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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ism/카발라

비전의 카발라 - 26장. 예소드와 순수

by Yuneelif 2017. 7. 29.

26장

 

예소드와 순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찾아와 이런 부탁을 한다. '제게 영능력이나 마법적 힘을 계발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 말한다.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기 자신을 정화시키는 겁니다. 자기 내면의 자아를 아주 깨끗하게 맑히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즉시 얼굴을 돌려버린다. 그 순간 일그러지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나의 대답이 매우 유치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부탁할만한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난다. 언젠가는 자신들이 고대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러나 당신은 영적인 세계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길은 '순수'라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일단 당신의 바탕이 맑혀지고 나면 그 길은 천상을 향해 열려져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당신과 당신의 소망을 방해할 아무 것도 없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구도자들은 어떤 비전적 가르침이 그들에게 이제까지 실패한 것들에 대한 성공과 만족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전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그런 것들을 결코 가져다 주지 않는다. 만일 오컬트를 개인적 목적을 성취하는 데 이용한다면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사실만이라도 당신을 이해시킬 수 있다면 나의 일중 상당부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순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1년에 걸쳐 시리즈로 강의한 바 있다. 그때 나는 세피라 예소드를 강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순수의 문제가 얼마나 광대하고 심오하며 수많은 분야들과 관련돼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파이프가 막히거나 창문이 더러울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와 똑 같은 문제들이 자신의 내면에도 숨어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생각, 감정, 욕망들은 신성의 빛이 들어오는 통로들을 막고 있는 오물, 먼지, 쓰레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은 자기 자신을 정화시키는 작업부터 시작하지 않는 한 영적인 삶에서 사상누각을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순수를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만이 당신이 생각해야할 유일한 것이라거나 그 외의 어떤 것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내가 순수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모든 것들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 '기초'야말로 예소드가 의미하는 바이다. 기초는 건물 전체의 하중을 견뎌내는 역할을 한다.

 

생명나무 상의 다른 모든 세피로트는 당신이 반드시 이루도록 애써야 할 덕목들을 상징한다. 그러나 예소드(기초)에 대한 작업은 당신이 영적인 세계에서 뭔가를 배우고 실행해 나가기에 앞서 이루어내야 할 마음의 상태를 상징한다. 어째서 예소드가 모든 영적 삶의 기초로 상징되는가? 그거슨 사이킥 세계가 예소드와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다.

 

세피로트 나무는 4계로 구분된다. 아칠루트계는 케테르, 호크마, 비나로 구성되며, 신성계에 상응한다. 브리어계는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로 구성되며, 영계에 상응한다. 예치라계는 네차흐, 호드, 예소드로 구성되며, 사이킥계(심령계)에 상응한다. 마지막으로 아시야계는 말쿠트로 이루어지며 물질계에 상응한다.

 

따라서 말쿠트, 물질계를 떠나자마자 우리는 사이킥계의 첫 단계, 입구인 예소드와 마주치게 된다. 다른 모든 세피로트와 마찬가지로 예소드에는 내부 하이어라키가 있다. 그 하위 차원들은 달에 상응한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달은 무의식, 본응, 상상, 환영의 세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그것들에 질서와 빛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예소드의 세계를 마스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정화한다는 것은 내부 생명의 올바른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고 자신의 생각, 감정, 욕망, 야망 등을 분석하는 것이며 그것들을 비이기적이고 자비롭게 만드는 것이다.

 

예소드에 작용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자들은 결코 사이킥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들은 결코 영적인 세계의 실재를 알지 못한다. 비록 천재적인 사이킥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이 있는 음악가, 화가라 할지라도 스승의 인도를 통한 훈련이 없다면 그 소질을 발전시켜나갈 수 없다. 예술적 재능이 그렇듯이 사이킥 능력 또한 다듬어지고 계발되어야만 한다.

 

그런 능력을 소유한 자들은 자기 자신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순수야말로 그들에게 진정한 식별력을 선사하고 이로운 영향력을 발휘케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순수는 정관, 정직, 이타성, 책임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지적인 환상을 보고, 거기서 누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고 어떤 사건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자기에게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무척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투시가로 선포하고 사무실을 열어 근심걱정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줄 것이다. 그러다 차츰 그는 '하늘로부터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의 모든 주장들은 다 진실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연히 몇 차례의 예시적 환상과 직관들이 들어맞았을 때 그는 자기한테 사람들의 문제에 언제 어디서건 답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는 결코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그는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투시 능력을 계발하길 원하는 자는 매일 깊은 자각 상태에 있어야만 한다. 그때 비로소 그가 경험하는 사이킥 세계가 질서 잡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결국 내적인 혼란 상태에 빠져 자기도 남도 속이게 된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예방책도 준비도 없이 영매의 길로 들어서고 결국 정신이상에 빠져버린다.

