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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ism/카발라

비전의 카발라 - 16장. 인간과 우주의 호흡 II

by Yuneelif 2017. 7. 28.

II

 

 

용해시키고 응고시켜라. 희석하고 농축시켜라. 이것은 연금술사들이 가르치는 이중 격언이다. 이 계명은 근본적인 창조의 과정에 대한 연금술의 영역을 둘로 나눈다. 축적, 집중, 합금 등은 모두 '응고'의 계율에 적용된다. 그리고 산란, 희석, 분해 등은 '용해'의 계율에 적용된다.

 

자연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피조물의 삶 속에서 그리고 특히 인간의 호흡 기능에서 우리는 수축과 확장이라는 두 개의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들이마시고 내뱉고, 들이마시고 내뱉고. 흡식을 하면 공기가 들어오면서 폐는 확장된다. 호식을 하면 공기가 나가면서 폐가 수축된다. 이 확장과 수축의 끊임없는 교대는 우주의 장엄한 리듬을 반영한다.

 

흡식과 호식, 썰물과 밀물의 두 운동은 우리의 폐를 채웠다가 비웠다가를 반복한다. 이것이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자연의 모든 것은 숨을 쉰다. 동물, 식물, 심지어 지구조차 숨을 쉰다. 그렇다 지구는 살아 있다. 지구 역시 흡식과 호식을 필요로 한다.

 

확실히 그것은 우리가 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호흡(1분에 18번 하는)은 아니다. 지구의 호흡의 리듬은 수년에 걸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구 역시 수축하고 확장한다. 지층들은 결코 안정돼 있지 않다. 사실, 화산 폭발, 지각 균열 등 이와 같은 많은 현상들은 이 수축과 확장에 기인한 것이다. 지구는 살아있고 숨을 쉰다. 별들 역시 흡식과 호식을 하고 그 호흡의 영향을 심지어 여기 지구에서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반복한다. 만물이 숨을 쉰다. 나무, 대양, 심지어 돌들조차. 당신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폐와 관련되지 않는 한 당신은 그걸 호흡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 그럴 수 없는가? 생명은 동일한 기능을 위해 꼭 동일한 조직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나무에는 폐도 위도 간도 내장도 없다. 하지만 나무는 숨을 쉬고 있고 스스로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며 소화하고 재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경우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 나무는 극한 기후 조건에도 살아남는다. 그리고 달콤한 향기를 지닌 꽃과 과실들을 맺는다. 하지만 인간은 비록 지성적으로는 뛰어나지만 너무도 약하여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파괴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대해 매우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하면 우리는 심장, 폐, 위 따위가 없는 것은 살아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자들의 논리 체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은 무수한 서로 다른 생명들을 창조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생명들이 존재한다. 지구 속에는 수백 만 년 동안 출현할 날 만 기다리고 있는 씨앗들이 묻혀 있다.

 

호흡은 많은 신비들을 당신에게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호흡에는 일정한 심상작용이 수반되어야 한다. 호식을 할 때 당신이 우주의 최외곽선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흡식을 할 때 당신의 자아 속 또는 무한한 원의 중심점(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일점) 속으로 수축 또는 철수된다고 생각하라. 다시 확장하고 수축하라.

 

당신이 이것을 하는 동안 당신은 우주의 모든 운동의 열쇠인 썰물과 밀물의 운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 자신의 존재 속에서 이 운동에 대해 의식적이 될 때 당신은 우주의 조화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우주 사이의 교환 관계를 수립하게 된다.

 

흡식할 때 당신은 공간으로부터 원소들을 들이 마신다. 호식 할 때 당신은 공간 속으로 당신 자신의 가슴과 혼의 특별한 어떤 것을 내보내게 된다.

 

자연은 이 신비에 대한 열쇠들을 온갖 곳에 놓아두었다. 만일 철학자들이 의식적으로 호흡을 실행한다면 그들은 분명 그들이 풀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많은 책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들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갖지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사고 능력은 우리의 호흡과 연결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올바르게 호흡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고는 불가피하게 혼란될 것이다.

