 창조자이고 비쉬누는 유지자이다. 비쉬누가 수리하고 지탱하고 양육하는 자인 반면 쉬바는 파괴자이다. 쉬바가 두뇌와 연결된 것은 두뇌(즉 저급 멘탈체)가 실체를 나누고 분석하고 분해시키기 때문이다. 인간들을 하나하나 나누고 오류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두뇌이다.

 

아기가 잉태되고 발육되는 곳은 바로 배 속이다. 따라서 배는 인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에는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 전혀 없다. 분명코 생명은 자신이 잉태될 곳으로 부끄러운 장소를 선택하지는 않았을테니! 만일 우주 지성이 이 장소를 선택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이 장소가 신성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그것을 하시해야 하는가?

 

생명이 자신의 발생지로 그곳을 택했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산모가 태아를 배고 있는 곳도 배 속의 자궁이지만 태아가 탯줄을 통해 양분을 끌어오는 곳도 배 속이다.

 

러시아인들은 태양 신경총과 하라 센터를 포괄하는 부위에 대한 용어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보트(jivot)이다. 불가리아어로 지보트는 생명이라는 뜻이다. 맞다. 이곳은 생명의 근원이다. 이곳으로부터 생명은 다른 기관들로 방사되어 퍼져나간다. 따라서 두뇌 또한 이 센터에 의존하여 그로부터 생명을 끌어온다.

 

나무를 예로 들어 보자. 나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뿌리이다. 그것은 땅 속 밑에 감추어져8  보이지 않는다. 하라 센터와 태양 신경총은 우리의 뿌리이다. 따라서 우리가 뿌리 속으로 내려가 그 본질을 본다면 거기서 우리는 지극한 풍요와 다양한 원료와 에너지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광산, 고갈되지 않는 원천을 말이다.

 

배는 생명이 창조되는 곳이다. 그렇다. 거기에 생명의 근원이 있다. 심지어 복음서에서도 이렇게씌어 있다. ‘그의 배로부터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  

 

어째서 배인가? 어째서 두뇌나 폐가 아닌가? 도대체 신체의 이 부위(배)가 뭐 그리 특별해서 생수가 그곳으로부터 흘러난다는 것인가? 그것은 왜냐하면 브라마, 아버지, 창조자가 거기에 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의 존재를 체험하고 그와 교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는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존재로부터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히 쉬바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도에서조차 브라마에게 봉헌된 신전은 극히 드물다. 그보다는 비쉬누 신전들이 더 많고 그보다 더욱 많은 것은 쉬바 신전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쉬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그는 파괴자이다. 따라서 그를 달램으로써 자신을 그의 파괴력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반면 브라마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창조자이다. 그는 결코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아무런 위험이 없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그가 경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수년동안 나는 그대들에게 오로지 고급한 영역, 즉 의식과 빛에 대해서만 가르쳐왔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단지 그대가 자신의 심연 속으로 깊이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킨 것일 뿐이다.

 

만일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기 원한다면 두 영역을 모두 알아야만 한다. 위에 있는 것과 아래에 있는 것을 말이다. 위에 있는 것은 두뇌 센터이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것은 하라 센터이다. 하라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 무의식을 상징한다. 물론 이 어두운 영역은 매우 위험하다. 먼저 상위 영역을 탐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대가 진정으로 강건하게 되고 모든 필요한 무기와 장비들을 획득했을 때 비로소 그대는 심연 속으로 내려가 그 비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는 지하에 있다. 황금, 보석, 희귀 광물, 석탄, 석유 등, 이 모든 것들은 땅 밑에 감추어져 있다. 그리고 무수한 정령들과 불가시의 존재들이 그것들 사이에서 작업하고 있다. 물질계에서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도 모든 것은 밑에 감추어져 있다.

 

모든 존재들이 볼 수 있도록 표면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옥과 그 악마들 또한 아래에 존재한다. 우리가 밑으로 내려가기 전에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간단히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은 우리의 공부가 상위 세계로부터 시작된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우리는 어둠과 대면하기에 앞서 빛으로 자신을 무장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태양 신경총, 하라 센터와 접촉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의식에 직접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지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거기에 닿을 수 있다. 즉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 따라서 만일 하라 센터가 우주와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무질서하고 혼돈스럽고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우주 혼으로부터 방사되는 향기를 흡수할 없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명상 중에 하라 센터에 작용할 수 있는 간단한 행법 하나를 제시하면 이렇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순수한 마음, 완전한 무욕의 마음으로 행한다면 보다 더 강해짐은 물론 균형을 다시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양 손을 하라 센터 위에 두고 거기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련을 할 때는 항상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한다는 순수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역에 있는 다른 센터들을 일깨워 자신의 저급 자아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하라 센터의 계발을 시도하기에 앞서서 당신은 반드시 자신을 준비시켜야 한다. 그런 준비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당신은 위험없이 이 심연을 탐험할 수 있다. 그것은 심연, 인간 본성의 진정한 하계(下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신분석 학자들이 무의식의 일부 영역들을 탐구해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하라 센터의 신비에 대해서는 물론 무의식의 심연 속에 묻혀 있는 이 센터와 초의식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거의 모르고 있다. 비전가가 뱀의 머리와 꼬리를 연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것은 우리가 저급 센터(차크라)들과 두뇌에 있는 왕관 차크라(사하스라라)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선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것들에 대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위험한 하위 영역에서 가치있는 것을 성취하길 바랄 수 있겠는가? 당신은 먼저 자신을 순수하게 맑히고 힘을 기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나서 준비되었다고 느껴질 때 하위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할 수 있다. 그 체험은 당신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해야만 한다.

