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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원점

제1장 마음의 원점-윤회

by Yuneelif 2023. 2. 28.

윤회를 계속하는 물질계

우리들 인간을 비롯하여 동물, 식물, 광물의 생명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윤회를 계속하고 있다.

윤회란 이 세상에 삶을 받아 태어난 존재가 다시 저 세상으로 돌아가며 저 세상에 돌아간 영은 또다시 이 현상계에 태어나는 그 반보긔 계속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 전생윤회의 과정을 통하여 두 가지 목적이 있다.

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영혼의 조화이고 다른 하나는 지상의 낙원(유토피아)을 만드는 일이다.

이 지구 위에 처음 내려온 인류는 험난한 환경, 즉 공룡이나 다른 동물들에 으해서 황폐된 지상에 만생만물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상향을 세우는데 힘써 왔다.

처음에는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험난한 환경 속에서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해 갔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불평도 싸움도 없었고 규율 바른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하였다. 따라서 문명도 발달했다.

마침내 공룡들은 모습을 감추었고 작은 동물들이 살게 되어 인간의 벗이 되었다. 개나 고양이를 비롯하여 어류, 조개류, 양서류 등이 출현했다.

뱀은 인류의 역사보다도 오래 되며 그 성격이 간악하여 생명력과 교활함은 다른 짐승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둡고 습기찬 곳을 좋아하며 소리도 없이 다가가서는 먹이를 덮친다. 인류의 조상들은 이 뱀에게 심히 괴로움을 당하였다.

신은 뱀을 만들어 내어 인류에게 경고를 주었던 것이다. 업상념에 사로잡혀 오관육근의 포로가 되면 이윽고 자기 자신이 뱀처럼 된다고...

당시의 인류는 저 세상을 알았고 이 현상계의 목적도 알고 있었으며 뱀의 존재 이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일깨워가면서 불국토의 건설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자손이 다시 자손을 낳게 되고 지상의 생활에 젖어감에 따라 저 세상을 잊게 되었고 종족 우선, 자기 보존의 욕망이 강해져 갔다. 그 때문에 평화로웠던 지상은 시비와 싸움의 저자거리로 바뀌어 갔다.

종족은 영토 문제·경제 문제 등으로 다른 종족과 반목하여 분쟁을 일으켜 급기야는 힘이 센 자가 힘이 약한 자를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상계에서 저 세상으로 떠나가는 자들 중에는 인생의 목적과 조화를 잃은 어두운 상념을 지닌 채 지옥계로 떨어져가는 자가 많아졌다.

이와 같이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몇 번이나 인류는 마음을 상실하고 어두운 상념으로 신의 빛을 차단하여 스스로 큰 천변지이를 불러들이게 되었다.

대우주체의 한 개 세포인 지구의 부조화가 어두운 영위기를 형성하여 신의 빛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린 지역도 있다. 대지진에 의하여 부조화한 부분이 제거되어 간 것이다.

노아의 방주적 현상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어 많은 사람들이 흙 속으로 혹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러미지아 대륙, 무우 대륙, 아틀란티스 대륙도 이렇게 하여 바다 밑의 싸늘한 부스러기로 사라지고 말았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으로 악마가 된 인간들이 많은 빛의 천사를 사형시킨 것에 대한 업보였던 것이다.

나의 지도령인 '원투우스리'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 세상은 조화하도록 되어 있으며 인간의 육체도 정신도 신의 모습과 똑같이 만들어져 있으므로 조화에 어긋나는 행위가 있으면 그것에 비례하는 반작용의 문책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뿌리지 않은 씨앗은 나지 않는다. 뿌린 씨앗은 거두어들여야 하는 것, 이것이 신의 섭리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불의 사자에 대해서 위해를 가했을 경우에는 그 몇 배의 업보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눈에 눈물 내면 내 눈에 피눈물 난다. 인간의 생각, 염력이라는 것은 온 세계에 파장으로 퍼져나가게 되며 그것에 연관되는 사람들을 해침과 동시에 그 염파는 유사한 파장을 곱으로 덧붙여서 마침내 자기에게로 되돌아온다.

다만 마음이 조화되어 광명에 싸여 있는 사람들은 부조화한 염파의 작용을 받지 않으며 반작용의 법칙대로 발신자에게 되돌아간다.

원망, 시샘, 미움, 노여움 따위의 상념의 파장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신의 사자를 해치거나 죽일 경우는 지구라고 하는 대신전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것이므로 그 파괴 행위에 가담한 자는 모두 천벌을 받게 된다. 천벌이란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것처럼 스스로 지은 죄업을 스스로 받는 결과를 말한다.

현대는 물질문명의 세상이다.

사람은 저 세상을 잊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무명의 삶을 살고 있다. 오리무중, 목적과 방향을 알지 못한 채 마라톤 경주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인간은 이 현상계에 태어나는 그 순간에 저 세상의 기억을 잊게 되며 의식은 100% 잠재하고 만다.

태어난 환경, 양친의 교육, 사상 등에 의해서 의식은 차츰 표면으로 10% 정도까지 나타난다. 잠재하는 90%의 의식 가운데에는 전생윤회의 일체가 기억되어 있다.

