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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al/다카하시 신지_마음의 발견

제5장 신리의 참 언어-마음3

by Yuneelif 2023. 2. 10.

마음

우리가 이 현상계에 태어나서 경험한 지식과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라는 것은 보더 훌륭한 인생을 보내기 위한 체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설령 인생 경험의 시간이 60년이 되든 80년 혹은 90년이 되든 영혼의 영원한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보면 그것은 일순간의 향불과 같은 짧디 짧은 순간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긴 전생윤회를 거듭하고 있는 영혼이며, 그 잠재의식의 보고에는 과거세에서 경험한 위대한 지혜가 간직되어 있다. 이 지혜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 항로를 이끌어 주는 영감으로써 현상화된다. 

이 위대한 지혜의 보고를 여는 방법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열쇠에 의하는 길밖에 없다. 이 열쇠는 신리에 바탕한 상념과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설명해온 바와 같다.

이 현상계에서 배운 지식은 자칫하면 자기보존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것인데 그렇게 곧잘 빠지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런 결과로 학력이나 종이의 시험에 의해서 인간의 가치가 판정되고 있다.

마음이야 어찌 되었든 시험에 합격만 하면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고, 그렇게 해서 지위를 획득한 자들 가운데에는 권력을 잡고 악덕을 쌓는 자들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자와 손을 잡고 이권에 개입하는 자 등 자기보존으로 남의 사정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들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들도 권좌에서 일단 물러나게 되면 육지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인생의 무상을 알게 된다. 굽실대던 아첨꾼들도 어느새 등을 돌리고 만다. 썩은 고기 덩어리에 몰려드는 구더기 같은 심보의 주인공들도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악덕업자들은 다시 새로운 상대를 찾아 떠나가버린다.

인간의 교제는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지도자가 외면적 판단으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그 결과 마음의 존엄성을 무시한 지식이 인류를 물질문명의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물질문명을 위해서 인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서 물질문명이 존재해야 한다. 지성은 인류 사회의 조화와 평안을 목적으로 삼고 자기자신의 영혼을 보다 고차원으로 연마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신불의 자녀로서의 자각을 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인간에겐 교양이라는 지식이 있지만 도를 깨닫지 못한 사람에겐 그것이 오히려 저항을 불러일으켜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중시한 지성이 아니라 자기보존, 자아아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촉매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중도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념과 행위를 잘 반성해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적극적으로 실천 노력한다면 현상계에서 배운 지식은 잠재의식 속에 기억되어 있는 위대한 지혜와 조화를 이루어 인생을 보다 훌륭하게 진보시켜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을 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보다 정화되어 지혜의 문은 열리고 관자재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학문적인 가치는 이 때 더욱 발휘되어 직업에 관계없이 신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상실한 지성은 파괴와 투쟁을 낳고 원자폭탄은 인류의 수행장(지구)마저 파괴시킬 위력을 가지고 있다.

물질경제 지상주의에 의한 고도 성장은 공해를 낳고 있으며, 농공업계에 있어서는 농약·세제·석탄·석유·휘발유·광업·식품에 이르기까지 인생항로의 육체주를 파괴할 살인적인 생활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은 모두 코 앞의 이익에 급급한 지식의 산물이며 마음을 상실한 물질 문명의 부산물이다.

자본주의는 마음을 상실한 자본가가 이익 추구에만 급급하고 노사의 불만은 계급투쟁을 낳고 있다. 그래서 사회문명은 상부층과 하부층의 계급투쟁을 거쳐 발전해간다는 약육 강식의 동물적 사고 방식을 그대로 인류사 가운데 집어넣고 말았다.

기업은 종업원에 의해서 성립된다는 것을 잊어버렸고, 한동안 그들은 경제 노예의 대우밖에 받지 못하였으며, 독점 자본가의 배를 채워주는 희생자에 불과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강자에 대해서 약자는 단결로써 저항하여 소위 계급 투쟁이라는 것이 독점 자본가와 권력자 앞을 가로막고 말았다.

많은 대중은 조상 대대로 권력자의 혹심한 학대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자유 평등의 사회를 갈망하는 투쟁사가 필연적으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유 평등이어야 할 대중은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는 무시당하고 새롭게 대두된 소위 노동귀족이라는 족속들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마음을 상실한 그들 지도자들은 머리로 짜낸 계급투쟁을 대중에게 강요하여 때로는 무력, 때로는 권력과 조직력을 앞세워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물질주의의 옷을 입고 있는 그들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상실했기 때문에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어제의 동지, 오늘은 인민의 반역자'라는 낙인을 찍고 어제까지의 동지를 가차없이 처단해 버린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형성된 물리적인 단결은 그 어떠한 사상으로 무장되어도, 생활이 윤택해지고 안락해지면 붕괴되고 만다. 마음이 충족될수록 자유를 바라고 불성에 눈뜨게 되는 것이 신불의 자녀로서의 당연한 귀결이다.