 

연금술사들은 ‘어둠으로부터 태어난 빛’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둠은 빛보다 무한히 광대하다. 그것은 모든 사물들을 감싸며 삼투해 있다. 반면 빛은 어둠 속에 반짝이는 작은 불꽃에 불과하다. 어둠은 모든 존재의 뿌리이다.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현상, 모든 현현과 물질들은 어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어머니 우주의 자궁안에 있는 아기처럼 모든 에너지, 원소들은 일종의 탯줄을 통해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주혼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한다.

 

‘어둠으로부터 태어난 빛’에 대한 관념은 ‘어두운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의 심원한 상징성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어째서 예수는 화려한 저택이나 궁전 또는 신전이 아니라 황소와 나귀 사이 구유에서 태어나야만 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아기가 육체의 하부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영적인 아기가 태어날 때, 인간 속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도 그 낮은 영역, 하라 센터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라 센터는 구유이다. 그리고 황소와 나귀는 양 측면에 있는 간장과 비장이다.

 

예수가 태어날 때 천상에서 천사들이 노래하고 찬양했다. 왜냐하면 이 탄생, 제2의 탄생은 천상의 모든 존재들이 참여하는 지복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을 둘러싼 사건들은 한 인간이 거듭날 때마다 매번 다시 일어난다. 황소, 나귀, 마기(동방박사), 천사, 동정녀, 구유 속의 아기. 이것은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서만 오직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만일 이 아기가 우리 안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내면에 그 아기를 끌어오고 양육하고 보살피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구유 속에서의 예수의 탄생은 의미심장한 비전적 상징이다. 우리가 신성한 아기 예수, 새로운 의식을 탄생시켜야만 하는 곳은 바로 황소(간장)와 나귀(비장) 사이에 있는 구유, 여기 하라 센터인 것이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밑에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에 대한 정확한 복사판이라는 말이 아니다. 분명코 아래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아래 있는 것과 위에 있는 것이 같다는 말은 그 법칙과 작용이 동일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물에 비친 집을 보라. 실제 세계(위)의 집은 반영된 세계(아래)의 집과 같다. 그러나 두 세계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밑에 있는 반영, 환영의 세계 그리고 위에 있는 실제의 세계. 두 세계 각각에 또한 위와 아래가 있다. 따라서 환영의 세계에 속한 아래의 것은 실재의 세계에 속한 상위의 것에 상응한다.

 

창조자는 신성 하이어라키의 최고급계에 있다. 그러므로 하이어라키의 반영인 인간 속에서 그 창조적 작용은 가장 낮은 세계에 있게 된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러한 전도(顚倒)에 대해 말해왔다. 돌과 광물과 수정은 위에 있는 신성계의 반영이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 뜻이다. 인간 안에 있는 하위 센터들은 신성계의 최고급 레벨과 상응한다. 왜냐하면 대우주는 소우주 인간 속에서 거꾸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창조자 브라마가 인간의 배 속에 거한다고 일컬어지는 이유인 것이다.

 

이 주제는 매우 광대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말했다. 아무튼 현재로선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이 이상 더 말한다 해도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부담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누구나 모든 것을 알기 원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호기심일 뿐이다. 진정한 비전의 가르침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제자들이 실천적이 되고 자기 힘, 자기 능력에 의지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가치있는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는 바로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내가 이런 말 하는 것을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안다.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습관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대 안의 힘 센터들이 바라는만큼 활동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들은 녹슬었고 자류는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센터들에 대한 작업을 자기 힘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

 

아마도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 힘으로 노력했어요.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어요’ 물론 어떤 것도 쉽지 않다. 바로 이 때문에 환생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만일 이번 생이 센터들을 각성시키는 노력을 한 첫 번째 생이라면 그 작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들은 수세기 동안 꼼짝도 않은채 방치되어 왔다. 따라서 어떤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수생동안 이 방면에서 작업해 욌던 사람들, 그리고 현생에서도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은 자연 그게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지고 모종의 결과들을 얻게 된다. 내가 ‘서둘러라. 이 생에서 그 작업을 시작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서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결과가 매우 미미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당신은 시작하였다. 따라서 다음 생에 당신은 거기에서부터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실제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지금, 이번 생에서 당신 내면에 신성한 흐름을 해방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