 

누군가 호흡의 심오한 의미를 이해한다면 그는 자신의 호흡이 신의 호흡 속으로 융해되는 것을 서서히 감지하기 시작하게 된다. 왜냐하면 신 역시 숨을 쉬기 때문이다. 신이 호식을 하면 세계가 현현한다. 그리고 신이 흡식을 하면 세계가 소멸된다. 물론 신이 한 번 흡식하고 호식하는 데는 영겁의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바로 힌두 경전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다. 어느 날 신이 흡식하면 이 우주는 삼켜지고 용해되어 무가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시 신이 호식을 하면 새로운 창조가 현현할 것이고 그것은 다시 영겁의 세월동안 존속하게 될 것이다. 신의 호흡의 리듬은 인간을 통해 나타날 때는 매우 빠르다. 하지만 그것이 우주 를 통해 나타날 때는 아주 아주 느리다. 그러므로 우리의 호흡이 느리면 느릴수록 우리는 신의 호흡의 리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수세기 동안 호흡은 인도에서 고도로 정교한 과학으로 발전해 왔고 그 테크닉은 매우 복잡하다. 이 호흡의 과학은 너무도 광대한 것이어서 그것을 전부 공부하는데 수년 또는 수백년이 걸린다. 고대 인도의 요기(요가 수행자)와 금욕 고행자들은 호흡에 대해 매우 폭넓은 탐구를 해왔고 그것을 통해 호흡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육체적인 생명력과의 관련성에서 뿐만 아니라 사고 기능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그들은 우리의 육체의 모든 리듬이 우주의 리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호흡과 우주의 호흡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공부한 비전가들은, 영적인 세계의 특정한 영역과 통신하기 위하여 적절한 리듬을 발견하고 그것을 접촉의 수립을 위한 열쇠로 이용해야만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마치 우리가 라디오의 정확한 주파수를 알아야만 특정한 방송국의 방송을 들을 수 있듯이. 방송 청취에 있어서 주파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호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특정한 영역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맞추어야 할 정확한 리듬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당신에게 복잡한 호흡 수련을 하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당신은 요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만일 매우 신중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당신은 균형을 잃게 될 것이고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실행하는 호흡 수련은 아주 간단하다.

1. 먼저 좌측 비공(콧구멍)을 막으라. 그리고 넷을 셀 동안 우측 비공을 통해 깊이 흡식하라.

2. 열여섯을 셀 동안 지식止息을 하라.

3. 우측 비공을 막아라. 그리고 여덟을 셀 동안 좌측 비공을 통해 호식하라.

4. 그러고 나서 좌측 비공을 통해 넷을 셀 동안 흡식하라.

5. 열여섯을 셀 동안 지식하라.

6. 우측 비공을 통해 여덟을 셀 동안 호식하라.

이와 같이 각 비공을 통해 여섯 번 반복하라.

 

일단 이 행법에 익숙해지면 시간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 8, 32, 16, 이렇게. 하지만 그 이상 시간을 늘리는 것을 나는 권하지 않는다.

 

호흡은 능동적으로 영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침에 위장이 빈 상태에서 호흡 수련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하라. 이것은 식사 후에 호흡 수련을 하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만복 상태에서는 폐의 운동이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사실 식사 후 금방 깊은 호흡 수련을 하는 것은 사실상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호흡 수련은 항상 위장이 빈 상태나 적어도 식후 네다섯 시간 후에 해야만 한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양 비공을 통해 깊이 호흡할 때 너무 빨리 흡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흡식은 항상 천천히 안정적으로 해야만 한다. 반대로 호식을 할 때는 빨리 강제적으로 할 수도 있다.

 

호흡을 통해 우리는 공기로부터 매우 귀중한 제5원소를 흡수할 수 있다. 인도에서 제5원소는 프라나로 알려져 있다. 프라나는 모든 우주 에너지의 근원이다. 그것은 일출시에 대기에 가장 충만해 있다. 코를 통해 공기를 의식적으로 빨아들일 때 우리는 이 제5원소를 추출하는 기능을 하는 체내의 공장을 작동시키게 된다. 일단 제5원소가 공기로부터 추출되면 그것은 우리의 신경계통 전체를 여행한다.