물질적 물리적 압력을 가해서 단체를 조직한 지도자들은 평안이 없다. 권좌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욕이 강한 부하들에게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것이 또한 그들의 상태다. 평안이 없는 부조화한 환경도 다름아닌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인과의 법칙이며 진리다. 계급투쟁을 강조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이와 같이 서로를 불신하고 내부의 갈등과 암투로 밤잠을 설치며 마음의 평화를 잃고 있다. 그들은 그 원인을 독점 자본가, 제국주의 혹은 권력자 타도에 대한 민중의 투쟁심 결여에 그 책임을 전가하여  자기 자신의 행위는 반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는 투쟁에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또한 언젠가는 권좌에서 쫓겨나 고뇌많은 인생을 맛보아야 한다. 이런 불쌍한 지도자가 그 얼마나 많은가. 이런 지도자들은 '인민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도 결국 자기보존을 위한 괴로움 이외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개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투쟁심은 자신의 마음을 파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독점 자본가도 자기보존의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고통받는 많은 대중에게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뻗지 않으면 안 된다. 나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태양의 광열 같은 평등한 자비심으로 희사하는 것이 인류애의 구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환경·지위·명예를 초월해서 노사는 평등해야 하며, 서로 공생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상호 신뢰로써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로 감사하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하며 서로 만족할 줄 알 때 노사의 투쟁은 모습ㅇ르 감춘다. 사실 이러한 투쟁이 물가의 안정까지도 흔들어놓고 있다.

무력이나 권력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는 사회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여 형벌로써 대중의 불만을 억제하고 있다. 물리적 정신적 압박에 의해서 지배되어 있는 계층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부의 불만을 폭발시켜 부조화한 사상을 무너뜨린다.

때에 따라서는 봉건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 뜻 있는 지도자가 일시적 방편으로 엄격한 통제경제를 펴 평등한 사회를 만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희생자를 내고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도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왕왕 폭력 행위에 의한 탄압을 강행하여 반대자를 숙청해 버린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라도 언젠가는 권력을 잃게 된다. 그들의 마음은 불쌍하기 그지없으며 오랫 동안 저지른 죄를 지옥계에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반성의 기간 동안 자신이 저지른 투쟁과 파괴의 행위, 신리에 거스른 행위를 뼈저리게 뉘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상의 만생만물은 신불의 자비에 의해서 영혼을 수행할 수 있도록 부여된 것이다. 모든 재산이며 물질은 우리가 육체주를 타고 수행하고 있을 동안에만 빌리고 있는 일시적인 차용물에 지나지 않으며 언젠가는 대자연에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차용물은 본디 그 어떤 인간도 독점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인류는 누구나 다 불성을 깨닫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를 신불로부터 부여받고 있으므로, 이 차용물은 인류 전체의 조화와 발전을 위해서 뜻있게 활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불의 몸인 이 지구를 평화스러운 불국토 유토피아로 완성시키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안겨진 사명이요 목적이다. 깊이 마음에 생겨 정법의 실천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용기와 노력으로 조화의 길을 열고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유물주의도 자본주의도 모두 물질경제 본위이며 마음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되찾지 않는 한 인간을 구제할 길은 없다. 물질경제의 바탕 위에 자신의 마음을 확고히 가다듬고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우리의 손으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노사의 쌍방이 투쟁과 파괴의 사상을 버리지 않는 한 쌍방의 멸망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단결이란 미명 아래 일부 정신이상자나 자기비호 의식이 강한 자가 철없는 대중을 선동하여 투쟁과 파괴의 행동을 유도하고 있지만, 그 행위는 언젠가는 자신의 불행이 되어 자신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폭력으로 인간을 지배하였다 해도 언젠가는 그 폭력에 의해서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된다. 인간은 부자연한 사상에 세뇌되어도 마음 밑바닥에는 불성·신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그 사상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부조화한 사상에서 멀어져 간다. 폭력적 지배는 인간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투쟁과 파괴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고 못난 짓이였던가 하는 것을 인류는 모두 반성하게 된다.

내면적인 심적 관계가 인생에 얼마나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영원한 전생윤회의 도상에 자신의 모습을 깨달음으로써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게 된다.

오랜 전생윤회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류의 투쟁과 파괴의 카르마를 수정함으로써 이 지상에 낙원은 세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괴로운 경험을 몇 번인가 겪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신리의 씨앗은 그와 같은 괴로움의 극복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 속에 튼튼한 뿌리를 내려 고뇌의 인생을 구출한다.

오른편에도 왼편에도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간은 상부상조하여 즐거운 인생을 보냄으로써 그 의의를 깨달아 간다. 

물질문명 탓에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고 혼란한 사회를 하나로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성장해 간다. 괴로운 역경에서 인류의 지식은 에너지 혁명도 일으키고 공해에서 몸을 보호하는 길도 발견한다. 대자연의 자원 속에서 생활의 지혜를 찾아내어 인생을 보다 풍족하게 해 준다. 

빛의 에너지, 전기 에너지, 자력 에너지 등을 응용한 기차가 발명되어 전자장을 안정된 기차에 실어 원거리까지 단숨에 운반할 수도 있게 되며 우주공간을 좁혀가기도 한다. 

물질 지상주의는 전세의 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물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인류는 그 언어까지도 통일하게 될 것이다.

자기보존과 자아아욕의 부조화한 사고방식으로써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 인류의 상호협력, 조화 이외에는 전진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류는 모두 형제임을 알게 되고 마음과 마음이 조화하는 사회가 실현되어 간다. 원자 세포로써 구성되어 있는 육체는 정법을 개달은 영혼이 지배하여 육체와 의식의 상호 관계도 확실하게 해명돌 것이며 육체의 수명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인류의 지혜는 또 다른 천체를 발견해서 이주하게 될 것이다. 22세기, 23세기의 인류의 지혜는 공간과 해저로 발전하여 풍부한 지구 국가적 환경을 건설할 것이다.

그 동안에도 인간의 어두운 상념에 의한 명 번인가의 국지적 천재지변이 일어나 마음이 부조화한 인간에 대한 경고가 있을 것이며, 현재의 국가군의 눈은 우주 조직으로 돌려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시도 한 장소에 머무름이 없이 차원이 다른 세계로 진화해 가는 생명이다.