반대로 저 세상 곧 실재계에서는 90%가 표면의식이고 잠재의식은 10% 정도이다. 잠재 의식이 준다고 하는 것은 영의 성장을 의미한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면 마음의 조화도에 따라서 잠재의식이 표면화하는 정도가 늘어나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끼리 서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수호령 포와이 신 포와이 신포오는

"영혼의 진화에 따라서 광명이 충만해지고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 서서히 표면으로 나온다."

라고 말한다.

그것은 신의 마음과 조화하는 정도에 따라, 생활하는 환경의 영위기가 정묘하게 변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류는 지금부터 약 2억년 전에 다른 조화된 천체로부터 이 지상계를 조화시키기 위해 이동해 왔던 것이다."

또다른 지도령인 아가샤는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는 평화로운 불국토 낙원이었다. 현존인으로서도 과거세에 그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눈먼 인생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다 넉넉한 영혼을 스스로의 상념과 행위에 의해서 키워내고 인류는 모두 형제라고 하는 자애에 찬 사회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전생윤회에서 만들어진 나쁜 성격 부조화한 업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의 자식으로서 이 지상계의 동물, 식물, 광물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화론에 대해서 말해 보자.

인간은 아메바로부터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설도 있다. 북경원인, 남방 여러 섬에서 발굴된 두개골을 보고 인간의 진화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아메바설에 대해서 말하면 아메바 그 자체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ㄴㄴ가 하는 것이다. 아메바를 만드는 데에는 아메바의 원이 있어야 한다. 수소나 헬륨 등 100여 종의 원소에 대해서 그러면 왜 원소는 존재하는가 하는 점에 이르러서는 오늘날의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의 자연과학은 하나의 벽에 부딪치고 있다. 그 벽이란 물질의 원인, 원자, 소립자에 관한 상태는 설명할 수 있어도 그 상태를 낳고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 그 자체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 있는 과학자는 그 에너지를 신불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자는 빛의 입자로 구성되고 빛의 입자는 영자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객관적으로는 증명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영자와 그 존재에 대해서 설명해 가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북경원인과 고대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만약 인간이 원숭이의 진화물이라고 한다면 진화 도상의 유인원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 진화하고 있는 도상의 유인원은 한번도 본 일이 없다. 북경원인이나 남방제도에서 발견된 두개골의 대부분은 인간과는 다른 유인원의 것이다.

인간의 두개골, 골격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이 없다. 백만 년 전도 지금도 큰 차이가 없다.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고 원숭이의 진화물이 아니라는 것이 한층 더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진화론이 옳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 앞에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의 인간이 있다 한들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흔히 문명과 문화의 진화의 과정을 들어 인류에 있어도 진화의 과정이 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의 이집트의 문명이나 잉카의 문명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잉카의 경우 고양이과 동물을 모티브로 한 상이나 토기, 금, 은, 동 등의 장신구, 웅대한 석조, 신전, 대규모의 관개공사, 계단식 밭의 조성, 이같은 기술과 경제의 발전은 지방적이기는 하나 오늘날에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그 신비가 풀리지 않고 있는 1300미터에 걸친 사크사와만의 방벽, 접착제를 쓰지 않고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석축은 지금도 끄떡 없다. 돌과 돌의 접착 부분은 얅은 면도칼의 칼날조차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밀착돼 있어서 몇 천 년이 지난 오늘날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시의 기술이 얼마나 진보해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이집트의 문명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특히 회화에 있어서는 일상 생활의 모든 정경이 살아 있는 듯 그려져 몇 천 년의 세월의 흐름도 잊게 할 만큼 신선한 매력에 차 있다.

당시의 이집트 사람은 정신적으로 매우 뛰어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첫째로 인간에게는 내세가 있으며 그래서 다시 현세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저 거대한 피라밋은 인간이 죽었다가 현세로 다시 태어났을 때 이집트 문명을 보다 번영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보와 자료를 보관하려고 만든 것이다.

4000년 이상이나 지난 기제의 쿠프왕의 피라밋은 밑변의 일변이 230미터, 높이가 146.5미터나 된다. 석회석의 무게는 평균 2.5톤, 개수로는 230만 개에 이른다. 2.5톤이나 되는 절석을 100미터 넘는 높이까지 운반해 올린 방법은 지금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당시의 기술이 얼마나 진보해 있었던가 알만한 일이다.

쿠프왕의 피라밋은 일설로는 2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35년이 걸렸다고 한다. 석회석은 주로 지중해 연안, 그것도 유럽 대륙에서 실어온 것도 상당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당시는 해양기술도 발달해 있었고, 건축, 토목, 회화, 조각에 있어서도, 잉카문화와 더불어 발달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옛되다거나 새롭다는 것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현대인의 생활을 보고 과거의 인류는 원숭이나 아메바였다고 하는 진화론은 지나치게 성급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이라는 것은 과거세, 현세, 내세의 삼세에 걸쳐 영구히 불변 윤회하는 것이다.

태양의 주위를 지구가 원운동을 하는 것도, 인간이 이 세상을 마치면 저 세상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두가 생명의 흐름, 운동이라는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정지는 죽음을 의미하며 죽음은 생명체에는 주어져 있지 않다. 우주가 영원한 활동을 정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 에너지도 정지하는 일이 없다. 이것은 동물이나 식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은 선택의 자유와 창조의 자유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인간 만큼 고락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진보도 늦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