 

인간의 신경체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도의 요기와 현자들은 이 정묘한 제5원소, 프라나가 신경들을 통해 척추의 각 측면을 따라 내려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혈액이 동맥과 정맥 그리고 모세혈관들을 순환하는 것처럼 이 지극히 정묘한 유체流體인 프라나는 신경체계를 순환한다.

 

아주 오래 전에 나는 끊임없이 호흡 수련을 했었다. 그때는 내가 아직 마스터 페테르 되노프를 만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17살이 되기 전이었다. 당시 나는 아주 어린 때였고 나를 인도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결국 아프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호흡 수련을 행하고 있을 때 불을 폐 속 깊이 들이 마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동안 나는 상상도 못했던 환희, 행복감, 일루미네이션을 경험했다. 물론 당시에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수년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불 방울이 공기의 매개를 통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성령, 성화聖火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호흡은 지극히 강력한 요소이다. 만일 호흡에 통달한다면 우리는 육체를 떠나 우주를 여행하며 비전가들이 말해온 실재들을 우리 힘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특정한 호흡법을 통해 우리의 차크라들을 각성시키고 영적인 힘들을 계발하는 것이 가능하다.

 

당신은 의식적으로 호흡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이 말은 상념과 호흡을 연계시키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식으로 당신은 잠재의식 속에 잠자고 있는 힘들을 일깨우게 된다. 깊고 의식적인 호흡은 우리의 지성적, 감정적, 육체적 생명에 무한한 축복을 가져온다. 호흡의 긍정적 효과는 우리의 혼 속에서 뿐만 아니라 뇌 속에서도 느껴질 수 있어야만 한다. 당신은 호흡의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생명의 모든 차원들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일상의 모든 환경 속에서, 타인과의 모든 관계 속에서 의식적으로 호흡하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은 당신이 자신을 지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토론을 하기 전에 그 토론이 말싸움으로 전락하지 않길 원한다면 심호흡을 하도록 하라. 또, 아이를 야단치거나 벌주기 전에 심호흡을 하도록 하라. 그렇게 깊은 호흡을 함으로써 당신을 혼란시키는 모든 것을 내쫓도록 하라. 그렇게 되면 당신의 상념은 당신을 휘두르지 않게 될 것이고, 보다 명징하게 될 것이다.

 

당신 자신에 대해 관찰하라. 당신이 분노나 관능의 충동에 빠질 때 당신은 헐떡이게 되고 당신의 호흡은 얕고 불규칙해진다. 불규칙한 호흡은 부정적인 힘들을 일깨운다. 5분 동안만 그렇게 불규칙한 호흡에 빠지면 당신의 내면으로부터 부정적인 힘들이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역 또한 같다.

 

사람들이 졸음에 빠질 때 호흡이 차츰 느려지는 것을 관찰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이유는 잠을 자거나 비활동적이 될 때 연료를 거의 태우지 않고 연소를 자극할 공기도 아주 적게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당신이 깨어 있을 때, 특히 아주 활동적일 때 당신의 호흡은 가속화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육체가 보다 많은 연료를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폐 덕분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고도 생명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일 호흡이 없다면 우리는 공기의 흡입을 통해 에너지를 소생시키기지 못할 것이고 촛불처럼 녹아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도 온갖 성적인 흥분에 탐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지하다고 내가 항상 말하는 이유이다. 성적인 흥분 속에 있는 동안 그들의 호흡의 리듬을 보면 그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과 관련된 센터들은 뇌의 후두부에 위치해 있다. 후두부의 상부는 우정과 가족애, 타인과의 교감능력의 센터이다. 후두부의 하부, 소뇌는 성적인 사랑의 센터이다. 만일 이 하부 센터가 지나치게 많은 혈액의 유입을 받는다면 당신은 관능적으로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깊은 호흡을 통해 그 유혹을 억누를 수 있다. 불과 몇 분 안에 당신은 한결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좋은 호흡 습관은 타인과의 조화로운 교감을 가능케 해준다. 실례를 들어보자.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는 악수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류磁流가 두 사람 사이에 흘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악수 행위는 알맹이가 빠진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올바른 악수를 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 전에 깊은 호흡을 해야만 한다. 친구들과 악수를 하기 전이나 친구 집에 들어가기 전에 깊은 호흡을 하라. 그렇게 하면 그들과의 만남은 조화롭게 될 것이다.

