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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1장 마음의 원점-대우주에는 의식이 있다

by Yuneelif 2023. 2. 18.

대우주에는 의식이 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들이 이 현상계에 태어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지구는, 태양은, 대우주는, 살아 있는 대자연은, 그리고 그것들과 우리와의 관계는 어떠한 짜임으로 되어 있는 것일까.

영혼이라든가 마음이라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떠한 목적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만 우연하게 있을 뿐인 것일까.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여러 문제는 인간의 존재, 마음, 신, 인생의 목적, 고락의 제상, 현상계와 저 세상, 대우주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여겨졌던 4차원 이상의 다차원의 여러 문제를 다루어 그것을 해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에는  그러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체험에 의하면 인간은 그 자체가 소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며, 고락의 제상은 '마음'과 '행위'가 낳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부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차례로 설명해 가고자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며 대우주는 모든 생명물질을 낳고 있는 원천이다. 만약 지구나 우주가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존재는 없을 터이다. 대우주가 있으므로 해서 우리들 육체를 가진 인간이 지구라고 하는 장에서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우주도 잘 살펴보면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물질로써 되어 있다. 빛이라고 하는 입자가 가지각색으로 결합 또는 분리함으로써 공간이나 고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사실은 오늘의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바로서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빛의 입자는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우연인가, 아니면 무엇인가의 의사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아직은 과학의 분야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연 과학자 중에는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무엇인가의 의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이 문제는 잠시 뒤로 미루고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대자연계는 그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의 의사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작용은 서로 작용하면서 공존하도록 짜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데서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우리는 공기를 마시고 살고 있는데, 그 산소의 양은 21%이다. 그것이 10%로 줄거나 반대로 50%로 늘거나 하면 살아가지 못한다. 흡수된 21%의 산소(O2)는 체내의 여러 기관을 거쳐 체외로 배출되는데 이때는 이산화탄소CO2로 바뀐다. 자동차의 배기가스도 마찬가지로 이산화탄소와 그밖의 화합물이다.

공기 속으로 되돌아간 이산화탄소는 식물이 흡수한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영양원으로 하여 태양의 열과 빛의 합성에 의해서 전분이나 단백질, 지방, 당분 등을 만든다. 우리 인간의 피나 살은 이와 같은 식물에서 얻어진다. 육체보존에 필요한 에너지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과 식물은 공기를 매체로 해서 이와 같이 상호의존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공기 자체는 인간과 식물 사이를 오감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순환(불교에서는 전생윤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상호 의존의 관계는 우리 인간 사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이러한 관계로서 성립되며 그러한 관계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을 순환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와 같은 순환의 법칙은 우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이건 식물이건 물이건 간에 몇 천년 몇 만년이 지나도 줄지도 않고 불지도 않으며 일정량의 질량이 항상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보면, 순환의 깊은 곳에 감추어진 누군가의 의사의 작용에 의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대우주, 대자연계에는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의식-마음이란 것이 있다. 흔히 의식은 사물을 인지하는 힘 또는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에너지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대우주에도 모든 것의 근본인 '일할 수 있는 능력인 에너지'가 동거하고 있다. 에너지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는 되어도 보지는 못하는 것이다.

나의 지도령은 "물질적 차원은 본디 고체적인 것으로서 불안정한 세계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차원이 다른 에너지가 동거하고 있다. 그리고 무기물질의 에너지보다 유기물질과 동거하고 있는 에너지의 차원이 훨씬 고차원이다."라고 설명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심불이의 '색'이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라고 하겠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의 세계, 곧 0.00004센티~0.00007센티의 사이클이 우리의 시계의 한계이다. 적외선도 전파도 자외선도 X선, r선, a선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안흔ㄴ다.

만물은 온갖 색채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물질을 '색'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육체도 색이요, 대자연도 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이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우리의 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물질의 에너지가 차원을 달리하여 공존하고 있는 것과 같이 에너지는 '물질의 질량과 빛의 속도의 자승自乘의 적積이다' 라고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원리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색심불이'라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이 대우주라고 하는 물질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고차원의 의식-마음이 다름 아닌 바로 신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태양계의 소혹성으로서 다른 혹성군과 3만여 개의 위성과 함께 질서를 유지하면서 자전·공전 하고 있다.

우리는 통상 태양력을 써서 연령과 시간, 월일을 정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연원일, 시간 따위는 태양과 지구, 지구와 달의 자전이나 공전에서 계산해 낸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시간의 운행은 백 년 동안에 천분의 1초밖에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지혜에 의해서 만들어진 우주선은 겨우 달의 세계까지 도달할 수 있었지만 태양계의 이러한 신비에 견주어 보면 그것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 하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더우기 사람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우주의 운행을 볼 때 우리는 거기에 상상도 못할 우주의 의식, 물리적 에너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항성(스스로 빛을 내는 회전타원체)이나 혹성(중심별 주위를 돌며, 중심별의 빛을 반사한다)이 만약 질서 정연하게 운행하고 있지 않는다면 지구 따위는 어디로 날아가 버릴지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것들은 대우주의 의식, 의사에 따라 조화하고 있으므로 안전하며 그 빈틈없는 질서를 볼 때 우리는 거기에 위대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