 

이것이 바로 양식 있고 이성적인 사람들, 특히 과학자들이 영능에 대한 어떤 토론도 환대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들은 그런 말만 나오면 즉각 사기꾼과 돌팔이들을 떠올린다. 물론 타인의 말을 맹목적으로 신봉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이다. 그러나 심령 문제들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사이킥 세계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의 그러한 태도는 자신의 생각과 탐구를 한정시키고 외적인 현상 이외의 것은 보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나는 이른바 초심리학적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부 진지한 과학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동료 학자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이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윤회를 믿으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많은 성직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윤회는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비난받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과학자와 성직자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길을 찾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계속 어둠 속에서 헤매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소드의 저급 영역에 빠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순수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순수는 영적인 삶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기 자신을 맑게 정화하면 할수록 빛이 더욱 쉽게 당신에게 흘러들어올 수 있고, 그러면 당신은 보다 맑고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몸속의 병든 입자들은 제거되고 건강도 개선될 것이다. 당신의 의지를 훼방하는 나약한 요소들 역시 사라지고 당신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어둡고 그늘진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은 희열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희열은 순수의 한 속성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신을 정화시킬 때 불멸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건강, 힘, 지식, 행복, 그리고 불멸은 순수의 상이한 속성들이다. 이것은 전체 비전학의 요점이다.

 

세피로트 나무의 중간 기둥에서 예소드는 말쿠트 위에, 그리고 티페레트 밑에 위치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티페레트(태양)의 빛이 예소드(달)을 통과하여 말쿠트(지구)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쿠트는 물질계, 예소드는 사이킥계, 티페레트는 영계를 각각 나타낸다. 따라서 우리는 영계의 빛이 거쳐 오는 사이킥계의 상태가 순수하지 못하면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영적인 수련으로부터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기도하고 명상하고 천상과 접촉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의심하고 방향을 잃으며 나약해진다. 때로는 심지어 전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고 느낀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갈망하는 빛이 불순의 두꺼운 층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 불순물 층은 그들의 난잡하고 통제되지 못한 상념과 감정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렇게 불순물 층이 생기면 빛은 그 층을 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패과정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이는 마치 햇빛이 퇴비더미의 부패를 더욱 촉진시키는 것과 같다.

 

창문이 깨끗하다면 태양광선은 우리에게 도달하여 우리를 밝혀준다. 그러나 중간에 불순물 층이 쌓이면 부패작용이 더욱 가속화된다. 부패는 구역질나는 냄새를 만들어 낸다. 당신이 만일 신성한 빛을 담는 그릇이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가슴을 반드시 수정처럼 맑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썩는 냄새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맑히는 진지한 작업을 하겠다는 결심이 없는 한 당신은 오히려 비전학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나는 당신에게 미리 이 점을 경고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여 비전학을 원망해 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잘못이다.

 

일단 예소드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면 티페레트의 빛이 당신의 내면에 비출 것이다. 그 빛은 당신이 사물의 실재를 이해하고 자신을 정확히 방향 잡도록 해준다. 그 빛이 없다면 당신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타인에게 도움과 조언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인의 생각과 판단이 당신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지는 보장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당신은 그들의 모순된 견해 속에서 갈팡질팡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부란 그 빛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꼭 맞는 진실을 말해준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다. 그러면 당신은 이렇게 물을 지 모른다. '그 말은 영적인 스승에게조차 물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만일 당신이 그와 대등하거나 그보다 높다면 왜 그에게 물어야 하는가?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길고 어려운 과정이 있다.

 

그러나 당신이라고 항상 한계에 갇히고 남에게 의존하며 살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제자도 스승과 대등해지거나 능가할 수 있다. 그것은 금지된 것이 아니다. 당신 앞에 길은 항상 열려 있다. 누구도 빛을 향한 당신의 성장과 발전을 막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가 왜 이런 말을 했겠는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듯 너희도 완전하라.'

 

예소드의 영역을 여행할 때 제자는 그 어는 때보다도 인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예소드를 넘어서면 길은 열려 있고 혼자서도 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진정한 투시력을 가져다 주는 빛의 영역에 도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