 

여기에 오면 당신은 온갖 종류의 행법들을 배우게 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것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은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당신의 문제들과 싸워나가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행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의와 집중력이다. 마스터 페테르 되노프는 말하곤 했다. '당신이 기도할 때 당신의 상념을 오로지 기도에만 몰입시켜라. 그리고 호흡을 깊고 느리게 하라.' 고요하고 리드미컬한 호흡이 수반될 때 기도는 더욱 효과적이된다.

 

신은 우리에게 말한다. '깊은 호흡을 하고 귀 기울여 들어라. 그러면 당신은 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깊이 그리고 의식적으로 호흡할 때 우리는 보다 쉽게 신과 접촉할 수 있다.

 

호흡과 기도를 연결시키는 아주 간단한 테크닉에 대해 설명하면 이렇다. 숨을 한 번 깊이 들이마시면서 마음속으로 기도 문구의 한 구절을 말하라. 그리고 숨을 멈춘 상태로 다음 구절을 말하라. 그러고 나서 숨을 내쉬면서 또 다음 구절을 말하라. 주기도문을 예로 들어보자. 숨을 들이마시면서 마음 속으로 말하라.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숨을 참은 상태에서 말하라.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고' 숨을 내쉬면서 말하라.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이 땅에도 이루어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추천하는 무엇보다 가장 좋은 행법, 매일 수차례 규칙적으로 행하길 바라는 행법은 빛을 흡수하는 것이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 앉은 뒤 편안히 호흡하라. 당신이 우주의 빛을 들이마시고 있다고 심상하라. 그 빛은 태양 광선보다도 훨씬 더 정묘하다. 그것은 모든 창조에 편만해 있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영적인 빛이다. 숨을 들이쉬며 이 빛이 당신 내부 깊숙이 삼투하도록 하라. 그리고 당신의 모든 세포, 모든 육체 조직들을 통해 순환시켜라. 그러고 나서 숨을 내쉴 때 그것을 당신 외부로 방사하도록 하라. 세계의 모든 피조물들을 계명시키고 돕는다고 심상하면서.

 

이것은 실로 특별한 행법이다. 카발라적인 용어로 당신은 문자 알레프가 된다. 히브리 알파벳의 첫 번째 문자 알레프는 한 손으로 하늘의 빛을 받아들이고 다른 한 손으로 그것을 세상에 방사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당신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당신이 그 빛을 자신만을 위해 잡아둔다면 당신은 알레프가 될 수 없다. 알레프는 자기 자신을 생각지 않고 타인에게 베풀고 빛을 주고 생명을 주기만을 생각하는 자이다. 그는 창조자이자 인류의 구원자, 신의 아들이다.

 

의식적으로 호흡하는 법을 배운 자는 지성을 더욱 명징하게 하고 가슴을 더욱 따뜻하게 하고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행하는 활동에 의식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는 고도로 진보된 영적 존재들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의 화신을 위한 조건들을 더욱 개선시키게 된다. 왜냐하면 그 존재들은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양자 사이에 우정 관계가 수립되고, 그들은 그를 돕고 그 속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가 이 지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같이 일해 온 이 존재들과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의 몸은 하나의 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라. 그 구성원들은 개체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있다. 지금 당신은 당신 내면에 살고 있는 그 존재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이 당신의 친구이며 같은 집을 공유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화신에 다시 그들과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이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올바로 표현하고 자기에게 부여된 신성한 사명을 성취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리용, 1966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